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중국을 공부하라 / 류재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 결국 아는 만큼만 일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중국은 아는 만큼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곳이다.(중략) 모른다고 여겨야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중국인이라는 깊은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page17)

 

책 표지에 ‘삼성 최고의 중국통’이라고 소개된데 비해 저자는 서문에서 20년째 ‘중국을 공부하는’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본사형 중국전문가’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중국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하고 중국의 시야로 중국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책을 펼친 당장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의 중국에 대한 정보는 피상적이며 교과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독자에게 저자의 요구는 너무 쉬워서 또한 너무 어렵다.

 

평균은 정답이 될 수 없다. 평균은 이상적이며 실존하는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평균은 정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며, 하나의 이론적 기준이다. 이론적이고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평균을 아는 것은 그래서 아주 중요하다.(page19)

 

중국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일단, 그들이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끝없이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바꾸려 애쓴다는 것 때문에, 이제 고궁이나 백화점에 가면 가장 많이 만나는 관광객이 중국인들이라는 것 때문에, 거기다 한 가지 더 근래에 추가된 이유는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소유한 땅이 늘었다는 것과 중국의 스마트폰 회사인 샤오미가 창사 4년만에 세계 스마트폰 3위에 입성했으며 삼성전자를 제치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를 했다는 것 때문이다. 좋은 의미든 아님 덜 좋은 의미이든 중국은 우리에게 미국만큼이나 우리를 긴장시키고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지만 막상 한국인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중국인을 배워 조금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중국에 대한 것을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중국어뿐만이 아니라 말 뒤에 숨겨진 그들의 습속과 생각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중국인들의 성격 뒤에 들어있는 인맥 관리였다. 중국인들의 인맥은 ‘꽌시’라고 불려진다.

 

중국어사전에서 꽌시는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라는 뜻과 ‘연줄’이라는 뜻으로 정의된다. 영어로는 'relationship' 'human network'로 표기된다.

(page153)

 

‘중국인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리보다 명분을 더 따진다고 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독자한테 이렇게 묻는 의도가 뭐지? 하고 궁금해진다. 실리를 더 따진다는 소릴까 아니면 명분을 더 따진다는 의미인가. 중국인들은 꽌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데 대체 그들의 속내를 가늠해볼 수 없어 답답했다.

 

체면과 꽌시는 물론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다. 하지만 그 것은 모두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가치다. 중국에서는 체면도 꽌시도 화폐다. 화폐처럼 거래되고 양도된다. 돈과 체면, 돈과 꽌시 중 어느 하나를 택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에 돈이든, 체면이든, 꽌시든 그 가치를 비교 평가해 큰 쪽을 택하면 그만이다. 중국의 지갑에는 돈이라는 현금과 체면이라는 신용카드와 꽌시라는 수표(어음)가 있다. (page151)

 

사람이 떠나면 차가 식는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높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처지가 달라진다는 말로 각박한 중국인들의 인심을 표현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저자가 현직에서 물러나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저자를 더 챙기고 만나고자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와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오히려 조직에서 나오니 저자와 연락하는 게 회사의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 여기엔 사람의 관계를 멀리 내다보는 중국인들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었을 거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꽌시로 불리는 인맥은 넓고 광범위하다고 한다. 즉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친구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맥과는 수준이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들의 꽌시는 ‘베품’이 아니라 물질처럼 ‘교환’의 개념을 가진다는 것도 놀랍다. 때문에 중국인과의 단순한 교류를 꽌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꽌시는 권력이자 권력을 재생산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배타적이고 폐쇄적이기도 하므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인들과 일하려면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중국인들에게 이런 점은 배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 하는 중국은 몇 년을 공부해도 다 배울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넓고 깊다. 중국과의 거래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중국의 시야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해의 방법은 중국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높으면서도 깊고, 길면서도 넓다.

편견과 선입견의 색안경을 벗고 훨씬 더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바라본 중국과 중국 현지에서 겪는 중국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page 209)

중국, 꽌시, 배선옥

우리는 소박하게 산다 / 세실 앤드류스

 

소박함(Simplicity)이란 소유에 대한 욕심을 줄여서 내면의 안락을 도모하는 것이다.(page8)

 

