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책을 읽었던 흔적을 남기려한다.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리뷰를 쓰기 위해 한글파일을 열어놓고 보면, 10분이 넘도록 깜박이는 커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굉장한 여운을 준다거나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나조차도 모를 일이 많이 생기니, 이것도 그런 일 중 하나라 여겨질 뿐이다. 다만 나도 모르게 몰입을 하며 읽었는지,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감성을 울렸다는 말이 딱 떨어졌던 것 같다. 글 자체가, 글을 끌어가는 분위기들이 감성적인 스타일로 진행되었다. 이런 -비슷한-감성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화가 생각났다. <피아노의 숲>과 <보이지 않는 나라>라는 만화가 스쳐지나갔는데, 음악을 바탕에 깔고 있는 부분은 <피아노의 숲>과 흡사했고(더욱이 모두 숲이 등장한다), 루크가 지니는 특별한 능력인 ‘소리’에 대한 건 <보이지 않는 나라>를 연상시켰다. 10세를 넘긴,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은 책들이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열네 살 소년 루크의 성장소설. 청소년들이 대상인 성장소설을 보면, 내게는 지난 이야기라 생각하는지(지나긴 했지만, 정신적 성숙은?!) 으레 지나치기 마련이다. <스타시커>를 보게 된 이유는 작가의 전작인 <리버보이>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비슷한 선상에서 이야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리버보이>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성이 차이가 있고, 비슷한 느낌일 것 같은 예감이다. 루크는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좀처럼 채우지 못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한다. 그 때문에 엄마와의 사이도 틀어지고, 한번 비켜선 길에서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나쁜 무리들과 지내면서 우연히 리틀 부인을 만나게 되는 루크. 이후 소년의 삶의 커다란 길이 하나 새롭게 놓이게 된다. 리틀 부인과 그녀의 손녀인 나탈리(혹은 발리)에게 음악적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루크. 그런데,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는 부분이리라. 그것이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을 받아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감성소설 안에, 약간의 스릴러적인 면을 슬쩍 껴놓았다. 작가의 시침 뚝~하는 솜씨가 유려하다고 느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야기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책 한권!(스타시커를 보며 떠오른 게 많았던 모양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이었다. 루크에게는 리틀 부인과 나탈리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할 큰 이유가 없었다. 동정 혹은 연민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으리라. 츠바이크의 소설 <연민>에서는 이런 감정의 폐허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결국 연민의 끈을 정확히 재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애용한 결과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것이 슈테판 츠바이크가 정의한 ‘연민’이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루크는, 팀 보울러는 이 ‘연민’의 감정을 한 인간의 성장조건 중 하나로 내세웠던 것 같다. 또한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루크’라는 한 인격체를, ‘루크’ 본연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있었다. 뭐랄까, ‘나’를 찾는 여행이긴 한데, 의도한 여행은 아니다. 삶의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부분이라 여겨졌다.   

  오랜만에 이해가 들 가는 작품을 만난 듯싶다. 새삼 아직 내가 가진 독서에 대한 내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ㅡ. 처음에는 책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고, 오히려 하루 정도 만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소설이었다. 거기다 <비룡전>으로 나에게 충격과 재미를 톡톡히 안겨준, 그래서 신뢰를 하게 했던 쓰카 고헤이의 소설이다. 그러나 난 뜻밖에 <가마타 행진곡>을 3일 이상을 끌었다.

작가에 대해 아는 부분은 재일교포 2세로(정작 작가는 글을 쓸 때 한국계라는 생각은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 재일교포들에게 해준 건 없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할 듯하다.), “한국이 일본에 준 커다란 선물”이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의 대단한 연극인(정확히는 연출가)이라는 사실이다. 연극을 통해 작품을 먼저 보이고, 소설로 책을 내는 건 그 후인 듯싶다. 여하튼 <비룡전>때의 빠른 진행과 흡입력, 충격과 놀라움 더불어 거북스러움 등 모든 것을 포괄했다 여겨진 것들이, <가마타 행진곡>에서는 조금 더디게 다가왔다. <비룡전>에 비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굉장히 담백하게 그려진 것처럼 다가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비룡전>이든 <가마타 행진곡>이든 사랑이 주체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가마타가 사회적 의식에 대한 문제를 수면 아래 감추고 있다면, 비룡전은 청춘들의 뜨거운 무언가가 담겨 있어서, 가독성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가마타 행진곡>이 예상보다 늦되게 읽혀 순간순간 당황을 했다만, 다시 한 번 읽으면 책 전반에 대한 인식이 또 바뀔 가능성이 커다랗다.

가마타 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있는 모양이다. 정확히 어떤 노래인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본 연극의 등장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으로 여긴 이는 야스였다. 10여 년간 엑스트라로 지내며 톱스타 긴짱에게 맹목적 충성을 하는 야스가 이 책의 중심이자, 그의 모습을 통해 대중들의 몰지각한 모습을 풍자했다 여겨졌다. 리뷰를 쓰기 직전까지는 당연히 야스가 주인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또 다른 주인공인 긴짱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작가는 긴짱이 주인공이란다, 난 조연으로 취급했는데)작가는 긴짱을 주인공이라 지칭했던 것 같고, 자기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모습을 애석(?)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조금 갸우뚱했지만,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그래도 아직까지 난 긴짱보다는 야스에게 무게가 실린다. 긴짱은 톱스타(내가 보기엔 톱스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개 좀 잘나가는 배우 정도)의 위치에서 엑스트라 배우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려 먹는다. 변덕도 심하고, 툭하면 폭력행사에다가 모든 걸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편한 방식으로 사는 남자였다. 돌이켜 보면, -긴짱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그 자체가 긴짱이라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을 풍자했다는 말이든가, 일본의 천황제를 풍자했다든가, 그런 이야기라고 하지만, 정확히 이해했다고 솔직히 말은 못하겠다. 그저 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할 뿐이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는 최초로 나오키 수상(1982년에 받았다고 한다)을 했다고 한다. 그런 타이틀만 보면, 대단한 작품이고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두 작품밖에 안 읽어본 내게 쓰카 고헤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 작가에 대한 느낌은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이다. <비룡전>에서는 흑백에서 정열적인 원색 계열들이 교차했다면, <가마타 행진곡>에서는 흑백에서 조금 옅은 푸른빛이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보라색일 수도 있다. 그의 새로운 책을 기다려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