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메이지 시대는 1868년 10월 23일부터 1912년 7월 30일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겪게 된다. 서구에서 근대화는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더불어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적으로는 노동을 착취하고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으며, 국외적으로는 원료 생산지와 재품의 소비지를 찾기 위해 제국주의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 서구 열강들은 앞선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강요한다. 당연히 불평등한 문호개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강제적인 근대화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상당한 혼란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 책 서두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당시 일본 거리는, 양복을 입고 활보하는 관리, 군인, 귀족 등의 엘리트층, 그리고 양복과 기모노가 뒤죽박죽 섞인 옷차림의 상인, 자유민권운동가, 인텔리,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 문명개화와는 크게 인연이 없는 게이샤, 창부, 하녀 등 하층민들의 삶이 뒤섞여서(책 1권 12쪽 참조), 이미 근대화를 거친 서구인의 눈에는 아주 신기한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지금은 일본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 되어있지만 당시 일본은 서구 유럽의 물질문명에 한참 뒤지는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들의 삶과 생활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활이어서 문화적으로 신선하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느껴지는 신기한 느낌도 많이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삽화를 그린 조르주 페르디낭 비고(1860-1927)도 그런 수많은 외국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유독 일본에 대한 많은 애정을 보였던 외국인이었다.
비고는 당시 유럽에 유행되기 시작한 우키요에 등 일본미술을 배우기 위해 1882년 1월 26일 21살이라는 처음 일본 땅을 밟은 이후로 18년간을 일본에서 살았다. 메이지 시대 서양인이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언어의 문제나 생활습관의 차이에서 볼 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고는 근처에 사는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사귀면서 일본어를 습득하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었으며, 1894년에는 사족의 딸인 사노 마스와 정식으로 결혼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일본생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일본에 사는 동안에 비고는 막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보고 배고 들은 모든 것들을 자신이 직접 스케치하여 잡지에 기고하거나 화집을 출간하여 당시의 일본인들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95년 비고는 영국의 『더 그래픽』지와 프랑스의 『르 몽드 일루스트레』지의 종군특파원으로 ‘일본제국’군이 중국군을 공격하는 것을 목격하는데 그 이후로 그에게 있어 일본은 숨 막히고 표현의 자유도 없고 국가주의적인 영토 확장에 매진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 비고의 붓을 통해 초조함이나 실망, 그리고 불안감으로 나타나 있다.
책은 두 권으로 나누어져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1권에서는 ‘분 단위 생활’의 첫 걸음이자 근대를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인 열차 안의 일본인들의 모습과 병사, 그리고 게이샤, 창부, 하녀 등의 하층민의 일상을 그린 그림과 설명이 담겨져 있다. 2권에서는 메이지 시대 남과 여, 일하는 사람들 등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당시의 유명했던 사건과 인물을 그린 그림과 설명을 수록해두고 있다. 그리고 각 권의 말미에는 ‘비고 연구 노트’라고 하여 비고소전, 비고연표, 비고 소개의 발자취, 비고의 스케치노트, 판화에서 만화까지, 라는 제목으로 비고의 자취를 부록으로 넣어두고 있다.
한국보다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이고 한국을 무력으로 침탈한 역사가 있어서 일본의 근대화는 우리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도 당시 선진 유럽 문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1886년 10월 24일 , 요코하마의 영국기선회사 노만튼 호가 요코하마에서 고베로 가는 도중 기슈紀州만에서 침몰했는데 서양인 승무원 34명은 보트로 피난하여 목숨을 구했으나 일본인 승객 23명은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하여 『도바에』9호에 “멘자레호 구조의 조건 ‘지금 몇 달러 갖고 있어? 빨리 말해. 타임 이즈 머니다.” 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림(2권 책 134쪽 참조)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비고의 그림 중에는 일상생활 속의 일본인들을 담은 그림도 많지만 유달리 유곽 안에서 일어난 일이나 여탕 안의 모습, 그리고 게이샤의 생활을 마치 바로 앞에서 보듯이 그린 그림이 많다. 신기할 정도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비고는 외국인이어서 일본인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이 상당한 문화적 충격으로 와닿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비고에게 혼욕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목욕탕의 ‘산스케’라는, 손님의 등을 밀어주는 직업이었다(책 2권 75쪽 참조). 남성 우위의 봉건사회에서 남자가 여성의 몸을 씻겨 준다고 하는 뜻밖의 모습, 그리고 직업이란 미명하에 알몸의 남녀가 살을 맞닿을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는 ‘관대함’에 비고는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이처럼 일본은 남성중심의 사회였다. 신년 만찬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외교관을 가족 전원이 배웅하는 그림에서 부인은 다다미 바닥에 머리를 붙이듯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는 그림(책 2권 94쪽 참조)은 당대 일본 사회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무조건적으로 남성중심의 사회는 아니었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하층 일본 여성들은 오히려 앞선 서구 문물을 빠르게 체득하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이샤가 자전거를 타는 그림이나 도카이도선 철길 건널목에서 ‘깃발 신호를 하는 사람’이 여성, 그것도 아이를 업고 있는 주부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여성들은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으며, 또한 서양인과 접촉할 기회가 가장 많았고, 그들이 체험한 서양문화를 일본에 확산시키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이들의 힘들고 지친 모습도 일본 근대의 모습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고는 일본인들의 삶과 생활을 그린 것 이외에 당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상세한 그림을 실어 두고 있다. 1887년 2월 15일 『도바에』1호에서는 작은 나라 조선을 낚고자 하는 일본과 청국, 그리고 틈만 나면 옆에서 가로채고자 하는 러시아. 그런 불온한 기운이 거듭되는 가운데 결국 1894년 8월 1일 선전포고와 함께 청일전쟁이 시작된다는 내용을 ‘낚시놀이’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비고는 일본 국내의 정치와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후대 사람들로서는 사료에 근거하여 당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료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는 사료의 경우도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바깥의 제3자의 시선은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다. 어느 정도 주관적인 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며, 외국인이 아니고는 포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림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부채질을 하면서 먼 길을 빠르게 걷다가 가랑이 사이에 땀이 차서 불쾌한 듯 가끔 왼손으로 훈도시에 틈을 만들어 오른손에 든 부채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무더운 여름날 가랑이 사이’ 라는 그림(책 2권 30쪽 참조)은 메이지 시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어서인지 이런 모습은 일본인 화가의 시선에는 포착되지 않았지만, 비고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외국인이 아니고는 포착할 수 없는 진기하고 미묘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인도 놓칠 수 있는 근대 일본인들의 삶과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메이지 시대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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