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들어오는 창가의 햇볕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에 너무나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기에 달콤한 커피 한잔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무엇이 부러우랴.

유명 작가들 중 집 근처 카페에서 원고를 작성한다는 인터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를 창조한 장소 역시 조앤K롤링 집 근처의 카페였다고 한다.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는 건 하나의 복이 아닐까싶다. 아쉽게도 우리 집 근처에는 그런 곳을 만나기 어렵다. 혹은 내가 게으르거나...

Hip이라는 단어에는 몇 가지 뜻이 있는데, 묘하게 2가지 뜻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체의 일부인 hip을 의자에 딱 붙이고 있는 장소, 혹은-아마도 이것이 진정 여기서 뜻하는 hip이라 생각하지만- 앞서가는, 진보한, 통달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hip! 각자의 개성이 고스란히 존재하면서 도시의 한 면을 조용히 물들이고 있는 카페들을 일컬어 hip cafe라는 제목아래 묶어 놨다.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홍대 쪽 카페는 많이 들 알고 있겠지만, 지면을 통해 보는 건 또 다른 새로움을 선사했다. 매력적인 카페들이 너무 많아서, 매일 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컸다. 책에 소개하고 있는 카페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 곳이라 왕복 4시간정도 걸리는 나에게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가득 들었다. 그래도 날 한번 잡아서 그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카페에 한번쯤은 내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 또한 가득이다.  개인적으로는 area 4. 삼청동 ~ 안국동 ~ 부암동 파트에 소개된 카페를 가보고 싶다. 이 지역은 다른 곳보다 커피 그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는 곳이란다. 그만큼 다양한 커피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제 카페는 우리의 일생생활의 한 면을 장식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차가운 도시 이미지에 여유로움을 주는 카페. 언젠가 내가 이런 카페를 운영하는 게 꿈이긴 하지만...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카페 주인장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내보며...

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면, 가까운 카페에서 자기 자신에게 작은 투자 하나 어떨까요?   

 

 

 첫 번째 시를 소리 내어 읊었다. 동생 왈 “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시 같다.”  “어? 이 시가? 엄마들의 애환 같은데...” 내가 말했더니 다시 동생이 말하길, “그래? 난 공부하라는 마지막 말 때문인지 고3들이 받는 압박이 느껴지는데...” 하나의 시가 이토록 다른 느낌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게, 역시 시의 매력이겠지.

‘시를 감상한다.’에 대해서는 초짜이다. 대표적으로 읽은 시집이라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정도인데, 가재미는 감성적으로 다가와서 괜스레 우아한 척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묵직한 힘은 쫙 빼고 읽었어야 했던 시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 반해 이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는 좀 더 복합적인 걸 요구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 읽을 때는 그냥 곧이곧대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뒤에 해설을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요소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느꼈다 기보다는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제림 시인의 이 시집은, 숨은 뜻이 많은 것 같기도 해서 조금 갸우뚱한 면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동생과 느낀 점에서 상반됐던 첫 번째 시인 ‘제춘이 엄마’만 봐도, 어떤 특정 운율이나 깊은 의미를 지녔다기 보다는 단순히 하나의 상황 같은 걸 나열하고 있었다. 일명 보여주기 식을 택했다는 소리다. 이 특징은 이 시집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내면의 뜻은 정말 모르겠는 부분이 더 많았다. 도대체 왜 이 같은 상황을 제시한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한계가 있어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오죽하면 처음에 시라기 보다는(시에 대한 갖고 있는 일련의 편견들 속에서) 오히려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하면 설명일 될까.

전체적인 느낌은 소박함이 이 시집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소박하지만 절대 단출하지 않다. 주변에 풍경들이 시속에서 그대로 보여 지고 있다. 재탄생 같은 건, 숨은 뜻인 것 같다. 단순히 자연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집안의 풍경 같은, 저자가 발길 닿는, 손길 닿는 곳의 익숙한 것들에 대한 시이다. 4부로 된 구성 중, 3부는 다른 부분과 조금 차별을 둔 느낌이 들었다. 한 눈에 주제의식이 뚜렷했던 것 같다. 3부 같은 경우 한국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시였다. 연변처녀가 등장하고, 외국인노동자가 등장하고. 그들에 대한 작가의 마음가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심청가, 홍보가, 춘향가 등의 제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판소리계 소설들을 차용했는데, 아직까지 그 의미파악이 안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패스~! 세 번째 읽으면 좀 와 닿을까.  

