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사>를 공부모임 교재로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먼저, 러시아혁명 100주년인 2017년을 맞이하여 공부모임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회혁명'에 대해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러시아혁명을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기 위해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교재로 세미나를 진행했으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외국 기자가 10월 혁명 발발일 전후 10일 동안 뻬쩨르부르크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러시아혁명의 전체적인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2001년판 <러시아혁명사>는 시리즈 몇 권으로 나누어져 있고 2017년판은 <러시아혁명사> 한 권으로 묶여 국내에 출판된 것이다.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사>를 통해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진보적 혁명관, 역사 법칙으로서 불균등발전론과 결합발전론, 그리고 혁명정당(전위정당)론을 논증하고 있다.
트로츠키는 서문에서 자신이 러시아혁명사를 집필한 이유와 자신의 역사 서술 관점을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
"러시아라는 후진국이 노동계급을 권력의 주인으로 올려 놓은 첫 나라라는 사실은 대단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이 후진국의 특이성, 즉 이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들 속에서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해명해야 한다."
"본 저서는 필자 개인의 회상에 조금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혁명과정에 필자가 참여했다 하더라도 엄격히 고증된 문서들에 기초하여 서술해야할 의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혁명에 참여했을 때나 역사서술자인 지금이나 똑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 역사서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옹호해서는 안되며 내적 기초가 탄탄한 혁명의 실제과정에 대한 묘사여야 한다고 독자가 요구할 권리는 없다."(21~22쪽)
<러시아혁명사> 1권은 저자인 트로츠키의 서문과 제1장 러시아의 사회경제적 특성에서부터 9장 2017년 2월 혁명에 대한 평가까지 담겨 있다. 부제인 “짜르체제의 모순과 2월 혁명의 발발”의 문장 그대로, 20세기 초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인민들의 항쟁 과정 그리고 그 결과인 2017년 2월 혁명의 발발이 서술되어 있다.
트로츠키는 제1장 '러시아 사회발전의 특이성'에서 '발전의 불균등성'과 '결합발전'을 역사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으로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20세기까지 러시아 역사의 근본적 일관된 특징이 사회발전 속도가 느린 것이었고, 그 결과 러시아는 유럽 선진국에 비해 경제의 후진성, 사회형태의 원시성, 문화수준의 낙후성이 초래되었다. 러시아 봉건제도는 불충분하게 발달했으며, 무정형성과 문화적 업적이 빈곤했다며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또 트로츠키는 "후진국은 선진국의 물질적 성과를 흡수"하지만 "이 성과를 노예처럼 굽신거리면서 맹목적으로 발아들이지는 않는다. 또한 선진국의 모든 발전단계들을 반복하지는 않는다"면서 "특정 시점에 최신 성과들을 바로 받아들이면서 후진국은 발전의 중간단계들을 건너뛴다"면서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사례를 덧불인다.
"상업과 공예의중심지인 진정한 중세도시는 러시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수공업은 농업과 분리되지 못한채 가내공업을 통해 그대로 유지되었다. 옛날 러시아 도시들은 상업, 행정, 군사, 장원의 필요에 따라 건설되었다. 따라서 생산의 중심지가 아니라 소비의 중심지였다.(35쪽)
"공장을 소유했던 지주들은 농노제를 임금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을 찬성한 최초의 지주 분파였다. 러시아산 곡물 수출이 점점 늘어나자 농노제 해체의 흐름이 추진력을 얻었다. 1861년 자유주의 지주층의 지지를 업고 귀족관료층은 농업개혁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자유부르주아 계급이 겸허하게 들러리를 섰다. 어느 한 계급의 문제를 다른 계급이 대신 해결해주는 경우는 후진국에 늘 있는 결합발전의 한 방법이다."(37쪽)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경제발전은 수공업 길드와 공장제 수공업의 시기를 건너뛰었다. 이와 똑같이 공업의 각 부문들은 서방에서 수십년이 걸린 기술단계들을 일련의 예외적인 도약을 통해 건너뛰었다."(37쪽)
"혁명 직전까지 러시아 농민의 토지경작은 일반적으로 17세기의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공업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측면에서 선진국의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선진국들을 추월했다. 100명 미만 노동자 고용 기업은 1914년 미국이 전체 공업인구의 35%인데 러시아는 17.8%에 불과했다. 그러나 1000명 이상의 경우 미국은 17.8%임에 비해 러시아는 41.4%였다."(38쪽)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결합도 러시아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은행자본에 의한 산업자본 지배현상은 같은 이유로 서유럽 자본시장에 의한 러시아 산업자본 지배를 의미했다. 금속, 석탄, 석유 등 증공업은 거의 전부 외국 금융자본의 손안에 있었다."(38쪽)
그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 및 결합발전이,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 후진 자본주의체제에서도 노동자 중심의 인민혁명이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다.
