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페이스북의 정보독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술적 도전 <트루스 머신 Truth Machine : 블록체인과 세상 모든 것의 미래>

 

이 책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고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 구조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모든 기록을 실시간으로 검증, 확인하며 공유하는 탈중앙화 기록 관리 체계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책의 목차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도구”는 블록체인이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은행, 정부, 그리고 수많은 중개자들의 기록관리시스템에 의존해 살아왔다. 현대는 ‘신용 사회’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중개수수료를 받는 기관들이 게이트키퍼 역할을 자처하면서 신용을 잃은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심지어 게이트키퍼가 ‘거래기록’을 감추거나 조작하면서 자국내의 금융시스템을 교란(한국의 농협 해킹 사건)하거나 세계적인 금융위기(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만들어낸다.

‘기록’과 ‘신용’의 문제는 금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신분에 대한 증명, 부동산 등기, 원료의 원산지, GMO 기술, 상업적인 계약, 성적 기록, 창작품의 진위, 개인의 경력 등 모든 분야에서 점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신용중개자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용 관리의 주체를 모두에게 공개된 프로토콜에 의해 운영되는 분산된 네트워크에 넘기자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저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블록체인 모델은 모든 종류의 비즈니스 운영에 중개자가 필요 없게 함으로써 진정한 P2P 커머스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1장 “신의 프로토콜”에서는 비트코인의 핵심기술이 교환 및 거래의 기록을 디지털화된 장부에 끊임없이 기록하는 기술로 요약한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은행과 정부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던 금융시스템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개발한 프로토콜의 핵심은 가상머신에서 운용되는 스프레드시트에 있다. 가상머신은 상호 연결된 컴퓨터들의 네트워크로 다수의 사용자가 접근 권한을 갖고 있다.

 

2장 “디지털 경제를 관장하다”에서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소수의 독점적인 기업들이 모든 정보를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이다. 이용자들은 이용료를 내고 있지 않지만 이용자 개인 정보라는 훨씬 귀중한 자산을 이들 독과점 기업들에게 넘김으로써 이들을 디지털 시대의 권력집단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3장 “기술 그리고 정치”에서는 분권화된 암호화폐 또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요인은 그에 맞는 적합한 규칙 체계 즉, 참가자들이 상호작용할 때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 프로토콜을 얼마나 잘 정립했는가에 달려 있음을 설명한다.

이제까지 디지털화된 모든 것들은 복제되기 쉬워서 자산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복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디지털 희소성이란 개념을 탄생시켰다.

 

4장 “토큰 경제”에서는 ICO에 대해 설명한다. ICO는 Initial Coin Offering(코인 공개)의 약자로,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에 대한 프리세일을 뜻한다. ICO를 할 때 비트코인과 달리 미리 만들어진 토큰에 대해 자금 분산이 이루어진다. 저자들은 ICO가 투자의 민주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개발자들은 벤처캐피털을 찾을 필요나 윌스트리트 투자은행과 협상할 필요도 없다.

 

5장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에서는 분산된 신뢰 프로토콜이라는 방식이 없다면 가상환경에서 돌아가는 다양한 응용프로그램들은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공급사슬을 위한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해 표준화된 모델을 만든다면 더 많은 사용자가 해당 기술에 연결해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장 “오래된 게이트키퍼의 변신”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진정한 분권화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한다. 각 사용자가 자율적 주체가 되어서 행동해야지 블록체인이 그리는 미래를 실현시킬 수 있다.

 

7장 “선의의 기술, 블록체인”에서는 비트코인 같은 국경 없는 암호화폐 시스템이 널리 보급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개인정보를 제출할 필요가 없으며 은행이나 지역사회 텔레콤 망이라는 지역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8장 “자기주권 신원증명 시스템”에서는 자기주권 신원정보 체제에서 중앙화된 기관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정보를 공유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전제는 수정불가능한 기록으로 블록체인 내부에 저장되어야 한다.

 

9장 “모두가 창조자인 세상”에서는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간 존엄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기계가 대신 하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예술가적, 시인적 기질을 일깨워줄 것이라고 보았다.