그는 걸어서 온다를 메인제목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시 자체가 천천히 걸어오는 느낌이다. 그러다 순간은 조금 빠른 걸음을 걷기도 하지만 다시 본래의 걸음으로 온다. 각각이 걸음걸이에 특성이 있으나 전체적인 균형이 잡혀있다. 재독할수록 의미가 새롭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게 운문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처음은 항상 어렵지만, 자주 읽다보면 내 나름의 시적 의미를 느끼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직까지는 겉멋 잔뜩 든 시감상이지만... 

 

 10여년-그 이상이라도-을 사귄 오랜 벗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모든 부분을 알 수는 없다. 적당히 드러내고,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삶의 요소로 느껴질 때가 있지 않던가. 모든 걸을 내놓아도 부족한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 찾아오는 어떤 불안감이 잠시잠깐이라도 어떤 막을 둘러싸며 잠식한다. 인간이라면 관계라는 이름하에 찾아오는 그런 불합리한 힘을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다. 이후로 적당히 사람관계를 형성시키는 이가 있는 반면, 또 그렇지 않은 이도 있으리라. 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모든 걸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사람, 가족 외의 타인이라 불리는 그룹에서 그런 이를 만나면, 떨림, 수줍음, 행복감등을 느낀다. 거기다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인지라 쉽사리 한 꺼풀의 포장을 내던지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자, 여기 정말 수줍고 순수하며 배려심도 깊고, 너무나 조심스런, 그렇지만 진정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막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떠났다. 자잘한 돌멩이들이 해변을 이루는 곳이다. 파란 하늘과 조금은 어두운 자갈해변이 겹치는 곳에 한 여인의 뒷모습만이 보인다. 왜 혼자일까, 이 아름다운 체실 비치에서... 이제 막 결혼한 여인은 남편에게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애써 숨겨왔다. 60년대 영국이 어느 정도로 폐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현대의 여자들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정신적인 사랑을 갈망하지만, 육체적 사랑은 거부한다. 남자들이, 특히 막 결혼했다면 아내 되는 사람의 진실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이 늦었고 그로 인해 잃었어야 했을까. 남편은 기다려준다는 말조차도, 아내의 진실 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내가 진작 대화를 통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더라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남편에게 있었더라면. 이런 아쉬움들이, 가까이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파도처럼 안팎을 때리고 간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스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의 인생이란 종이 한 장보다 쉽게 날아갈 수 있는 감정의 가벼움으로 인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정의 가벼움,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니까. 어쩌면 이 소설 속의 ‘하루부부’처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변화를 가졌기에 인생이라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자면 연인들에게는 너무 잔인하거나 슬픈 결말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 거린다. 

<속죄(영화“어톤먼트”)>로 유명한 이언 매큐언의 작을 사실상 처음 만나봤다. 영화 어톤먼트를 보기는 했으나 감독의 작품이기에 원작인 <속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 어렴풋이 봤을 때, ‘관계’라는 단어가 이언 매큐언의 중심소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실 비치에서>만 보더라도, 고작 하루정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후의 몇 십 년 후는 빼고) 그 속에 녹아든 다양한 사람들과 가장 중요한 연인에서 부부로 발전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관계는 꽤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는 그 짧은 시간을 한권의 책으로 늘였다는 건 이야기능력이 굉장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작가 특유의 분위기나 특성을 이 한권의 책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얇은 편이지만 하루 만에 뚝딱 읽기 조금 버거운 책이라는 것도 상기시킨다.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다, 아름다움은 항상 추함과 동전의 양면성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환상적인 체실 비치에서, 아름다운 커플이 등을 보이고 걷는 모습은 추하다고만 표현할 수는 없다. 순간의 분노, 긴 여운, 지평선에 다다르면 어떨까, 회한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