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는 얇지만 굉장한 소설이다.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속으로 무지막지하게 빨려드러가는 빠른 전개와 세밀한 묘사들..

왠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딱 내 타입의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라는 젊은시절 부인과 산 루이스라는 산간지방에서 살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웃들의 등살에 못이겨

엘 이딜리오라는 정부가 말한 < 약속의 땅 > 으로 이주했다. 허나 이곳은 숲을 개간하고 죽자살자 일해도 다음날 또 풀이 돋아나는 밀림지대다.

게다가 사나운 짐승들에 우기까지 겹쳐 죽음의 땅에 가까웠다. 둘은 삶을 포기하고 운명을 하늘에 맡기려는 순간 원주민인 수아르 족이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냥법, 물고기 잡는법, 오두막을 짓는법, 과일을 고르는 법등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는 순간 부인이 말라리아에 걸려 두해를 넘지 못하고 죽었다. 갈곳없는 그는 수아르족과 살면서 밀림에서 생존, 그곳의 원주민들과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한 지혜로운 인물이 되어간다. 허나 그는 수아르 족은 아니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엘 이딜리오도 개발되어 가고 백인들(밀렵꾼, 노다지꾼)이 밀림속으로 슬금슬금 영역을 펼치게 되면서 수아르족도 더 깊은 정글로 떠나가고 그도 수아르족과의 인연을 뒤로한채 엘 이딜리오로 돌아가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들과 떨어진 생활속 상실감에 한 가닥 희망이 되었던 것은 그가 글을 쓸줄은 모르지만, 읽는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일년에 두번씩 치과의사가 가져다주는 연애소설 -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 의 책장이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 무료하고 적막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금발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한가롭기만 한 마을이 두려움으로 술렁거리고, 그로 인해 세상사를 멀리한 채 연애소설을 읽던 노인의 평화가 위협을 받기 시작하는데.....

 

뭐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스토리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이자 아마존의 수호자인 치코 멘데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그만큼 소설에는 그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은은히 풍겨나온다. 

수아르 족의 삶의 지혜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파멸시키면 더 이상의 공존은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죽어가는 짐승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노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내 이름은 치바. 사신이다.

그러나 특별히 인간과 다를 바는 없다.

한 번도 맑은 날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만 빼고는.

내가 일을 할 때면 항상 비가 내린다.

 

치.....바.

소리내어 불러보면, 차갑지만 왠지 매력적인 음색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보면서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분신사바랑 오버랩 되어서..

관조적인 듯하지만,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런 엉뚱함까지... 이것이 치바의 매력이자, 이사카 코타로의 매력으로까지 전염된다.

 

치바를 만난 여섯 사람의 이야기다.

치바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삶은 시간의 연속이었고, 죽고 싶을만치 단조롭고 괴롭지까지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일주일간의 치바와의 만남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드려다보는 시간이 되고, 흥분과 설레임이 동반되기도 한다.

죽음이 다가오기에 갑자기 생겨버리는 삶의 애착처럼...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치바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인간의 죽음에는 특별한 의미나 가치가 없고, 누가 죽는지에 흥미도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맡은 인간에게는 특별함을 부여하는 따뜻함이 엿보이지.

음악을 사랑하는 사신, 음악의 등장으로 그에 대한 두려움이 누그러지는 것은 아닐까..

과연 그가 사신이 아니고, 인간이었으면....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은 소설이다.

 

p.s. -- 또다시 여기에서도 중력삐에로의 하루를 만났다. 이 플롯은 그만의 영역표시일까.

 

 

 

 

오랜만에 울었다. 기분좋게...

환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울었다고 하면, 왠지 비웃음을 살 것 같지만... 결말의 한 장면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구.

 

책 표지의 저 문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슈타르의 문' 이고, 그 속의 초록색의 숲이 '크바시나' , 뒷 모습의 남자가 주인공 '올리버' 다.

 

배경은 독일의 베를린..

어느날 쌍둥이 남매(제시카 & 올리버)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박물관의 유물을 훔쳐 달아난 도둑이라는 비보가 날아든다. 근데, 쌍둥이들은 아버지란 존재를 까맣게 잃어버리고 있다. 

자신들 방 옆에 누군가가 쓰던 방이 있고, 자신들의 사진속에 턱이 뾰족하고 음울한 눈빛의 낯선 남자가 서있다.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진거지?

제시카와 올리버는 아버지를 찾기위해 잊고있었던 엄마의 보물상자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크세사노'의 음모와 잃어버린 기억의 왕국인 '크바시나' 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둘은 아버지가 크바시나로 떠나간 것을 알게되고 올리버는 크바시나로... 제시카는 베를린에서 아버지를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내게 환타지 소설하면 떠오르는 것은, 드래곤라자와 반지의 제왕처럼 알지 못하는 낯선 생물체들이 나오는 그야말로 환상속의 내용들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간혹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내용들도 접하긴 했지만... 역시, 상상속의 장면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번에 읽은 이 소설은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관련되어 있어, 현실감이 남다르다.

표지의 보이는 '이슈타르 문' 또한 실제 존재하는 유물이고, 바벨론과 관련된 성경속의 이야기도 그렇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사실들,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유물들... 과거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모든 것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분명 진정한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도 없고, 분명 미래도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국보 1호가 몇시간만에 없어져 버렸다.

남대문로를 지나면서 항상 봐왔던 것이 현재 이 순간부터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현실감 없게 자리잡는다.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것은 그리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돌이켜 후회가 밀려온다.

잃어버리기 전에 제대로 지킬 수는 없는 것인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랄프 이자우는 내게 과거의 역사가 반란이었던, 혁명이었던...., 과거의 물건들이 사소한 것이던, 가치있는 것이던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그것은 소중히 우리 기억속에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크바시나'로 사라질지 모르니까...

 

괜찮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