 

10장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헌법”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의 개발 프로세스가 모두에게 개방된 오픈 프로세스로 이루어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풍부하게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정치적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음을 설명한다. 신뢰 관계에 의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분권화되고 탈중앙화된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는 글로벌화된 시장에서 한국도 제대로 된 규제와 법체계를 갖추어 암호화폐 관련 산업들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의 원리와 비트코인 거래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 없이 이루어진 편이다. ‘정보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로또’를 맞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문만 듣고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이 책의 제목인 ‘트루스 머신’이 블록체인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다. 즉, 블록체인은 ‘진실’을 담고 있는 ‘수정불가능한’ 장부로, 어찌 보면 ‘공증’이나 ‘내용증명’과 비슷한 개념이다. 물론, 저자들이 ‘트루스’에 담았던 ‘진실’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공유된 진실’이었다.(맨 하단 인터뷰 기사 참조)

 

“이 ‘진실의 장부’는 그런데 어느 한 사람 혹은 기관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분산해서 갖고 있으며 각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나 이용에 대한 권한은 그 정보를 제공한 개인에게만 있다.

모든 거래는 개인 키와 공개 키 한 쌍으로 이루어지며 그 사람의 이름이나 국적, 나이, 인종 등의 그 어떤 신상 정보도 제공하지 않기에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점들이 불법적으로 악용되는 사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실크로드라는 불법 마약 및 무기 거래 사이트에서 사용됨으로서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모든 선한 것들이 양날의 검이 될 수밖에 없듯이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결점보다는 비트코인과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이 오늘날 만연해 있는 부패와 거짓을 어떻게 없앨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의의 혜택을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더 많이 해야 한다.

 

비트코인의 강점은 (아직까지는) 해킹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공개형, 비허가형 블록체인 모델을 쓰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지난 9년 간 해킹에서 무사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비트코인 이외의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들이 수많은 해킹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건들과 비교된다. 우리가 자주 들어온 비트코인 해킹이나 도난은 거래소를 대상으로 일어난 것이며, 비트코인 블록체인 자체가 공격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처럼 비트코인 블록체인이 유독 해킹에 강한 이유는 그것이 완벽한 오픈소스, 비허가형 모델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분산화와 암호화로 인해 해킹 비용이 거의 천문학적으로 들기 때문에 해커가 공격할 만한 유인이 없는 것이다.”(출판사 서평)

 

이 책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공부하기 위해 두 번째로 선택한 책이다. 필자가 자주 참석하지 못하는 공부모임에서 교재로 채택하여 세미나를 했고, 이후 참가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읽게되었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지급하는 날 올 수도 http://bit.ly/2zbD755

 

[2019년 1월 25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추천 [서평] 노동자의 삶은 변했는가? <노동자의 이름으로>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한국사회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땀과 함성이 한여름의 열기를 무색하게 했다.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떨쳐’ 일어섰다. 3개월 동안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 건수는 무려 3천 건을 넘었다. 이듬해까지 새롭게 결성된 노동조합 숫자는 이전보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그중 현대그룹의 공장이 밀집되었던 울산이 가장 뜨거웠다.

 

7~9월 노동자대투쟁은 그해 ‘6월항쟁’으로 가능했다. 6월항쟁은 7년 넘게 이어지던 전두환 군사독재체제의 폭압을 저지했다. 군사독재체제가 주춤하자 사장들이 쫄았다. 사장들은 군사독재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며 ‘친일파 앞잡이가 조선인들 위에 군림하며 착취하듯’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저 주어지는’ 권리는 없었다. 노동자들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한두 개 공장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파업과 노동조합 결성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역시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탄생한 노동조합이다.(물론 현대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먼저 노동조합을 결성한 사업장은 현대엔진이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20년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작품이다. 노동조합의 투쟁 과정에서 분신한 양봉수 열사의 일대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양봉수라는 한 개인의 생애사에 머물지 않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 나아가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가운데 양봉수 열사 이외에도 서영호, 정재성 열사도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나머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현대자동차 2~3만 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충분히 존재했을 만한 캐릭터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사회 노동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 만큼 각성된 노동자들의 투쟁을 꺾기 위한 정부와 자본가의 탄압은 집요했다. 회유와 협박은 물론 테러마저 서슴치 않았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배신과 야합도 속출했다. 소설 속에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나 들어간 현대자동차 공장은 옛날보다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는 한 마디와 더불어. 재벌대기업도 이 지경인데 하물며 중소 사업장이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얼마나 심할지...ㅠ

양봉수와 더불어 소설 속 또 다른 주인공인 김광주가 노동조합에 무관심해진 건 위원장을 비롯한 어용세력들의 비열한 행태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광주가 새로 입사한 청년노동자 양봉수를 만나고, 양봉수가 열혈 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양봉수가 분신을 하게 되고, 이후 김광주는 양봉수의 뜻을 이어 가기 위해 민주노조 재건 운동에 과감히 뛰어든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투쟁을 벌일 때 사수대장을 맡았던 김광주는 결국 구속을 당하고, 석방 후에도 노동운동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의 삶은 만만치 않아서 그를 외딴 섬으로 흘러가 숨어 살게 만든다.

