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쳤으나 전해지지 못한 1068통, 아니 어쩜 그보다 더 훨씬 많은 편지들...

“……칠월이 다처오면 면해를 가계스니 요구되 것은 부타하시오.………봉석이 아버지 나의 생각은 해줄 사람 없읍니다. 당신 한나 받견 없읍니다.……” 1950 누월 八日 은애 올님

글쓴이의 편지글을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1950뒤에 “년”은 없고 유월을 누월(6월)이라고 했으며, 팔일은 한자로 ‘八日’이라고 적었다. 편지글에서 사무치게 그리움이 느껴진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15일 전의 편지다. 이 편지는 발송 되었으나, 받는 이인 봉석이 아버지란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 전쟁에 보내고 시댁에 홀로 남은 아내의 심경과 군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조선인민군 우편함은 한국전 당시 미군이 노획한 북한군 문서 상자 속에 들어 있던 편지와 엽서들이다. 편지 뭉치 속에서 1950년 전후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가지고....

인민군에 들어간 남편에게 아내가 쓴 편지, 여군에 들어간 딸이 부모님께 보낸 편지, 월북해 북한군이 된 아들이 부모님께 보낸 편지 등등...

이들 편지 속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보낸 사람, 받는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과 정이었다. 그리고 너무 안타까운 편지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득 이들의 편지 사연을 읽으면서 과연 이들의 생존여부와 뒤에 이들이 서로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특히 자식을 서이나 전선에 보낸 우리 어머님의 편지는 너무 사무치게 다가왔었다. 과연 세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쟁 후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서 부모님과 서로 상봉했는지?

 

1950년 부쳤으나 전해지지 못한 편지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수신인이 과연 편지를 잘 받아 보았을까? 하면서 내내 답장을 기다렸을 터인데 정작 편지가 가지 않았으니, 그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를 받지 못한 수신인은 "왜 편지가 오지 않는걸까?"하면서 애타게 그립게 기다렸을까? 편지, 불과 30년 전, 통신이 발달하기 전까지 그 때, 그 시절, 그 시대에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에는 1950년대의 전쟁통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 애틋하면서 울컥 가슴 찡하게 울리는 사연들이 담겨져 있었다.

 

1950년 분단 비극 속의 산 역사

사실 이 편지는 전쟁이 부른 편지들로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굳이 쓰지 않아도, 보내지지 않았어도 될 편지들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가족들과의 생이별(生離別), 아픔, 사연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엮은 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편지들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받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고 생각한다. 주인을 찾아갔어야 할 편지들이 주인에게 가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소실되지 않고, 이렇게나마 보존되어 있어, 나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뒤쥭박쥭”은 정조가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서 보냈던 여러 어찰(御札)들 가운데 한 편지 속에 들어가 있는 한글 어휘이다. 이 편지는 한문(漢文) 초서(草書)로 된 편지인데, 독특하게도 한글어휘로 “뒤쥭박쥭”이 들어가 있다. 아마도 “정조어찰첩(성균관대 출판부)”에 실려 있는 이 편지를 제외하고는 이런 독특한 현상은 다시 접하기가 힘들 것이다.

‘뒤죽박죽’이든, ‘뒤쥭박쥭’이든 모두 다 “여럿이 마구 뒤섞여 엉망이 된 모양. 또는 그 상태”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엉망진창, 난장판, 뒤범벅” 등이 표현들이 더 있다.

<작가의 방>은 글을 작가와 사진작가, 그리고 삽화가 연합군을 이루어 작가의 집으로 쳐들어가면서 일구어낸 부산물이다. 1년 동안 시인, 소설가 여섯 명의 서재를 찾아갔다.

 

예전 시나 소설이 쓰인 현장을 찾아 ‘문학기행’을 한 적이 있으나, 작가의 집필실과 소장 도서를 내시경 촬영하듯이 관찰하고, 장서가 글쓰기에 끼친 영향을 들어 본 것은 처음이다. 서재와 장서라는 창문을 통해 그들의 내명과 의식, 뇌 구조를 들여다보려 한 시도였다.……세 명의 남성 이문열, 김용택, 김영하, 세 명의 여성 강은교, 공지영, 신경숙 방의 취향은 가지각색이고 뒤쥭박쥭이었으나, 어느 방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고전… 그들은 책의 생산자이기 전에 모범적이고 질 좋은 책 소비자였다.(머릿말에서)

 

작가들에게 서재란 무엇인가?

김영하의 서재는 1990년대 프랑스 파리의 ‘고래 뱃속’이라는 작업장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고래 뱃속’ ???

 

이문열의 서재는 별 장식이 없다. 장서와 탁자를 빼면 작가의 체취를 느낄 만한 걸 찾기 어렵다.

이문열 그의 서재는 용도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서재가 방 한 칸이 아니라 집 전체이며, 그 집도 한 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과 경북 영양 두돌마을의 광산문우 두 곳의 책을 합하면 1만 5,000권 가량이 된단다.

