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옛글 속에는 유쾌한 만남과 더불어 삶에 있어 자양분이 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참 많이 들어 있다.
읽으면서, 가끔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하며 스스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이 하게끔 한 배경, 혹은 원천이 무엇일까?”
“역시 다독(多讀)을 통한 깊은 사색에서 나온 것일까?”
혼자 생각에 잠기곤 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기록정신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마음에 느낀 것이라면 일단은 뭐든지 기록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그저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느 것 하나 꼼꼼하고 치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놀랍도록 생생하고 정밀하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이나, 유람, 관광 등을 나섰다하면 일단은 기록으로 남겼다. 여행의 그 바쁜 와중에 그 날에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둔다는 것이 말이 쉽지!!
선인들의 이러한 남겨진 기록의 자취를 통해서 우리는 옛 사람들이 어떻게 유람을 떠났고, 어떤 경로로 갔으며, 누구와 동행했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등등에 대해 소상하게 알 수 있다.
살기를 기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지렁이나 나나 한 가지라오.
저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흙탕물을 마시니 일찍이 나와 다툴 바가 없고, 뱀의 이빨도 없고 또 모기 주둥이도 없으니 일찍이 나에게 독이 된 적이 없다오.
지금 나의 우연한 병으로 인하여 저 허다한 생명을 죽인 다음 불로 익히고 녹여서 탕으로 만들어 가지고 복용하여 즉시 효험이 있다면, 효험을 얻은 사람은 다행이겠지만 효험을 나게 한 지렁이로서는 또한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소?
책의 본문 가운데 유득공의 “도성유람”에 관한 글이 있다.
유득공이 살았던 18세기 도성을 유람하며 그 당시 도성의 모습을 글 속에 담아 놓았다. 읽으면서 눈을 감으면 그 때의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진다. 이런 글이 아니라면 200년 전의 서울의 모습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들도 전국 곳곳으로, 세계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냥 휙 갔다가 눈으로만 보고 올 뿐이지, 기록으로는 잘 남기지 않는다. 하여 이 글을 대하니, 새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 책 속에는 소위 조선시대 한다하는 사람, 유명한 사람, 대문장가, 명정승 등등 멋있는 인물들이 대거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총 7개의 큰 테마를 정하여 놓고, 주제와 어울리는 인물들의 글을 뽑아서 싣고 글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다. 간혹 원문의 글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뒤에 이종묵 선생의 풀이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다.
읽은 글 가운데 특히 마음에 속 드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소개해보면,
「사람들은 그림 속의 물이 흐르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으며 나뭇잎이 시들지 않는다고 탓한다.
나는 그림을 위하여 이렇게 따진다.
물이 있는데 흐리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바람이 있는데 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나뭇잎이 있는데 시들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이는 조물주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림에서는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림이 사물의 움직임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탓한다.
그러나 조귀명은 사물의 한순간을 담아내는 그림이야말로 조물주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어려운 옛 글에 대한 이종묵의 선생님의 풀이가 참 맛깔스럽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이 말이 너무도 좋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평범한 머리를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며 사고를 하는 나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는 말이다.
남들이 다 보는 것만 보고, 남들이 하는 생각을 똑같이 하고, 때로는 그 생각을 그냥 무조건적으로 따라만 하려고 해서는 결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보려고 할 때, 있는 그대로만 보려고 할 때, 남들과는 달리 살짝 뒤집어서 보거나, 반대로 보아야 한다. 남들이 모두 옳다고 할 때도 정말 그럴까? 하며 의구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뚫어지게 볼 때, 그때 뭔가 색다르게 환하게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창의(創意)란 바로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곳,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생긴다. 결코 멀리 아득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과연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유언호란 사람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대궐로 갈 때 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역마를 급히 몰아 달려갔다. 어떤 객점에서 한 아낙네가 앞에 아이를 앉히고 머릿니를 잡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아이는 그 어미가 머리를 긁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어미는 이 잡는 것을 기쁘게 여겨 둘이 서로 즐거워하는데 거짓 없는 참다운 정이 가득했다. 처마에 낙수물 뿌옇게 떨어지는 그 너머로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아주 잠깐 그 광경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게 망연자실하였다.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 중에 무엇이 이것과 바꿀 수 있겠는가?」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그래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에서 이 즐거움을 찾아야 할 것인가? 결코 거창한데, 화려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내켜 즐겁고, 기쁘고, 흡족하면 그게 곧 즐거움이다. 욕심내지 말고, 남의 것 빼앗으려 들지 말고, 그저 지족(知足: 만족을 앎) 하면 된다.
요즘 들어 몸이 계속 찌푸덩하다 못해 오후 2시 이후로는 졸음이 밀려들어 껌뻑껌뻑 졸기 일수다. 초목(草木)이 따사로운 봄볕에 기지개를 켜고 약동하는 이 시기에 초목과는 달리 나의 입에서는 계속 하품이 나오고 눈은 거물거물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러할 때 김매순의 “나는 즐거워 피로하지 않다”는 글귀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나른한 오후 이 글을 읽었다. “즐거우면 피곤하지 않다.” 참 멋진 말이다. 일단 즐거우려면 마음이 여유로워야한다. 그래야 거기서 즐거움이 샘솟고 피곤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사실 너무 바쁘다. 여유가 없다. 마음이 조급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그 복잡한 생각으로 인해 정신이 피곤해지고, 몸 또한 지치게 되는 것이다. 짐을 좀 덜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옛 글은 늘 복잡한 것을 늘 비우게끔 도와준다. 무궁무진한 깨우침을 들려준다.
그 속에서 내게 꼭 필요한 삶의 자양분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지혜를 발견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종묵 선생님의 <글로서 세상을 호령하다>란 책을 읽고 있다. 읽으면서 느낌 점은 글의 내용이 어쩜 이렇게 제목과 딱 맞나 하는 점이다. 진정 글로서 세상을 호령할 만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