결혼하고 용인의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 터를 잡았을 때였다. 동네의 조금만 암자에 주지를 맡아보시던 비구니 스님께서 다른 절로 옮겨가셨는데 들리는 말에 스님께서 많이 편찮으시다는 거였다. 어느 여름날 남편과 나는 스님의 거처를 물어 물어서 찾아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절집의 방 한 칸에 머무르고 계시던 스님의 거처는 참으로 간결하고 또 간결했다. 아무 것도 걸리지 않은 벽에 횟대만 하나 덩그러니 그리고 거기에 걸린 승복 몇 권의 책과 한 쪽에 정갈하게 개어둔 이부자리와 다구(茶具)가 스님 세간의 전부였다. 그 때 장지문 밖으로 내다뵈던 절 마당은 곱게 비질이 되어 있었고 한 쪽에 백일홍이 곱게 피어있던 것이 생각난다. 그 때 부터이지 싶다. 나는 살림살이에 치어서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던 거 같다. 지금의 우리 집엔 책이 가장 많은 살림살이일 뿐 덩치 큰 침대나 소파, 김치냉장고 따위는 없다.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물건. 나는 그런 물건이 아니면 구입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생활태도는 ‘소박함’보다는 ‘검소함’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박함을 단지 검소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검소함이 비록 소박함으로 가는 열쇠이기는 하지만 소박함은 그보다 훨씬 커다란 개념이다. 소박함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이다.(page19)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던 때가 생각난다. 그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지금 나의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 그런 생활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가볍지 않다. 의외로 심오하고 잘 정제된 고급의 정보들이 가득한 책이다. 일단 소박을 검소와 동급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 고정관념의 치료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서 소박한 삶에 대한 정의와 방법과 문제해결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과 사회와 환경과 생태에까지 두루두루 소박함의 정의를 내려주면서 또한 우리가 늘 이야기 하는 ‘같이’의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사회의 관계 나와 자본의 관계 그리고 나와 지구의 관계를 읽으며 ‘소박함’이 가지고 있는 넓은 맥락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나는 [고령화 사회로 가는 중: 가치기준의 변화](page105) 부분이 특히 관심이 갔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연령은 남자가 80세 여자가 85세라고 한다. 지금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는 평균연령이 120세라고 하니 고령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선 고령사회가 꼭 암담하고 생산성이 떨어진 사회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물론 핑크빛도 아니다. 이 책에선 개인의 의식이 바뀌면 사회전반적인 구조도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즉 소박함이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되고 또한 주류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하는 것이 맞는 말인 거 같다. 대표 저자인 세실 앤드류스는 우리 사회의 실제적인 빈곤과 가난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사회에는 실제적인 빈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소박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상관이 있는 것일까? 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방식은 조금 다르다. 소박함을 지향하는 운동은 중산층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대 가난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소비를 줄이기는커녕 가난한 사람들은 지출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약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다. 그들에게는 최저임금을 올리고 양질의 직업과 적절한 가격의 주거지, 의료보험 등을 보장해줄 정책이 필요하다.(page22)

 

나는 이 책을 덮으며 결국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살림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아닌가라는 결론을 내려 보았다. 규모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의 규모일수도 있겠지만 기업으로 확대하고 사회로 확대하며 국가로 확대되었을 때 그동안 성장과 발전 지향의 인간의 삶이 자연과 생태계에 미치던 악영향을 희석하고 치유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삶은 더불어 같이 살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한다. 즉 행복은 서로 돕는 공동체에서 온다고 말하는 이 책은 물질적인 소비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현실에서 좀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시가 있는 밥상 / 오인태

-우리들의 평화로운 저녁밥상 위에 내리는 시인의 바램

 

아침마다 계절은 점점 더 깊어갔다. 어떤 날은 우물 속보다 더 깊어진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어릴 적 우물 속에서 떠오르던 그 푸르른 울림이 천천히 세상을 채워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짧아진 해의 걸음을 따라가느라 아침이면 더 부지런을 떨어 빨래를 내다널었고 보송보송한 빨래를 거둬들일 욕심이라도 부릴라치면 외출한 발걸음의 귀가를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을은 명산의 유명한 단풍보다 그저 가까이에서 이렇게 나와 함께 산다.

 

내게 주는 가을 선물로 인터넷 서점에서 몇 권의 시집을 구입했다. 여름내 써 놓았던 나의 시들을 흩어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나의 모든 사고들을 집중해서 완성해 낸 작품이었노라고 은근히 자신하고 있었는데 다시 들춰보니 온통 구멍투성이에 허접한 언어들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된 나의 시들을 붙들고 또 며칠인가 머리를 싸매고 속앓이를 한 다음 결국 파일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러곤 부부싸움 한 아녀자가 화풀이로 명품을 사들이는 그 기분으로 시집을 주문했던 것이다. 틈틈이 사서 읽겠노라 다짐해놓고는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을 미뤘던 시집들이 덕분에 내 책꽂이에서 함께 가을을 살고 있다. 오인태 시인의 ‘시가 있는 밥상’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그 여름 내내/ 기차는 하필 잠들지 못하는/늦은 밤이나 너무 일찍/ 깨어버리고야 마는 새벽녘에야/ 당도해서 가슴을 밝고 지나갔다//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는 것임을/ 그 해 여름 그 역 부근에 살면서,/ 한 사람을 난감하게 그리워하면서/ 비로소 알았다 낮 동안 기차가 오고,/ 또 지나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딸랑딸랑 기차의 당도를/ 알리는 종소리는 늘 가슴부터/흔들어 놓았다 그 순간/ 레일 위의 어떤 금속이나/ 닳고 닳은 침목의 혈관인들/ 터질 듯 긴장하지 않았으랴// 이어 기차는 견딜 수 없는 육중한/ 무게로 와서는 가슴을 철컥철컥/ 밟고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아주 짧게,/ 그러나 그 무게가 얼마나 오래도록/ 사람의 가슴을 짓눌렀는지를// 아, 기차는 모를 것이다.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 全文 page293]

