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키스를 생각하면 남녀간의 애뜻한 사랑이야기가 떠오른다. 두 입술이 서로 부딪히는 아주 사소한 행위(?)라고 보여질지 모르지만, 두 남녀의 사랑이 담긴 입맞춤은 이 세상 그 어떠한 행위보다도 더 아름답고 빛난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네마 천국’ 에서는 마을의 신부님이 키스 장면을 볼 수 없도록 검열하는 장면이 나온다(마지막 장면에서 어린이 된 토토가 이미 고인이 된 알프레도가 남긴 검열로 삭제된 장면을 보는 엔딩은 가슴이 찡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키스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도 키스가 가진 다양한 떨림에 주목하고 있다. 키스에는 사랑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배신, 고통, 불륜, 유혹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행위에 담겨진 다양한 의미를 읽는다는 것은 곧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다른 그림도 아니고 ‘키스’를 소재로 한 그림만 읽는다.

 

뭉크, 샤갈, 툴루즈 로트레크, 르네 마그리트, 로세티, 지오토, 비어즐리, 실레, 클림트,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등 중세 작가부터 현대 작가에 이르는 총 23명의 작가(화가가 아닌 작가로는 유일하게 카미유 클로델이 있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의 작품 속에 나타난 키스를 통해 그림 읽는 재미를 들려주고 있다.

 

책은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챕터 1 ‘빛과 환희, 즐거운 입맞춤’ 에서는 마치 동화 속 환상의 세계를 그린 듯한 샤갈이 그린 연인들의 입맞춤과 사랑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메리 카사트가 그린 엄마의 입맞춤이 인상적이었다. 챕터 2 ‘어둠의 세계, 비극의 입맞춤’ 에서는 지오토 디 본도네가 그린 ‘유다의 키스’와 뭉크와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이 소개되고 있다. 챕터 3 ‘황홀의 순간, 유혹과 관능의 입맞춤’ 에서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도둑맞은 키스’와 ‘빗장’이 아주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지은이는 키스에 대한 그림을 단순히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림을 이리 저리 뜯어보고 분석한다. 마치 큐레이터가 바로 옆에서 설명을 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지은이의 친절한 설명은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그림을 들여다 보도록 만든다.

 

각 챕터의 주제 말미에는 ‘가상의 작업 일지’ 라는 제목으로 샤갈, 마티스, 마그리트, 뭉크, 로트레크, 피카소 등의 작품 세계를 지은이가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이한 그림 읽기다. 이런 식으로 된 그림 관련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신선하다기 보다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은이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그림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그림들과 달리 책 한 권을 다 읽을 동안 키스에 대한 그림을 원없이 들여다 볼 수 있어 눈이 호강을 하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키스라는 소재로 그림을 읽는다는 자체도 특이한 그림 읽기였다.

 

키스가 작가에 따라 이렇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나의 주제를 담은 그림도 그 사물을 보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앞으로 그림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림, 키스, 배신, 사랑, 불륜, 의미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지은이들이 각종 사료와 문헌을 동원하며 당시를 써내려가는 것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때로는 당시를 상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당시 사람들은 무얼 생각하고, 무얼 먹으며, 어떻게 생활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물사 위주의 역사보다는 사건 위주의 미시사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은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책 서술의 기초가 된 책이 조선왕조실록이다보니 일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할 수 없는 흠은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실과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사건 위주의 서술방식은 조선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고, 관련 사건들을 서로 연결해서 읽을 수 있어 글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지은이는 40가지의 사건을 ‘권력, 승부, 욕망, 처세’ 등이라는 주제로 묶어 5장으로 책을 구성하고 있다. 왕실에서 벌어진 냉엄한 승부의 세계를, 권력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드리워진 무상함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으로 비롯된 각종 스캔들을, 형식과 실질이 부조화를 이루면서 발생한 조선 사회의 병폐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쓰러져 간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현로, 권람, 상진 등 후세 사가들에 의해 역사적 평가에서 소외되다시피 한 인물들을 새롭게 부각시키는가 하면, 한확, 전복창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들려주고, 장미, 초요갱, 이연수 등과 같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시도 불륜과 패륜 범죄가 있었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 마디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들이다.