"영국은 인구가 550만 명이 넘지 않았을 때 청교도혁명을 완수했다. 이 가운데 런던 거주자가 50만 명이었다. 대혁명 시기에 프랑스 인구는 2,500만 명이었고 빠리는 50만 명에 불과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인구는 1억5천만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00만 명 이상이 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살고 있었다. 17세기 영국과 18세기 프랑스에는 현대적 의미의 노동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05년 러시아의 농촌과 도시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노동계급은 1천만 명을 넘었다."(41쪽)
트로츠키는 러시아 1905년 혁명을 '1917년 2월 및 10월 혁명의 서막'이라고 평가하며서 소비에트가 처음 등장했다고 소개한다. 그는 1905년 혁명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러시아 부르주아와 인민들은 1905년 혁명으로 짜르 왕정 체제를 타도하지 못했다.
"1905년 러일전쟁은 짜르체제를 뒤흔들었다. 대중운동을 배경으로 자유부르주아 계급은 짜르왕정에 반대하여 구체제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노동계급은 독자적으로 아니 자본가계급에 반대하여 소비에트로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역사상 최초로 등장했다. 토지점거를 목표로 농민봉기가 광활한 러시아 전 지역에서 일어났다. 투쟁이 최고로 상승했을 때 소비에트는 공공연히 짜르와 국가권력;을 다투었다. 그런데 이때 모든 혁명세력은 정치행동의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했다. 바로 이 순간 자유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이 혁명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혁명으로부터 후퇴했다."(42쪽)
"이 때문에 짜르는 군대내에 왕당파 부대들을 혁명분파와 분리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자 농민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손쉽게 자행했다. 갈비뼈가 몇개 부러지기는 했어도 짜르체제는 1905년 혁명에서 생기있고 튼튼하게 살아남았다."(42쪽)
"1905년 이후 11년 동안 부르주아계급은 경제적으로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1905년을 교훈삼아 부르주아 계급은 보수성과 의심성을 더욱 키웠다. 과거에도 미미했던 중소부르주아 계급의 상대적 비중은 더 낮아졌다."(42쪽)
트로츠키는 제2장 '전시의 짜르체제'에서 1905년 혁명으로 주춤했던 짜르 왕조가 허약한 러시아 부르주아 세력을 의회라는 외피로 끌어들인 채 러시아라는 후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누적해 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러시아 짜르 체제의 모순은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가 참여하면서 격화되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짜르 체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동기와 목적이 '자기모순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참전 이유는 프랑스와 중국의 참전 이유 중간에 위치했다. 참전을 통해 러시아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동맹하여 이들의 자본을 수입하고 이자를 지불할 권리를 샀다. 즉, 동맹국들의 특혜를 받는 자본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터키, 페르시아, 갈라시아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더 허약하고 후진적인 국가들을 억압하고 강탈할 권리도 샀다. 러시아 자본가계급의 이중적 제국주의는 자신보다 더 강한 국가들의 하수인이라는 근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과 함께 군수물자와 자금 면에서 러시아는 동맹국들에게 노예처럼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49쪽)
제1차 세계대전은 병사들에게 지옥이자 무덤이었으나, 노동자 농민 계급 출신의 병사들은 경험을 축척했다. 전쟁은 러시아의 매판자본가계급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안겨주었으며, 짜르 체제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데 전쟁을 이용했다. 동시에 전쟁은 러시아 귀족과 상층계급의 허영심만 키워놓았다.
