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연령대가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이다. 물론 여자와 일찍 사회진출을 하는 남자들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더 빨리 사회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건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요즘 정년을 감안하면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40년까지 일을 하게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평균 수명이 70-80세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생의 절반을 일을 하면서 보내게 되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직장생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고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무슨 개뼉다귀같은 소리냐, 라고 할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하는게 현실이다.
작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에서(159,160쪽 참조)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야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글이 아닐까 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말이 어떤때는 아주 고단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렇게 밥을 벌기 위해 일을 수십 년 동안 하지만 정작 우리 생활은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다. 오히려 지금의 경제사정이라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지 모른다.
자본주의적 노동윤리관에 의하면 성별, 인종, 계급, 종교 등에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잘 살수 있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 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열심히 일하더라도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모순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게 바로 냉엄한 현실이다.
지은이는 11장에 걸쳐 하루하루 힘겹게 반복되는 일상과 싸우느라 지쳐 있는 사람들, 받고 있는 임금만으로는 도저히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미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하고 가난의 덫을 더욱 강화시키고 마는 사람들, ‘워킹 푸어(Working Poor)’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들이 과거 미국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사회에서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빈곤의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채 힘든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라고 표현한다, 이민 노동자, 흑인과 백인을 포함한 빈민 계층, 이혼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빈곤과 안락한 삶’의 경계에서 간신히 외줄 타기를 하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육아 문제, 교육 문제, 부부 문제, 그리고 언제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실업은 곧 빈곤층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이 국가나 기업의 복지로부터 배제된 채 빈곤의 둘레 속에서 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지은이는 수 년에 걸쳐 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 그들의 꿈, 그들의 개인적 실패, 나아가 그들의 나라 미국이 안고 있는 보다 큰 실패에 대해 가감없이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온갖 도표와 그래프,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며 경제현실을 이야기하는 경제학 책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최근 한국의 직장인 70%이상이 자신을 ‘워킹 푸어’라고 생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할때다. 지은이는 한 가지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더라도 그 밖의 많은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 한 개선책은 ‘지원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며,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다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워킹 푸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서 계속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아는 만큼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지 반문해보아야 한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행위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과 ‘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있다.” 라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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