 

지은이는 각 사건에 해당할 만한 고사성어를 먼저 소개하고 그에 해당하는 글을 실어두는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주지시키고, 또한 현재의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각 장의 중간에 ‘조선사 교양’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에서 정승이 되는 조건, 조선 중기의 권력 지도, 창녕 성씨, 광주 이씨, 파평 윤씨 등 가문의 부침으로 보는 조선 500년 등 조선사회의 일면을 좀 더 깊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니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든다. 등장 인물의 관계도를 그림이나 도표로 그려 넣었더라면 이해하기가 편하지 않았을까 한다. 때로는 단순하고 간결한 것이 강하게 와닿는 때가 있다. 책 제목이라든지 목차가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단순화시켰더라면 읽기가 편하지 않았을까 한다. 사건마다 현재의 상황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다가 그치고 마는 부분도 맥이 빠진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쳐보고 그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점을 부각시켰더라면 이 책 제목처럼 ‘진검승부’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조선왕조실록, 권력, 승부, 욕망, 처세, 인간

아이가 3월 달이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는 유치원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유치원은 아무래도 아이에게 공부보다는 놀이로서의 의미를 많이 가지지만, 학교는 그야말로 교육을 주목적으로 하고 아이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다. 아직 어린애 같기만 한 아이가 제대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할지 내심 걱정이 앞선다. 초보 학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얘기해 주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경쟁사회다 보니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라서 더 많이 걱정된다. 아이가 건강하고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커주기를 바라지만, 나도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공부만을 재촉하는 부모가 되는 게 아닌지.

 

그런데 요즘 부모들만 이런 고민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선시대 국왕도 왕세자를 성균관에 입학시킬 때 학부모로서의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다. 현종대(1669년)에 왕세자인 숙종의 입학례를 거행하려고 할 때 『대학(大學)』을 교재로 채택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현종은 자신이 『대학』을 배운 것은 열두 살에 입학했기 때문인데 지금의 왕세자는 아홉 살에 불과하고, 선왕 대의 선례가 『소학(小學)』을 교재로 했고 현재 왕세자가 시강원에서 배우는 과목도 『소학』이므로 『소학』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에는 현종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신권이 강한 사회였고 특히 입학식에 관해서만큼은 성균관 소속의 관리와 유생들이 주도했다. 자연히 입학식에 관해서는 국왕은이 방어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현종은 기존의 관례를 따르면서 어떻게든 왕세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국왕이기 이전에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묻어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이 책에는 요즘으로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왕세자의 입학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때까지 조선시대에 관한 책들이 인물이나 사건 위주로 다루어진 측면이 있는데, 이 책은 왕세자의 입학식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만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한 입학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입학식 절차가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자료는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이다. 이는 1817년(순조 17년) 3월 11일에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식을 기록한 책자인데, 위 책자에는 궁궐을 나서는 <출궁도(出宮圖)>, 공자님께 술잔을 올리는 <작헌도(爵獻圖)>, 왕세자가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왕복도(往復圖)>, 스승에게 예물을 드리는 <수폐도(脩幣圖)>, 스승에게 수업을 받는 <입학도(入學圖)>, 입학식을 마치고 축하 인사를 받는 <수하도(受賀圖)> 라는 6장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왕세자는 성균관에 도착하여 학생복으로 갈아입은 다음부터 입학식을 마치고 성균관을 나올 때까지 학생이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절을 실천했고, 학생으로서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림에서 왕세자는 격이 낮은 서쪽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내렸고, 스승에게 먼저 절을 올렸으며, 수업을 받을 때 책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어야 했다. 왕세자인데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어야 했다는 것은 의외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의식은 장차 왕위에 오를 왕세자일지라도 유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스승에 대한 예절을 지켜야 하며, 이런 수련을 통해서 학문과 덕망을 갖춘 성군(聖君)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책 50쪽 참조)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인성 교육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요즘처럼 지식만을 최고로 치는 사회 풍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왕세자의 입학식은 많은 의미를 가진 의식이었다. 그런만큼 왕세자의 입학식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앞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고 나갈 왕세자가 심신을 도야하는 첫발을 내딛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입학식에 참석한 관리와 성균관 유생들을 궁중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고 상을 주었으며, 3년마다 있는 식년시와 별도로 입학식을 축하하는 과거를 실시하였고, 백성들 중에서는 죽을 죄를 지은 경우가 아니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는 사면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입학례는 유교 경전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기록적 근거가 있다고 한다. 중국의 양나라와 당나라 때는 입학례가 실제로 거행되었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당나라 이후로는 입학례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조선 왕실에서는 건국 초기인 태종 대부터 고종 대까지 꾸준히 입학례를 거행했을 정도로, 입학례는 학문과 예의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왕세자 입학례는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이자 동시에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얼마되지 않는 분량의 책이지만 두서없이 사건만 나열하고 있는 책들보다 더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6장의 그림 속에서 우리 문화의 진수를 엿보았다. 특목고?이 제자리를 못잡고 허우적대고, 그 틈을 노려 사교육은 미국의 총기 산업만큼이나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려주는 의미심장한 책이다.

왕세자, 입학식, 조선시대, 예의, 성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