"약 550만 병사들이 전사자, 부상자, 포로로 집계되었다. 탈영병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이미 1915년 7월 장관들은 '러시아 군대조차 겁쟁이와 탈영병의 무리임이 드러났다'고 되뇌였다. ...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자나가면서 병사들은 경험을 축적했다. 무식한 지휘관 밑의 하급병사들이 얻는쓰라린 경험이었다. 이들은 밑창도 없는 신발을 신고 목적없는 작전에 투입된 경우와 저녁식사를 빼먹은 경우의, 횟수를 모두 확인하면서 장군들의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를 측정했다. ...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병사들은 평화에만 관심이 있다. ... 누가 승리할 것이며 어떤 평화조약이 체결될 지는 관심 밖이다. 군대는 무조건 평화를 원했다. 정쟁에 지쳤기 때문이다."(53~54쪽)
"의회와 언론은 1914년과 1915년의 전쟁이윤을 일부 공개했다. 라이부쉰스키 가문의, 모스크바 직물회사는 75%, 트베르 회사는 111%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클추긴 구리회사는 1천만 기초자본금에서 1천2백만이 넘는 이윤을 챙겼다."(61쪽)
-"시장에 대한 모든 종류의 투기와 도박은 광란의 수준에 ;육박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엄청난 이윤이 나왔다. 수도에서는 빵과 연료가 부족했다. 그런데도 ;궁정보석상 파베르제는 이렇게 장사가 잘된 적이 없다고 뽐냈다. 궁정의 시종부인은 1915~1916년 겨울만큼 그렇게 멋진 가운들이 귀부인들을 장식한 적이 없으며 그렇게 많은 다이아몬드가 구입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61쪽)
"1915년 9월 짜르의 의회해산 조치는 노동자가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게 던져진 단도직입적인 도전장이었다. 이때 자유주의 의원들은 별로 열성적이지 않은 '짜르 만세'를 외치며 항의 한번 하지 않고 스스로 해산했다. 그러나 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노동자들은 이 조치에 항의하여 파업에 돌입했다."(65쪽)
"1916년 11월 의회가 다시 소집되었으나 짜르정부는 짜르전체를 극력 옹호하는 정부의 수립, 반란진압군의 편성 등을 보고했다. 무조간 짜르와 왕후에게 충성하는 장관들로 교체가 이루어졌다. 의회는 철폐되지 않았으나 다시 해산되었다. 뻬쩨르부르크에 대한 계엄령은 유보되었다. 1905년 겨울에 휘두른 짜르 권력은 1916년 가을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68쪽)
트로츠키는 제3장 '노동계급과 농민'에서 러시아 노동계급이 1905년 혁명 이후 11년 동안 전제국가의 정치환경 속에서 정치투쟁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평가한다. 그들의 정치학교는 불법파업, 지하써클, 불법성명서, 거리시위, 경찰 및 군대와의 대치 등이었다.
