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건전지를 가리킬 때의 그 배터리인 줄 알았다. 야구에서 배터리는 투수와 포수를 통칭해서 하는 말이란다. 야구를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세세한 명칭들이 다소 생소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투수의 자리에서 포수와의 유대감이 가장 클 것이라는 건 짐작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야구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누군가 자기의 공을 받아주거나 던지거나, 파트너 혹은 상대가 꼭 필요한 스포츠다. 나만이 아닌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건 스포츠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야구를 소재로 청소년 성장소설을 쓴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직 야구하나만을 생각하고, 그 외적인 것에는 무관심과 불필요함을 어필하는 천재소년인 다쿠미.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곳에서, 고라는 소년을 만난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그들에게 야구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이에 그 정도로 한 가지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은근히 부러웠다. 특히 다쿠미의 그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에 가까운 성격은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는데, 상대가 누구라도 자신의 공은 칠 수 없다고 확언하는 자세가 13살이라고 믿기지 않으면서도, 13살이니까 가능한가하는 생각도 든다. 다쿠미와 고는 야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투수와 포수의 관계가 된다. 야구 이외의 것으로 넘어가면 둘은 어색함의 극치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차츰 변화의 모습이 보이는데, 특히 다쿠미의 성장과정의 한 부분이리라. 혼자서만은 안 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자세 말이다.

<배터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정말 다양한 성격이고, 중복되는 인물이 없을 정도로 특징이 뚜렷하다. 거기다 한 가지 성향만으로 내포된 인물들도 아니다. 동전의 양면을 제대로 보여준 달까. 개인적으로 미즈카기라는 소년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왔는데,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은 내면과 은연중에 끊임없이 싸우는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천재이거나 필사적이다. 그에 반해 딱 두 인물은 그들에 비해 나태해 보이지만, 나태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엔 어떤 면에서는 가장 똑똑한 현실적인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6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한권 당 얇은 편이다. 보통 한 3권정도로 묶여 나올만한 분량이다. 만화책을 보는 느낌도 든다. 만화책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야구의 배터리라는 그 명칭이 처음에는 생소했다. 지금은 그것만큼 정말 잘 어울리는 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전지의 배터리를 연상했으나 틀린 것도 아닌 것 같다. 어떤 물건이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건전지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투수와 포수의 관계도 그런 것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멋지고 이상적인 조화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성장소설이라고 느꼈다. 곧 중학생이 되는 친척동생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차례만 보면 7개로 나열되어 있다. ‘서문’, ‘판본에 대하여’가 1부라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 ‘시체도둑’, ‘오랄라’, ‘꿈에 관하여(축약본)’가 2부 정도에 해당될 것이고,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느낌의 ‘지킬 박사 분석-지킬 박사의 실험과 하이드로의 변신에 관한 과학적 배경 문헌’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소설인 만큼, 심리적, 정신분석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부분에선 살짝 골치 아픈 부분도 있긴 하지만, 흥미가 갖고 있던 분야가 바탕인 터라 솔솔한 재미가 있었다. 본편의 내용은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긴장감은 덜했으나 진행방식이 완전 베일에 가려진 모습이라 읽는 과정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철저히 제3자에 의해 사건을 지켜보는 스타일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아닌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로 보고형식의 글이다. 우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3자의 시각은 어터슨이라는, 지킬 박사의 오랜 친구다. 그는 사건 해결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되, 그 속에 내재된 문제점을 일부러 회피하는 경향도 보였다. 범인과 지킬 박사 사이에 유사한 점을 알아차리는 가운데, 경찰에게 그 사실을 오히려 은폐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인 지킬 박사의 명성,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그런다지만, 결국은 그런 측면도 그에게는 이중적인 면모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의 지킬 박사는 결국 자신의 악에 손을 들고 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악이 선을 이기게 된 결과란 말일까?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다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길, 지킬 박사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하이드를 인정하기보다 분리하려고 애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방법적 측면이 과학적 이론에서는 조금 허무맹랑하기는 하지만, 모호하지 않게 다루었다는 것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리라. 그렇다면 두 가지 인격을 나눔으로 해서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환경적 측면이 중대한 이유였을 것이라 사료된다. 스티븐슨이 살았던 시대는 명예와 우아함 같은, 겉으로 들어나는 면을 중시하는 사회였다. 귀족사회에 만연하는 그 가식이 곧 쇠퇴기에 들어서기 직전인 것 같은 시대! 쇠퇴되기 전에 절정을 피우는 시대 말이다. 그런 생활 속에 탄생된 지킬 박사가 할 수 있는 탈출구는 자신과 같으면서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기 자신을 너무 맹신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라면 요인일까. 인간이 가진 이중성은 언제나 공공연히 화자 되고 있는 주제다. 오히려 딱 선과 악으로만 나누어지는 게 아닌,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게 인간인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는가는 결국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여겨진다. 스티븐슨이 말고자하는 것은 정신분석, 심리학 뿐 아니라 철학적 사유도 될 만하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 나일 수 있나? 하는 질문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시체도둑이나 오랄라, 꿈에 대하여도 인간내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 같은데, 시체도둑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배경을 했다고 한다. 조금 섬뜩한 느낌이 있었던 소설이었고, 오랄라 같은 경우 좀 모호했다. 내가 이해한 게 맞나하는 의문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만 편협한 시각에 대한 잣대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면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 그에 따른 문제 역시 가장 어렵게 다가오지 않나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참 복잡 미묘한 것이 인간이다. 그래도 악보다는 선이 아우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