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을 위한 가산점 부활이 최근 도마 위에 올랐던 것 같다. 그에 대해 여성, 장애인단체에서 반발회견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봤다. 여성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어떤 게 옳은 것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무지에서 나온 생각이라 이런 사안을 함부로 입에 올리기도 약간 겁난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사회에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올라갔다하더라도, 이제는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암암리에 행해지는 여성차별이 존속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차별에 대한 인식(여성, 장애인, 혼혈 등)이 과연 선진국 수준인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에 비해서는 지금의 차별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되긴 하다만, 어떤 이는 이를 피해의식이라는 말로 대체하려 하는데 과연...?! 예를 들면 일본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입장에서, 어떤 이가 일본문화(혹은 일본의 어떤 것)에 열광적으로, 아주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약간 이중적 마음이 생기지 않던가.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일본문화를 접할 때 때때로 흡족함을 주며 즐기게 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아주 광적으로 무분별하게 열광하는 몇몇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 때, 과연 저 정도로 할 만큼인가 하는 진정성의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물론 이건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인이기 때문에, 라는 편견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걸 피해의식이라는 말로 완결 짓기엔, 일본이 행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않지는 않는-더욱이 독일과 비교해서- 그네들의 행태를 보면 피해의식으로만 간주하는 시각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각설하고, <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조선시대 일개여성들의 삶을 단편적인 부분으로 엮었다. 고위급여성들이 아니라 단어 그대로 ‘일개(一介)’여성들이다. 첩, 노비, 여승, 기녀, 무녀 등의 삶이 조금 포장이 되어 재구성했다. 왜 포장이라 여겼느냐하면, 실제는 이보다 더 처절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린 그녀들의 삶은 고달픔과 차별과, 유교사상이 입각한 조선시대의 온갖 악행 속에 살아간 여인들의 삶이었다. 허구에서 구성된 인물들이 아니라, 실록에 등장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모두 서른 세 명의 여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지금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간통(혹은 강간)에 의해 실록에 등장하는데, 그녀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경우는 허하다. 주인에게 속하며 복종할 수밖에 없는 노비(이 경우는 본부인에게 고소?를 당한 것이 많은 듯싶다)나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의 품에 안기는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각 시대의 생활상이 있는 만큼의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게 했다.

그 속에서 유독 혼자 못된 여자 역으로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성종 13년에 ‘경비 사건’이라 실록에 전해지는 사건이다. 경비는 못된 첩이다. 첩이라 하면 자연스레 남편의 사랑을 등에 업고, 본부인을 경시하는 모습을 떠올리는데(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경비가 딱 그 모습이었다. 남편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면서, 조강지처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이일은 크나큰 죄악에 해당됐다. 다행히 경비는 목숨을 부지했지만, 먼 곳으로 추방을 당했다. 경비는 정말 다행인거다. 책 속에 나온 많은 여인들이 추방은커녕, 때때로 무시무시한 형벌로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해자인데 신분이 낮다고, 여성이라고 가혹한 처벌을 당하는 모습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시대에 이룩한 여성의 지위에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브라보~

느리게 읽었다. 한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저절로 곱씹어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민>에는 나와 흡사한 모습의(이것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할 것 같다) 남녀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심리적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틀을 갖춘 이 소설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족하게도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그저, 한 때 프랑스역사에 관심을 두다가 그의 저서인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 슈테판 츠바이크, 옛 교과서 어딘가에서 스치듯 만난 기억이 있던가? 그만큼 왠지 익숙하게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미력한 지식에 비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가 딸린 <연민>. 처음부터 이 책이 주는 느낌이 그리 간단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인물들 모두에 대한 연민이 일어났다는 것에 약간의 놀라움을 표시해 본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가 중요한 시점인 시대였다. 전쟁영웅이라 불리는 호프밀러가 사람들의 가식적인 면에 대해, 자신이 왜 영웅이 아닌지에 대해 ‘작가’에게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그는 순간의 선택이, 아주 작은 순간의 실수가, 결말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자기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거의 호프밀러의 심리적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심리변화에 주된 원인을 제공하는 사건들과의 연관성이 치밀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장애를 갖고 있는 소녀 에디트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갖게 된 호프밀러. 그는 자신의 동정심 혹은 연민이라 불리는 감정을 조절할 줄도 몰랐고, 조절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간의 감정에 따라갔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끝내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한 소녀를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은 결과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난 읽으면서 호프밀러를 처절하게 비난할 수도, 두둔할 수도 없었다.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순간의 감정만을 생각한 혈기왕성했을 청년의 실수를, 나는 마치 고결한 척하며 비난하지 못한다. 온실 속 화초마냥 자라온 에디트에게 호프밀러의 등장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디트의 그 열정적인 사랑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듯 싶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간절하다는 것을 읽는 동안 비참할 정도로 느꼈기에, 그 또한 무어라 충고어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며ㅡ가장 인간다우면서도 어찌 보면 쓸모없는(이렇게까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책을 보면서 한편으로 이런 면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감정인ㅡ연민이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연민은 양면이 모두 날카로운 칼입니다. 그걸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연민에서 손을, 아니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만 환자를 위한 위로이고 치료제이며 약이 되지요. 그러나 이걸 정확하게 조제할 줄 모르고, 적당한 시기에 멈출 줄 모르면 독약이 되고 맙니다.   -222p

