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20대로 살아갈 것을 상상했다. 물론 나이가 든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 쏘냐, 겠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그런 믿음이 은연중에 있었다. 터무니없긴 하지만, 상상하는데 뭐 어떠랴. 그러나 최근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얼굴의 변화를 깨닫게 됐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오랜 만에 만나 친구가 “너 팔자주름 있다.” 라는 말에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팔자주름이 이중으로 생겼더라.(슬픔이 슬쩍) 몇 해 전만하더라도 탱탱했던 볼 살을 보며 아직 젖살이 덜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그것이 처지고 만 것이다. 중력의 법칙이라 우기고 싶구나. 여자의 적은 나이라는 말이 얼핏 스친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에서 비춰지는 부분이리라.

이런 내게 연하의 남자가 대시해온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일단 벅찬 가슴 끌어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칠 것 같다. 다만 상대 남자가 나하고 몇 살 차이 나느냐에 따라 오케이~ 여부가 판단되리라. 너무 어린 연하는 좀 회의적이다. 그런데 <연하연애>에서는 무려 띠 동갑까지 커버하는 여인이 등장하니 보기만 해도 놀라웠다. 여자가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 남자는 유치원에서 놀던 나이차라고 생각하면 그저 입이 쩍 벌어진다. 이 책은 그녀들의 유쾌한 반란이라고 생각한다. 30대 후반을 지나면서 몇 년 후면 불혹이라 불리는 40대를 향해가는 여자들의 수다다. 여덟 살 아래의 부하직원을 마음에 두는 아사코와 띠동갑 연하를 사귀는 미나코, 제일 무난한(?) 미호. 이들 세 여자가 알콩달콩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맨스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미국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거창하거나 급격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소소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읽고나면 “아, 나도 연하랑 어떻게 안 되려나.”하는 생각이 슬쩍 스친다. 예전에는 아저씨라고 부르던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이제 오빠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래도 꿋꿋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난 어느 별에서 사는 여인네일까. 아사코와 미나코, 그리고 미호의 삶을 엿보면서 부러운 모습도 많다. 연하와의 연애가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활동영역(?)을 넓혔다는 것이 그녀들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연하건 연상이건 제대로 만난 상대라면 주저 없이 고고싱~하는 자신감을 갖자! 아, 그래도 짝사랑에 고백 못하는 소심함이어라... 지금은 그것마저도 없는 게 서글프다만, 전진을 해야 뭔가 보이지 않겠는가!   

 

 

 

 플라시보 시리즈(쇼트 시리즈)를 겨우 두 번째로 만나본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앞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앞서 <의뢰한 일>을 읽었을 때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던 내용이 많았다. 좀 더 진행되어야하지 않나하는 시점에서 툭 끝나버리니 조금 벙~진 느낌이 강했다. 아마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처음 접해 그의 스타일을 익히는 것이 좀 더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로 접하는 <지구씨 안녕>은 슬쩍 익숙한 가운데, 내용 전반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진 것 같다. 결말을 예상한다든지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작가가 밝혔듯, 이 책의 작품들은 1961년 6월 이전에 쓰인 것으로, 그의 초기 단편집이란다. 어익후, 40년이 훌쩍 지난 글에서 묘사된 인간이 2000년대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건 그리 긍정적인 면은 아닐 것이다. <지구씨 안녕>은 우주시대 개막을 맞은 즈음, 뉴스거리로 자주 등장했던 시기에 쓰여 진 작품 같다. 배경에는 우주여행을 손쉽게 하는 문명이 자리 잡았고, 외계인과의 왕래(?)를 통해 인간 내면의 이중성 및 편협한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다. 솔직히 얼핏 보면, 흔히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한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인이라고 한정할 수는 없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것이라 볼 때 그러하다는 거다. 괜히 작가가 일본인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일단은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자만심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주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삶의 방식에서 오는 우리 ‘인간’들은 매일이 사건의 연속이다. 개개인으로는 평범한 하루라 할지라도 뉴스에서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시대가 흐를수록 좋은 소식들이 들리면 좋겠으나, 뉴스에 등장하는 소식 중 훈훈한 내용은 가뭄에 콩 나듯 본 것 같다. 어째서 그럴까. 우리들이 못된 것일까. 바보일까. 아니면 착해서 이용당하나, 천재라서?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인 것이 정답이리라. 단순하게는 이중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뉴스에는 잘못되고 나쁜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하는 게 조금 유감 이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도 묵묵히 좋은 일을 행하시는 분들도 많다.

평균 3페이지 내외인 단편에서 보여 지는 ‘인간’은 온갖 똑똑한 척 다하지만 결국은 바보고, 아부 잘하는 특징이 외계인들한테는 잘 못 인식이 되어져 파멸을 당하거나... 한마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적인 모습을 비꼬고 있다. 그 방식이 직설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모른 척 하면서 비꼬는 것 같은데,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한다.

우리 인간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라지만, 역시 다양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 속에서 항상 올바른 길로 가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누가 무엇을, 올바르다는 잣대를 마련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소위 상식이라는 선이 있긴 하지만, 그 상식이 100년 후에는 그릇된 것으로 판단될 소지가 충분하다. 과거에 천시된 예술작품들이 현대시대에는 추앙받는 것처럼. 여하튼 우리는,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막상 일이 코앞에 닥쳐야 하는 스타일이다. 미리미리 해놓으면 여러모로 좋을 텐데, 어차피 내일이 있으니까, 하는 조금 건방진(?)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에게 내일은 존재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 최근 중국의 지진사태를 보면서도, 저 사람들 중 이런 일이 닥칠 거라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으려나.

자기가 죽을 날을 알게 되는 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내 마음에서도 두 의견 사이에 팽팽한 대립이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조금 좋은 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남자1>는 100일정도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한 남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딱 보면 드라마에서 허구한 날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식상하려나, 했는데 이건 좀 색다르다. 우선은 만화다. 온라인에 연재된 만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 이런 스타일의 만화에 익숙하지는 않다. 보통 자기가 죽는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게 될 런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삶 자체가 크게 두 가지 정도이기에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도 그러할지도.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조금 냉소적으로 살아온 남자에게 주변정리 또한 화끈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그에게 맡겨진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맡겨진 것보다는 주변을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결심을 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앞으로 2권정도가 더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1권은 도입부라 그가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작년에 친척 두 분을 연달아 지병으로 잃게 됐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찾아가면 언제나처럼 담배냄새 풍기시거나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상 앞에 앉아계실 것만 같은 생각이 매번 든다. 죽음을 선고받은 이의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체념은 분노가 사그라진 지점에 내려앉더라는 말을 들었다. 왜 나만 이래야하느냐는 분노가 차츰 받아들여지는 것인데, 죽음이란 두려운 것일까? 얼마 전 철학서적을 읽으면서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두 가진 관점을 읽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의견과 그걸 왜 신경 쓰냐는 관점이었다. 둘 다 ‘지금’에 중심을 두면서, 전자는 미래에 나에게 닥칠 일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 했고, 후자는 살아가는 동안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결국 삶과 죽음을 결정하리라. 살짝 “쩐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편에 이어질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