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조와 고종에 대한 재평가" 이덕일 저 <조선 왕을 말하다 2>를 읽고 / 2010. 11., 480쪽, 역사의 아침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맞이하여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역사 공부 시리즈.
<조선 왕을 말하다 1>은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조선 왕을 말하다 2>에 이어 여덟 번째 책이다.
이덕일의 역사해석이 한국의 주류사학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은 이미 기존 역사서들을 통해 파악했다. 특히 고조선과 삼국사 등 고대사와 조선 후기 노론사관 등 식민사관에 대한 관점은 정반대에 가깝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사도세자의 고백>, 그리고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어진 왕조사에서 ‘조선식 정치 구조’로서 당쟁의 긍정성과 부정성, 기존 학계의 정설의 허점, ‘신화’로 덧칠해진 과거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신선함을 역사학계와 독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조선 왕을 말하다 >1권과 2권은 이덕일의 다른 역사해석이 조선시대의 왕들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조선 왕을 말하다 1>에서 조선의 왕 8명을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 - 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 -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 성종과 영조’ 식으로 주제를 정해 새로운 역사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갔던 역사학자 이덕일은,
<조선 왕을 말하다 2>에서는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로서 효종, 현종, 숙종을 1부에서 다루고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로서 예정과 경종을 2부에서 다루었으며, 세종과 정조를 ‘성공한 임금들’로 3부에서 평가하고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로서 태조와 고종을 다루었다.
<조선 왕을 말하다 2>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어쩌면 세상만사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역사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신하들이 군주를 내쫓고 만든 인조반정 체제가 소현세자를 죽이고 여러 국왕의 독살설을 낳았다. 소현세자의 자리를 차지한 효종, 현종, 숙종시대를 '삼종의 혈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많은 비극의 뿌리가 인조반정과 소현세자의 독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8쪽)
'독살설'은 현대인들에게 역사드라마의 재미난 소재로 등장하지만, 과거에는 커다란 정치적 격변기에는 꼭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전기의 예종과 후기의 경종을 통해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을 살펴보았다. 국왕 독살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국왕만 사라지면 그 권력의 공백을 차지할 수 있는 거대 정치세력이나 당파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권력 구조의 프레임을 들여다본 것이다."(8쪽)
태조와 고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라를 새로 건국한 임금과 나라를 말아먹은 임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왕조 500년을 열고 닫은 두 사람을 비교해보는 것도 새롭다.
"성공한 임금들은 조선 전기의 세종과 후기의 정조를 통해 성공한 군주, 성공한 리더의 길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에서는 개국 군주 태조와 망국 군주 고종을 살펴보았다. 특히 기간도 장구하고 사건도 많은 고종 치세의 핵심 문제를 파악해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8쪽)
이덕일이 해석하는 여려 임금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효종은 조선 중기에 지배계층이 새로운 왕통의 상징으로 이용했지만 인정받지는 못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 대권이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대운이 따라준 것이다. 그러나 대운은 여기까지다. 대운을 천명으로 승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인조가 소현세자 일가를 죽이면서 생각지도 않게 대권을 잡은 효종은 굴러온 대운을 천명으로 전환할 방법을 숙고했다. 그것이 북벌이었다. 효종은 현종·숙종을 잇는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열었다."(17쪽)
"인조반정은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로 만들었다. 국왕도 자신들과 같은 사대부 중의 제1사대부에 불과할 뿐 초월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 국왕이 아닌 사대부가 나라의 구석구석을 지배했다. 효종은 북벌을 가능한 목표로 여겼으나 사대부는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사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벌이 아니라 기득권 수호였다. 북벌 추진으로 위협받던 사대부의 기득권은 효종의 급서로 계속 유지될 있었다."(42쪽)
조선 후기 '예송논쟁'은 임금과 사대부 계급이 정권을 두고 충돌할 때 나타났다.