 

그런 김광주를 다시 뭍으로 이끈 건 그의 아들이다.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며, 차별의 벽을 깨부수기 위해 고속도로 난간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아들. 지금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만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따로 있을까?
아들이 있는 고공농성장을 찾아 나선 김광주의 가슴에 쌓인 회한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갈기갈기 찢겨진 청년비정규직 ‘김용균들’,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300일이 넘도록 고공농성을 했던 파인텍 노동자들, 벌써 30명째 목숨을 끊었는데도 아직 공장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겹쳐진다.

<노동자의 이름으로>는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으로 직접 부딪히는 문제를 대하면,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책장을 넘기는 게 쉽지는 않다.

이인휘는 한국사회에게 노동운동의 투쟁사를 전하고자 보고서를 쓴 것이고 중산층과 시민들에게 연대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름이 아닌 노동자, 이 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억눌린 삶을 강요당하는 바로 그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이름으로>를 통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전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선언된“노동자들은 역사의 주인”이라는 명제는 너무 많은 전제조건과 내용을 감춘 것 같다. ‘각성된’ 노동자들이, 혼자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으로 뭉쳐서, 그것도 용기와 헌신성을 갖춘 지도자들와 일심동체로 움직일 때만이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이고 대접받는 것이리라.

또한 구체적인 사정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대기업 노동조합을 향해 ‘귀족노조’니 ‘노동자의 적’이라면서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장구치는 ‘가벼운 입’들을 돌이켜본다. 필자 자신도 그런 적이 없나 반성하며(어용노조나 ‘귀족이라고 착각하는’ 노동조합이 없다는 게 아니라..)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더 깊이 보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영원한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자본은 결코 공동체의 희망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 내가 겪어온 세월 역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민중들이 지독한 폭력을 당해온 역사라는 것, 불행하게도 그건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 소설가들이 문학성 혹은 예술성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당대 현실의 가장 첨예한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현장을 외면하다시피 했다. 그런 면에서 노동소설가 이인휘는 한국사회에게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소중하다.

 

[2019년 1월 13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이인휘, 노동자의이름으로,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양봉수열사, 노동자대투쟁

2018년 1월 JTBC 방송토론(https://youtu.be/GfaQgl50Mv4)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 이후, 한국에서도 사회적 관심사가 높아졌다. 몇 년 전부터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해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그동안 미루다가 선배에게 <블록체인 펼쳐보기> 등 몇 권을 소개받아 읽었다. 

“2018년 말 현재, 비트코인은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2016년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요소 기술 중 하나로 '블록체인'을 꼽았다. 비트코인이 아니라 블록체인이었다. 비트코인을 제외하곤 아직 그럴듯한 적용 사례 하나 없는 블록체인에 기업가들이 주목한 것도 필자에게는 중요한 관심사다.

<블록체인 펼쳐보기>는 블록체인 기술의 수학적, 컴퓨터공학적 배경과 이론을 요점만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려면 수학(함수)과 컴퓨터 용어(캐시 등)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한다.

블록체인의 주요 개념과 기술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보았다.

블록체인 기술의 시작은 작업증명과 해시(Hash)함수다. 작업증명이란 “다른 사람이 한 작업을 옆에서 직켜보지 않고 제3자가 알려 주지 않아도 작업 결과만 보고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이다. 블록체인의 작업증명은 해시함수를 이용하여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객관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해시함수란 입력값(입력의 길이)에 상관없이 항상 고정된 길이의 출력(값)이 나타나도록 하는 함수를 뜻한다. 해시함수를 fn(X) = Y 로 표현한다면, X는 입력값 Y는 출력값이다. 이 중에서 고정된 길이의 출력값 Y를 만들기 위해 입력값 X를 바꿔가며 입력할 수 있는데, 이때 고정된 길이의 출력값 Y를 만든 입력값 X를 해시캐시(HashCache)라고 부른다.

