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상당한 재산을 가진 미혼의 남자라면 아내가 있기를 바라게 될 거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약 그러한 남자가 근처로 새로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면…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그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을 게다.…“우리 딸들 중엣 하나가 네더필더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나머지 아이들도 시집만 잘 가게 되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베넷 여사가 남편에게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빙리가 베넷을 답방했다.…무도회날 빙리는 얼굴도 미남이고 행동도 신사다웠다. 그런데 빙리의 친구인 다씨라는 사람은 큰 키에 멋지고 잘생긴데다 고상한 기품을 품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날 밤의 무도회가 절반쯤 진행될 때까지 다씨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그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되었고, 그래서 그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왜냐하면 그가 거만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며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17면)

 

오만과 편견, 짐작했듯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오만과 편견은 사실 사전적 의미로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다. 오만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뜻해서 흔히 오만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느껴지게 만들어 버린다. 이 작품에서 엘리자베스의 의해 다씨가 오만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순간, 소설 중반 부 엘리자베스의 의해 다시 오해가 풀리고 다씨의 솔직한 진면목이 드러날 때까지 다씨는 오만한 사람으로 계속 인식이 되어 버린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인데, 이것만큼 또한 무서운 게 없다.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상대방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버린다. 설사 그 사람의 선량한 행위 조차도 부정적으로 몰아 버리게 된다.

 

“괜찮긴 하군. 그치만 내가 반할 정도는 안 돼.”

 

빙리가 다씨에게 제인의 동생 엘레자베스가 예쁘다고 한데 대해 다씨는 괜찮지만 반할 만큼은 아니지라고 답을 하게 되고 이 내용을 엘리자베스가 듣게 되면서 다씨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빙리와 다씨가 나눈 대화에서 자신에 대해 별로란 평가를 듣게 되는 순간 다씨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되어 버리고 다시 자신의 별로라고 말하는 오만한 남자 다씨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사실 엘리자베스는 조건을 가지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씨가 얼마의 재산을 가지고 있던 오만한 남자인 그에게서는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다씨가 그처럼 나쁜 사람인 줄은 몰랐군요. 그 사람을 좋게 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까진 보진 않았어요. 그가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그런다는 건 알았지만 그처럼 악의적으로 복수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리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이제 보니 아직 고약한 성질이군요.(113면)

엘리자베스는 정원을 거닐다가 다씨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엘리자베스는 다씨와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자 자기가 운이 나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254면)

 

다씨는 이미 엘리자베스의 마음 속 깊이 오만한 남자로 각인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선생님이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른 감정들이 쌓여가면서 선생님이 별로라는 점을 확신 할 수 있었어요.~”라고 하면서 엘리자베스는 다씨의 심장에 대못을 박아 버린다.

사실 다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다씨는 엘리자베스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득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엘리자베스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엘리자베스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편지로 해명을 하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장문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는데(272면)

 

솔직하면 된다는 오만함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남자 다씨와

겉모습만 보고 자신의 판단으로 다씨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여자 엘리자베스

이 둘은 어떻게 될까?

 

워낙에 유명한 문학 작품이지만,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오히려 너무 유명해서 미처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작품이 탄생한 게 200년 전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원서로 이 작품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3,000시간의 공을 들이면 귀가 뚫리고 말문이 틔인다고 하는데, 워낙에 좋은 번역서가 있으니, 도움을 받아가며 기왕이면 재밌는 고전의 원작을 원서 읽으면서 영어 공부를 해 볼까 싶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일기는 개인의 과거사 기록이다.

개인의 날을 기록한 일기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될 수 있다.

일기 하면 우선 떠오르는 책이 불굴의 명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다.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원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활약을 읽는 일은 <난중일기(亂中日記)> 덕분에 가능하다. 이 자료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상황을 이순신의 붓 끌을 감지할 수 있다.

사도세자의 비행과 부왕 영조와의 갈등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자료가 바로 정조의 모친 헤경궁홍씨가 쓴 한중록이다. 이 책은 따지고 보면, 일기류 형식의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의 여행기로 칭송받고 있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또한 조선시대 일기류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이다.

조선후기 마지막 선비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 황현 또한 일기 형식의 <매천야록>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을 통해 1910년까지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엿볼 수 있다. 황현은 '나라가 선비를 양성한지 500년이나 되었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명의 선비도 스스로 죽는 자가 없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 1910년 9월 음독 자결하였는데, 만약 그때 그가 자결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우리는 일제의 부당함을 황현의 기록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제목은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란 표현을 섰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결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재야 역사학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 같다. 김령의 <계암일록>, 노상추의 <노상추일기>, 오희문의 <쇄미록>, 이문건의 <묵재일기> 등의 기록은 사실 처음 접해 본다. 위에 너무 유명한 역사 인물들의 가려져 이들의 일기가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무튼 이 책을 통해 미처 몰랐던 조선시대 학인, 선비들의 일기를 보게 되어 기뻤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매체가 없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나라의 소식이나 다른 지방의 소식들을 알 수 있었을까?

