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소위 일본은 여전히 GDP 3위의 경제대국이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칠통 같은 치안과 깨끗한 거리, 친절한 시민들 그리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분위기 등 겉만 보면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네 할 만하다. 또 우리가 독재로 신음할 때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일본 사회는 한껏 부러움의 대상이었다.(~9면)
일본은 선진국일까?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일본은 잘 사는 나라였고, 한국은 일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못사는 나라, 즉 후진국이었다. 국력도 일본이 강했고, 경제도 일본이 월등했기 때문에 한국은 절대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당시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인 1980년 1990년 일본은 감히 우리가 넘볼 수 없는 분명한 절대강국이었으며, 선진국이었다.
과거 대표적인 화법이 “일본이 00분야에서 우리보다 00년 앞서 있다.”였다.
우리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일본 기업을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고, 1950년과 1990년 사이 일본 경제는 약 152배나 성장했다. 당시 절정에 달했던 일본의 호황은 우리로 치면 10만원이 넘는 만 엔짜리 지폐를 흔들어야 택시를 탈 수 있었고, 술자리에서 만 엔 짜리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웠고, 차량정체 때문에 헬기를 타고 골프를 치러 다녔고, 도쿄의 땅 일부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었고, 전성기 시절 일본의 풍경은 비현실감이 들 정도로 흥청망청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경제, 인구 등 모든 면에서 걷 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며 무너져 가고 있다.(~190면)
더 이상 선진국 일본이 아닌 것이다.
2020년, 21년 현재의 일본은 30년 전 1990년대의 그 선진 사회가 아니다. 1990년대에는 일본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진 경제 대국다운 면모가 있었다. 불야성을 이루는 도쿄 아키하라발 전자상가에서 삼성이나 엘지 등 한국 전자제품은 첨단 기술을 탑재한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미쓰비시, 산요 등의 전자 제품들에 밀려 한쪽 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삼성과 소니의 위상이 지금처럼 역전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199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로망은 일본제 전자제품이었다. 소니, 파나소닉 제품의 미니 카세트는 젊음의 상징이었고, 삼성과 지금은 엘지로 변한 럭키금성의 제품들은 가격과 성능 면에서 감히 일본 제품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불과 수십 년 만에 상황이 변해 버렸다. 선진 강국이었던 일본은 왜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밀려나게 된 것일까?
코로나 시대의 일본, 의료 위생 대국 일본의 형편없는 대응 과정에서 충격적인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건 마치 속빈 강정처럼 겉만 번드르르한 일본에 그동안 현혹되어 그 속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웃기는 건,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는 올림픽 개최가 우선인 일본의 정치인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일본인들이다. 도무지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얼마나 많은 정성과 공을 기울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기존에 우리가 잃고 있었던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 혹은 1990년대까지의 우리 근현대사가 왜 이리 빈약한가 하는 생각은 근현대사를 공부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없이 공통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 때문이었다. 근현대사의 중심에 일본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원조와 도움 없이는 경제 성장과 산업 국가로의 발돋움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우려 때문에 우리 정부와 기업인들은 진실 보다는 역사 왜곡을 통해서라도 일본의 달콤한 당근과 그들의 기술력을 도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록들을 매몰시키고 윤색하거나 지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한 예시가 바로 과거 인체 실험과 생체실험, 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원에게 우리 정부가 국민 훈장을 준 사실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과거 한국 정부가 전 731부대원에게 훈장을 수여했던 사실이 폭로됐다. 가토 가쓰야. 1973년 11월의 일이다. 그것도 당시 문화, 학술 분야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731부대 대원이었던 가토 가쓰야에게 수여한 것이다.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원에게 처벌을 내리지는 못할망정, 최고의 영예인 훈장이라니 도대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상을 수여한 자들이 자기 부모 형제가 가토 가쓰야에게 그런 몹쓸 짓을 당했다면 그래도 훈장을 수여했겠는가?
왜 정부가 가토에게 훈장을 줬는지 알려진 것이 없었고, 관계 부처는 다들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 이유는 떳떳하지 못했으니까. 자신들도 가토가 일제치하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훤히 알고 있었기에. 최소한의 양심 때문에 차마 변명조차 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토는 이미 20여 년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이력은 화려했다. 일본 예방의학과 집단검진 분야의 일인자로 영예를 누렸으며, 사후에 그의 이름을 기리는 의학상도 제정됐다. 731부대는 그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가토는 731부대에서 발진티푸스와 백신 제조 분야를 맡았다. 세균 병기 개발을 위해서였다. 다른 731부대 출신도 살아 있을 때 승승장구했다. 유명 의대와 약대 교수, 의사, 제약업체 사장, 고위 공무원이었다. 731부대 시절 잔인한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한 출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토를 포함해 그들 모두 731 부대와 관련된 이력은 철저히 숨겼다. 사병 몇 명이 죽기 전 양심선언을 했지만 간부급에서는 단 한 명도 양심선언을 한 이들이 없었다. 이들은 죽기전까지도 자신들의 죄악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그들은 추악한 진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가토가 훈장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한국 신문을 찾아보니, 그가 제주도와 경남 등지에서 기생충 퇴치 봉사를 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기사가 짧게 실려 있었다.(~114면)
인체실험에 강제 동원 되었던 이가 살아 있어 이 사실을 들었더라면,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저 기가 찰 노릇이다.
<기생충> 바로 앞의 해인 2018년에도 아시아 영화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다. 그런데 일본의 반응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국내에도 많이 보도되었는데, 먼저 아베 전 총리가 이례적으로 축하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자국 스포츠 스타, 심지어 일본계 영국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유별나게 환호했던 그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우익을 중심으로 고레에다 감독에 대한 비난이 넘쳐났다. 아베 전 총리와 우익의 반응이 냉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었다. <어느 가족>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 복지가 무너진 격차사회 일본의 현실을 그렸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가 침묵한 이유도 <어느 가족>이 그의 정치적 슬로건인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일본 사회를 통렬히 고발하고 있어서다. 분노의 이유는 한마디로 ‘그런 가족은 일본에 없다!’였다.(158면)
아베가 손바닥으로 아무리 하늘을 가릴려고 해도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가릴 수가 없다. 다만 자신의 눈은 가릴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아무리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우기고 떠들어도 이젠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이상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가려진 민낯이 수시로 계속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사회주의 강국을 선포하였다. 불과 30년만에 중국은 명실공히 일본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 하였고 반대로 선진국 일본은 30년 만에 급격히 추락하였다. 과거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일본을 롤모델로 하여 그들의 기술을 배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과거 일본은 분명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 강대국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을 간과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일본은 무서운 나라다. 자기네 보다 약한 나라가 방심하는 순간 다시금 허를 찌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제목과 내용이 기막히게 매치되는 책이다.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굳게 믿고 착각해 온 이들에게
일본의 민낯을 명명백백하게 까발리고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