해시함수에서 Y값을 구하기 위해 입력하는 입력값을 난스(Nonce)라고 부른다. 나머지 고정된 값들을 제외한 사용자가 고생을 해서 산출해야 하는 값이다. Y값을 000000000xxxxxxx 라는 식으로 고정한다면, 이를 위해서 사용자는 난스를 여러번 생성해봐야지 적당한 난스를 구할 수 있다. 비트코인에서는 총32Byte(256bit) 중, 앞자리 40 bit가 0이어야 한다.

 

90년대 말에 고안된 해시캐시(HashCache)에서는 국제표준 해시인 SHA-160((Secure Hash Algorithm, 안전한 해시 알고리즘))함수를 사용했고 그 결과의 앞자리 20비트가 0이면 정상적 카운터 값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면서 이 값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자, 비트코인에서는 SHA-160보다 역함수 계산이 어려운 256비트 SHA2라는 함수를 이용하고 앞자리도 20비트가 아니라 40비트가 0이 돼야 하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SHA는 국제표준 해시함수를 대표하는 용어이고 SHA-256은 어떤 입력값이 들어가든 해시 결과가 256비트 크기의 출력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앞자라 40비트가 0이란 의미는 256비트 중 40비트를 제외한 나머지 216비트는 어떤 값이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이때 0인 비트수가 20개에서 40개로 늘었으니 두배로 어려워진 게 아니다. 한 비트가 늘었을 때 두배로 어려워지는 것이고 20비트가 늘면 2의 20제곱, 약 백 만배 만큼 어려워진다.)

이러한 해시캐시(Nonce 포함) 개념으로 하나의 블록을 생성한다. 그리고 하나의 블록을 여러 개 연결한게 블록체인이다. 연결방식은 새 블록(New Block) = 직전 블록의 Hash값 +  새 데이타 + 새 Nonce 이다. 새 새 블록 = 새 블록 Hash값 + 새 새 data + 새 새 nonce로 항상 직전 Hash 값만 포함한다. 이것만으로도 이전의 모든 블록들을 마치 다 포함하는 것처럼, 앞선 모든 블록들을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효과가 생긴다.

블록에 들어가는 내용은 응용분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비트코인에서는 거래 기록이 들어간다.

또한 블록체인도 피어투피어(P2P) 네트워크(peer-to-peer network) 기술을 이용한다. P2P 네트워크는 중앙 집중식 관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 연결된 노드(피어)들이 서로 간에 자원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뜻한다. 동일한 데이터를 전 세계의 수천 대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다. 범죄자나 정부기관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천 대의 컴퓨터를 일시에 해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트코인 같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는 사용자가 피어투피어 네트워크의 한 피어가 되어 동작한다.

거래가 전파될 때 노드는 거래를 검증하면서 입력부에 적힌 코인이 UTXO(Unspent Transaction Output, 아직 쓰지 않은 잔액)인지 확인한다. UTXO가 아닌 코인이 들어 있으면 이미 소비한 코인을 사용하는 거래이므로 불법거래다. 이런 거래는 더 이상 전파하지 않는다. 이런 검증을 하기 위해 모든 노드는 어떤 코인이 UTXO인지 알고 있어야 하고 거래에 따라 UTXO를 계속 수정해 줘야 한다.

모든 사용자의 UTXO를 모아 관리해야 한다고 하니 매우 큰 일로 보인다. 그런 이런 일은 일반 사용자가 아니라 거래를 추적하고 검증해서 새 블록을 만드는 노드에서만 하면 된다. 비트코인에서는 해시함수의 입력값을 알아내기 위해 가능한 숫자를 하나씩 대입해서 계산하는 일이 가장 계산량이 많은 작업이다. 그에 비하면 이런 일은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과거의 블록을 모두 읽어서 UTXO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처음에 설치하고 한번만 하면 된다. 그 후엔 바뀐 부분만 추적해서 반영하면 되므로 생각보다 부담이 크지 않다.

블록체인 피투피 네트워크에 접속한 컴퓨터를 노드라고 한다. 노드와 일반 사용자는 다르다.