 

오랜 지인이지만 그와 맞닥트린 적은 긴 세월을 죄다 들춰봐도 열 손가락이 채워지지 않는다. 가끔 만나고 띄엄띄엄 안부를 전하는, 그럼에도 그 가끔의 조우가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듯한 사람. 바로 오인태 시인이다. 어느 여름 남해 미조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시낭송회가 열렸었다. 함께 시를 쓰고 시를 나누는 사람들이 주최한 조촐한 행사였다. 예민한 구석이라곤 없어 뵈는 착한 외모에 전형적인 경상남도 지역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인을 진주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처음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를 마초기질이 좀 강한 남자 시인이려니 짐작했던 것 같다. 행사에서 매우 감성적인 시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를 만남으로써 나의 이런 생각은 단박에 깨져버렸지만, 그 후엔 은근히 까다로운 취향과 미각을 선보여 ‘보통이 아닌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SNS에 손수 차린 저녁밥상을 시절담론과 함께 올려 많은 이들이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 [시가 있는 밥상]을 출간하면서 참으로 부지런하면서 또 깔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삶을 같이하는, 즉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의 성원을 ‘식구’라 부르는 것이다.(중략) 내가 매일같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변변찮은 밥상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복원에 대한 나름의 염원과 향수를 표현하는 일이다. 종종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과 술을 사고 형편 닿으면 내 손으로 밥을 지어 나눠 먹는 일도 마찬가지다.(page 28)

 

종종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과 술을 사는 그가 매일 차려낸 밥상들은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호사스럽다. 그러나 ‘소박’과 ‘호사’의 사전적 의미로만 그의 밥상을 상상하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두께의 따뜻함과 사상적 무게의 날카로움을 모두 설명하기엔 20프로 부족하다. 에세이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리책도 아니라고 시인 스스로 말하는 이 책은 예사롭지 않았던 시인의 삶을 이야기 하는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까지 더해져 사뭇 진지하고 또 묵직하다. 때문에 독자는 매우 감성적인 글 읽기와 논리적 사고를 동시에 필요하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단 한 번도 아침밥을 굶겨서 식구들을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땐 누구 어머니나 다 그러셨겠지만(page19)

 

이상하게도 나는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다. 어릴 적, 특히 어머니가 내게 해 준 음식 맛에 대한 기억을 살려 그대로 복원해 내고 싶을 뿐이다.(page8)

 

‘어머니가 내게 해 준 음식 맛’을 읽으니 무엇인가 울컥한다. 아들의 출국 전날 우리 식구끼리의 오붓한 마지막 만찬이니 뭔가 좀 근사한 저녁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세 식구가 마트를 돌아 집에 들어오자마자 식사준비 전 잠시만 누웠다 일어나리라 했던 것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잠든 사이 장 봐온 물건 정리를 마친 두 남자는 구운 오징어에 맥주로 간단한 술상을 준비했지만 불현듯 김치의 매운맛이 당겼던 나는 뻘건 배추김치를 한 접시 담아가지고 와선 안주삼아 김치를 먹었다. 김치만 먹다보니 밥이 한 공기 담겨져 왔고 아침에 먹었던 돼지고기 볶음이 덥혀져 따라왔고 그러다보니 우리 세 식구는 밥상이랄 것도 없이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지만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날의 밥상은 어느 잔칫상보다 풍성하고 호화로운 식탁이었노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저녁밥상을 선보일 때마다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워했던 ‘밥상머리 담론’의 시간을 우리 식구가 맘껏 누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변방의 시인에게 주는 오인태 시인의 결론은 아주 단순, 명쾌하다.

 

시인에겐 시가 곧 밥이니 시로 밥을 짓든지, 밥으로 시를 짓든지 오직 극진할 따름이다. 흠향!(page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