"공장감독 대상기업들이 고용한 노동자의 수는 1905년 150만명, 1917년에는 2백만 명이었다. 노동자들이 두번 참가한 것으로 계산하면 1905년 정치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84만명이다. 1908년~1911년 반혁명 기간 동안 정치라업은 4~8천명으로 줄어들었으나 1912년부터 정치파업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 1912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노동자의 정치파업은 1912년 550만명, 1913년 502만명, 1914년 1059만명까지 증가했고, 반혁명이 시작된 1914년 중반 이후 1915년에 156만명으로 축소되었다가 1916년 310만 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76쪽)
"거대한 패배는 상당 기간 무기력증을 조성한다. 의식적인 혁명분자들은 대주엥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다. 아직도 전부 없어지지 않은 편견과 미신이 다시 살아난다. 이 시기에 농촌마을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회색빛 인구가 노동계급 대오를 희석시킨다. 이때 회의주의자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혁명의 불가능성을 확신하며 고개를 젓는다. 1907년부터 1911년까지의 시기가 바로 이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패배로 인한 대중의 심리적인 상처가 아문다. 새로운 정세 또는 새로운 경기의 흐름이 새로운 정치투쟁의 순환을 개시한다. 혁명분자들은 다시 자신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대중을 만난다. 이제 투쟁은 더 높은 차원에서 다시 시작된다."
-"경찰청의 보고서는, '멘셰비키는 혁명과 결별한 노동자의묽은 부위를 주요 정치기반으로 삼았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반동기에 잔인하게 분쇄된 후 전쟁 전 몇해 동안 새로운 혁명의 물마루 위로 급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는 투쟁, 저항, 계속적인 조직활동을 수행할 준비가 된 가장 열성적이며 대담함 분자는 바로 레닌 주위로 결집된 분자, 조직,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없었더라도 1912년에서 1914년까지의, 대중적 정치공세가 곧바로 짜르제체의 전복을 가져왔을까?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피하게 혁명은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단계들을 거치면서 혁명이 진행되었을까? 또 혁명이 배패하지는 않았을까? 농민을 투쟁으로 인도하고 군대의 공감을 획득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이런 방향들로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어쨌든 전쟁은 처음에 투쟁을 후퇴시켰다. 그러나 다음 시기에 더욱 강력하게 투쟁을 추진시켜 압도적인 승리를 가능케했다."
-"제2인터내셔널의 정치적 파산과 함께 발발한 전쟁은 정치적으로 노동자들을 대단한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막 등장하고 있던 공장통제위원회가 공장의 이름으로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상당수의 노동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다. 좀더 대담하고 결의에 찬 혁명성향의 노동자들은 침묵을 강요받고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자신을 '볼셰비키'라고 감히 소개하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체포당할 수도 있었지만 후진 노동자들의 구타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닌이 해외에서 선언한 혁명적 패배주의를 공개적으로 주창한 당 산하조지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가운데 애국주의자의 비율은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했다. 1914년 볼셰비키는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선동을 연설과 유인물로 전개했다."
-"1915년 2월 볼셰비키 의원단 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기소된 볼셰비키 의원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의원단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카메네프는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우르크라이나 중앙위원회 의장인 페트로프스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에 대한 중형선고에 대해 노동자들이 항의하지 못했다고 경찰청은 만족스럽게 보고했다."
-"대중은 비판에서 행동으로 나아간다. 이들의 분노는 맨 처음 식량공급에 대한 항의로 표출되며서 때때로 지역차원의 봉기로까지 상승한다. 공장에서 군복무의 짐을 지고 있는 노동자들보다 여성, 노인, 소년들이 시장이나 광장에서 더 대담하고 독자적인 투쟁으로 나선다. 5월 모스크바에서의 대중운동은 독일인에 대한 학살로 변한다. 이 만행의 참여자들은 대부분 경찰이 보호하는 도시의 인간쓰레기들이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식량공급에 대한 항의투쟁은 전쟁의 초면을 개고 파업투쟁의 길을 열었다."
제1차 세계전쟁 기간 동안 볼셰비키 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들은 부침을 거듭했다. 생필품은 바닥났으며 물가는 치솟았고 정치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정치의식이 성장해갔다.