"인조반정 이후 국왕은 천명에 의한 절대적 존재에서 사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로 전락했다. 서인은 소현세자를 제거하고 효종을 추대했지만 둘째 아들로 낮춰 보았다. 국왕을 사대부 계급의 상위에 있는 초월적 존재로 보려는 왕실의 시각과 제1사대부에 불과하다고 보는 서인의 시각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국왕의 권력 강화냐, 사대부의 권력 균점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 양자의 시각이 충돌한 것이 1차 예송 논쟁이다."(49쪽)
현종 재임시 조선은 '경신대기근' 참화에 시달렸으나 지도층의 희생과 대동법으로 간신히 극족했다. 물론 대기근이 끝나자 원점으로 회귀했지만...
"지도층의 희생과 대동법이 천재지변에서 나라를 구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경신 대기근을 맞아 조선은 기민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 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소빙기의 재앙에 맞서 수도하는 자세로 재난 극복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망국 지경까지 이른 나라가 되살아났다.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중요함을 깨우쳐준 사건이었다."(72쪽)
숙종과 서인의 후예들(노론과 소론)은 나라의 부국강병이나 백성의 안민위락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에 몰두했던 그들의 모습은 2016년 대한민국 정부여당과 야당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사회를 선도할 명분과 동력을 상실한 정치세력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 이런 지배집단은 본질적 현안에는 눈을 감은 채 비본질적 현상을 두고 사변적 논쟁에 몰입하게 된다. 이때 역사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호명한다. 백성들에게 비극은 이런 책무를 수행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조선 후기가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지 반문해 볼때다."(90쪽)
이덕일은 조선 초기 태조~세종까지 역대 임금과 사대부들이 이루어 놓은 정책과 제도를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허물어뜨린 것을 지적했다. 공신과 밀착한 세조는 왕권 위에 특권층을 남겼고, 쿠데타의 업보는 대를 이어갔다.
"같은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태종과 세조는 공신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태종은 공신 집단을 해제해 깨끗한 조정을 세종에게 물려준 반면, 세조는 왕권을 능가하는 공신 집단을 그대로 예종에게 물려주었다. 예종은 이 공신집단을 해체하지 않는 한 왕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예종이 왕 노릇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양자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153쪽)
"국왕 독살 여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사후 체제를 살펴봐야 한다. 거대 정파와 대립하던 국왕의 급서로 갈등이 해소되고 거대 정파가 권력을 독차지할 경우 독살설의 신빙성은 높아진다. 세조의 집권 과정에서 탄생한 공신 집단은 예종이 자신들의 특권을 제한하려 하자 크게 반발했다. 예종과 공신 집단 간의 갈등은 예종의 급서로 해소되고 구체제로 회귀했다."(174쪽)
"왕조 국가의 가장 중요한 헌정 질서는 왕권 계승의 예측성과 투명성이다. 갓 태어난 왕자가 원자가 되거나 세자로 책봉되면 차기 국왕으로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세자를 국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노론은 이런 헌정 질서를 부인하고 자당이 지지하는 인물을 왕위에 앉히려 했고, 이로써 숱한 비극이 발생했다."(181쪽)
그런 대표적인 비극 중 한 가지 사건이 바로 경종의 독살이었다. 그리고 노론과 함께 경조의 독살설에 연루되어 있던 임금이 영조였다.
"과정과 결과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과정의 정당성이 결여되면 결과의 정당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노론은 '경종 축출, 연잉군 옹립'이라는 당론을 정할 정도로 당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왕조 국가에서 국왕을 몰아내고 특정 인물을 추대하려는 구상은 심한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정권에 눈이 먼 노론은 이를 강행하면서 숱한 비극을 낳았다."(193쪽)
2012년 대선에서 온갖 부정선거 의혹을 안고 등극한 박근혜 정권이 취임 이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간첩사건과 내란음모 사건 조작, 세월호 참사를 저지르고 '십상시' 정치를 유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이덕일이 정조를 재평가했던 내용은 필자 역시 정조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다. 정조는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새시대 통합을 꾀했던 것이다.
