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수호지

 

고전 소설 중에 수호지 만큼 재밌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수호지는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중국 송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한 가닥 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이런 저런 사연으로 수배자 혹은 살인자가 되어 관에 쫓고 쫓기다 양산박에 이르러 그 무리들과 합류하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무려 108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송강, 무송, 흑선풍 이규, 노지심, 시진, 80만 교두 임충

모두가 사내 중의 사내이다.

이 작품은 워낙에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원작 전편을 일반인들이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손에 책을 드는 순간, 놓치 못하는 것이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교양으로 읽는 수호지, 제목은 그런한데, 이 책은 오히려 한 권으로 읽는 수호지란 제목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수호지 전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밌고 중요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축약해 놓은 책이다.

원래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대하소설 수호지를 한 권의 책으로 큰 흐름과 줄기,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훑어 볼 수 있도록 요약, 축약 해 놓았다.

사실 수호지는 굉장히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다. 전체 회수가 저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20회, 혹은 100회 본으로 되어 있다. 시중에 나온 다양한 역자들의 번역본 수호지를 볼 것 같으면, 번역자에 따라 6권 혹은 10권으로 되어 있다. 분량이 워낙에 방대하다 보니, 아무리 재밌었도 단단히 마음먹지 않고는 이 책을 완독해 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교양으로 읽는 수호지>라면 한 권으로 충분히 수호지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은 수호지 100회 혹은 120회 분을 줄이고 줄여 21회 분량의 이야기로 내용이 편집 구성되어 있다.

 

“이 천하에 죽일 놈 같으니라구. 아니, 너 같은 놈은 죽일 가치도 없는 놈이다. 네놈은 어째서 취련 낭자를 속여서 농락했느냐?”

그 말과 함께 노달은 정가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내려쳤다. 와지끈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정가가 사지를 쭉 뻗고 있었다. 노달은 그가 죽은 것을 알고 가슴이 뜨끔했다.…노달은 바로 그 자리를 떠나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급히 짐을 꾸려 간단히 떠날 채비를 마친 다음 봉 한 자루만 손에 든 채 남문 밖으로 빠져나갔다.(29면)

 

양곡현에서 알린다. 이곳 경양강 고개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치고 있으니…

관인이 찍힌 것을 보자, 무송은 비로소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도로 주막을 향해 내려가려고 하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내가 큰 소리를 땅땅 치고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돌아간다면, 주막집 주인놈이 비웃을 것이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어찌 그런 비웃음을 당할 수 있으랴!’

“내가 천하에 무엇을 두려워하랴. 우선 올라가서 맞닥뜨리고 볼 일이다!”(155면)

 

과연 무송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났을까?

수호지는 삼국지만큼 재미있으며, 중국 역사서가 그렇듯 현실에 적용시켜 배울만한 교훈까지 갖추어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시내암의 수호지는 삼국지와 함께 중국의 4대기서에 속해 있을 정도로 대단히 명성이 높은 책이다. 아직 송강, 임충, 노지심, 이규, 무송 등을 비롯한 양산박 108 영웅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우선은 입문용으로 <교양으로 읽는 수호지>를 통해 양산박의 영웅호걸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림, 조선의 586

 

나는 역사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지만,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을 특히 정치에서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조선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586은 조선 사림의 귀환

대한민국과 후조선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멘트가 강렬하다. 특히 ‘후조선’이라는 표현은 정말 시의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가 변했고, 통치 체제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정치의 많은 부분을 답습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통치체제는 조선시대 군왕 중심에서 정도전이 꿈꾸었던 재상 총체제의 변형된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재상총체제는 재상이 중심이 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신권이 중심이 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국회의장과 국회의원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조선은 사림, 사림들이 만든 나라이다.

사림은 특정 그룹이라기 보다는 조선의 사대부 전체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여말선초 무렵 조선의 건국에 반대해 지방으로 낙향한 지식인들의 후예를 일컫는다. 이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지방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힘썼고,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하지만 훈구 세력과 충돌함으로써 네 차례의 사화를 입으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꾸준히 성장해 선조 때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이들은 기득권 타파를 위한 개혁에 앞장섰고, 이 때문에 나라의 온갖 이익을 착취하던 훈구파에게 억울하게 탄압받았다는 것이다.(~28면)

 

인간의 도리를 말하며 노비를 늘렸다.

조선은 노비들의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비들이 많았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노비를 증식하기 위해 노비와 양인을 결혼시키던 일은 이제까지 많이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조선은 노비의 나라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득권을 쥔 자와 쥐지 못한 자,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모되어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비의 삶이 얼마나 부당하고 비참한 것인지 김훈의 흑산이라는 소설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조선시대 노비제도를 보면서 이 제도가 대한민국의 현재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겉모습이 변모되어 많은 이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지, 속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일례로 조선시대 대감마님, 나리, 주상전하란 호칭 대신에 지금은 사장님, 회장님, 부장님, 각하 등의 호칭만 바뀌었을 뿐, 주종관계, 상하 질서가 엄격한 조직 속에서는 여전히 상전과 아랫것들의 구분이 엄격하다.(110면)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했지만, 사실 겉모습만 변했고, 속과 알맹이는 조선시대 그대로인 것 같다. <사림, 조선의 586>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어찌되었건 조선은 망해서 사라진 나라가 되었고, 대신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시대 꼰대, 갑질 문화가 많은 조직 속에서 여전히 만연해 있고, 위정자들은 선거철에만 표심 때문에 민생을 외치지만, 선거가 다 끝나고 자신이 당선된 후에는 민생의 ‘민’자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철에는 그렇게 국민들을 위해, 주민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과 허드렛일은 다 할 것처럼 하던 이들이 당선되고 나면, 민생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당파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국민을 위한, 나라를 위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자신의 당에서 나온 의견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본다. 마치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당쟁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당장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그들에게는 당쟁만 있을 뿐, 민생은 없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왜 가난할까?

