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올 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들이었다. 선풍기는 종일 시달리다 못해 더운 바람을 뱉어내면서도 연신 헉헉거렸고, 사람도 기계도 다 같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더운 날의 나들이 뒤에 더윗병을 앓는 나는 덕분에 방에 드러누운 채 이 책을 읽었다. 아프다는 사람이 옆으로 비스듬이 누었다가 잠시 일어나 앉았다가를 연신 반복하며 책만 읽고 있으려니 식구들한테 미안하기도 했지만 왠지 빨리 끝내야 한다는...그런 마음이 나를 자꾸 재촉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저녁 이 책의 표지를 덮었다. 간간히 다른 책들에 곁눈질을 좀 했다고 하지만, 일주일을 꼬박 공들여서 읽은 책인데도 막상 책장을 덮고나니 뭔가 허전하다. 머릿속에 무엇인가 잔뜩 들은 거같은데 끄집어낼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은 막막함.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저자가 단군학회에서 발표했던 내용들을 취합해서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군학회라면 최소한 단군에 대한, 아니 단군에 대한 내용이 실린 책이나 글에 대해서 이미 한 단계 넘어선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러니까...대부분의 일반 독자에겐(여기서 일반독자라 함은 나처럼 역사에 관심은 있으나 그 앎이 미미한 일반인 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쯤으로 해두면 너무 억지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쉽게 다가서기엔 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최소한 [한단고기] [제왕운기] [규언사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읽었던지 아님, 그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책인지 정도는 알고있어야 그나마 숨차게라도 작가가 설명하는 것들을 겨우 따라갈 수 있다. 그렇지만, 독자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같다. 나부터도 [삼국사기]는 어찌 어찌 한글 번역본으로 출판 된 것을 간신히 읽었지만, 다른 책들은 번역본이 있는지 조차도 알아보지 못 한 지경이다.

작가가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고조선에 대한 여러 분석들도 내가 알고 배운 것이라야 겨우 [삼국사기]에 전하는 고조선 부분을 대학 국어 시간에 배운 것과 한국사 시간에 배운 것들 그리고 그간의 독서를 통해서 앍게 된 상식들이 전부라서 이해하기가 여간 버겁지 않았다. 나름대로 백과사전을 들춰가며 등장하는 책들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었고, 쉬운 이해를 위해 제시된 것이 분명한 표들도 오히려 난수표처럼 도저히 해독이 안 되었다면...내 무식의 소치라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걸까?

작가가 포스트 고조선이라고 주장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의 설명보다 나는 기자조선에 대한 부분이 더 솔깃하게 마음이 쏠렸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지난 주 구경 갔었던 칠석굿마당에서 들었던 무당의 사설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었다.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가 속에서 [기자]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었다. 칠석굿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굿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보다는 [단군]이 무가에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가라는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으로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무가에서 등장하던 [기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마침 이 책의 앞 부분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문점이 연결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자조선에 대한 부분도 단군조선을 실증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다만, 여는 글에서의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벌려야 하는 이유] 만큼은 아주 명료하게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그 이유를 첫째,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변이된 사회주의 경제적으로는 변형된 자본주의이기 때문. 둘째,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내전의 법칙. 셋째, 중국 주변의 두 부국(대만과 한국)중 하나인 한국은 남한에 호의적인 고려인-조선족의 존재가 고려인-만주족-몽골족, 고려인-묘족을 자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 역사의식 자체를 변경 새로운 新韓族을 창조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중국의 동북공정은 다른 한 편으로는 침략적인 패권주의를 함축하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대결 과정에서 만일 북한 정권이 지동 붕괴되면 북한을 침략할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북한 정권이 붕괴도면 북한에 진주할 남한의 권리가 대부분의 남한 인민들이 가지는 정서적 감정과 달리 국제법으로 충분히 공인되어 있지 않다는 약점을 이용해서 북한을 점령하고 미국 군대와 중국 군대가 진주해서 그 뒤처리 비용을 남한에 떠넘기는 작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역사를 매개로 한 한반도 침략 전쟁의 의도를 함축한 것이다.(Page10)

