크로아티아 불루

 

아주 감성적인 글을 만났다. 밖은 대체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심술을 부리는 겨울의 손을 잡은 꽃샘추위가 극성을 떠는 날이었다. 오늘 내가 만난 색깔은 하얀색. 아침 운동 가느라 집을 나서며 바라본 건너편 문학산의 설경이 생각났다. 멀리서 보아도 섬세한 나뭇가지들이 도드라지도록 눈이 가지들을 감싸고 있었다. 저런 풍경을 만들어내느라 어제는 그렇게 바람과 비와 눈이 종일 오락가락 했었나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생각도 잠시 긴 손가락으로 옷 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이 늦겨울의 바람이 견디기 힘들어 저절로 따뜻한 공기의 나라를 꿈꿔보았다. 경비실에서 책을 찾아들고 나오면서 궁금증을 참지 못 하고 길에 선채로 포장을 뜯었다. 오래도록 기다렸던 책이었다. 푸른색보다는 초록에 회색이 많이 섞인 표지가 저자의 마음을 표현하느라 참 노력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나의 그런 생각이 맞는지 확인 해보고 싶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이런 식으로 첫 대면을 하는 책들은 대부분 술술 그리고 빨리 읽혀진다. 대신 정리를 할 때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얹어서 따라가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아니면 미처 눈치 채지 못 하고 있던 저자와 같은 정서가 표출된 것일 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슬쩍 객관성을 잃어버렸다는 소린데 웬만하면 책을 읽는 내내 객관성을 놓치지 않는 평소의 습관대로라면 작은 반란이고 일탈이다.

 

크로아티아ㅡ 유고슬로비아 연맹을 이뤘던 여섯 국가의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스포츠를 잘하는 신생독립국이나 발칸의 일부로 두루뭉술하게만 알려진 나라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게 크로아티아를 ‘유럽 속의 아주 특별한 유럽’으로 생각한다. 크로아티아는 3천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로 다양한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독자적인 슬라브 문화와 어울린 독특한 문화를 일궈냈다. 처음에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는 고대 로마의 일부로 이탈리아보다 잘 보존된 고대 로마의 유적으로 가득하다. 프랑크 왕국의 일부였다가 중세에는 베네치아공국에 속했으며, 가톨릭 국가로 투르크에 맞서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을 지켜내기도 했다.(‘크로아티아 불루’ 본문 중에서 발췌)

 

사진. 나는 사진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저 내 눈에 들어와 좋은 것이면 좋은 그림이요 좋은 사진이 된다. 사진의 구도니 노출이니 피사체니 하는 것들까지 신경 써 가면서 사진이 그려내는 좋은 장면들을 분석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면서 어라? 같은 장면이라도 사진을 찍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른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네 라는 생각을 했다.

크로아티아의 생소한 풍경을 처음 눈여겨 본 것은 영화 007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니엘 크리이그가 주연한 007 퀀텀오브솔러스에서의 자동차 추격신은 정말로 멋진 파란 바다와 삭막한 해변이 영화의 긴박한 장면을 더욱 돗보이게 했었다 그 장면의 촬영지가 정말로 크로아티아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짙푸른색 바다를 떠올릴 때마다 난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곳이 크로아티아라고 믿고있는 나를 보면서 색깔이 가지는 마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장면은 후에 보았던 다른 책에서 본 크로아티아의 바다빛깔과 똑같았다. 긴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낮고 평평한 산들 숲은 없고 낮은 야산만 이어지던 황량함이 크로아티아의 시린 푸른색과 대비되어 왠지 더 신기하게만 느껴지던 그 풍경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에서 만나는 크로아티아의 바다빛깔은 한편 익숙하고 또 낯선 풍경이 되어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처음 시작부분에 언급된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책을 따라가는 내내 그녀가 동행을 한다면 어떤 모르는 남자의 이미 끝난 사랑이야기나 듣다 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지루한 독서가 될텐데 라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책속 저자의 어조는 내내 약간 가라앉아 있고 차분하고 조분조분 하다. 사진으로 보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크로아티아를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의 문체도 크로아티아의 푸른색을 닮았다. 아, 그래서 제목을 ‘크로아티아 불루’라고 정했나?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혼자 빙긋 웃어보았다. 책을 다 읽고 주루룩 넘기면서 그림들만 다시 한 번 더 보았다. 파란 바다가 페이지마다 보석처럼 박혀서 반짝거린다. 갑자기 어디든 떠나보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김연숙 드라이빙 카페연가

 

음악을 좋아한다. 어느 시절엔 취미를 밝힐 일이 있으면 늘 음악 감상이라고 적어 넣던 때가 있었으니까. 아니 내 기억엔 그 시절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었다. 지금은 취미 란에 적을 항목도 매우 다양해진 세상이다. 더 이상 음악 감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아니, 매우 특별하거나 또는 매우 일반적인 분야이지 않을까 싶다. 암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것도 거의 전 방위로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편이다.