백성들의 것을 나라가 갖은 구실을 붙여 빼앗고 착취해 대니, 어찌 가난해지지 않을까? 백성들이 모두 가난한데로 배부른 양반들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백성들의 것을 도둑질한 도둑놈들이다.(~213면)

 

대한민국과 후조선, 권문세족과 사림의 끊임없는 대물림,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의 매력은 과거 조선의 역사적 기록과 사건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점들을 비교해 가며 거울삼아 되새겨보고 되돌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 오름 트레킹 가이드

 

능선의 동쪽 끝에 서면 건너편 밧돌오름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 뒤로 높은오름과 동검은오름, 다랑쉬, 돝오름, 둔지봉이 툭툭 튀어 올라 조망이 즐겁다.(145면)

 

지미오름에서 펼쳐지는 조망은 단연 최고다. 검붉고 푸른 밭에 하얀 모래톱 어우러진 해변의 조망은 지미오름이 아니고서는 만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광이다.(189면)

업무든 휴양이든 일 년에 1~2차례는 꼭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다녀온 횟수가 제법 된다. 한 번, 두 번 제주도를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들끓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제주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썩 그리 많이는 닿지 않는 제주다운 제주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제주의 숨은 비경을 자랑하는 명소는 여러 곳이 있겠지만,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각광지가 바로 올레 길 코스에 있는 명소와 오름들인 것 같다. 오름은 제주의 자연생태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름은 화산 분화구에 의해 생긴 야트막한 산을 의미하는데 제주도에는 이 오름이라는 이름의 산이 무려 368개나 있다고 한다.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오름, 오름이 가진 최고의 매력은 정상에 올라 제주도의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마음껏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점은 맑고 깨끗한 제주의 청정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겨우 30~40분 정도면 야트막한 정상에 올라 시시때때 변화무쌍한 제주의 다양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라산이 손 끝에 닿을 듯, 어승생악

어승생악 정상에서 한라산 정상부를 바라다보면, 산이 덩어리째 서 있는 아주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하여 어승생악 정상은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가 된다.(319면)

 

서우봉은 전망이 빼어난 오름이다. 물결 잔잔한 함덕 바다 뒤로 한라산이 보인다.

 

초록이 번지는 세상, 사려니숲길과 사려니 오름,

사려니숲길은 이름도 예쁘고, 길도 예쁘고, 이야기도 예쁜 길이다. 사려니숲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이름에 담긴 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려니숲길은 사려니오름 가는 길이다. 사려니라는 이름도 실상은 오름에서 빌려왔다. 사려니숲길은 비 내릴 때 더욱 좋다고 한다.

 

‘오름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라고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제주에서 오름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름에 오르면 제주가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오름에 오름으로서 진짜 제주다운 제주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사실상 오름은 제주의 그 어떤 관광명소보다 더 제주다운 제주의 매력이 담겨 있는 곳이다.

영실에서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는 구간은 한라산의 여느 등산로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영실(靈室)은 신령스러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 일대는 범상치 않은 기운으로 가득하다.(~325면)

 

나 역시 뒤늦게 오름의 매력에 빠져 제주도를 갈 때마다 한 두 곳씩은 꼭 오름을 오른다. 물론 오름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지만, 제주에는 워낙에 많은 오름들이 있다 보니, 굳이 일부러 찾지 않고 내가 머무는 곳의 오름을 찾아 다닌다. 사람들은 항상 가까이에 있는 건 중요시 여기지 않고 항상 먼 곳을 찾아 다닌다. 전에 제주도에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그 곳 역시도 풍광이 아주 좋은 명소인데, 정작 숙소 근처에 있는 곳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렌트카를 빌려 다른 명소을 찾아 다니는 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멍청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제주도는 그만큼 머무는 곳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명소 아닌 곳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제주 오름 트레킹 가이드>를 보면서 제주에 100곳이 넘는 무려 300개 곳의 오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크고 작은 언덕들이 사실은 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오름이었던 것이다.

오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주 오름 트레킹 가이드>을 보면서 이름도 생소한 참 많은 다양한 오름들을 만났다. 다랑쉬오름, 아부오름, 말미오름, 손지오름, 백약이오름, 새별오름, 세미오름, 절물오름, 성불오름 등등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픈 오름도 있었다. 사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오름은 몇 번 가봤지만, 이 곳이 오름인 줄 모르고 간 곳이 대부분이었다. 진작에 오름에 관한 책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미리 공부를 하고 갔을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알면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이 참 좋다. 사람들은 여행 다녀온 후에 항상 후회를 한다. 더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하고, 꼭 가봐야 할 장소들을 놓친 것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오름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한 다음, 제대로 알고 나서 다시 제주도를 찾게 된다면, 오름 여행의 묘미와 재미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