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런던’은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배낭여행에서 만난 런던 사람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런던’ 날씨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지만 왠지 현대를 살아가는 ‘런던’ 이라는 이미지는 계속해서 과거와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런던’을 한 번 둘러본 것만으로 그 사람들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기회가 있으면 언제 다시 한 번 ‘런던’을 가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런던’ 이라는 도시는 서서히 추억 속의 도시로 남았다.

 

그런데 최근 정혜윤이 쓴 이 책을 보고 다시 ‘런던’을 가보고 싶어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8곳에서 그토록 많은 재미난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을 보고 다시 ‘런던’ 이라는 도시를 가보고 싶어진 거다. 내가 ‘런던’을 둘러 보았을 때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렇듯이 눈도장을 찍고 오기 바빴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런던’ 풍경이 더더욱 그리워진 것인지 모르겠다.

 

지은이는 ‘런던’의 대표적인 명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성당,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 그리니치 천문대를 따라 우리를 ‘런던’이라는 도시의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다. 보통 ‘런던’ 여하면 패키지 상품으로 등장하는 단골 장소로 의무적으로 들르는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곳들이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고 잘 아는 곳이어서 식상한 곳일수도 있지만, 지은이가 너무나 친숙한 이 곳을 돌아다니며 중세와 근, 현대를 넘나들며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금새 이 곳은 색다른 곳으로 다가온다. 문학, 영화, 음악, 그림 등 그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물론 부분적으로 인용되어 있고, 인용된 문학, 영화, 음악, 그림 등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지은이가 우리 귀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이야기는 귀를 더욱 쫑긋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는 그 나름대로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은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자신이 읽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지은이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존의 여행 에세이들이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많고 숙박, 교통,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여행지에서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하게 되는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익숙한 것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이 색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듯이 지은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이야기 꽂이 피어난다.

 때로는 너무나 익숙하고 흔한 것에서 여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지은이가 풀어헤쳐 놓은 많은 이야기 속에서 잠시 길을 잃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여행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책 뒤편에는 ‘이 책에 영감을 준 책’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이 수록되어 있어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다.

20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저격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최근 일본 문화 개방과 한류 열풍 등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바짝 다가온 느낌이지만, 이런 오랜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아직도 일본은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본은 2차 대전 패망이후 한국 전쟁을 기점으로 재기에 성공하여 현재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 사이 일본은 회초밥, 자동차, 게임기, 스모, 사무라이, 가부끼, 기모노 등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갔고, 지금 현재는 일본을 모르는 나라는 없을 정도다. 더 나아가 일본을 배우려고 하고, 일본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는 나라도 많아지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6.25 사변이라는 동존상잔의 아픔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경제발전에 매달리다보니 많은 것을 잃었다. 특히 5,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유 문화는 많이 파괴되었다. 최근 우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을 화재로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단적인 사건이었다.

 

최근 우리는 잘못된 우리 문화를 복원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노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우리 국민들도 단순한 자부심이나 자만심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기보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거나 맹목적 애국주의에 매달려 우리 자신의 눈으로만 바라보려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일본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지양하고 개략적인 설명만을 취하되, 다양한 시각자료를 통해 일본문화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일본에서 수년 간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주관적인 내용들을 배제하고 지금 현재 일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생생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책은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의(衣), 식(食), 주(住), 여가생활, 종교, 교육, 천황제, 스포츠, 취미생활, 도시생활, 문학, 예술, 문자, 세계인이 바라보는 일본, 한류 등에 대해서 중요한 키워드 몇 가지와 543컷의 관련 사진을 수록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록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고, 책에 인용된 사진자료 및 부록을 수록한 시디가 제공되어 있다. 요즘 세대들이 비주얼에 익숙한 점을 십분 활용한 책이다. 일본문화 개론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지은이는 영상의 시대에 발맞추어 이미지로써 일본문화를 소개하려고 하였다며 책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글이나 말로 이루어진 설명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직접 눈으로 보면 낯선 문화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은이들이 의도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인용된 사진은 인터넷을 서핑하면 대부분 볼 수 있는 사진들이다. 지은이가 인정하다시피 지금은 인터넷 세대다. 이미지는 넘쳐 흐른다.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것을 읽어내는 힘이다. 이미지는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다. 카메라 앵글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촬영자의 주관이 들어간다. 이 책에 수록된 수많은 사진에는 일본의 어두운 이면은 보이지 않는다. 지은이가 놓친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전문가인 지은이들이 너무 안일한 수준에서 멈추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요즘 일본에서는 막걸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전국을 돌면서 막걸리 명가를 탐방하고 이를 책으로 만든 일본인도 있었다. 덩달아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잊혀진 술이 되었던 막걸리가 일본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조사되고 막걸리가 가진 그 특유의 맛이 미학적인 아름다움으로까지 승화되는 걸 보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보니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 현대 이전에는 우리가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해주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문화는 일본에 의해 강제침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문화를 가져가서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로까지 고양시켰다.

