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현의 딸 정하연. 그녀는 술만 먹으면 소위 말하는 '개'가 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덕에 억척쟁이가 되어버린 그녀의 엄마, 가정환경에 이골이 나서 결국 집을 나간 언니 정수연이라는 가족들과 살아가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평범한 고1 여고생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가 평범해질 수 없는 이유가 생겼으니, 바로 남들보다 호르몬 작용을 억제하지 못한 점이었다.

단 하룻밤의 실수로 인해 그녀는 그 '죄'를 모두 감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자라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바라지 않던 새로운 생명이. 누구에게는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것일 줄은 몰라도 하연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며 지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그녀는 결국 집을 나가 모텔에서 생활하는 삶을 택한다. 하연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모텔에서 며칠 밤을 보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녀를 미혼모 시설로 인도하였고, 나는 그 후 몇개월 뒤에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그녀를 볼 수가 있었다.

 

 나도 그녀처럼 엄마가 될 것 같다. 막연한 미래에서 내 아이를 품에 안고 혹여나 깨어날까 조심조심하는 남편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억척스러운 엄마가 될 듯 싶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덜 자란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미지의 영역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자식은 엄마라는 껍데기에서 나온 알맹이' 라는 말을 보았는데  "그게 뭐야!"라고 굉장히 어이없어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날 낳아준 엄마를 껍데기라 칭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내가 나중에 자라 날 낳아준 엄마처럼 껍데기가 된 다는 사실이 못마땅 했었다. 물론 그 사람은 그 만큼 자식이 엄마한테는 소중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들을 하고 싶었겠지만 어린 마음에 그건 나중에 독신주의자로 살아야지 하고 나를 다짐케 하는 미묘한 힘이 있었던 말이였다.

 

아마 추측컨데 하연이도 그런 맘이 들지 않았나 싶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도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한 이팔청춘인 소녀가 덜컥 애를 가진 엄마가 되버렸으니 굉장히 두렵기도 하고, 너무나도 믿기지도 않은 생각이 들었겠지. 자신의 엄마처럼 억척쟁이가 되면 어쩌나, 술만 (처)먹으면 개가 되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인간을 남편이랍시고, 애들아빠랍시고 끼고 사는 처지가 되면 어쩌나. 자신도 이렇듯 부모를 깔보고 한심해 하는데 내 자식도 그러면 어쩌나.

하지만 막상 낳아놓고 보니 그렇지 만도 않나보다. 나쁜 악당들을 죄다 무찔러 버리는 원더우먼처럼 저런 생각들을 저멀리 날려버리고, 품에 안은 아기를 보며 환히 웃는 것 보면 말이다.

 

 나도 저렇듯 천하무적인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고1엄마보단 30대 초반 엄마가 되도록!  아기는 꼭 사랑하는 남편과 계획적이게 갖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하연이의 아이가 일상 날개짓이라는 웹툰에서 나오는 가람이란 아이처럼 항상 밝고 명랑한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더불어 미래의 내 아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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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 배나무의 마음, 즉 배꽃처럼 고운 여인. 한 평생을 여인으로, 조선의 궁녀로, 상드 학당의 여선생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만의 연인 빅토르의 아내로서 살아온 리심.

 

"첫 눈 밟듯 천천히..천천히..천년이고 만년이고 잊지 못할 하루를..빅토르.."

첫 눈을 밟는 이의 마음으로 천천히 사랑을 속삭여 달라는 하이얀 그녀는, 그 어느 사내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조선의 여인이 아닌 조선의 국민으로서 그 짧은 생을 마쳤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리심은 실제로 존재하는 조선의 궁녀이다. 작가 김탁환이, 조선 최초로 서양 문물을 접하고 느꼈었던 법국(프랑스) 공사관의 아내 리심의 시점으로 글을 쓴 책으로써, 실제 리심이 쓴 것 같은 생생한 문장력으로 이 리심이란 여인이 얼마나 매혹적인 여인인 지 알게 해준다.

 

 궁녀의 몸으로써 최고의 은덕인 고종의 성은을 입었고 중전의 뜻으로 빅토르와 혼인해 법국으로 떠나 법국을 온 몸으로 느꼈던 리심. 아이를 잃고 세상에 둘도 없을 친구라 여겼던 영은과 지월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준 그녀만의 연인 빅토르에게 마저도 외면 받게 되는 그녀는 실로 한 많은 인생을 살았다. 어찌 보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지라도 꼿꼿이 서서 이 시대를 당당히 살아가는 현대 여성인 커리어우먼 같기도 하다.

 

 조선시대는 완벽하게도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비록 이 책의 배경이 이제 막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나라를 개화시키는 조선 말기였다 해도 여성의 지위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시대에서 살아갔던 이 여인을 감히 커리어우먼이라 칭한 것은 그녀가 조선시대에서 그저 성은을 입은 한낱 궁녀임이 아니라, 당당하게 남자들과 견주어도 될 만큼의 기개를 뽐내며 시대를 살아간 당당한 조선의 국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의 드높고 드넓았던 그 정신,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결코 잠들지 않았던 그녀의 학구열을 존경한다. 배꽃과도 같았던 아름다운 궁녀 리심. 비록 서슬퍼런 바람에 꺽이기는 했지만 나는 결코 그 바람에 꺽이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하게 해준 여인. 리심의 삶을 엿보고 나니 '여자니까 그 일을 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하는 말을 내뱉을 수 없게 되버렸다. 그렇다면 그 것은 이 여인에 대한 죄악이 되는 것 같다.

 

나에게 깊은 감동과 생각을 남겨준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또한 같은 여인으로서 사랑하는 이에게 안겨 떠난 여인에게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축복을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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