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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절실한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가장 하루키적인 단편집

하루키 소설은 장편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단편소설이 더 좋다는 독자도 적지 않다. 그의 단편 문학은 언어와 이미지가 치밀하게 응축되어 있고, 작품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잘 잡혀 있어, 그 완결성이 뛰어나다는 게 정평이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여백이 남겨지고, 독자로 하여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립고 절실한 깊은 멋을 느끼게 하는데, <도쿄기담집>은 그러한 하루키 단편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집 속에는 누구도 원치는 않지만, 마음속에 작은 지옥을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상야릇하고 기묘한 일들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다.
각 작품에는 이름을 훔쳐가는 말하는 원숭이가 등장하고, 상어에게 물려죽은 아들의 혼령이 어머니 주변을 떠돌기도 하며, 계단과 계단 사이에서 실종된 남편을 찾는 아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인공들의 불가사의한 체험담은, 누구나 안고 있음직한 마음속의 작은 지옥을 사실적으로 비추어 준다. 

<신의 아이들은 춤을 춘다>의 맥을 이어, 5년 만에 발표된 하루키의 이번 단편집을 통해, 독자들은 더욱 탁월하고 원숙해진 하루키의 작품세계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기담집이 매력적인 이유는,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있을 것 같지 않는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든 꼭 일어날 법한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각기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는 수많은 소리를 포착하는 예민한 안테나를 가진 라디오다

밤과 야생의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인간 세계의 마지막 전초기지에서라면 사람들이 도시의 날 빛 속에 있을 때보다 쉽게 서로 친족 같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권태와 절망이 위협적으로 몰려오는 시간, 우리 기분에 깊은 크레바스들이 파여 있을 때, 늘 어딘가로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두가 아주 작다.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에서 내가 배정받은 자리 맞은편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보고서 같은 것을 읽으며 네모난 종이 팩에 든 사과 주스를 빨았다. 기차는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기차가 뉴캐슬을 지날 무렵 나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충성과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 하는 걸. 
: 세네카

-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 보들레르

- 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절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찮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 쇼펜하우어
  
-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베수비오 산기슭에 세우라!
: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