-"전쟁은 지하혁명운동을 무섭게 황폐하시켰다. 1915년 의원단의 체포 후 볼셰비키에게는 중앙집중화된 당조직이 하나도 없어다. 지역위원회는 간간히 존재했으나 노동자지구들과의 관계가 종종 끊어졌다. 분산된 그룹, 써클, 혼자남은 개인들만이 활동했다. 그러나 소생하던 파업운동은 공장에서 이들에게 어느 정도 투쟁의지와 힘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서서히 서로를 찾아내어 노동자지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지하운동도 소생했다.”(85쪽)
”전쟁 첫 해에 러시아 산업능력의 1/5이 잘려나갔다. 섬유생산의 약 75%를 포함해 무려 국내총생산의 50%가 군대와 전쟁의 필요에 의해 투입되었다. 과부하가 걸린 수송수단은 공장에 필요한 양의 연료와 원자재를 공급할 수 없었다. 전쟁은 경사국민소득 전체르 ㄹ집어삼켰을 뿐 아니라 기본자본재를 심각하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기업가들은 노동자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이 성향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정부는 늘 그렇듯이 모든 파업에 대해 가혹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이 모든 것이 노동자의 사고를 특수에서 일반으로, 경제에서 정치로 인도했다. 총파업 사상이 탄생했다. 대중의 급진화 과정은 파업통계에 가장 설득력있게 반영되었다. 1915년 경제파업 대비 정치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수가 대비 1917년 첫 몇달에 6배가 많았다.”(86쪽)
전쟁은 농민계급의 각성도 불러일으켰다. 병사의 대다수는 농민 출신이었다.
”1905년 혁명 직전에 유럽 러시아에서 경작가능한 토지의 총면적은 2억8천만 데샤틴으로 추산되었다. 이 가운데 공유지는 1억4천만 데샤틴이었고 짜르 소유지가 5백만, 교회 소유지가 2백5십만이었다. 개인소유지 가운데 7천만 데샤틴이 3만명의 대지주 소유였는데, 대지주 한명당 500데샤틴이 넘는 토지를 소유했다. 이 7천만 데샤틴이 대체로 1천만 농민가족들의 것이 되었어야 할 농지였다. 이 농지 통제야말로 농민전쟁의 최종적인 강령이었다.”
”1905년 혁명은 지주를 없애지 못했다. 모든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농촌운동은 도시운동과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 농민 출신 병사들은 동요했으며 마침내 봉기노동자들을 진압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을 제공했다.”(91쪽)
”노동자의 파업운동과 함께 1907년 말에 가라앉았던 농민운동은 1908년 부분적으로 소생했으며, 다음 몇년간 강력하게 성장했다. 농민들은 빈번하게 지주의 장원, 수확물, 건초더미에 불을 질렀으며 공동체 농민의 의지에 반해 잘려나간 개인소유 토지도 점령했다.”(95쪽)
트로츠키는 제4장 '짜르와 왕후'에서 1905년 혁명 당시에 짜르였던 니콜라이가 1917년까지 얼마나 무능하며 무책임한지 기술준다. 짜르는 무관심한 데다가 정신력과 의지력도 허약하였다. 짜르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왕후는 짜르보다 현실감각이 훨씬 더 떨어졌고 권력에 집착했으며 또한 잔인했다. 1917년 짜르를 조종했던 왕후가 2016년 박근혜를 조종했던 최순실로 환생한 듯하다. 그들은 신비주의 마술사 라스푸틴에게 국가대사를 의지했다.