일반사용자는 비트코인을 사고팔고 구매에 이용하는 사람이고 보통 지갑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노드는 비트코인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전체 블록체인을 저장하고 있는 컴퓨터이며, 블록전파, 거래검증 등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필요한 작업을 수행한다.

전 세계에는 블록체인 노드가 퍼져 있고 이들은 서로 인터넷을 통해 연결돼 있다. 어떤 노드들은 서로 직접 연결돼 있고 이런 인접한 노드의 중계에 의해 모든 노드에 데이터를 전파한다.(여기서 직접 연결됐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터넷 주소를 알고 있다는 의미이며, 보통 10개 미만의 주소만 알아도 된다.)

모든 노드는 자신이 주소를 알고 있는 노드와 블록체인을 전달하고 새 블록을 추가하는 노드의 수는 항상 변하지만 대략 전 세계에 5천 개 정도가 있다. 놀랍게도 새로 블록이 만들어졌을 때 그 블록은 보통 1분 내에 이 연결을 따라 전 세계도 퍼진다. 각 노드에는 비트코인이 나온 후 이루어진 모든 거래 기록이 저장된다. 모든 노드는 각각 모든 블록체인을 한벌씩 갖고 있는 셈이다. 노드는 모든 거래기록을 갖고 있으므로 독자적으로 동작할 수 있다. 비트코인 거래를 등록하고 다른 노드에 전파하고 새로운 비트코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노드는 블록체인의 새로운 블록을 다른 노드로부터 받아서 블록의 내용을 검증한다. 누군가가 이것이 새 블록이라고 내게 전달하면 자신이 가진 블록체인의 블록 뒤에 연결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새 블록의 헤더를 해시해보고 앞의 40비트가 0인 값이 나오는지 확인한다. 정방향 해시 계산은 단번에 할 수 있으므로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해시값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새 블록이 규정대로 만들어졌는지, 내용이 제대로 채워졌는지도 확인한다.(예를들어 버전 번호가 맞는지, 페이로드에 기록된 거래 내용에 음수값이 있는지 등) 비트코인은 화폐이므로 음수값이 나오면 안된다. 처음에 새 블록을 다른 노드에서 받은 후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일단 검증하고 나면 내가 가진 블록체인에 새 블록을 추가한 후에 이 블록을 다른 노드에 전파한다. 이미 검증한 블록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있게 다른 노드에게 이 블록을 전파하여 내가 검증한 블록이 더 많은 노드에게 독자적으로 검증받도록 한다.

이건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입소문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많은 사람이 사실로 믿게 되듯이, 내가 검증한 새 블록을 더 많은 노드가 재검증하여 인정할수록 그 블록의 영향력은 커진다. 입소문과 다른 점은,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수학적 계산에 의해 확실히 검증된 블록이라는 것이다.
내가 전파한 새 블록은 아직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한테 올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드가 이 블록을 검증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검증하여 전파한 블록이 더 많은 노드에게 전파되고 검증받을수록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노드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노드는 이렇게 새 블록을 받아서 검증하고 전파하는 것 외에 직접 새 블록을 만들수도 있다. 이것이 채굴이다.

채굴노드는 거래기록을 모아 새로 만드는 블록의 페이로드를 채운다. 거래기록의 위변조를 막기 위해 블록헤더에 들어갈 페이로드의 해시값을 계산한다. 자신의 블록체인 맨 위 블록의 헤더로 정방향 해시를 계산하여 새 블록헤더에 기록함으로써 기존 블록체인과 연결한다. 그럼 이제 난스를 계산할 준비가 됐다.

새 블록헤더의 난스에 여러 값을 대입해 보면서 해시값의 앞 40비트가 0이 나올 때까지 계산한다.

그리고 드디어 난스를 찾았다. 내가 계산하는 동안 다른 노드에서 새 블록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없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내가 만든 새 블록을 인정해 준 노드가 아무도 없다. 빨리 이 블록을 다른 노드에 퍼뜨려야 한다. 그래서 나와 연결된 노드들에게 새 블록을 전파한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았다. 나를 인정해 줘"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 새 블록을 받은 노드가 난스를 확인해서 새 블록을 검증하고 다른 노드에게 전파한다. 이렇게 대략 몇 분 만에 내가 만든 블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많은 노드가 이 블록을 검증하고 자신의 블록체인에 등록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가 만든 블록 위에 다른 블록이 쌓이기 시작한다. 내가 만든 블록은 이제 새 블록이 아니라 이전 블록이 된다. 이렇게 새 블록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다.

