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느낌이었다.
앤딩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을 때의 허허로움과 아직 영화의 분위기에서 깨어나지 못 한 어색함,혹시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면 옆사람에게 눈물 자국을 들킬까봐 서둘러 화장실로 내빼듯달려가야 할 것같은 민망함...이런 것들을 이 책을 덮으면서 잠시 느꼈다면...이 책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446쪽이나 되는 결코 짧지않은 소설이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 표지의강렬한 붉은 색과 커다란 돋을 새김의 책 제목이 부담스러웠다. 페이지 수 만큼의 두꺼운 몸집이야 말 해 무엇하리. 하지만,작가는 독자들을 아주 강한 흡인력으로 잡아 당긴다. 긴장감있는 문체는 빠른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난해하지 않은 전체적 흐름때문에 절대로 맥을 놓치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작품을 번역한 정탄의탁월한 번역도 책의 재미에 큰 비중을 차지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베이징 컨스피러시...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그렇지만, 더 큰 맥락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와의 종교 분쟁을 더 나아가서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같은 새로운 테러에 대한 경계를...그리고...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더 급급한 정치인들에게는 경고를...마지막으로 종교와 인종을 떠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종교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원리주의자들에게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신이 10억의 기독교인들과 10억의 이슬람교도를, 40억이 넘는 다른 종교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해놓고 그중 한 그룹에게만 지도를 준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피조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 구하고 나머지는 유황 지옥 속에서 불타게 한단 말입니까.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의 위대함을 무고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는 것으로 보여준단 말입니까. 그런 신이라면 저는 숭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이 잔혹한 폭력을 승인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원전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는 원전을요."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된 볼튼 대통령을 대신해 임기내 대통령직을 인수하게 된 데이비스 버튼 신임 대통령이 의회에서 행하는 이 연설엔 작가의 신념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에이드리언 다게.
호주 시드니 출신이며 군인이었고 현재는 호주 국립대학 이슬람 연구센터 연구원이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이 테러리스트라고 가정하고 썼다고 했다.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단계에서혹시 테러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줄 지도 몰라 써야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독자들에게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면도 있지만 그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는 순간에도 9.11테러로 죽은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매달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라크는 이제 테러리스트의 온상이자 자살 폭탄의 영감을 주는 성지가 되어 있다.우리가 다른 문화에 관대해지고 나아가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이책 [베이징 컨스피러시]는 그저 허구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린 모두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소설은 그저 소설로서만 읽혀지길 바랄 뿐이다.
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첨단의 지식을 습득하기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과 미국, 아랍과 서방의 관계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정보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이득이었다고 해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