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첫 인상. 
단단하고 트렌디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내용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탄탄하면서도 젊고, 유행의 대로를 걷는 느낌. 나에게는 그랬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것은... 벤츠, 아우디, BMW의 자동차들, 맥주, 하이디 클룸, 카타리나 비트, 자유로운 성문화.. 그리고 베를린...그러나 정작 베를린하면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살기좋은 동네, 훌륭한 복지시설 정도일 뿐.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리와 런던에 비해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름이 아니라 그곳의 삶에 대해.[베를린에 두고 온 가방]은 저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하는 1년동안 그곳을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리면 어릴수 있고, 성인이라 생각하면 성인일 수 있는 20살..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지 내년이면 20년이 되는 것과 일치한다. 
벌써 그렇게 됐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돌들을 가져가는 사람들과 축제가 한창이었던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난다. 시간이란 인간에게만 빨리 흐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베를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떠나는 자와 돌아오는 자들을 맞이하는 역에서 시작하여,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현재의 삶과 문화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베를린의 의미를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맥주집 호프에 담겨 있는 이야기, 저녁 8시만 되면 문닫는 쇼핑센터들, 다양한 박물관과 공원들, 색다른 클럽들과 카페들, 베를린에서 만난 한국의 모습들, 독일 유학생활 등등..가보지 않은 곳의 피상적인 느낌들을 책, 영화, 음악 등을 언급하며 연관성을 지어주어 그 막연함을 누그러뜨려 준다. 화려함보다는 왠지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곳. 고독한 자에게 어울리는 도시 베를린, 혼자 여행해도 어색함이 없을 듯한 베를린. 내가 베를린을 한번이라도 방문하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면 굉장한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만큼 저자의 애착과 추억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 밑에 " Ich hab' noch einen Koffer in Berlin - 내 수트케이스는 여전히 베를린에 있다" .... 이 말이 달리 적혀있던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을 다녀왔다면, 혹은 떠날 예정이라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당신의 수트케이스도 여전히 베를린에 있을지 모르니...

파리의 마드렌 거리는 근사하지요.
5월의 로마에서의 산책도 멋져요.
빈에서 조용한 여름밤의 와인은 또 어떤가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베를린이 그리워요. 

내 수트케이스는 여전히 베를린에 있어요.
그래서 나는 언젠가 곧 그곳에 가야 해요.
지나간 즐거운 나날들
그것들은 아직 나의 수트케이스에 담겨 있지요.

내 수트케이스는 여전히 베를린에 있어요.
그래요 그건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 그건 거기에 있어야 해요.
언제나 집이 그리울 때, 내가 돌아갈 수 있도록.

(Prologue 중에서...)

 

위 노래 가사처럼 베를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이 또 있을까싶게, 책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p.s. 겉과 안 모두 너무나 예쁜 책! 

 

후시미 료스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문을 잠갔다.

니이야마 가즈히로가 방으로 돌아가서 문을 닫았을때, 잠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p.7)

 

대학 재학 중 클럽 경음악부내에 술을 좋아하는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동창회가 열린다. 인원은 후시미, 안도, 사쓰키, 이시마루, 레이코, 니이야마 그리고 레이코의 동생 유카.. 이렇게 일곱명. 그들은 상류 계층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에 안도의 형님이 운영하는 펜션에 초대받았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좋은 술을 함께 마신다는 명목하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 한 사람... 후시미 료스케만은 달랐다. 이 알코올중독분과회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장기기증'이라는 것이다. 생물학부에 다니던 후시미가 '생물은 어차피 여러 부품의 집합체라고, 그렇다면 부품은 유효하게 이용하는 편이 좋다고' 하면서 장기기증의사표시 카드를 받아 자기이름을 써 넣으면서 멤버들이 모조리 같은 카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기 기증이라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자기 희생이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후시미 료스케가 니이야마 가즈히로를 죽인다. 치밀한 계획하에 수면 유도제를 먹이고, 욕실에 물을 받은뒤 익사시킨다. 남들이 보기에 자연스럽게 사고를 당한 것처럼 꾸민 후 문을 닫는다. 
완벽한 밀실살인!
과연? 그리고 왜? 후시미는 니이야마를 죽인것일까?

