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 [서평] ‘진정성’을 이용한 또다른 장삿속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The Authenticity Hoax: Why the "Real" Things We Seek Don't Make Us Happy>
앤드류 포터(Andrew Porter) 저, 노시내 역, 2016. 2, 마티
이 책은 공부모임 교재로 채택되어 읽게 되었다.
저자는 조지프 히지스와 <혁명을 팝니다>(2006 마티)를 공저로 출간했던 작가다. <혁명을 팝니다>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되는 주류문화에 저항하려 한 반문화가 사실은 후기 자본주의의 최대 히트상품이었다”로 비판(조롱)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책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역시 현대인들에게서 자주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인 ‘진정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포터는 미국 여론조사의 결과를 인용하면서 ‘진정성’에 접근한다. 그 결과에 따르면, 진정성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3분의 1 이상이 ‘인격’이라고 답했고, 진정성을 가장 잘 정의하는 단어로는 61%가 ‘진실한 것’(genuine)을 꼽았다.(13쪽) 그런 조사 결과로는 ‘인격’이란 무엇이고 ‘진실함’이란 무엇인지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보다는 진정성 없는 것의 이미지가 더 빨리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는 그 조사로부터 두 가지 사실을 도출해낸다.
“첫째, 진정성은 그게 아닌 것이 무어냐를 짚어내 그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최적인 용어다. 둘째,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확실하게 원한다. 즉, 어떤 것을 ‘진정성 있다’고 묘사하면 그것은 언제나 좋은 것을 뜻한다. 진정성은—공동체, 가정, 자연, 유기농처럼—모성과 관련된 용어, 찬동의 용어로 항상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며 수사적으로 비장의 카드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16쪽)
저자는 진정성이 무엇인지 답하지 않는다. 다만 “진정성을 논할 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문제의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이해해야 하며 그것과 대조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진정한 것? 물론 좋다. 그러나 무엇과 대조해서 진정하다는 것인가?”(14쪽)라고 되묻는다.
저자가 ‘진정성’이 사용되는 말과 글의 맥락을 살펴본 결과는 소외, 불안, 환멸의 반대편에 진정성이 있다.
“주변을 잘 보면 소외현상이 넘쳐난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학생은 스승으로부터, 유권자는 정치가로부터, 환자는 의사로부터 소외된다. 누구나 대중매체, 특히 광고가 소외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신앙심 깊은 사람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현재 사회가 소외를 일으킨다고 여기고, 소외가 테러리즘을 유발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도심 거주자에게는 교외가 소외적이고, 교외 거주자는 대도시 속 익명의 삶이 소외적이라고 느낀다. 노동의 세계도 소외의 주요 원천이다.”(56쪽)
‘진정성’의 반대말이 ‘소외, 불안, 환멸’이라는 저자의 조사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진정성’에 대해 조사했다면 미국과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아마 ‘거짓’이나 ‘허풍’, ‘허위’과 비슷한 단어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차이는, 미국과 한국의 역사가 다르고 사회문화가 다르기 때문이고, ‘진정성’을 뜻하는 영어의 어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포터의 개념과 주장은 출발부터 한국이나 동양문화에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그런 상황이 끝까지 반복된다.
포터의 논리에서 ‘진정성’의 반대가 소외라는 결론을 도출하고나니 소외는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질병으로 각인된다. ‘갑질’에 시달리고 ‘호갱’으로 살아가는 데 지친 사람들은 근대의 성취를 부정하며 옛날이 나았다고 자평하기 바쁘다. 어차피 구시대의 신분적 위계는 경제적 지위로 대체됐을 뿐이고, 인간적인 선물을 주고받던 자리에는 시장교환이라는 공허한 관계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근대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정말로 일종의 질병이라면, 불화에 종지부를 찍고 잃어버린 일치와 조화를 되찾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60쪽)해졌고, 그렇게 진정성은 소외를 치료해줄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진정성’을 추구하는 선택들은 소외를 벗어나게 해주었을까? 저자는 유기농을 예로 들어 진정성의 추구가 소외를 벗어나게 해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유기농은 완전히 주류 비즈니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기농식품은 맛있고, 건강하고, 분별 있고, 심지어 윤리성까지 갖춘 신비한 만병통치약이다. 이렇게 유기농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기농 운동 내부에서 불만의 소리가 커졌다. 한때 틈새시장이었던 것이 주류화·대중화됨에 따라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유기농법이 공장식 농법을 대체하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닮아갔기 때문이다.”(151쪽)
그는 이제 유기농에서도 ‘진짜 유기농’과 ‘가짜 유기농’이 차별되고 등급은 더욱 세분화되었고, 진정성의 기준은 더 엄격해지고 진정성 추구를 통한 지위 획득 행위는 더욱 치열해졌다고 주장한다.
유기농법이 공장식 농법을 닮아가는 현상은 한국의 생협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했다.(아이쿱생협) 그러나 일부 유기농이 공장식을 닮아간다고 하여 유기농 자체가 주류비지니스라고 단정하고 ‘진정성 추구를 통한 지위 획득 행위’라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사회(특히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기농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경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윤 추구에 내몰릴 뿐이다. 유기농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든 상품은 소비자의 선택을 위해 자신의 장점과 가치를 내세우게 되며, 이를 위해 이미지 광고를 하게 된다. 상품의 광고 이미지로 사용하는 ‘진정성’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진정성’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이윤 추구를 위해 모든 단어와 개념의 가치를 자본에 유리하게 전도, 치환시키고 악용하는 경우도 많을 뿐이다.