 

 

병원에 며칠만 입원하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있다. 의사들은 대부분-경험한 바에 한정을 두면-최악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닥쳐올 가장 안 좋은 상황을 이야기하거나 좋은 징조도 100% 확신이 아닌 이상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섣불리 희망을 주고 그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했을 시, 닥쳐올 크나큰 좌절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 여겨진다. 그런 느낌은 경험하지 못하면 감히 논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그 감정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진정 모르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결국은 연민에서 비롯되는 이해이지 않을까. 연민은 이렇게나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연민의 감정을 어디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서로가 상처받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그런 모든 감정들을 조절한다는 자체가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감정이란 머리보다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은연중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막으로 연민을 내세운 것처럼 느껴지는 남자가 보인다. 과연 그 연민의 종착점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바르게 가고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며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이 연민이라는 것을 쓰잘머리 없이 유통하지는 않았는지. 사실 책을 읽고 난 후 내게 어떤 변화의 감정을 살짝 느꼈다.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에 대해 원래 신중하긴 편이기는 하지만, 신뢰라는 것을 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 하는 의문. 조금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만 몰면 결국은 낭떠러지다. 균형이 중요한데, 그게 가장 어렵다는 게 은근히 미묘하게 다가온다.

 

<연민>을 읽는 순간 조용히 변화하는 내면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몇 번의 한숨, 몇 번의 웅크림...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멍한 생각만 가득 이다. 오래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편지로 쓰자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처럼. <만 가지 슬픔>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자, 전쟁고아, 국외입양아로 시작해 왜곡된 종교적 시각에 의한 고통과 남편의 폭력, 여자로서 최악의 일까지 경험했던 엘리자베스 김의 자전 실화소설이다.

지금과는(내가 사는) 다른 한국의 모습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차별과 멸시는 이룰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읽는 내내 당시 한국 사회의 유교적 모순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어머니의 고향에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 혼혈이라는 것은, 핏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주의 사회에서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중죄에 해당했었다. 지금도 물론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있지만, 50여 년 전의 사회에 비해서 겉으로 느껴지는 바는 완화됐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당시 사회의 그 간악한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대하기 거북스럽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엘리자베스 김이 경험한 한국에서의 일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범위까지 묘사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그녀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긴 하다.

미국으로 입양이 되고 나서도 정신적 고통의 연장선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한국에서 비해 좋아졌지만, 주변은 온통 사막에다가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신세계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을 문화적 충격이 상상을 초월했으리라. 거기다 백인 부모들은 친절한 것 같으면서도 종교적 신념에 의해 그녀에게 정신적 시련을 준 듯싶다. 너무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이라 그녀를 구원해주기는커녕 등 돌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그녀에게 갖은 폭력을 휘두르지만 저항할 수 없는 처지에 존재해 무력하게 보였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그런 조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도망을 쳐도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타인이라는 불리는 사람들은(나도 포함되리라) 타인이 가진 문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해결방안을 내놓으며, 왜 행하지 않는지 이해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당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라고 조언을 했다 쳐도, 과연 그것을 100% 행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자문해 보면 엘리자베스 김이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참고 고통의 인내를 거쳐 하나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딸을 낳으면서 그녀의 삶에 하나의 빛줄기가 내려졌다. 남편의 폭력에 여지없이 시달렸지만, 결국은 그 딸을 지키고자 어두운 굴을 탈출한다. 모성애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김의 어머니에게서도, 그녀 자신에게서도. 딸이 대학을 들어가면서 그녀는 자기에 대한 회의주의 시각에 사로잡힌 듯싶다. 딸을 키우는 동안은 오직 딸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딸의 빈자리가 생기면서 회의주의, 염세주의적인 생각들이 그녀를 지배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오는 고통. 외부적인 것이 아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그 적들에 그녀는 괴로워하지만, 멀리했던 종교를 다시 받아들이면서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양부모님의 극단적인 종교가 아닌 한국에서 엄마가 믿었다 여겨진 종교. 지금 그녀의 삶은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혼혈아, 국외입양자 등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시각과 제도적 측면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책 전반에는 한국사회에 대한 편견이 사로잡혀 있어 보이기는 했다. 한국전쟁 후의 그 가난했던, 유교주의 사회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녀에게 21세기인 현재도 한국의 모습이 마치 모두 그런 것처럼, 일반화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실 그 부분은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다. 한편으로 그런 시각을 갖게 했지만, 개선하도록 노력하지 않았던 한국사회 일면의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숙제를 떠안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으로 혼혈아와 국외입양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며, 지독한 슬픔에 있다면 이 책을 조심스레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