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

 

조선은 근 500년간 27명의 군왕이 대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다. 물론 왕조는 태조 이성계의 본을 따른 전주 이가(李家) 왕조였다. 개국 당시 조선은 군왕과 신하가 상호 협력 하며 왕권과 신권이 서로 조화를 이루던 체제였지만,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탈취한 태종 때부터 왕권은 신권을 넘어서서 군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왕 중심의 강력한 왕권 체제로 변했다. 하지만 다시 숙부가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이를 도운 신하들에게 왕의 권한 일부가 다시 신권으로 편향되었고 이후 각종 전란과 반정 과정에서 왕권은 서서히 힘을 잃어 간 반면 신권은 반정으로 통해 왕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그 권한이 막강해지고, 이후 신하들의 권력은 다시 동서 붕당으로 나뉘어 자기 당의 뜻을 따르지 않는 왕은 왕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암살과 독살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따르는 왕을 세우려는 무리들까지 있었으니, 이때부터 조선은 더 이상 왕의 나라도, 백성도 나라도 아닌 막강한 권력을 가진 권력자들의 나라였다.

 

조선 27대 왕 중에서 가장 불운했던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단명한 것처럼 자신도 어린 나이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아쉬운 것은 왜 세조의 역모를 예측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단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단명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에서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87면)

 

세조는 왕이 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주색으로 인한 성병으로 피부병과 종기를 유발한 것과 친족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세조는 왕이 되기 위해 조카 단종과 친동생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이고 아버지였던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를 죽이는 등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세조의 죽음이 어떤 병 때문이며 이유 때문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악행을 저지르고 주색에 놀아난 사람치고 깨끗한 병으로 죽는 왕은 없었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101면)

 

조선의 왕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크고 작은 병까지 왕의 몸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은 국가가 관리했다. 왕의 몸은 왕 자신의 것이었으나 또한 국가의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했기에 당대 최고의 명의라고 하는 어의들과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대소신료들이 왕의 몸을 치밀하게 살펴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다. 지금으로 치면 국가 최고의 의료진과 의학연구원들이 대통령의 질병을 중심으로 병을 연구하고 진단, 치료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아이러니하게도 47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 팔도에서 진상되는 몸에 좋은 재료들로 만들어진 값비싼 음식과 희귀한 보약으로 나라 안에서는 가장 잘 먹고, 편안하게 거처하며, 국가 최고의 케어를 받았음에도 몇 몇 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모두 단명하였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 제목이 파격적인 이 책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에서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왕의 사망 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선의 왕들이 평균 수명을 누리지 못한 데에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크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의 의학적 한계를 이유로 꼽는다. 조선 왕들의 사망과 질병원인 중 제일 많았던 것이 종기였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연고만 바르면 낫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지만 조선시대 변변한 소독약과 항생제가 없었던 시절에 종기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27명의 왕 중에서 12명이 종기를 앓았다고 한다. 사실 종기는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이다. 너무 잘 먹어서 종기가 생긴 것이고, 그게 독이 되어 일찍 죽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둘째는 힘들었던 궁중생활이다. 조선 왕들의 단명한 이유로 정신적인 스트레스, 기름진 음식, 과도한 주색을 꼽고 있는데, 무절제와 지나친 호의호식, 그에 비해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생활 습관이 비만과 각종 질병을 일으켜 건강을 해쳤다는 견해이다.

셋째,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성인성 질환과 울화병, 과로, 유전병을 꼽는다.

그리고 논란이 많은 독살설이다. 조선의 왕 중에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등이 독살설의 주인공들이다.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반정과 왕의 독살은 둘 다 신하들이 왕을 선택하는 택군의 결과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명과 같았다.

그리고 의학적이 정밀하게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보약과 탕약들이 간과 신장등을 망가뜨려 단명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기도 한다. 왕실에서 태어나면 고귀한 신분의 금지옥엽으로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중에서도 최고의 금수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실의 일원 중에서도 왕은 선택 받은 자로 가장 고귀한 신분이라서 마냥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자신이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맛있는 것 자신이 먹고 싶은 거 사먹고, 구경하고 싶은 곳 구경 다니며, 마음 편히 사는 게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왕이 될 번했던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좀 다루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주제가 명확해서 아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개(2021개정판)

 

강렬하다.

나는 <개>를 읽으면서 진짜 개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한, 아니 마치 내가 개인양 개의 이야기를 듣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개를 이처럼 의인화하여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보리의 이야기를 들여면서 내가 개인지 보리가 사람인지 헷갈렸다.

김훈 작가의 글은 강렬하다. 그의 글은 무척이나 예민하고, 간결하지만 글마다 단어마다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진지하고 솔직하다. 절제된 문장과 다듬어진 어휘는 엄청난 생각과 선택에 의해 나왔음은 그의 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베어야 하나? 내 몸 깊은 곳에서 징징징 우는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 했다."

오래전이다. 처음 김훈 작가의 책을 읽고 그의 글을 접했을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가? 이게 진정 사람이 쓴 글인가?