포터는 SNS에서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노출하는 현상이 차라리 대규모 진정성 실험이라고 규정한다. “일상에서 겪는 지극히 친밀한 순간이나 평범한 일, 또는 민망했던 경험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하는 사람이 수천만이다. … 우리는 현재 열렬히 진행 중인 이 철저한 온라인 자기 노출을 대규모 진정성 실험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감추는 것 없이 결점까지 모두 내보인다.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니,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달라’고 말하는 듯하다.”(188쪽) 보통 사람들은 SNS에서 조용히 진정성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SNS에서 사생활 노출을 사람들이 ‘진정성을 욕망한다’로 규정하는 것도 저자의 의도적인 억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유명인, 기득권자, 연예인들만이 독점하는 방송과 언론, 인터넷과 광고 시장에서 소외된 일반인들이 SNS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살아 있음을 ‘존중’받고 ‘인정’ 받기 위해 자신을 노출한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SNS에 자신의 삶을 노출한다고 할 때, 그들 역시 유명인과 마찬가지로 많든 적든 자신의 이미지를 설정하고 연출하고 각색하고 조작하는 경우도 많을텐데, 이것을 ‘진정성의 추구’라는 평가하는 것은, 저자가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터는 몸값 높은 예술가의 작품만 ‘진짜’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경계한다. “예술 작품의 진정성은 상품화 현상에 의해 위협받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진정성이란 큰돈을 쓸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나 획득할 수 있다. 원래 성스러운 제례나 고대의 공동체 전통에서 기원했던 아우라는 이제 모든 마케터와 브랜드 매니저가 주시하는 훌륭한 판매 전략으로 탈바꿈했다”(121쪽)
출판사는 이런 그의 지적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고 하지만, 필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지적이 ‘진짜’ 작품을 돈으로 소유하고 느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할 수 있지만, ‘작품 자체’에서 예술가치를 느끼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인들과 달리 정치인들은 공공연하게 ‘진정성’을 내세운다. 유권자는 ‘당연히’ 그들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진정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내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정당과 정책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유권자가 쉽게 고를 수 있을 만한 정치 ‘상표’들이 선택지로 제시되면 전부 가짜라고 거부해버린다. 간단히 말해 진정성에 대한 욕구야말로 오늘날 정치의 주요 문제점들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204쪽)
“정치판에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 정치가들은 하나같이 ‘나는 조금 다른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말은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을 떨거나, 모호한 소리를 하거나, 눈가림을 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당신을 오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함축한다. … 이렇게 다른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공약은 언론이 솔직한 언사를 비난할 때쯤 잠잠해진다. 이때쯤 되면 그 정치인은 연막전술을 익혀 생존하는 법을 배우거나, 대중에게 실수투성이 어릿광대나 위험한 극렬분자로 찍혀 벼랑으로 추락하는 신세가 된다.”(221쪽)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진심’, ‘솔직함’을 느끼길 원하고, 정치인들은 이를 갖추기 위해 다른 정치인을 비방하며 제로섬 게임에 몰두한다. 안타깝게도 유권자 역시 ‘더 진정성 있는 사람’을 물색하며 흑색선전에 귀를 기울인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그러므로 유일한 대안은 뻣뻣하고 너무나 따분한, 즉 함께 맥주 마지고 싶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232쪽)
포터는 ‘정치인의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정치혐오증을 드러내는 듯하다. 물론 미국의 정치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이 언론으로 포장되는 이미지 정치를 위해 수십 억원을 들여 정치컨설팅 회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부 타당한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혐오증과 정치허무주의는 언론과 정치인들은 의식적으로, 지식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에서 ‘진정성’이 없으면 결국 정치 자체가 사기라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정치에 대한 혐오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선동해야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따라서 그는 무차별적인 ‘진정성’의 남용이 애초의 의미나 취지와는 달리 사람들을 또다른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 그리고 향수 젖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결국 진정성은 누구나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지위재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진정성은 지위 경쟁의 가장 세련된 형태로 확립되면서 가장 안목 있고 돈 많고 경쟁력 있는 참가자들을 경쟁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311쪽)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적어도 총체적으로 봤을 때 근대를 끝장내고 후진해 향수 젖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은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다.(315쪽)
포터의 도입부터 결론까지 ‘진정성’에 대한 그의 논리는 수긍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진정성’을 남용하고 ‘진정성’이 자본주의 상품 판매에 악용되면서 ‘지위 재화’의 무한 경쟁에 동원되며, 정치인들까지 단어의 긍정성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진정성은 거짓말’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부터 “진정성은 ‘지위 재화’이며 ‘진정성’을 이유로 향수 젖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은 잘못”이라는 결론은 너무도 엉뚱하다. 작위적이고 논란을 의도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현대사회의 온갖 영역의 광고와 선전에서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악용된다는 현실을 이용해 어설픈 소재와 논리로 책을 출판해 판매해보겠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결국 ‘진정성은 거짓말’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심으면서 사람들이 진실로 추구하는 ‘진정성’까지 훼손해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저자의 결론보다 출판사의 리뷰가 어쩌면 상식적으로 당연한 쪽에 가깝다.
“사람들은 진정성을 당연히 좋은 것으로 여긴다. 일반인 다수가 생각하는 진정성이란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 행동이 외부에 미치는 결과를 의식하고, 타인과 자연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다. 그런 시도는 물론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행위의 작동방식은 결코 단순치 않아서 종종 다면적이고 모순된 결과를 야기한다. 나의 행동이 불필요한 겉멋은 아닌지, 혹시 남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행위는 아닌지 생각해보고, 또 설사 각 개인의 의도가 순수하고 진지하다 해도 그 행위의 총합이 의도했던 것과 상반된 결과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이 책을 통해 숙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2017년 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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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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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