이 이야기는 살인이 발생하기 전과 후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헤치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긴박하게 스토리가 전개된다. 범인과 피해자가 밝혀져 있기 때문에 살인에 대한 동기부여의 의미에 강한 매력이 작용한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단순에 읽어나갈 수 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미스터리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유카의 존재가 눈에 띤다. 도대체 이 유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집착인가? or 사랑인가? 후시미 료스케라는 인물도 흥미롭지만, 그와 상반되는 유카라는 인물에 시선이 머무른다.

 나는 [명탐정 코난]이라는 일본 만화를 너무 좋아한다. 코난과 유명한 탐정이 가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유능한 경찰들과 유명한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고, 증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코난은 그들이 놓쳐버리는 사소한 단서에서 범인을 유추해낸다. 범인들이 실수로 흘려놓은 아주 하찮은 실마리들로부터... 그리고 풀려나가는 미스터리의 비밀들, 명탐정 코난의 매력은 이것이다. 사건으로부터 유추해 내는 기발한 추리실력!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것과는 여러면에서 다르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다.

결국 그들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그리고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한 사람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어떤 인생이든 잃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실감을 감당해 내기까지 나 역시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고,

삶이 재생될 때 잃는 부분에 대해 앞으로도 완전히 달관하진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대충 살아서도 안 되겠죠.

우리 몫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보람을 찾으면 되는 겁니다.

....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노력에 있는 것이고, 그 노력은 삶이 재생되더라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 내면에 있으니까....

(P. 233)

 

여기 과거로 돌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제프 윈스턴...

그는 1988년 10월 18일 날카롭게 찢어지는 심장의 고통을 않고 죽었다. 그리고 잠시 후 1963년 5월 6일로 돌아와 있었다. 모든 기억을 간직한채.
죽음의 고통은 잠시뿐, 갑작스레 다시 찾은 젊음을 만끽하며 남들은 모르는 미래의 삶을 주도한다는 느낌으로 부를 축적해가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재력가가 되어 회사도 차리고, 여자도 만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지만 1988년 10월의 그날 다시 죽고 만다. 그리고 1963년 5월의 어느날로... Replay.
그는 재생되는 삶을 막을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전의 삶에서 해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도 하나, 결국은 모든것이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사실에 방탕하게 살기도 하고, 은둔자의 길로 걸어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현 시대를 살아가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화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 영화를 만나면서 제프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전에 삶에서 결코 보지 못했던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은 누구이고, 이게 어찌된 된 일인가? 
리플레이 제프 윈스턴에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던 공허한 공간을 채워줄 그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인가?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

재미있다. 그리고 너무 재미있어서 어떻게 글을써야 할지... 하는 생각에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리플레이는 재미 뿐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루하루 습관적인 삶을 살면서 지긋지긋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모든 기억을 안고..' 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한다.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설레이고, 모든것이 해결될 것 같은 희망을 품으면서...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열심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어느 한 시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뤄놓은 것들이 한순간 사라진다는 상상만으로도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만족스러운 삶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이 그 삶에 순응하며 좌절을 극복하며 자신을 한단계씩 높여가는, 끝이 보이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열정에 감동할 수 밖에 없더라. 
위에 언급한 본문 내용이 혹시 작가가 독자를 위해 책 속에 숨겨둔 보물은 아니었을까.

이 책에는 시간여행에 관련된 그간 봐왔던 영화나 책들의 내용이 간간히 포함되어 있다. 벌써 20여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새롭고 참신함까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시간여행 소설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며, 시간여행 소설의 고전이며,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다. 이 책 [리플레이]를 만난것에, 그리고 간직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고하면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꼭 밝히고 싶었다. ㅋ그리고, 제프 윈스턴과 흡사한 삶을 살았던 작가가 어딘가에서 흐믓하게 독자들을 바라보며 살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이 느낌!

 삶에 전환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주저말고 짚어들라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