 

이 책은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발이라고 하면 막걸리 사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발에 대해 특별히 아는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시 우리가 얼마나 우리문화에 대해 너무 안일하고 아무렇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인들의 대단함(?)에 다시 한 번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나라 도자 그릇은 일본에서 명품 찻사발로 인정받으며 많은 그릇이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막사발’이라 부르며 우리 사발을 비하하기까지 하였다. 최근에 차문화가 보급되면서 우리 사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은 한․일 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인 두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 일본 필자인 타니 아키라는 노무라 미술관 학예부장이자 일본 다도문화학회 회장으로서 미술사와 다도문화사를 전공한 학자이고, 한국 필자인 신한균은 부친인 고 신정희 옹의 뒤를 이어 전통사발을 빚고 있는 사기장이면서 오랫동안 한국 전통사발 연구에 매진해온 도예가라고 한다.

 

타니 아카라는 “명품 조선사발은 원래 한국에서 만든 것이지만 일본 다도의 미의식에 의해 선택된 것이며, 일본차인의 기호에 따라 리메이크 된 것이 많다. 이러한 미의식이나 취향에 대해 일본인은 감각적으로 이해하며 몸에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 사기장은 한국인 사기장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책 165쪽 참조).” 라고 하며 은연 중에 일본의 미의식에 의해 조선사발이 재발견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신한균은 “사실 일본 분류명은 도자기의 종류나 가마터, 시대 등을 참조해서 붙인 것이 아니라 차인들이 작위적으로 붙인 경우가 많다(책 104쪽 참조), 옛 일본인의 차인들은 조선 도자기의 기법, 쓰임새 등을 무시하고 이렇듯 다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지고 조선사발을 분류하곤 했다(책 117쪽 참조).” 라고 하며, 사발에 대한 일본인들의 명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두 저자의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기싸움(?)은 이 책 전반에서 느껴진다. 이런 기싸움은 조선사발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내를 비롯한 대영박물관과 일본에 산재해 있는 우리 명품사발의 사진과 6장에 걸쳐 각자의 시각에서 조선사발의 역사와 조선사발의 현재와 미래, 일본으로의 전파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껏 모르고 지내온 우리 사발이 가진 미(美)를 재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다완 전쟁’ 또는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렀고, 18세기 중반부터는 조선에 도자기를 수출할 정도였다. 그 이면에는 도자기를 육성하여 국부(國富)의 원천으로 삼으려 한 국가 정책이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그들은 우리 사발의 진면목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지금은 일본 사발이 대접을 받는 상황이다. 신한균은 “사기장으로 꼭 한 마디 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16세기 말까지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도자기 종주국이었다고(책 162쪽 참조)” 라며 지금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우리 국민들이 사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한다.

 

최근 한식(韓食)을 세계화하려는 활발한 움직이 있다. 21세기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문화가 더없이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민이 자국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아여 한다. 물론 그 자부심은 자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다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 잃어버렸던 우리 차문화와 전통사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소중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