 

‘김연숙’이라는 가수는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겐 매우 낯선 이름일 것이다. 하긴, 나도 그녀의 노래는 ‘그날’이라는 노래 밖에는 모른다. 김연숙의 목소리는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음색은 아니다. 가수의 목소리도 악기도 파워풀한 음색을 좋아하는 터라 왠지 가느다랗다 못 해 꺾일 것처럼 얇은 여자를 연상시키는 음색의 이 가수에게 마음이 가지 않은 건 내 입장에선 당연한 거였다. 텔레비전의 7080 노래 프로에 출연한 이 가수를 몇 번인가 보았고 음색에 비해 호소력도 있고 무엇보다 호흡이 무척 긴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덕 위에 손잡고 거닐던 기억도 아스라이~’이렇게 매우 낭만적인 가사를 가진 ‘그날’이라는 노래를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불러주는 친구가 있어서 유난히 더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이 새로운 음반으로 한 번 더 그녀를 기억할 수 있을 거 같다.

 

‘드라이빙 카페’라는 타이틀대로 운전하면서 듣기에 좋은 음반이다. 귀에 익은 7080 음악들을 실컷 들을 수도 있고 잔잔한 김연숙의 목소리에 빠지다 보면 혹시 힘껏 누르고 있던 가속기의 폐달에서

바보 빅터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거 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작가가 굳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관심이 뜨거웠다고 하고 또 일부러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한 서문도 썼다. 사실 나는 <마시멜로 이야기>는 1편만 읽었었다. 쉽고 가볍게 읽었지만 큰 감동보다는 잔잔한 다짐이 더 매력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2편이 나왔을 때는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서 읽지 않고 말았었다.

 

바보 빅터도 <마시멜로 이야기>만큼 가볍고 따뜻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얼른 읽고 중학교 2학년 녀석에게 읽어오라고 숙제 비슷하게 반 강제로 빌려주었다. 평소 자존심은 강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만족스럽지 못 해서 약간의 의기소침함을 보여주던 아이였다. 처음엔 이 책을 읽으면 아이의 마음에 무언가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했었지만 그 아이를 만날 시간이 되어가고 또 어떤 식으로든 숙제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니 내가 그 아이의 상처에 새로운 상처를 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뭔가 새로운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려면 우선은 이 책을 스스로 선택해서 읽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뒤늦게 생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두 주인공들의 일상은 필요이상으로 고단하고 불우하다. 자칫 이 책을 권한 사람의 마음을 오독하여서 ‘이 사람이 나를 주인공들처럼 보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책을 권한 사람의 진심도 또 책속에서 말 하고자 하는 의미도 이미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상황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빛은 강할수록 어둠이 더 짙어진다고 했던가. 이 책은 빛이 더 환하게 도드라지도록 하기 위해 어둠의 농도를 너무 짙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의 분량을 왜 이렇게 가볍게 했던 걸까.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짧지만 명료하게 기억될 메시지였던 걸까.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메시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문제들의 해결은 어느 시점 마치 고전소설의 형식을 보듯 한꺼번에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상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맘에 드는 구절들이 많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아. 또 완벽한 환경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건 가능성뿐이야. 시도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그러니 두려움 따윈 던져버리고 부딪쳐보렴. 너희들은 잘할 수 있어. 스스로를 믿어봐.”(page98)

 

"누구나 일이 안 풀릴 때가 있단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그리고 꿈을 포기하려고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하지만 모두 변명일 뿐이야. 사람들이 포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야. 정신적인 게으름뱅이기 때문이다.”(page139)

 

“나는 한때 패배자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었습니다. 세상은 나를 믿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믿었습니다.”(page170)

 

"나도 불행했던 시절을 겪어봐서 알아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거에요.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도 자신을 격려하고 아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가두지 마세요. 날개를 펴요.”(page183)

 

위에 책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보면 이 책이 내내 동화처럼 가벼이 읽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문득 문득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의기소침할 때마다 나 혼자 내 뱉고 하던 말 ‘나는 나를 믿는다’가 생각나 ‘음ㅡ그러니까 나도 잘 살고 있는 거란 말이지?’라며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고 또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으니 기꺼이 의미 있는 독서의 시간이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본문에 바탕으로 깔려 있는 일러스트도 이 책을 가볍게 따듯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늘 하얀 바탕에 글씨만 인쇄되었던 책들만 보아서일까 문득 이렇게 그림이 깔린 책들을 읽어본 게 언제였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