”짜르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도 혼자만 평정을 유지했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단순히 외부에서 강제된 훈련이 아니었다. 이것의 핵심은 기질적 무관심, 정신력의 빈곤, 의지력의 허약함이었다. 일부에 의해 훈련의 결과가로 인정되었던 무관심의 얼굴은 니콜라이의 타고난 성질이었다. 짜르의 일기는 이점을 가장 잘 입증하고 있다.”(103쪽)
”짜르가 되자마자 니콜라이는 노동자들에게 발포한 파나고리치 연대를 ‘멋진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단발 여학생을 채찍질하는 방법과 유태인 학살 때 자기방어력이 없는 유태인의 머리를 깨는 방법이 실린 책을 그는 항상 만족스럽게 읽었다.”(108쪽)
”혁명이 터지기 1년 전인 1916년 3월, 나라가 패배와 파멸의 손아귀 속에서 비틀댈 때, 황후는 총사령부의 짜르에게 관용, 책임 내각 등 모든 그들이 원하는 어떤 것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편지를 보냈다. ‘의회가 아니라 폐하의 전쟁, 폐하의 평화조약, 폐하의 명예 그리고 조국의 명예가 되어야 합니다.’”(111쪽)
-”니콜라이가 허수아비 총사령관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총사령부로 출발한 후 왕비는 공공연히 내정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장관들은 마치 그녀가 섭정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112쪽)
”모든 고위관직의 임명과 각종 계약의 체결은 라스푸틴 파벌이 좌우한다는 소문이 1913년과 14년 겨울부터 뻬쩨르부르크에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의 신변은 철저히 보호었으며 서로 경쟁하는 장관들에 의해 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되었다. 경찰청의 스파이들은 시간마다 그의 동태를 기록했다.”(114쪽)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짜르의 마지막 6년간 지속되었다. 역사이 위협적 힘 앞에 너무 놀란 짜르 부부에게 비인격적인 신과 쓸모없는 예수의 그림자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신의 아들’의 재림이 필요했다. 거부당하고 고통스러웠던 짜르 부부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 예수를 라스푸틴에게서 찾아냈다.”(116쪽)
제5장 '무혈쿠테타에 대한 논의'에서 트로츠키는 짜르 체제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이 시도한 '무혈쿠테타'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기술한다.
짜르와 왕후가 라스푸틴에게 조종받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귀족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은 '라스푸틴 없는 짜르'를 원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 과정에서 막다른 처지에 몰린 러시아는 객관적으로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의 패배와 위기가 다가오자 부르주아 계급과 장군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왕후에 라스푸틴에게 전가하며, 왕후와 라스푸틴이 독일의 스파이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하지만 한 발 앞서 왕후와 라스푸틴의 코치를 받은 짜르는 내각의 니콜라이예비치 대공의 군대통수권을 박탈하고 스스로 총사령관의 직책을 장악했다. 결국 파블로비치 대공의 책임으로 파스푸틴은 살해되었다. 대다수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 그리고 장교와 신부와 상인과 노동자의 라스푸틴의 죽음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라스푸틴의 죽음은 짜르 체제를 몇 개월 더 연장한 것에 불과했다. 물론 무혈쿠테타를 모의한 귀족들과 부르주아 계급의 목적도 짜르 체제가 몰락하는 것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친구'가 살해된 이후 왕정은 전부 합쳐 10주일 밖에 지탱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도 짜르의 시간임은 틀림 없었다. 라스푸틴은 가고 없었으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짜르를 지배했다. 음모가들의 모든 기대와는 달리 짜르 부부는 살해사건 후에도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라스푸틴 파벌의 가장경멸스러운 인간들을 승진시키기 시작했다. 라스푸틴 살해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이 소문난 악당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여러 명의 대공들이 수도에서 추방당했다. 프로토포포프가 심령술을 배워 라스푸틴의 귀신을 부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절망의 올가미가 구체제의 목을 더 옭아매었다."(136쪽)
"라스푸틴 살해는 거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살인범들과 이들을 부추긴 자들이 계산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역할을 했다. 즉, 위기를 약화시키기는 커녕 격심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궁중, 군사령부, 공장, 농민의 오두막집 등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살해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스스로 나 있었다. 대공들조차 나병환자처럼 더러운 짜르 친위 세력에 대해서는 독과 권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인 블로크(Blok)는 라스푸틴 살해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그를 죽인 총알은 왕조 지배층의 심장부에까지 미쳤다.'"(137쪽)
제6장 '구체제 멸망의 격심한 고통'에서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전야에 짜르 체제의 각 계급과 인물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움직였는지 기술했다. 1917년 1월 9일 노동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905년의 '피의 일요일'을 기념하여 뻬쩨르부르크와 각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했으며 식자공들의 파업이 발생하였다. 1월부터 시작된 노동자들의 파업은 2월 들어 급속하게 파급되었고, 2월 23일 '동궁 앞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파업과 군대의 봉기는 촉발되었다.