"한이 너무 많은 인물이 집권하면 '성공한 정치'를 하기 어렵다. 정치 보복의 유혹을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한을 품고 즉위했으나 과거로 돌아가 정치 보복에 나서지는않았다. 즉위 초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소수세력만 제거하고 나머지에게는 함께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292쪽)
정조 시대의 노론과 척신들은 최악의 정치집단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노론 벽파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정조와의 공존을 거주하며 정통성을 가진 임금을 제거하려 했다. 노론의 태도는 한국사회의 극우보수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정치를 주도할 경우 정쟁은 극단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대방이 집권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모둔 타협을 거부하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되면 정치 자체가 소모품으로 전락한다."(299쪽)
이덕일은 조선 왕조 500년 중에서 '성공한 임금'으로 세종 다음에 정조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조선의 미래 가능성은 정조의 치세 동안으로 그쳤다.
"정지세력이 분열돼 각각 미래와 과거를 지향하면 양자의 공존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념을 표방하든 과거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은 기존 체계에 매달려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에 둘러싸인 채 24년간 고군분투한 정조는 끝내 대개혁의 칼을 뽑지 못하고 명을 다했다. 비단 정조만이 아니라 조선의 미래도 함께 춤은 것이었다."(354쪽)
정조 재임시의 모습은 김대중-노무현 집권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정부 10년 이후 지난 8년 동안의 한국은 '세도정치' 이상으로 후퇴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이 현재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가 조금만 더 살아 그의 정책이 계속 유지됐다면 조선은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인식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조는 각종 사회적 갈등을 정치로 풀기 위해 노력한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그의 사후에 비로소 민란이 발생해 백성과 국가권력이 직접 충돌했다는 사실의 의미는 심장하다."(359쪽)
대원군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조선 말기는 외척과 세도정치의 문제도 뿌리깊었지만 백성들의 처지와 조건도 최악이었다.
"뛰어난 정치가나 지식인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의 내면을 관통하는 흐름을 간파할 줄 안다. 내면의 흐름이 현상의 본질이다. 현상에 집착하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대원군 집권기는 조선왕조 자체의 존립이 의문시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왕권 강화를 문제의 본질로 인식하면서 실패한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408쪽)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과의 왕권 투쟁에 몰두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지도자와 정부가 대책 없이 외세에 개방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150년 전 고종 치세는 잘 보여주었다.
"개방을 외면한 채 성공한 역사는 없다. 개방에는 이익과 손해가 공존하게 마련이다. 치열한 검토를 거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극소화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서세동점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고종은 대원군에게 무조건 반대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문호 개방 그 자체에 집착했다."
'개방'에 집착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은 150년이 지난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김영삼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과 이명박-박근혜까지 보수정치세력의 '개방 유전자'는 시대를 초월한 것 같다.
고종은 정책 실패는 재임 내내 이어졌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무리 올바른 정책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정책의 당위성과 그 결과에 대해 사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고종은 개국 이후 500년간이나 유지해온 성리학이라는 국시를 바꾸면서 공론화 과정을 일체 생략했다. 그 결과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군사들의 봉기를 맞이하게 되었다."(429쪽)
"위로부터 개혁 또한 아래로부터 혁명 못지않게 힘들다. 상부구조에 속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바라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개혁의지에 아래로부터 변화의 열정이 결합하면 사회는 수많은 과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질적 변화를 이루게 된다. 갑신정변 주모자들은 그런 꿈을 꾸었으나 고종은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437쪽)
갑신정변 주모자들의 꿈에 대한 이덕일의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 주모자들이 갑신정변을 준비하는 데 일제에게 기대했다는 점과 정변 실패 후 그들의 행보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외세에 의존한 사대주의자들이자 친일,친미 매국 부역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고종은 전제 왕권에 집착한 나머지, 나라를 열강의 먹이로 내놓아 버렸고, 결국 속수무책으로 망국을 바라보아야 했다.
