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만나기 직전에 런던과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같은 여행서적인데, 굉장히 다른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건 읽는 이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한다. 물론 <파리와 연애하기>는 여행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긴 하다. 파리의 명소에 대해 구석구석 알려주는 정보 중심이 아니라, 그곳과 연관된 사랑이야기가 큰 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명소들도 워낙 유명한 곳들이다 보니,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 책에서의 ‘파리’는 지극히 ‘낭만’을 자극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책에 소개된 인물들의 이야기들 알고 명소에 가면 그곳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훨씬 넓을 것 같다. 파리의 모든 시작과 끝은 에펠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파리하면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건물들 사이에 뾰족한 에펠탑이 없다고 생각하면 파리이면서 파리가 아닌 곳이 되지 않을까. 직접 파리를 가본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드라마 ‘떼루아’의 PD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재구성해 명소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치 드라마를 연상시키기도 했다.(등장한 인물들의 삶과 사랑이야기 자체도 워낙 드라마틱하지만) 에펠탑 같은 경우 영화 <파리가 당신을 부를 때>를, 퐁네프 다리는 <퐁네프의 연인들>의 줄거리 및 장면들을 글로 보여주면서 사진 속의 그곳과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를 매치시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실화 속 사랑이야기들이 책에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영원한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도시는 ‘파리’라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피카소의 사랑, 사르트르의 사랑, 코코샤넬의 사랑, 루이 15세와 그 정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다이애나비의 비극적 죽음을 함께 한 것도 파리다. 모든 이야기가 허구가 약간 포함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PD라는 저자의 직업을 통해 충분히 인식가능하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파리를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베르사유,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물랭루주 등 한번쯤 들어본 유명한 관광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꽃피운 연인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움과 낭만을 자극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파리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이면에 있는 가슴 아픔과 애증과 동반된 것 같았다. 그래서 파리가 좀 더 인간성을 내포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음식에는 코스가 있다. 제대로 된 프랑스음식을 먹어보지 못해서 자세히 모르겠지만, 한식의 푸짐함에 익숙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프랑스음식의 적은 양은 다소 밋밋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그 코스요리에 맞게 알맞은 양과 소재로 차려진 음식을 즐길 수 있게 제공해준 것 같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으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