이런 작가의 역사의식에도 불구하고 단군조선과 고구려에만 거의 맞춰져 있는 시각이, 그리고 설명보다는 증명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는 내용이 독자로서의 욕심에 비해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려웠다. 때문에 제대로 된 이해와 작가의 증명에 동참하기 위해선 좀 더 많은 역사 공부를 한 후 이 책을 다시 한 번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깊이가 얼마나 얇고 볼품 없는 것인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지만, 새로운 역사 공부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역사공부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었던 나름대로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그녀의 책방엘 들른다.  새책 좀 들여놓으라고 성화를 대는 나에게 새책 들어오는 거는 맨날 우리 두 사람만 읽는다고...그러니 내 책을 기증하라고 오히려 나에게 볼멘 소리다. 하는 수 없이 거래처를 바꿔야할 것같다고 으름짱을 놓는 내게 옥련동 바닥 다 뒤지고 다녀도 내 맘에 맞는 책 제일 많은 데는 자기네 책방 밖에 없다고 오히려 내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서로 마주보고 하하호호...그러면서 그녀가 새로 들어온 책이라고 권한 것이 바로 이 책. [바람의 화원]이었다. 책을 내주면서 자기, 이 책 아니라도 볼 책 밀려있지않나? 이렇게 살짝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그녀. 맞다. 그렇지만 가끔은 새로운 바람도 필요하다...해서, 주말과 휴일의 얼마쯤은 이 책을 읽는 데 할애를 한다.

그림 이야기.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가는 사람 이야기. 조선시대 풍속화 하면 우리는 대부분 당연하게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을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미술 교과서의 풍속화 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림들. 그리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름이니까....그래서 대부분은 나름대로 그림에 대한 그리고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고정관념을 교육 받았다.

이 책은 그렇게 교육 받은 고정관념을 확 뒤집어 놓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 김홍도와 신윤복 두 사람의 감정의 씨줄과 날줄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도세자의 어진에 대한 수수께끼와 대 화원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보고자 발버둥치는 두 사람의 사투도 또한 흥미롭다. 거기에 아마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궁궐내 도화서라는 곳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거기에 얽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음...궁궐의 어떤 관청에 대한 이야기던지 궐내서 읽어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대장금]의 풀롯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책을 읽는 내내 음...작가의 상상력이 정말로 놀랍군...이라고 감탄을 했다. 물론, 추리문학으로서의 이 소설은 글쎄...문제 해결 과정이 너무 느슨하다. 문제가 풀리지만 답을 알려주는 순간이 마치 주머니가 찢어지면서 그 속에 들었던 것들이 갑자기 쏟아져나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작가의 상상력에 합해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과 문제의 해결과정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던 것같다. 하지만, 그 욕심이 조금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두 주인공의 감정은 왠지 늘 겉돌면서 독자를 끌어들이기엔 힘이 부족했고 문제의 해결 역시도 일순간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점만큼은 대단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혜원 신윤복이 여자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상상. 앞에서 얘기한대로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한 고정관념만을 교육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같은 주제로 그려진 김홍도의 그림과 신윤복의 그림을 비교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즐거운 체험이었다. 소설 속에서 이뤄지는 그림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어느 미술관 큐레이터의 해설보다도 훨씬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한 권의 소설을 읽었지만,소설과 더불어 한국 풍속화의 대가들의 전시회를 들러본 느낌이었다.

 

 

[금성이 새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리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Page 270]

안녕? 오래간만에 그대를 내 기억 속에서 불러내 놓고는 한참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무엇인가 쓸 말을 쉽게 떠올릴 수 없었어. 어제와 오늘 나는 대부분은 더워서 햇볕 아래 드러누운 개처럼 헉헉거리며 기운을 못 차리다가 이번엔 금새 여름감기를 앓는 환자가 되어선 오슬오슬 어깨를 덮는 한기를 못 참아 자꾸 몸을 움추리기도 해가면서도 이책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을 내내 읽었지.

