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의 존재가 그들만의 “짜고 치는 게임”이 아니기를 바라며 ]

 

저자의 결론은 명확하다.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청에 정의의 여신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출신, 학벌, 특권의식과 승진에 눈 먼 검찰에게 정의의 여신이란 그저 대외 장부리스트에 체크를 하는 일수 찍기에 지나지 않았다. “신분과 지위를 식별한 후 형식적으로 저울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한테 어떤 이득을 줄 사람인지 심판하는 것” 이 대한민국 사법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계와의 유착관계에 관한 설명이 흥미롭다. 권력자의 편에서 죄를 덮어주었을 때, 자신의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손을 댄 여러 가지 이슈가 사이다로 결론지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출세루트!” 검찰인사에 관해 그들 스스로가 “우리는 멍멍이다.”를 인정했다니... 대한민국 국민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한 엘리트 검사에게 윤리시간에 배운 도덕성이란 존재했던 것일까? 양심에 손을 대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법정에서 진짜 “진실”이란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원칙과 정의는 약자에게만 적용되고, 강자에게는 정치적 고려가 적용된 재판현장을 보며 적폐청산이 필요한 시기임을 자각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한국사회의 현실이 참 답답했다.

학벌위주, 서열위주, 갑을관계가 꼬여있는 이 땅에 희망은 있을까?

 

저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절대로 놓으면 안 된다.” 라고 한다. 주권자의 각성과 감시와 비판이 정치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과 기준이 통용되고, 상식이 확립된 사회. 법이 약자의 편에 선 대한민국에 더 이상 검찰괴물은 없을 것이다.

 

종합병원 확 뜯어 고치는 여자

 

 

  병원에 다녀왔다. 이상하게도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그런 상황에서 찾게 되는 병원은 입구에 들어서면서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고, 접수 후 기다리는 동안은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책을 보고 신문을 보아도 도무지 내 차례는 오지 않고 이리 저리 눈치 보는 대기자들의 시선에는 팍팍함이 흘러내린다.

그런 병원의 특성을 알았을까? 병원 리모델링 CEO 「종합병원 확 뜯어 고치는 여자」 의 저자 노미경은 공사 전 “주 이용자는 누구인가?” 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어쩌면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일 것이다. 생소한 병원 구조, 장소 이동이 많은 검사 과정, 자동화 되었지만 사용법을 익히기 어려운 컴퓨터 수납과정에 스트레스가 더해진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으니 말이다.

 

“신뢰를 주고 받는 병원의 이미지는 모든 걸 보여주어도 괜찮다. 홈페이지에 높은 사람들의 얼굴을 감추어놓고 부속실 표지는 환자가 범접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표시로 얼버무려진 병원이 아니라 모든 걸 보여주는 병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게 바로 믿는 거니까….” (p. 99)

 

  그녀의 이야기는 응급실 리모델링 현장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건강의 위중한 상황에 찾게 되는 응급실이 아닌, 그녀의 일생일대의 응급상황에 맞이하는 응급실일 것이다. 연신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온몸으로 울었으리라. 검은 자국 걷어내며 현장을 수습하고 또 다시 작업은 시작된다.

병원 리모델링은 다른 공사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이용이 많아 여러 가지 염려가 되겠지? 진료를 중단하면 안 되는데…. 이런 저런 의문을 가지고 책장을 넘긴다. 입찰을 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병원 관계자의 건의를 듣고, 견적에 공사를 맞추고, 공사중 민원에 중재를 하고, 본래의 설계도와는 다르게 다시 디자인을 하고, 마감기한을 맞추고…. 병원의 특성답게 여러 가지 난코스가 많다. 그중 어려웠던 작업은 사람들과의 조율이라고 할 수 있다.

단 30센티미터의 공간도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기존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도 싫고 조금 자리가 좁아지면 그만큼 보상해 줄 것을 원하는 사람들.... 사실 공사가 힘든 게 아니라 결국 사람들 사이의 조율과 이해가 가장 힘든 부분이다. (p. 50)

 

  리모델링시 병원 관계자들은 특히나 예민해 지는데, 공사 외에 또 신경써야 할 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외래파트는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손꼽는데, “사람 사이의 조율과 이해” 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철야작업으로 이어지는 공사가 마무리 되면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디자인이란 그렇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면서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하며 웃고 느끼는 가운데 그들이 살아갈 공간을 조금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하지 않을까? (p 47)

 

  한 권의 화보를 보는 듯 첨부된 사진을 꼼꼼히 둘러본다. 새 단장한 인테리어에서 찾을 수 있는 색감, 전체와 부분의 조화, 부서의 특성을 살린 분위기와 깔끔한 정리가 참 마음에 든다. 건강검진센터, 당뇨교실, 직원식당, 도서관, 야외쉼터, 휴게실, 국제진료센터, 화장실까지 이어지는 사진을 보며 그녀가 감독했을 현장을 떠올려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손으로 일일이 쓰다듬어 본 페이지. 스폐셜한 디자인만큼이나 스폐셜한 디자이너의 책을 마주한 것에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어디에선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겠지?

 

 

 

은조에게.

 

  은조야. 아빠의 펜더를 들고 연주하는 그 모습 나도 한번 보고싶구나.

“펜더가 우는 밤” 이라 해서 요즘 흔히 말하는 “팬더화장” 이 된 채 밤을 지새우는 이야기를 상상했어. 참 우습지? 책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지도 않고, 이사를 간다 해도 별 말 없었던 너의 반응을 보면서 그저 아빠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인줄 알았어. 더군다나 마지막 유품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팔아버리기로 했을때 ‘아, 이제부터 은조와 엄마의 새 삶이 시작되겠구나.’ 지레 짐작해 버렸지.

 

  하지만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일단 370 아저씨부터 얘기해볼까? 아침 일찍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골목길 지나 초인종을 누르는 그가 저승사자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실은 조금 의심했었단다. ‘「370」은 딸을 찾아온 아빠’ 일거라고! 책을 읽는 내내 ‘은조 아빠 370은 결말에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라며 강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수 없었단다. 결국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지.

 

  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너의 팬더가 함께 어울어지는 지하실에서의 밴드 연주는 좀 어떠니? 정말 소리가 하나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니? 그런 구조를 가진 집이라면 나도 한번쯤은 꼭꼭 숨어 나만의 사람들과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구나. 참~! 집 때문에 황할머니의 사연도 알게되었지? 뒤늦게야 알게 밝혀졌지만 황할머니의 아드님도 참 딱한 사정을 가진거 같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겨우 찾아낸 집인데 마음대로 구경할수도 없고, 손에 닿을수도 없었으니 떨어져 지내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멀리서 바라만보다 하루하루 눈물만 흘렸을거야.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끼던 은조만큼 말이야.

 

  이제 훌륭한 연주도 하고 생일파티에 초대해서 함께 즐기는 기분이 어떠니? 어느덧 소극적인 모습도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구나. 귀신과 인간 사이 허물없이, 직업과 신분의 차별없이 이웃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은조만을 위해 만든 노래가 어떤지, 비틀즈의 노래는 어떤지 정말 궁금한걸? 어두운 밤 너의 강아지 달개비처럼 창고 문앞에 지켜앉아 엿들어보고 싶구나. 앞으로도 잘 간직해둘게.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우는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