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매력적인 소설을 만났다. 미스터리를 추구하는 범죄소설이면서 중세와 근대가 혼재된 18세기 후반 스웨덴의 역사를 관통하는 당대 정치 상황과 스톡홀름의 처참한 고통과 시대적 절망을 뛰어난 문장력으로 여과없이 풀어내고 있다. 신념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이자 무슨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법관 세실 빙에와, 전쟁에 잔뼈가 굵은 거대한 싸움꾼 미켈이 뒤쫓는 살인마의 흔적은 시작부터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사선을 넘나드는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그들은 서서히 범죄의 윤곽을 잡아가게 되고 더불어 두 사람의 우정도 피어난다. 그리고 파산 상태의 국가 스웨덴의 혼탁한 세상이 드러난다. 굶어 죽을 운명을 피하기 위해 요람 안에서부터 도둑질을 배우는 아이들, 몇 푼의 돈에 몸을 파는 여인들, 적은 돈으로도 사람들을 살 수 있었고, 시민들은 곳곳에서 끔찍한 경제불황을 한탄했으며 무능한 국가를 규탄했다. 수척한 몸으로 강제된 노동을 수행하면서 굶주리다 서서히 죽어가는 죄수들, 사형집행장에 벌떼처럼 몰려드는 구경꾼들이 참수 장면을 쇼처럼 지켜보고, 참수당한 자의 손을 행운으로 여기고, 교수대 바닥에 괸 피를 간질 치료약으로 썼으며, 도시는 온통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도둑과 사기꾼들로 들끓었다. 사람들은 양털로 만든 가발을 썼으며, 탐욕과 타락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도 민주주의 싹은 피어난다.
"빙에 씨, 혹시 '호모 호미니 루푸스 에스트'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플라우투스가 포에니전쟁에서 남긴 말이지요. '사람은 만인에게 늑대다."'
..중략.. "우리는 언제나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남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늑대일까요?" -p92
스웨덴의 계몽전제군주로 군림했던 구스타브 3세가 암살당한 이듬해인 1793년 가을, '예안 미샤엘 카르델(미켈)'은 온갖 폐기물로 뒤덮인 파트부렌 호수 위로 떠오른 시체 한구를 건져낸다. 사지는 모두 동강났으나 조금도 썩지 않았고, 안구가 빠져나간 텅빈 눈구멍과 찢어진 입술 안에 모두 뽑혀버린 치아, 광택이 도는 금빛 머리카락과 가녀린 몸통은 덜 자란 청년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잘려나간 팔다리는 순차적으로 최근 몇 주 전까지 하나씩 절단이 이뤄진 상태였고, 죽은 건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불과했으니 직접적인 사인이 절단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시체들과 경험으로 터득한 미켈의 해석이다. 미켈은 러시아 해전에서 한쪽 팔과 아끼던 전우 하나를 잃고 돌아온 삼 년 전부터 잦은 공황발작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술에 진탕 취한 뒤 쌈박질 하는 것으로 달래곤 했다. 방범관 봉급으로 생활을 꾸리기에는 부족했기에, 술집에서 난동 부리는 취객들을 쫓아내는 조건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방범관을 수행한 지 몇 시간 만에 직위를 반납했으나 봉급을 받았고, 돈을 받는 대가는 지급받은 제복을 입는 것이 전부였다.
구스타브 왕이 서거한 뒤, 왕이 가장 아낀 전 치안총감 '릴옌스파레'는 왕세자 '칼 공작'의 보호자를 자처해 야망을 불태우려 했다. 그러나 '레우테르홀름' 남작이 그 자리를 꿰찼고, 칼 공작의 뒤에서 나라를 쥐고 흔들었다. 남작은 왕실 소속 검찰관인 '요한 구스타프 놀린'을 치안총감으로 임명했으나, 놀린이 정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움직여줄 '망누스 울흘름'을 후임자로 정한다. 한편, '세실 빙에'는 학식이 높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천재이자 아름다운 아내를 둔 법관이다. 하지만 그는 폐결핵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를 떠나 홀로 죽어가고 있는 '인데베토우의 유령'으로 불렸다. 치안총감 놀린은 빙에에게 살인 사건을 비밀리에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검시를 위해 시체안치소를 찾은 빙에는, 무덤 파는 사람 '디터 슈발베'의 의견에 따라 신분을 알 수 없는 시체에 '칼 요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익사한 전우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시체를 찾아온 미켈에게 합당한 보상과 파트너를 제안한다.
비밀리에 사건을 수사하라던 놀린의 말 대신 빙에는 <엑스트라 포스텐>이라는 잡지를 통해 사건을 만방에 알리고, 이후 놀린은 수사를 중단하라는 세 통의 편지를 받는다. 오로지 부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단체인 '에우메니데스' 회원들의 편지들로, 그곳은 빈민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수행하는 여러 비밀조직 중 하나이다. 그들의 회합이 열리는 곳은, 치안본부의 비호 아래 은밀한 매춘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로써 그들 도움 없이는 스톡홀름 구빈원 절반이 문을 닫을 처지다. 벌거벗은 시체는 값비싼 천으로 싸여 있었고, 남몰래 시체를 싣고 마을을 가로지르기 위해 사용했을 값비싼 고급품의 의자 가마는 손잡이가 부러진 채로 홀연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는 목격담을 듣게 된다.
『늑대의 왕』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1793년 가을에서는 사건을 이끌어 갈 빙에와 미켈이 토막난 시체를 근거로 살인자의 행방을 뒤쫓고, 2부와 3부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어떤 일이 선행되었는지를 들려주고 있는데, 2부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도륙자가 되어버린 열일곱 살 청년 '크리스토페르 블릭스'의 1793년 여름을 다루고 있고, 3부에서는 처녀성을 지켰으나 도리어 매춘 행위로 고발당해 '롱홀맨' 노역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안나 스티나 크나프'의 1793년의 잔인한 봄을 탈출하는 과정과, 마지막 4부에서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1793년 겨울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부자들의 특별한 욕망을 채워주는 케위세르 저택과 마담 삭스, 사지가 절단된 시체는 어떤 연관성을 가진 것일까? 레우테르홀름 남작은 시민들의 안전을 염려하기 보다 감시와 규제를 바라는 인물이다. 게다가 현 치안총감 놀린의 후임자가 오면 더이상 그들은 수사를 계속할 수도 없다. 과연 그들의 수사는 후임자가 오기 전에 마무리 될 수 있을까?
늑대의왕1793,
니클라스나트오크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