올해 육십대 중반을 넘긴 작가가 쓴 성장소설...월남 파병이 이 양반과 글 속 주인공의 스믈한 살의 비망록에 기록 될 시간이라는데 대부분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사는 시절은 내가 살았던 80년대 우리 스므살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러고보면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 텔레비젼과 전화가 대중화 되고 인터넷이라는 게 생기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지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랜 날도 아닌데 우리들의 시절이나 황석영 작가가 들려주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흑백 사진 속에서 처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건 매일반이라는 생각도 했고 왠지 그와 그의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과 나와 그리고 그대...우리가 모두 동일한 감정선상에 위치한다는 반가움. 그리고 오래도록 잊고살았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잠시 마음이 아려지기도 했다네.

이야기 속의 영길. 준. 인호. 상진. 정수. 그리고 선이와 미아...돌이켜보면 우리 젊은 시절의 한때 그대와 나의 친구들의 이야기이거나 또는 그대와 나의 이야기인 것같기도 하고...그래서 책을 읽다가 문득, 어느 겨울 김포 양곡에서 내려 교회 옆의 골목을 지나 오래도록 걸어서 만났던 바닷가의 어느 과수원집을 생각해내기도 했었지. 과수원 주인이기도 했고 작은 시골교회의 장로님이기도 하셨던 그 과수원집 친구의 아버님...겨울 바람과 마주보며 먼 길을 걸어간 우리들에게 사과를 아주 많이 내놓으시며 대접할 게 그거 밖에 없으니 많이 먹으라고 하셨었는데...몇 해전. 기억을 더듬어 그 길을 찾으러 혼자 김포에 간 일이 있었다네...교회 골목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었지만 이미 그 동네가 어디였었는지 길도 없어진지 오래인지 자취도 없어지고 결국, 그 날 언덕에 서서 바라보던 기억 속의 바닷가가 혹시 김포 대명포구였었던가? 이런 생각이나 골똘히 하면서 돌아왔었다네.

소설 속의 준이 한동안 노가다판을 함께 돌았던 사람 대위가 늘 했던 말...’사람은 씨팔......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그래...우리에게도 그 푸른 시절은 준이처럼 그러지 않았을까?  세상에 대해 시니컬한 눈길을 주고 우린 아마도 대부분 아나키스트였던 것같은 시절. 휴대전화같은 건 생길거라고 생각도 못 했을꺼야. 인터넷? ㅎㅎ 그런 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으니 어디 만화같은데서라도 본 기억이 나는 없네. 우리들의 세계는 아나로그였고 흑과 백의 좀 단조로운 세상이었지만, 우리들의 소식을 가져다 주던 우체부 아저씨와 오가는 편지에 접선장소처럼 적어놓던 동인천 시계탑. 많은 게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시절이었어. 그 때는 약속시간에 1시간씩 늦어도 잘도 참고 참 잘도 기다려주었었는데...이젠...이젠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우린 지금 너무 바쁘고 숨가쁘게 살고 있군.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씨팔.....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건데...’ 우린 뭐가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문득, 그대를 보고싶어지는군. 그대가 걸어나오던 동인천 역의 나즈막하던 옛날 개찰구 지붕과 날 보고 웃던 유난히 하얗던 그대의 가지런한 치아와 가늘어지던 눈매...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 심각하게 토론했던 미술가들 모네 고흐 로뎅 모딜리아니...

아무쪼록 그대...행복하게 잘 사시게...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좀 느리게 가는 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네. 아니,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던 그 시간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런 느낌에 젖어들려나? 아뭏튼, 이젠 기억도 희미한 내 젊은 날의 그대여 이밤도 편안하길...그리고 잘 지내길 바라네...

칠석과 입추의 날에 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