글이 이렇게 마음 속을 파고 들 수 있는가? 김훈 선생의 글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결했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언어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칼의 노래>란 작품이다. 처음 김훈 작가의 이 글을 읽고 나서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고 팬이 되어 버렸다. 남한산성,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흑산, 공터에서 등 그의 여러 작품을 읽었지만 <개>는 미처 보지 못했다. 아니,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마도 반려 동물이라고 하는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소설 <개>를 읽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개의 시선으로 본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의 필력은 실로 놀랍다. 사람이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는데, 개가 아닌 사람이 개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진짜 개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개이야기를 썼다.

 

　“개발바닥의 굳은 살은 개들의 삼국유사였다.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 살을 들여다 보면서 어쩌면 개 짓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9면)”

 

개가 되어 보지 않고는 결코 개의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개를 얼마나 오래 관찰했던 것일까?　

 

개는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른 개가 될 수 없다. 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어릴 때는 더 바쁘다. 개는 우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 공부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온 천지가 개들의 선생님이다. 나무와 풀, 숲과 강, 안개, 바람, 눈비, 돌, 먼지, 소똥, 벌, 개미, 참새, 까치 등이 모두 선생님이다.(~29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신기하게도 꿈 속에서 개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개인가? 개가 사람인가? 내가 개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인가? 개가 사람인 나의 말을 알아듣는 것인가? 개와 사람의 말과 소리가 서로 다를터인데, 개와 사람이 어찌 대화를 나누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김훈의 개정판 <개>를 읽고 나니, 개가 더 이상 개로 보이지 않는다. 보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경이롭다.

1500년대에 이런 상큼하고 생기가 넘치다 못해 발랄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쓰여 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1593년경에 집필한 작품으로,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쾌발랄한 그의 대표 희극이다.

이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훨씬 이전의 쓰여진 작품이기에 고전이라 불리우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다거나 구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두고 글의 첫 머리에 ‘경이롭다’라는 표현을 썼다.

 

페트루키오 : 당신은 아주 다정한 사람이오. 몹시 거칠고, 새침하고 부루퉁한 아가씨라고 들었는데, 소문이 다 거짓이었소. 당신은 상냥하고, 명랑하고 무척이나 예의 바른 사람이오.~

카타리나 :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고 가세요. 이래라저래라 하려거든 당신 하인에게나 하고.(~101면)

 

카타리나 : 나를 사랑한다면 여기 머물러요…문은 열려 있으니 어서 가세요. 난 마음이 변하기 전에는 절대 안가요. 결혼하자마자 다 자기 멋대로 하려는 걸 보니, 얼마나 무례한 남편이 될지 뻔하군요.

그레미오 : 슬슬 고삐를 죄기 시작하는군.(~145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셰익스피어가 왜 세계적인 대문호인지 금방 알게 되고 그의 글에 빠져들 게 들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사대 비극 가운데 한 작품인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시대의 어록이 되었고, 다양하게 패러디되기도 하였다.

나는 <베니스의 상인>이란 작품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세익스피어의 매력에 빠졌든 것 같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중세시대 유럽에 이런 작품이 창작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세익스피어와 동시대에 태어나 이런 작품을 읽은 유럽인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조선시대 유럽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1500년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역만리 영국에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있었고, 영국의 대작가 쓴 4대 희극과 4대 비극을 읽어볼 수 있었을 터인데, 같은 세상에 살면서 셰익스피어가 있는지 조차 몰랐던 그 때 그 사람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로 반상의 구분이 엄격하던 시대였다. 물론 유럽 또한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있었을 터이지만, 조선만큼 엄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셰익스피어 못지 않은 문학적인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반드시 있었을 터인데, 아마도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재주를 미처 펼쳐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는 글재주가 있어도 양반이 아니면 글을 쓸 수도, 지을 수도, 작가가 될 수도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영국의 셰익스피어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올 때 정작 조선에서는 이런 문학 작품들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전에 유럽 인문학 여행 전문가인 김상근 교수가 쓴 <삶이 축제가 된다면>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 속에서도 셰익스피어 관련 내용이 들어 있었다. 김교수는 감각과 열정의 도시 베네치아를 이야기 하면서 셰익스피어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란 2개의 작품을 썼고, 베네치아 인근 도시인 파도바를 배경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란 작품을 썼다는 내용이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제목에서부터 벌써 위트와 유머, 재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이런 작품이 있는 줄 최근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 작품들을 두루 다 만나보고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은 오래전에 영화로 보았고, 베니스의 상인은 원작 소설로 읽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글로는 두 번째로 접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극 속에 또 다른 극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극 속에 또 다른 극이 들어 있는, 즉 서막과 본극의 구조로 나뉘는데, 서막에서는 무료함에 빠진 영주가 술에 취한 슬라이를 발견하고 장난삼아 슬라이로 하여금 귀족, 영주가 된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려 하지만, 슬라이가 쉽게 넘어가지 않자 슬라이에게 아름다운 가상의 영주 부인을 미끼로 연극을 벌이게 되고, 마침내 슬라이는 영주의 장난에 걸려들어 자신이 진짜 영주라는 착각에 빠져 영주 행세를 해대기 시작하는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바로 가짜 영주 슬라이가 영주의 저택에서 관람하는 연극이다. 극 중에서 카타리나는 과연 길들여질 것인가?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