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중에 거의 으뜸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황경신의 책을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그때만해도 너무 비싼 책값에 서점에서 웅크리고 몇 페이지씩 슬적슬적 읽고, 아쉬워하며 바이바이를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만났다.

 

황경신의 글은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일기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허구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소개해주는 것 같다.

글에 앞서 '두 마리의 노란 물고기' 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글은 황경신의 소설 소재로도 쓰였던 자신의 경험담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미술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작가에게는 미술의 세계가 그녀를 격렬하게 끌어당긴 모양이다.

나도 고등학교때까지는 몰랐는데, 그 후 정말 미술을 배우고 싶었다. 격렬하게..

한번 다른것을 전공하게 되니, 배울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얼만전 스케치를 배우게 되면서 그 꿈의 한자락을 채웠다고나 할까? ^^

그래도 여전히 그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소중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고..

 

22명의 화가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는 화가들의 작품이 그녀의 상상으로 멋들어지게 펼쳐진다.

화가는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도, 왠지 그녀의 설명이 작가의 의도와 동일하게 생각될만큼 연관성이 깊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들도 있고, 도대체 들여다봐도 작가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는 그림들도 있다.

그런 그림들에도 장황한 설명보단, 그림과 관련된 작가의 경험담+약간의 그림지식으로 무지의 시각에도 아, 이런 의도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라는 느낌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수도 있다.

나에겐, 미술관 큐레이터의 틀에밖힌 설명보다 쉽고, 명쾌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감상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구스타브 클림트, 얀 베르메르, 클로드 모네의 그림들이 있고, 또 새롭게 좋아하게 된 아이삭 레비탄, 조르주 쇠라,

장 밥티스트 까미유 코로 등등의 작품들이 있다. 유명한 샤갈, 반 고흐, 마그리트, 뭉크, 피카소 그리고 한국 작가로는 유일한 이중섭의 그림도 있다.

진짜네 가짜네 왈가왈부가 많았던 그의 그림들도 훌륭하지만, 이중섭 본인의 모습또한 멋지지 않을 수 없더라.

 

후꾼후꾼, 지끈지끈한 여름을 색다른 그림 설명책과 함께하는 것은 어떨런지... 황경신을 좋아한다면 후회란 없다.

초등학교 5학년때 나는 전학을 왔다.

그때 당시 나는 전학온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게 무언지는 몰랐지만 학급 아이들이 말도 안걸고, 내 주변에는 다가오지도 않았다.

원인인 즉슨, 반 배치를 위해 시험을 보았는데, 내 성적이 우수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이 성적을 반장에게 말했는데, 그 반장이 자기보다 시험을 잘 본 내가 맘에 안들었던 거다. 그래서 수하(?)의 학급 아이들에게 나와 절대 놀지 말고, 놀았다가는 똑같이 따돌림을 당할 것이라는 엄포가 있었던거였다. 상황을 전혀 몰랐던 나는 너무 우울하고, 이사온 부모님을 원망했다. 아이들이 나랑 놀지 않는다면서...

다행이, 바로 옆에 앉아있던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었고, 난 너무 기뻐서 그 친구에게 정성을 쏟았다.

유일한 친구였기에...

그렇게 한 두 명씩 그 친구를 통해서 알아가게 되고, 많은 지원군들의 도움으로 반장네에 가서 너랑 친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결국 반장과는 졸업할때까지 친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 생긴 새로운 친구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으므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게 나의 12살때의 기억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첫사랑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때가 14~15살 정도....

하찮은 사건에도 설레고, 웃고, 울고 떠들던 그 시절...

 

여기에도 그 시절을 겪은 친구들이 있다. 소년 두명과 소녀 한명... 그리고 그들의 4가지 이야기가,

'서머타임' 은 슌의 입장에서 바라본 고이치와 누나 가나의 이야기고,

'5월의 꽃길' 과 '화이트 피아노' 는 가나의 입장에서 바라본 동생 슌과 첫사랑 고이치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 9월의 비' 는 고이치의 입장에서 바라본 슌과 가나의 이야기다.

사건이 얽히기도 하고, 전혀 다른 시간때의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은 함께 있던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며 성장해 나간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꽉 차오르는 마무리보다 터질듯 말듯한 꽃봉오리 같은 마무리...

결말을 보여주진 않지만, 왠지 기분좋아지는 느낌으로 다가간다.

내가 읽은 사토 다카코의 소설들은 너무 다른 느낌을 준다. 배곱잡게 웃으며 즐기기도 하고, 감정이 마구 피어나게 하기도 하며, 씩씩하기도 하다.

문체도 서로 다르다. 물론 번역자가 틀려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같은 작가가 쓴 글들을 읽을경우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던 것에 비교가 된다(나만의 생각일 수 있음. ㅋㅋㅋ)

그래서 난 사토 다카코가 좋다. 그의 소설들이 좋다.

아직도 읽을 책이 몇권 더 된다. 기쁜 마음으로 도서관에 뛰어 가야지~

나의 책읽는 습관은 맘에 드는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는 것.

자연스레 속도도 느려지고, 몇일 동안 손에서 놓질 못한다. 어쩌다가는 다시 앞으로 넘겨서 지나온 페이지에 집착한다.

 

' 그 서점에 도착한 것은 잿빛 겨울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 첫페이지의 첫줄을 읽고 이 책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왜일까? 책들의 표지색 때문이었을까, 아님 고양이의 치켜들은 꼬리와 뭉퉁한 흰 발 때문이었을까.

 

제레미 머서는 밝히지 말아야 할 범죄자의 이름을 이용된 대가로 협박을 받는다. 그 순간의 두려움으로 기자직을 버리고 파리로 날아온다.

수중의 돈이 다 떨어져갈 무렵, 비오는 거리에서 '셰익스피어 & 컴퍼니'를 방문하면서 그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인생의 길로 들어선다.

작가들의 안식처인 고서점의 주인 조지... 제레미는 조지의 삶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그 이야기에 빠져 한동안 머물고 있으면 한명한명이 나의 이웃같고, 친구같게 느껴진다.

조지... 가장 매력적인 인물 조지... 다 읽고 난 뒤 조지가 동네의 헌책방 주인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좋은 책을 권해주는 친절한 아저씨...

 

조지는 여전히 셰익스피어 &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을까?

그의 나이가 이미 90살을 넘겼을 것인데.... 책을 사랑하고, 서점식구들에게 안식처와 희망을 주고 순수한 사랑을 믿고 따르는 그가

오래살았으면 한다. 비록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하지만서도...

한가지더, 언제가 파리에 간다면 그때까지 서점이 계속 남아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