이것이 채굴이다.
 

블록이 분기되면 그 블록을 채택한 노드는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심히 전파한다. 어떤 노드는 한쪽 분기를 채택했다가 다른 분기로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와 다른 점은 노드가 지지자를 바꾸는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란 점이다.

노드는 전파된 블록체인을 보고 더 긴쪽으로 지지를 바꾼다. 물론, 바꾸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런데 그러면 손해다. 손해를 선택한 노드는 어차피 그 노드가 지지하는 블록이 더 이상 퍼지지 않으므로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개인의 이기심과 전체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가는 방향이 일치한다.

블록체인에서 서로 다른 체인은 언젠가는 부딪치고 더 긴쪽이 이긴다. 채굴 보상금을 100개의 블록이 쌓인 후에 주는 이유도 이렇게 블록체인 네트워크 내에서 승패가 갈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100개가 지난 후에도 합쳐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이건 정말 연이은 복권당첨을 기대하는 것이고, 비트코인 소스코드의 오류나 해킹 등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평생 보지 못할수도 있다.

적시에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응용분야에서는 분산된 데이터가 일시적으로라도 서로 충돌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실생활에서는 데이터가 분산돼 저장되더라도 굳이 시간에 정밀하게 맞출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블록체인은 좋은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노드가 각자 원장을 갖고 있어서 이것이 하루(100블록이 쌓이는 시간) 안에 모두 같은 값을 가지도록 동작한다. 별도로 관리자가 개입할 것 없이 가만히 두면 자동으로 맞춰진다. 응용 서비스의 특성상 하루정도 참을 수 있다면 이건 정말 놀라운 특성이고 대단한 혁신이다. 초를 다투는 거래가 아니고 기다릴 여유가 있는 거래라면 뭐든지 블록체인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즉시 처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일반 거래 중에 상당수는 실제로 며칠이 지난 후에 확정됨. 주식을 팔면 이틀이 지나야 판매한 돈을 쓸수 있고 비상장 회사 주식을 거래하는 장외거래는 청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려 거래가 완료된다. 부동산 거래는 중개인이 증인을 선다. 부동산 직거래도 있지만 보통 규모가 큰 거래이므로 중개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용카드 거래에서도 카드회사가 중간에 있다.(선거와 투개표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블록체인 펼처보기>에는 이외에도 저자는 채굴노드나 풀서버, RSA((Rivest–Shamir–Adleman 비대칭키 암호화) 등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과 관련된 용어와 개념과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전망에 위협적인 구조적인 요인과 기술적인 요인에 대해 설명한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접하는 필자로서는 <블록체인 펼쳐보기>을 두 번 읽었지만, 몇몇 문장을 암기할 수는 있어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컴퓨터공학과 암호학,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에 종사하거나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펼쳐보기>를 통해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로 부르며 뭔가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금융사기처럼 취급하거나, 블록체인 기반기술을 미국 금융계의 서브프라임 범죄자처럼 수학과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사기치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보가 부족하고 이해가 부족한 만큼 누군가 필자에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미래가 어떻게 귀결될지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당분간 더 많은 공부와 관심이 필요할 뿐이다.

-인상 깊은 문장-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은행이 쌓아 두고 있는 현금 뭉치가 아니라 은행이 가지고 있는 고객의 거래원장의 정확성에 달려있다"

“비트코인은 신용카드보다 사용자 수가 더 중요하다. 비트코인의 신뢰는 어떤 회사나 조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보장되는 블록체인 체계와 이것을 수용한 사용자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25쪽)

"블록체인을 보기만 해도 여기에 들어간 작업의 증명을 보고 진품인지 확인할 수 있다"

“블록에 들어가는 내용은 응용분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비트코인에서는 거래 기록이 들어간다”

“해시캐시라는 메일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제3자의 개입 없이 노력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과 당사자 간에 데이터 외에 다른 정보를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이용된다.”(84쪽)

“사토시의 최초 블록의 신뢰를 깨려면 45만 개의 난스 계산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 난스를 하나 계산하는데 많은 계산이 필요한 만큼 전체를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

[2018년 12월 29일]

김석원, 블록체인펼쳐보기, 비트코인, 작업증명, 해시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