서재 한 편에 별도로 그의 저서들이 꽂혀져 있다. 꽤 많아 보인다. 창작소설 16권, 중단편집 5권 그리고 역사소설과 번역소설이 30여권 보태진다. 합치면 대략 50여권을 헤아린다. 이문열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 다섯을 꼽으라면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시인>, <변경>, <아가>... 그리고 <아우와의 만남> 집필 후 자신의 책을 읽고 두 번이나 울었단다.

이문열의 서재는 지칠 때 차 마시며 쉬는 곳...

 

인터넷 서점의 단골고객, 아니 우수고객이 아닐까? 요리보다는 요리책을 더 좋아하는 작가 공지영, 그녀는 자신의 서재를 “아름다운 오락실”이라고 했다. 서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낡은 책들이 보인다. “내가 굉장히 남독(濫讀)하는 사람이거든요. 온갖 책이 다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책장에 맞춰 넘치는 책을 버려요. 살아남은 책들은 참 기특하죠. “책이 오락”이라는 말은 그의 하루를 유추하게 한다. 집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잘 안 써지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이 책 저 책을 빠른 속도로 읽거나 음악을 듣는단다.

소설 “도가니”로 “도가니법”을 만들어 낸 작가, 술도 곧잘 마셨고, 학생 때는 지독한 데모꾼이었다는 것, 옷에 최루탄 냄새를 가득 묻힌 채 밤늦게 귀가하는 골목에서 아버지를 만나 언쟁 끝에 뺨을 얻어맞고 심한 욕을 하며 대들었다는 일화.....위장 취업한 구로공단 노동자가 되었다가, 치열한 정신과 빛나는 문장의 소설가로 재등단. 정의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던 그녀.

2001년 발간되어 70쇄를 넘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의 서재 장서는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을 방불케 한다.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 삼국지, 열국지, 수호지>도 모두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중1때 고모 집에 놀러 갔는데, 대학생인 사촌 오빠가 <토지> 1권 주며 읽어 보라고 권한 것이 본격 문학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단다.

 

책이 가득한 방만큼 풍요로운 방이 또 있을까 싶다. 작가의 방에 나오는 작가들의 서재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펼 쳐 보시기 바란다. 예쁜 책방, 멋진 서재를 설계하고 계획하시려는 분들께도 권해 드린다. 끝으로 <작가의 방>을 덮으며, 나도 언젠가는 이런 멋진 책방, 서재 방을 꼭 가져야지 하는 바람을 소망해 본다.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 ․ 정조 시대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워낙 극적인 사건이라 역사서는 물론이고,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 거듭거듭 이야기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해명이 되고 정리되었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하면서 저자는 서두를 떼었다.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부터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후 영조의 반응과 정조의 역사 왜곡, 나아가 순조 때 혜경궁의 <한중록>집필까지 근 일 세기의 역사를 다루었다.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광증(狂症), 정신병(精神病)

사도세자는 만인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태어났지만 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영조를 실망시켰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밥 먹기는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한 뚱보 아이였다.” 성격적으로 아버지 영조와 맞지 않았던 세자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아버지의 눈을 피하고 싶었으나 도망칠 곳이 없었다. 세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세자의 광증은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다. 광증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벌인 행동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세자는 반역죄로 죽은 것이다. 영조는 아들을 죽이려고 갖은 방법을 찾다가 마침내 뒤주를 가두었다.

 

세자 사후(死後), 그 죽음의 의혹(疑惑)

세자 사후, 그 죽음을 둘러싸고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조는 아들을 죽인 일에 대해 일절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드문드문 자식을 죽인 데 대한 후회를 말했다. 임금의 후회는 의혹(疑惑)을 불러 일으켰다. 즉 임금은 죽일 뜻이 없었는데 신하들이 부추겨서 죽였다는 식으로 말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조의 등극과 사건의 새로운 국면

미친 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일국의 군왕이 된 것이다. 정조는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즉위 후 아버지의 지위를 올리고 사당을 대대적으로 개건(改建)했다. 그러면서 사도세자 생전 조정의 핵심 세력이었던 영조 때의 권신들을 숙청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그 후예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역모 혐의를 걸어두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빼앗거나 죽였다. 이때 사도세자 죽음의 책임을 일정 부분 이들에게 떠넘겼다. 사도세자 추숭사업을 통해 집권 후기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 세상을 생각을 완전히 돌려놓고자 한 것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행장에서 아버지에 대해 불리한 말을 일절 쓰지 않았고 칭찬, 찬사, 칭송 등만을 적었다. 이런 좋은 면만을 긁어모은 전기를 통해 사도세자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상을 명철한 현군(賢君)으로 만들었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임금 생부의 복권 작업에 누구도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정조의 역사 왜곡에 아무도 반기를 들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임금에게 반론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