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미국과 북한이 끝 간 데 없이 서로 파국을 향해 치달리는 듯해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감이 고조된 게 엊그제만 같다. 그런데 이젠 서로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역사라는 것이 필연적인 요인들에 의한 변화도 있지만, 우연적 사건들로 인해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독일의 통일이 동독의 정치인 '귄터 샤보브스키'의 말 실수로 인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1995년 싱가포르 지점에 근무하던 '닉 리슨'의 실수에 의해 200년 이상 영국을 대표해 온 '베어링스 은행'이 파산한 사실 역시 마찬가지 사례라 하겠다.
앞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는 그 어느 누구도 예단할 수가 없다.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양 체제가 공존하게 될런지, 독일처럼 갑작스런 변란에 의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게 될런지······.
Reading
이 책은 KBS 특별기획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의 결과물이다.
제작팀은 프롤로그를 통해 북한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키워드를 말한다.
정치 부문의 '파워 엘리트'와 경제 부문의 '해외 노동자'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왕조 국가이지만, 왕뿐만 아니라 그 주변 세력들도 세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워 엘리트' 계층을 주목해야 한단다. 김정은은 집권 후에 젊고 유능한 인물들을 중용함으로써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했다. 북한 경제를 해석하는 데 있어 '해외 노동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 터라 권력 기반이 취약하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운구 7인방' 등 기존 세력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차츰 자신의 세력들로 주변을 채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장성택과 리영호 등을 숙청하게 된다. 제작팀은 김정은 집권 7년 동안의 권력 흐름을 분석하기 위해 사회연결망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김정은 정권의 권력 구도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새로운 최측근 그룹으로 등장한 '삼지연 8인방'에 대한 좌천과 경질 등은 김정은의 치밀한 인사 관리 스타일을 확인하게 해 준다. 김정은은 유일지도체제 재건을 위해 당의 위상을 재구축하였으며, 젊고 실무에 밝은 테크노크라트들을 중용함으로써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을 재구성하고 있다.
부자 3대의 국정목표가 김일성은 정치사상강국, 김정일은 군사강국, 김정은은 경제강국으로 각각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서는 테크노크라트들을 통한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이를 위해 '교육에서의 실리주의'를 표방하고, 창조형 실천형 인재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제 개편과 영어 필수 과목 선정 등은 자신이 주장하는 지식경제 시대로의 진입을 위한 시도라고 하겠다.
1972년까지는 남한보다 북한이 잘 살던 시기였기에 김정은은 당시의 '김일성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단다. 김일성이 연안파, 소련파, 소련파, 갑산파까지 숙청함으로써 유일사상을 통한 수령체제를 완성해 갔듯이, 정치 체제를 개편하고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는 방식까지도 김일성을 벤치마킹한 걸로 볼 수 있단다.
김정은은 북한 최초의 시스템형 지도란다.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정책 라인을 활용한 수평적인 정책 조율을 시도하고 있단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의 사회연결망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젊어지고 다양해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조직지도부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는데, 그 중심에 최룡해가 있단다. 조직지도부를 의사로 선전선동부를 약사로 비유할 만큼 북한에서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김여정은 선전선동부의 부부장을 2014년부터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이렇게 권력 기반이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력한 대북 제재가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상황도 알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으로 파견된 노동자들에 대한 내용들이다. 이들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을 하는 달러 히어로즈다. 이들은 중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폴란드 등 이국땅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북한의 외화 수입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런데 유엔 제재 조치 이후에는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송화노디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외부 변수 속에서 김정은으로서는 국제무대 등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강성대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는 김정은이 추구하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성공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이다. 안으로는 체제를 굳게 다지면서 밖으로는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는 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열쇠라고 하겠다.
After
한 권의 책으로 북한의 실상과 권력층의 내밀한 모습을 온전히 다룬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원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정보기관이나 학술단체가 아닌 언론기관으로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문제일 것이다.
이 책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요인과 변화의 주역을 찾아보자는 기획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추출해냈다. 내부적으로는 파워엘리트 계층을, 외부적으로는 달러 히어로즈로 불리우는 해외 노동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둘을 중요한 핵심 요소로 보고, 이를 통해 최근의 북한 동향을 분석하였다. 사회관계망 분석을 통해 북한 내부의 권력 서열 관계나 변화 양상을 찾으려 한 점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해외 노동자라는 외부적 요소를 결부시킨 점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사실 기대한 것보다는 내용이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워낙 북한 체제가 폐쇄적 사회인 데다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얽혀 있는 국가 체제 및 사회 현상을 두 개의 키워드로 해석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칫하면 팩트보다는 추측이나 상상에 의존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