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립풀 완주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서울 경기도, 제주도는 자주 갔었는데, 이상하게 전라도는 자주 가보지 못했다.

전라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광주, 순천, 여수, 목포, 전주, 완도, 흑산도 등의 도시와 섬들이다. 가보지 않았기에 그만큼 낯설고 모르는 도시와 지명들이 많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전라도는 왜 그렇게 많이 가보지 않았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경상도에서 전라도는 넘어가는 도로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른 도시 들의 경우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의 고속도로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리 썩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고속도로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왕복 2차선의 88고속도로가 호남과 영남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아주 오래 전인데, 88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광주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굉장히 오래 걸려서 오고 간 다음 부터는 아마도 전라도 땅을 밟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고속도로가 잘 정비되어 아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완주는 사실 낯선 지명이다. 처음에는 완주를 완도로 잘 보았다. 완도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익히 많이 들어봐서 익숙하여 완주를 완도로 착각한 듯 하다.

트립풀 완주를 통해 이 도시가 굉장히 매력적인 곳임을 알게 되었다.

 

완주의 꽃, 소양면

한옥은 한국과 한국인의 뿌리이다. 완주 소양면에는 한옥만 20채가 있다.

소양고택, 텔레비전이 없고, 와이파이도 잘 안된다. 하지만 이 곳에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새소리로 기분 좋게 아침잠을 깨고 가족과 혹은 홀로 마을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 속에서 느끼고 한옥 기와 위로 지는 석양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곳. 소양고택, 한옥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이자 매력이다.(35면)

 

대둔산을 끼고 있는 도시, 완주. 대둔산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에 있어 두 지방의 고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7개의 별이 떨어져 7개의 봉을 만들었다는 칠성봉.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52면)

추운 겨울이 매섭던 한파가 물러나고 바야흐로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 왔다. 뉴스를 보니, 엄청 많은 사람들이 봄을 만끽하러 제주도로 몰리는 바람에 공항이 북적거리며 비행기 표가 매진이라고 한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은 딱 질색이다. 사람들이 몰려서 혼잡스러운 제주도 보다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다른 지역으로 봄나들이 계획을 세워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기왕이면 산과 들이 있고, 저수지와 폭포, 산성, 사찰 거기다 맛있는 맛집과 카페, 막걸리가 있는 완주로 말이다.

우유처럼 부드럽다는 산에들에 생막걸리와 단맛, 신맛, 탄산의 조화가 돋보인다는 천둥소리, 항암 억제 효과를 지닌 꾸지뽕 열매진액으로 만든 꾸지뽕 생탁주는 정말 꼭 맛보고 싶다.

마시고 나면, 그냥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다.

이지앤북스에서 나온 <Tripful 완주>는 이제까지 나왔던 다양한 다른 지역, 도시 안내 여행 가이드북과는 퀄리티가 다른 것 같다. <트립풀 완주>를 통해 이제껏 몰랐던 완주의 매력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책이다.

 

전략가 잡초

잡초는 지구상의 식물 중 하나일 뿐인데, 먹을 수가 없고, 예쁘지가 않고, 또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곤 한다.

이름이 있지만 잡초라서 고유의 이름 보다는 잡초로 불리는 풀이 잡초다.

잡초의 생명력과 끈기는 정말 질기다.

잡초는 어디서든 자란다. 낫이나 제초기로 베어 내어도 다시 자라고, 땅 속에서 뿌리 채 뽑아내도 단 하나의 뿌리라도 땅 속에 박혀 있으면, 잡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력으로 자라난다.

길이나 밭,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곳, 한 줌의 흙이라도 있으면 자랄 수 있다. 씨를 뿌리지 않았지만 바람과 비 등 자연의 도움으로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곳을 선택해서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란다. 잡초는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인 것이다.

 

사실 잡초는 도시에서는 크게 위협 받지 않는다.

하지만 농촌의 밭에서 잡초는 농부 최대의 적이다.

잡다한 풀, 이름 없는 풀, 이름 모르는 풀 등이 모두 잡초란 이름으로 불리며 땅에서 뿌리가 뽑힌 채 제거된다.

