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란 고사가 있다,＇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愚鈍)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이른다. 즉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꿈꾸는 황소를 읽고나면, 이 고사성어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꿈꾸는 황소>에는 사람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이해하는 황소 에트르가 나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황소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물론 그를 바탕으로 시시비비(是是非非)까지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황소다.
사람들은 가장 잔인한 동물이야. 내가 직접 봤어. 너희 가죽을 모두 벗겨내 버릴 거야. 뼈까지 고기를 잘라 낼 거고. 골수까지 비워 낼거야. 너희 아이들은 목이 잘리고 머리가 뜯겨 나갈거야. 소들아! 도망가자. 오늘 도망가지 않으면 언젠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거야.(140면)
에트르는 평소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던 자신들의 운명을 우연한 기회에 목격하게 된다. 특히 사랑하는 그의 암소가 자신의 눈 앞에서 온 몸이 해체되는 야만적인 광경을 보고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도 모두 저렇게 되었을 것이고,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들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는 큰 충격에 휩싸여, 생존을 위해 농장에서 한바탕 난리를 일으킨 후 농장주의 아들 자크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인 수송아지를 데리고 새로운 목초지이면서 동시에 인간들이 말한 소들의 낙원 인도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인간의 보호가 없는 야생에서 코요테들의 습격을 받아 수송아지를 잃은 에트르는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소는 나에게 매우 친근한 동물이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시골에서 많은 소를 키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지금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소똥냄새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소똥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크의 모습에서 얼핏 나의 어릴적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는 우직하면서도 무척이나 책임감이 강한 동물이었던 거 같다. 비록 동작은 느렸지만, 인내심과 끈기, 집념만큼은 감히 다른 동물들이 따라 올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큰집의 논과 밭은 물론, 이웃 집의 농사 일을 우리 소가 많이 거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녀석들... 한 여름 뜨거운 햇빛 속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도 불평이 없다. 다음 날 새벽이 되면 ‘음메 음메~’ 하며 아버지보다도 앞서 일터로 나간다. 우리들은 체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음메 소리와 딸랑딸랑 방울 소리에 잠시 눈 떴다가는 이내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고 마는데, 소들은 원래 잠이 없는 건지? 하루 종일 일하고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지 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항상 깨어있었던 것 같다.
소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없어서 안 될 인간의 또 다른 반려동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이 개보다 몇배는 더 소중하고 친했던 동물이 바로 소였다.
그런데 그 소의 자리를 이제는 기계가 대신 차지하게 되면서 소의 역할은 오로지
인간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육되는 고기로만 전락해 버렸다.
언젠가 tv프로에서 새끼 돼지를 잡아서 요리해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요리의 이름이 ‘애저’였던 것 같다. 어린 돼지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아는지 계속 울면서 사람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데, 끝내 그 아기돼지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솥에서 요리가 되어졌다. ‘애저요리’가 얼마나 맛이 있고, 보양식인 줄은 모르겠으나, 미처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돼지를, 세상에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어린돼지까지도 요리의 재료로 쓰야했을까? 그러면서 문득 아기돼지를 잃은 어미돼지의 심정을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에트르는 이미 자신들의 이러한 운명을 알았기에 살기 위해서 탈출을 했던 것이었다.
농장에서 살아 있는 소를 제외하고 우리가 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오직 마트 식품 매장 냉장고에 가득 진열되어 있는 토막이 나고, 으깨지고, 피를 흘리면서 사람들에게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각종 부위별 고기덩어리이다. 에트로는 자신의 동료들이 살육되고 도륙되어 난도질당하며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다리가 놈에서 나뉘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가면서 내는 소리를 자신의 두 귀로 들었다. 어찌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으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한 암컷을 지켜주지 못했다. 에트르가 목도한 야만적인 광경 속의 그 죽은 소들은 오직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육되어져 죽은 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종족의 번식을 위해 새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새끼를 낳았던 것이다.
인간들은 소의 고기(소고기)를 먹기 위해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고
소들은 오직 인간들에게 먹히기 위해 인간들이 주는 먹이를 먹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이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인 최재천 교수에게 권했고, 동물행동학자인 최 교수가 읽고 나서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직접 번역에 참여한 책이다. <꿈꾸는 황소>를 읽으면서 새삼 생명의 소중함에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소와 개는 인간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음식 재료인가? 아님 반려동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