옛날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디지털 기계가 없었기에 오직 붓과 종이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그 날에 있었던 일을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1614년 3월 21일, 4월 18일, 계암일록

3월 21일, 요즘 외교 일에 관한 공문서가 책상에 가득 쌓여서 일이 두배는 많아졌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일이 많을 때 한 사람이 빠지는 걸 좋아할까…

4월 18일, 오늘은 몸 상태가 최악이었는데, 어떻게든 억지로 출근했다. 오늘은 출장을 두 번이나 갔고, 높으신 분들과 회의를 계속 했으며, 공문서 여러 개를 수정하고,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결재 받고 퇴근할 수 있었다. 하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니, 끔찍하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70면)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실록 밖의 역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남긴 기록 일기 문학 속에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진짜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1552년 10월 5일, 묵재일기

5일, 아내가 밤에 여행길 숙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었다. 나는 남편답게, 한 점 숨김없이 사실대로 기생이 곁에 있었다.라고 대답했는데, 잡자기 아내는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침이 되기 무섭게 나의 베개와 이불을 모두 칼로 잘라 붙에 태워버렸다. 두 끼나 밥을 먹지 않으면서 온종일 내 욕만 해서 너무 미웠다.(200면)

어찌 보면,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부부싸움을 한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일기에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가!! 하지만 이런 글들도 조선시대 양반의 부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일기가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이런 디테일한 내용은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시대를 통찰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시대정신을 기록하기 위해, 후대에 남길 정신적인 유산을 축적하기 위해 그들은 일기를 썼다. 조선시대 부지런한 문인들이 남긴 일기를 통해 새삼 기록 문화유산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소중한 자료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당시 시대 상황과 사건에 관한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충선생의 곤충 이야기

 

잠자리의 한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청정(蜻蜓), 옥편을 찾아보니, 蜻은 귀뚜라미, 잠자리란 뜻이고 蜓은 잠자리란 뜻이다. 나도 한자를 좀 공부했는데, 이 글자들은 굉장히 낯선 글자들이었다. 가만히 낯선 이유를 생각 해봤더니, 잠자리를 굳이 한자로 알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잠자리도 곤충의 일종이기에 한자에는 벌레 충(虫)가 부수로 들어가 있다.

잠자리는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곤충이다.

나도 어렸을 적에 하늘을 비행하다가 꽃이나 나무에 앉은 잠자리를 조심조심 살금살금 접근해서 잡아보려 한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민첩한 지 잡았다 싶은 찰나에 잠자리는 이미 내 손아귀를 벗어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축축하고 찬 기운이 가시기를 기다려 성묘를 시작할 무렵 고추 잠자리 한 마리가 상석 위를 몇 번이나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바닥에 날개를 바짝 붙이고 조용히 햇볕을 쬐기 시작한다. 이어서 두어 마리가 더 내려앉아 햇볕을 잘 받는 상석의 모서리를 잡아 일광욕을 시작한다.…잠자리는 물에서 자라 땅으로 나와 하늘을 비상한다. 잠자리 유충은 물속에서 살면서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를 잡아 먹다가 성충인 잠자리가 되면 모기나 진딧물 같은 해충을 잡아먹어 우리에게 넉넉한 농작물을 선사한다.…잠자리는 강인함이 있다. 그 강인함은 눈과 날개에서 나온다. 잠자리의 겹눈 안에는 2만여 개의 육각형으로 된 낱눈이 있는데, 낱눈과 겹눈을 총동원하여 전후좌우를 살피고 크기가 거의 같은 네 장의 얇고 투명한 그물 모양의 날개를 모두 사용하여 공중에서 급정지와 선회는 물론 후진까지 한다. 잠자리를 잡으려고 뒤에서 몰래 접근해도 잠자리는 겹눈과 낱눈 덕분에 금방 알아차리고 도망갔던 것이다.(~18면)

 

매미, 매가 울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매미는 그 울음 소리가 귀를 청량하게 해 준다. 어렸을 적 나무에 붙은 매미를 잡아보려 하지만 대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붙어 있어 잡기가 쉽지 않았고, 어찌어찌해서 잡았다 싶으면 어느 새 도망 가고 없다. 매미도 잠자리 만큼이나 민첩한 곤충이었다. 매미가 우는 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구애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는 매미는 암컷이 아닌 수컷 매미들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매미가 어떻게 그렇게 크게 울 수 있는지, 그리고 옛날 관리들이 쓰던 관모를 익선관(翼蟬(善)冠)이라고 불렀는데, 익선의 선(蟬)자도 매미 선(蟬)자를 썼다. 이유는 익선관 양옆에는 한 쌍의 매미 날개가 붙어 있었고, 매미의 오덕을 잊지 말고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36면)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만 딱 하나 이 놈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불을 켜고 있으면 보이지 않던 녀석이 불만 끄고 잠만 들려보면 귓가에서 앵앵거리고 때문이다. 바로 모기이다. 모기가 죽을 각오를 하고 사람의 몸에 주사기를 꽂는 건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서이다. 동물과 사람의 피 속에는 단백질과 철분 같은 모기 수정란을 성숙시키기 위한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모기를 뜻하는 한자 문(蚊), 문(蚊)자에는 글을 뜻하는 문(文)가 들어 있다. 모기가 글을 알았던 것일까?(~174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얼마나 자세하게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가며 곤충들을 관찰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곤충 관련 책은 자세히 보고,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결코 쓸 수 없는 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곤충은 어른보다도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도 곤충을 정말 좋아한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곤충의 성격과 생김은 물론 특성까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한자 중에 벌레 충(虫)자가 들어가는 곤충들까지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므로 유익한 책이라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겨울이 가고 곤충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이 봄이 돌아왔다. 산으로 들로 나가서 책에서 본 곤충을 만나게 되면, 무척이나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