 

잡초처럼 강하게 살라. 연약한 식물 잡초의 기본 전략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강한 식물이 자라는 곳은 피하고 강한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만 골라서 자리 잡는다.

 

잡초를 없애는 방법이 있을까? 뿌리까지 완벽하게 없애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잡초는 뽑고 또 뽑아도 자라난다. 하지만 잡초를 안전하게 없애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다. 잡초를 뽑지 않고 잡초를 제거한다니 도대체 이 무슨 궤변인가 싶을 것이다. 사실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잡초는 뽑지 않으면 잡초는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번식한다. 그러면 잡초뿐만 아니라 관목 등 대형 식물이 연달아 자라나면서 덤불이 되고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루게 될 것이다. 볕이 잘 들지 않는 큰 나무가 많은 숲에 잡초는 약하다. 잡초의 최대 약점은 바로 다른 식물과의 경쟁이다. 잡초는 풍요로운 숲에서는 자라날 수 없다.(~36면)

 

잡초는 싹 틔울 적기를 기다리는 영리한 식물이다.

채소나 꽃의 씨앗은 심으면 바로 싹이 돋는데, 이는 인간이 싹을 틔우기를 원하는 시기에 씨앗을 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초의 씨앗은 발아시기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씨앗은 어떻게 해서 봄을 알아차릴까? 식물의 씨앗이 봄을 느끼기 위한 조건은 겨울 추위다. 겨울의 낮은 기온을 경험한 씨앗만이 봄의 따뜻함을 느끼고 싹을 틔운다.(~58면)

 

살아남기 위해 플랜 B를 준비하는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전략가 잡초는 굉장히 재밌는 책이다. 나도 한 때 화분에 식물을 키운 적이 있는데, 겨울 철 집안에 있던 화분을 봄이 돼서 밖에 내 놓으면 불과 며 칠 안 돼 화분에 다른 잡초가 자란다. 그러면 혹여 키우는 식물이 방해될까 싶어 얼른 잡초를 뿌리채 제거 해 보지만 또 며칠이 지나면 다른 잡초가 또 자라나고 있다. 그 때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오뚜기도 이런 오뚜기가 없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다. 지금은 사회 전반이 모두 어려운 때이다.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하여 ‘전략’이라는 단어만 보면 눈이 번쩍 띄인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것이 인생이다.

 

잡초에게서 배우는 삶의 생존 전략!!

이 책은 마치 식물계의 손자병법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전략가, 잡초, 인간과 자연 그 어느 것하고의 대결에서 싸우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잡초는 매우 영리한 식물이다.

밟히면 밟히는 대로, 뽑히면 뽑히는 대로 꿋꿋하게 살아남는 게 바로 잡초의 생명력이고, 힘이다. 이 책을 통해 잡초의 생존전략을 세세하게 공부하며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잡초처럼 싸우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최초 해양 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

 

다산 정약용은 너무 유명해서 익숙한데, 그의 형인 정약전.

그에 대해서는 낯설다.

소위 잘 나가는 집안이었고, 정약용을 신뢰했던 정조가 오래 살았더라면, 미래의 정약용은 정승감이었고, 집안의 부귀영화는 오래도록 지속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정약용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 정약용이 몰락하면서, 아니 정조가 승하하면서 정약용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그들 형제는 서학 사건에 연루되어 모두가 죽음의 문턱으로 향한다.

1801년 둘째 정약종은 순교했고, 맏이 약전과 셋째 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두 형제는 살아 남았으나 1801년을 마지막으로 즉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했다.이런 둘을 이어주는 유일한 소통 수단은 편지였다. 두 형제는 수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안부, 학문적 관심사 등을 공유했다. 손암은 자산어보의 편찬 계획 역시 동생에게 전하며 의견을 구했다.(5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우한 학자인가?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목사가 되었을까?

물고기 연구가가 되었을까? 아마도 서학을 신봉하는 해양 생물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산어보> 제목은 익히 들었지만, 책을 이렇게 대하기는 처음이다.

