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는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무라카미 하루키만큼은 아니지만 그녀의 책이 나오면 찾아서 읽는편이다,

그녀는 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름답고 곱기만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다른 사랑이야기.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야기는 일상적이기 보다는 시각에 따라 불편해질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 불편한 일상에서 벗어난 사랑이야기를 그녀는
조금은 차갑게 덤덤하게 말해간다. 
감정없이 느껴지는 객관적으로 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역시
객관적으로 사람을 볼 수 있을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랑에 대한 환타지 보다는 사랑의 아픈면을
행복한 결말보다는 너무 일상적인 결말을
평범하기 보다는 범상치 않은
편안하기 보다는 조금은 불편한
그녀의 사랑이야기.

그중 <마미야형제>는 같은 사랑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예전 그녀가 말하던
사랑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과 면식이 있는 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볼품없는,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너저분한, 도대체 그 나이에 형제 둘이서만 사는 것도
이상하고,  몇푼 아끼자고 매번 슈퍼마켓 저녁 할인을 기다렸다가 장을 보는, 
애당초 범주 밖의, 있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연애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는 마미야 형제들의 이야기다.

이런 시선에 불구하고 마미야 형제들은 스포츠 중계에 열광하고, 독서에 열중하고, 
영화 감상, 음악 감상, 직소 퍼즐, 비디오 게임, 각종 모형 만들기, 저녁 외식을 겸한 
산책까지……. 이들 형제에게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

단지, 서른이 넘도록 연애경험이 없다는 것. 
이것이 문제긴 하지만 실연을 당할 때 마다 술독에 빠지는 형과 실연 후 물론 애시당초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긴 했지만 나름대로의 실연이라면 실연을 당한 동생은 
달리는 신칸센을 보러간다. 그러한 그들 형제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이상하기만한 하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스스로 행복해할 줄 아는 
마미야 제들의 조금은 다른 사랑이야기. 
판에 박힌 듯한 내용이 아니라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라면
어떠한 형태든 우선은 사고야 만다. 그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면 그 책은 언제나
나의 위시리스트 1순위다. 그의 소설도 좋지만 그의 여행기도 좋다.
그의 수필을 읽고 있다보면 그의 삶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그가 아주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어느샌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그의 여행기이다.
그런 그가 떠났던 조금은 낯선곳의 여행기.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망설임 없이 꺼내든 <하루키의 여행법>
3주간의 여행을 준비하며 골라든 책이였다. 여행을 하며 그에게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공항에서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책장을 펼쳐 들었고, 비행기안 작은 창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아래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펼쳐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다. 한번 책장을 펼치면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여행길에 올랐다.
나의 여행길에서 만난 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은 미국 작가와 배우들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뉴욕 이스트햄프턴, 
멕시코의 인디오 마을,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과 소련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노몬한 초원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한 기록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지들이 그의 글속에 녹아 있다.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가
말하고 있는 이스트햄프턴이 멕시코의 인디오 마을이 슬픈 역사를 지닌 아직도 전쟁중인
노몬한의 초원이 그려진다. 멕시코의 전통음악이 내 귓가에 들리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기 보다 상황을 자세히 적어놓기 보다는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상황을 기억하려 애쓴다는 하루키는 그 때의 상황을 기억하기 위한 짧은 메모만을
한다고 한다. 그 짧은 메모들은 기억을 되살려 주고 몸안에 눈안에 각인된 기억들은
그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기억하지 못할까봐 조바심 내며 이 쪽 저 쪽을 불안하게 뛰어다니며 사진기에 담던
내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이제 사진기를 내려놓고 그 상황자체를 즐겨야 할때다.
내 몸이 내 눈이 내 모든 오감이 지금 여행하는 이 곳을 기억할 수 있게 마음을
열어야 할 때다.

제주. 아름다운 섬. 이토록 아름다운 섬이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것이 가슴벅찰 정도로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다.
제주에서 보낸 뜻하지 않았던 3주간의 시간은 내겐 선물과 같은 날들이였다.
관광지로만 알았던 관광지로써 구경하기 위해 밞았던 제주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던것은 3주간의 시간들 덕분이였다.

3주간의 시간동안 열심히 걸었고 관광지로써의 제주가 아닌 일상속에 제주를 그렇게
거닐었다. 두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걷다 보면 이마에는 어느새 송글히 땀방울이 맺힌다.
이마에 땅방울이 맺힐 무렵 어디선가 바다내음을 안은 바람이 불어와 그 땀을 날려준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잔듸를 마음껏 밞을 수 있고 폐가득 신선한 공기를 들여마실 수 있는
자연과 더불어 숨쉬는 제주.

제주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제주의 숨은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싶었다.
한달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제주에 왔다.
이번에는 어떤 모습의 제주를 만나러 가볼까?
제주는 나에게 또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감과 설레감에 휩싸여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낭만 제주>를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제주여행이라. 처음 몇장을 읽어 내려가며 실망감이 엄습했다.
겉핥기식 제주 여행기는 정말 싫다. 물론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가 몰랐던 제주의 역사?
에 관해서는 조금은 알 수 있었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제주의 역사가 아니였다.
제주의 아픈 상처가 아니었다. 제주만의 숨은 명소들을 알고자 펼쳤던 <낭만제주>는
제대로 헛다리 짚은 기분이였다. 

그래. 그냥 느끼자. 제주를 온몸으로 온연히 느껴보자.
제주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어차피 어디선가 읽고 찾아간 관광명소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아니였으니 말이다. 우연히 찾아간 길에서 느꼈던 행복감. 
조용히 수줍은듯 보여주던 제주를 내가 찾아가서 만나자.
빠른 지름길을 택하려 찾았던 책을 읽어내려갔던 나는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어디에서도 없다.
내 두발로 씩씩하게 걸어서 그렇게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