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건 전적으로 렘브란트때문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부드러운 빛과 색감은 나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매력은 오랜 동안 그의 그림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렘브란트와 비슷한 화풍에 속하는 베르메르의 그림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렘브란트와 유사한 분위기로 인해 베르메르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오히려 같은 화풍이라는 이유로 인해 큰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렘브란트에게 가려져 버린 것이다.

 

그런테 최근 피터 웨버 감독이 연출하고 콜린 퍼스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를 보게 되면서 베르메르와 그가 남긴 작품들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 베르메르를 새롭게 인식한 계기가 되었다. 그가 남긴 훌륭한 작품에 비해 베르메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려진게 많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이 들간 점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좀 더 그의 생애에 가깝게 다가가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외에도 그의 작품에는 매혹적이면서도 독특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고 본다. ‘류트를 연주하는 여인, 물병을 든 여인, 저울을 다는 여인, 레이스를 짜는 여인, 가계에 관한 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등등. 그의 그림에는 유독 여인이 많이 등장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보여주는 묘한 미소와 모습은 영화나 소설로서 나타내는 심리 묘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저 여인은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는걸까?”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그의 그림에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한다. 바로 어머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어머니를 보는 듯 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남편인 가장의 외도는 가려져 있는 서글픈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17세기 당시의 네덜란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그림 속 그림의 형식과 우의와 상징으로 가득한 소재 등이 등장하여 그림을 읽는 매력을 더한다.

 

베르메르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나 그림 감정을 위해 잠시 헤이그로 간 적 이외에는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고, 그 곳에서 44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신비에 쌓인 작가였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시민군으로 활동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르메르는 많지 않은 작품을 남겼지만 모든 작품이 완성도가 뛰어나다. 20세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일어나기도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두 세기 동안 베르메르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가 끝나고 시대적 분위기가 바뀌자 대중들의 취향이 변하면서 잠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잊혀진 것은 아니다. 20세기 들어서 인상파 화가들이 다시금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베르메르의 작품은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오게 되었다.

 

책은 이런 베르메르의 생애를 네 파트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책 측면에는 각각 다른 색의 색띠를 사용하여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있다. 노란색은 베르메르의 삶과 작품을, 하늘색은 당대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분홍색은 주요 작품 분석을 가리킨다. 작은 문고본임에도 불구하고 300여점에 이르는 원색 도판이 소개되어 있어 눈을 즐겁게 하며, 베르메르와 동시대를 호흡한 다른 작가들의 그림까지 싣고 있어 그림을 폭넓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작은 책에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다보니 다소 설명이 부족한 느낌도 들고 책의 편제상 글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점은 있지만,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이 책은 베르메르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책이 되는데 있어 충분하다. 베르메르가 선사하는 빛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멋진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베르메르, 빛, 네덜란드, 여인, 델프트

내게 있어 스웨덴은 ‘사회복지제도, 사회민주주의, 백야(白夜), 세계적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Ernst Ingmar Bergman),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 자살율 1위, 이케아(IKEA)’ 등 단편적이고도 파편적인 이미지만 떠오른다. 이 책을 통해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와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도 스웨덴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발보르(Valborg)데이(4월 30일 모든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하루 종일 술을 마시며 진창 노는 날이다)나,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것을 스웨덴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는 것 등 이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내게 있어 스웨덴은 친숙하다기 보다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면이 강하다. 예전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스웨덴을 가보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보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지은이는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에서 석사 과정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2년 6개월 동안 스웨덴에 머물게 된다(교환 과정으로 6개월 동안 포르투칼의 코임브라대학교에 간 걸 제외하면 실제 스웨덴에 머문 것은 2년이다). 수십 년을 살면서 내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2년 6개월, 더 정확하게는 2년 동안 스웨덴에 머물면서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다가올 수 있다. 스웨덴의 겉모습 내지 피상적인 모습만 보다가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가 본 것은 스웨덴이라기 보다는 공부를 위해 스웨덴에 온 사람들의 생각과 삶, 인생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온 데스피나, 터키에서 온 무슬림 셀다, 베트남 출신 미국인인 호앙, 스웨덴 출신의 야콥와 오스카, 터키 출신이지만 스웨덴에서 자란 디나가 바로 그들이다. 서로 닮은 곳이라고는 없다. 인종, 생김새, 종교, 문화, 나이 등이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서로 부딪치고, 때로는 서로 융화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장소만 스웨덴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인 셈이다.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사람을 만나는 다소 이기적인 성격이지만, 내전(보스니아)으로 단절의 삶을 살아와서 어딘가에 정착하기를 갈망하는 데스피나, 사랑에 목말라하는 디나, 불편할 것만 같은 무슬림 전통을 따르며 전혀 구속이라고 느끼지 않는 셀다,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놀기만 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호앙, 아나키스트 카차, 휴머니스트 야콥, 요리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이탈리아 출신의 다비드, 서양은 동양의 카피라고 이야기하는 루카스, 강한 스웨덴 비판론자 요아킴 등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지은이는 이들을 몽상가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면 두렵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이 새롭고 이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그 곳에서 돌아오면 그런 증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지은이는 “유럽 여행 동안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새로운 존재 방식에 매료되었습니다. 나를 원초적으로 끌어당기는 어떤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현실의 땅을 딛고 있지만 완벽하게 현실을 떠나 있는 것 같은 느낌.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지인들과도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잘 만나지 않습니다.”(책 6쪽 참조) 라고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것에서 무료함과 식상함을 느끼는 반면, 새로운 곳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평생을 그 안에서 산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고 있을 것이다. 카차, 루카스, 요아킴 등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스웨덴에 오기 전에 이미 ‘매혹’과 ‘도취’ 등 장편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문체는 아주 간결하고 감성적이다. 스웨덴의 이국적인 풍광이나 낮잠을 통해 모국을 느끼는 감정을 서술한 부분은 아주 시적이다. 그런데 지은이의 개인적인 취향인지 아니면 이야기의 주무대가 스웨덴이어서인지 이야기는 담백하고 정적이다못해, 때로는 너무 메마르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 곳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평범한 일상사에서부터 정체성, 독일과 일본의 전후사에 대한 인식, 인종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등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같은 묵직한 소재들, 그리고 잉마르 베리만, 무라카미 하루키, 피터 브뤼헐, 에스뵈욘 스벤손 트리오, 말러, 슈베르트 등 영화, 문학, 음악 등 예술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 2년 6개월이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지은이는 그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고 접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하였다.

이는 민족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에 잘 나타난다.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하면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다. 민족은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원초적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화 과정의 산물로, 문화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구성된 ’역사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디나나 파멜라, 야콥, 그리고 내가 원초적으로 소속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각자의 민족은 무엇인가? 민족인 원초적 실재가 아니고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구성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책 316쪽 참조)” 이런 것 때문에 잠시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여행이든 아니면 공부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한다.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온다. 지은이는 백야의 스웨덴에서 잠 못 이루며 고생했다고 하는데, 나는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니 새해 벽두부터 잠을 설쳤다. 지은이가 자주 듣던 에스뵈욘 스벤손 트리오(Esbjörn Svensson Trio)의 음악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다.

 

Esbjorn Svensson Trio (E.S.T.) - "From Gagarin's Point of View" :

http://www.youtube.com/watch?v=XMCkSuaBMbU

몽상가, 스웨덴, 백야, 웁살라대학,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