영광스럽게도 초판 오리지널 본으로 자산어보를 만나니, 200년 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정약전 선생과 이 청 선생을 함께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단한 책이다. 이런 책이야 말로 진정한 실학, 즉 실사구시의 정신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산이란 흑산이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어두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의 편지에서 번번이 자산이라 하였다. 자산의 바다 안에는 어족이 매우 번성하여 이름을 아는 자가 드무니 사물에 정통한 자가 마땅히 살펴야 할 바이다.…이로 인해 후세의 군자들이 이를 보완한다면 이 책이 병을 치료하고 이롭게 활용하며…(16면)

 

석수어는 작은 것은 이빨이 단단하고 중간 것은 이빨이 있지만 단단하지 않다. 간에는 무서운 독이 있어서 먹으면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지만, 버짐이나 옴을 뽑아내어 부스럼의 뿌리를 없앨 수 있다.(19면)

면어(鮸魚),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민어(民魚)다. 비늘이 크고 입도 크다. 맛은 담백하고 달며 회로 먹거나 익혀서 먹기에 다 적합한데 말린 것이 더욱 사람에게 이롭다.(21면)

 

접어(鰈魚),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광어(廣魚)다. 몸통은 넓고 얇으며 두 눈은 왼편에 치우쳤고, 입은 세로로 갈라졌으며, 꽁무니는 입 아래에 있다. 등은 검고 배는 희다.…이청의 설명, 우리나라를 접역이라고 하는데, 접이란 우리나라의 물고기다.(~66면)

도대체 조선시대 어떻게 이런 디테일한 과학, 아니 물고기에 관한 책이 쓰여질 수 있었는지 책을 보면서 매우 놀랐다. 도대체 잡은 물고기를 얼마나 열심히 들여다보고 관찰했기에 물고기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잘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나는 김훈의 <흑산>이란 소설을 통해 어렴풋하게 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정약전은 창대를 물가에서 만났다. 창대는 물가 바위에 앉아서 물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약전이 다가가자 창대가 먼저 일어서서 인사를 건넸다.

-서울에서 오신 선비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귀양 온 죄인이오. 조풍헌 집에 머물고 있고. 풍헌이 젊은이가 글을 읽는다는 얘기를 합디다.

창대가 얼굴을 붉혔다.

-혼자서 조금....섬 밖은 나가보지 못하고...

-섬에 책이 있는가?

-사공에서 부탁해서 소학과 두시언해를 얻었습니다. 책력은 베낀 것을 해마다 가져다 줍니다. 그 외는 없습니다.

창대는 배를 타지 않았고, 고깃배가 포구에 닿으면 그 뒷을 거들었다. 창대는 물가에 나무 기둥을 박고 날마다 달라지는 바닷물의 높이와 들고 나는 시간을 측정해서 책력에 기록했다. 나무 기둥 끝에 긴 무명천을 매달아 바람의 방향을 적었고, 계절마다 새들이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지를 살폈다. 고깃배가 포구에 닿으면 실려 온 물고기들 중에는 아직 살아서 아가미를 벌컥거리는 것도 있었고... 창대는 물고기의 성직을 적었고, 아가미를 열어서 그 안쪽의 분홍색 빗살들을 들여다 보았다. 창대는 밤중에 바닷가에 나와서 물고기 떼들이 몰려가면서 욱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창대는 말수가 적었다. 물고기나 나무를 들여다볼 때, 창대는 오랫동안 고요했다.(김훈, 흑산, 학고재, ~115면)

<자산어보>와 <흑산>은 마치 자매와 같은 책이다. 두 책은 서로 같이 보면, 정약전과 창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다.

 

‘무릇 학문이란 실제로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이념이 잘 담겨져 있다.

정약전은 절해고도 흑산도에서 섬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우리 바다의 우리 물고기들의 정보를 취합하여 어보, 물고기 족보를 만들었다. 이 책의 매력은 번역문과 함께 뒷부분에 한자로 된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 실학자 정약전이 바다 끝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부 장창대과 함께 쓴 조선시대 어보, 물고기의 족보가 궁금하다면, <자산어보>를 한번쯤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