"역사의 격변기에 변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고종은 실현 불가능한 전제 국가 수립에 집착하면서 모든 변화를 거부했다. 서구 열강이 물밀듯 밀려들고 일본도 근대국가 체제를 수립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고종은 전제군주제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세상은 변했지만 고종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선은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451쪽)
"군주 혼자 힘으로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그렇기에 군주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 흐름에 부응하거나 맞서 나라의 운명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한다. 군주는 나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로 때로는 목숨까지도 거는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고종은 이 모든 것을 거부했고 망국 군주가 되었다."(458쪽)
이덕일이 <조선 왕을 말하다 2>에서 특히 재평가를 강조하는 임금은 정조와 고종이다.
영조와 정조는 중고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 '영.정조 시대와 탕평책'이라고 별칭되어 있다. 필자가 국사를 배우던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이덕일은 "영조와 정조는 전혀 다르다"면서 탕평책의 허점을 지적하고 영조와 정조를 묶어 영조를 띄우고 정조를 격하시키려는 노론 후예 학자들의 '당파적 시각'이라 비판한다.
"영·정조시대라는 용어 자체가 노론 후예 학자들이 당파적 시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정조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영조의 부속 인물처럼 만들 기 위한 의도였다. 노론에 맞선 정조 치세를 부인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용어였다. 이렇게 정조에게 덧씌운 노론 사관을 벗겨내니 조선 전기의 세종 못지않은 정조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조는 부친을 죽인 적당 노론도 탕평책을 실시해 끌어안으면서 함께 미래로 가자고 권유했고, 성리학 유일사상 체제와 신분제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 다. 또한 서구의 과학기술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여 조선을 미래로 이끌려 했다. 최근 정조 신드롬이 불기도 했지만, 정조의 이런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에 불과하다.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정조는 노론이 만든 역사 해석 속에 갇혀 있었다. 그만큼 갈 길이 멀다."(6쪽)
고종의 경우 정조와 정반대다. 근래 들어 고종은 개명 군주이자 근대화를 앞장서 이끈 군주라는 식으로 호평받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
고종은 44년(1863-1907년)간 재임했다. 조선 스물일곱 임금 중에 영조(52년), 숙종(46년)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 사실상 대원군이 통치한 초기 10년을 제외하더라도 다섯 번째 안에 드는 오랜 기간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 일본의 메이지(1867-1912년)다. 메이지는 고종보다 4년 늦게 왕위에 올라 1912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시기에 왕위에 올랐는데 한 사람은 나라를 빼앗 겼고 한 사람은 빼앗았다. 이런 극적 대비를 낳은 것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메이지는 재위 1년(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모든 인재를 근대화에 매진하게 독려한 반면, 고종은 허황된 전제왕권을 꿈꾸며 많은 인재를 죽였다. 급진 개화파 김옥균은 물론, 온건 개화파 김홍집도 죽이고, 농민의 리더 전봉준도 죽였다. 독립협회도 강제로 해산시켰다. 근대국가 수립에 목숨 걸 인재와 세력을 모두 제거한 결과 주위에는 이완용 같은 출세주의자만 남게 되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도 고종은 이완용에게 집을 사주고 잔치 때마다 돈을 내려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했다. 이런 고종을 개명 군주, 근대화를 앞장서 이끈 군주라고 호도하는 것은 그의 잘못된 처신과 선택 때문에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해 한없는 고통을 겪은 그 시대 민중을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나아가 나라가 망하자 '내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국가가 망하는 날 한 명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라며 자결한 우국지사 황현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종 치세의 실상을 써 내려간 <매천야록>의 기록정신도 모독하는 행위가아닐 수 없다."(7쪽)
<조선 왕을 말하다> 1,2권을 모두 읽고 나니, 두 권의 책 모두 조선의 주요 임금들의 치세와 정책에 대한 평가를 다룬 역사서이자 이덕일식 '군주론'이기도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복기해보는 '지도자론' 또는 '정치가론'으로 돌려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 2016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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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종혈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