짜르 치하의 마지막 내각 총리는 70살의 골리친이었다. 골리친 내각은 허약하고 무능했다. 당시 최후의 짜르내각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로지안코는 이렇게 증언했다.
"내각이 회의를 하고 있던 마린스키 궁전으로 군중이 몰려오고 있다는 첫 소식을 접하자 건물의 모든 등불을 끄라는 조치가 취해졌다. 혁명이 이 내각을 보지 못했으면 하고 정부는 원했다. 그러나 소문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군중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건물의 모든 등불이 다시 전부 켜지자 장관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자신이 탁자 밑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147쪽)
짜르는 총사령부를 떠나 짜르스코에 셀로에 도착하여 궁전에 가두어질 때까지 자신의 권력이 무너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파업이 늘어나고 방위군과 주둔군 모두가 봉기를 일으키자 수도로 향하던 짜르의 기차는 비쉐르역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멈추어졌다. 짜르는 전선의 군대들에게 수도에 진입하여 파업과 봉기를 진압하라고 전보를 보냈지만 전보는 전선에 도착할 수 없었다. 짜르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왕후는 짜르에게 수도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보내고 있었다. 이나노프 등 전선의 장군들은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향하다가 뻬쩨르부르크의 상황을 전해 듣고 전선으로 돌아갔다. 니콜라예비치 대공, 알렉세이예프 장군, 브루쉴로프 장군, 그리고 네페닌 제독 등 장군들은 짜르에게 '하야'를 요청했다. 짜르는 자신이 퇴위하고 동생 미하일에게 권좌를 물려주겠다는 전보를 수도에 보냈지만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르보프공을 수상으로, 니콜라이 니콜라이에비치를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는 포고령에도 서명했다. 그후 프스코프에서 모길레프에 도착한 짜르는 동생이 아닌 자신의 아들로 왕위를 넘겨주겠다고 번복했다.
제7장 '5일간91917년 2월 23일부터 27일까지)'에서 트로츠키는 2월 혁명의 전 과정을 기술했다.
'국제 여성의 날'이었던 1917년 2월 23일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크에서 식량 배급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수만 명 규모까지 확대되었지만, 처음에는 온건하게 진행되었으며, 수도의 치안을 담당한 하바로프 장군도 경찰과 기병대의 투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도시 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었다.
내각의 총리 니콜라이 골리친은 사태 수습을 포기하고 전선의 니콜라이 2세에게 사임을 제안했지만, 황제는 이를 거부했고 하바로프에게 시위를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26일 시내 중심의 넵스키 대로의 시위대에 경찰 부대가 발포하여 노동자와 시민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파블로프스키 연대 소속의 일부가 병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시내에 주둔한 다른 연대에서도 반란병의 진압과 노동자 측의 참여에 혼란스러워 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사>에서 2월 혁명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2월 혁명은 조직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의 가장 억압받고핍박받은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스스로 합의하여 선두에 나섰다. 물론 이들 중에는 병사 부인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길게 늘어선 빵 배급줄이 혁명을 촉발시킨 마지막 자극이 되었다."(178쪽)
"이 날 남녀 모두 합쳐 약 9만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다. 데모, 집회, 경찰과의 대치과정에서 전투성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위는 대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비보르그 지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뻬쩨르부르크를 가로질렀다. 비밀경찰의 증언에 의하면, 다른 곳에서는 파업이나 시위가 없었다. 이날 경찰을 돕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으나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들과 대치하지 않았다. 비노동자를 포함한 여성의 무리가 빵을 요구하며 시의회 건물로 몰려 갔다. 깃발에 적힌 구호는 노동자들이 전제나 전쟁이 아닌 빵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국제여성의 날'은 열정적으로 그러나 사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이 날에 잠복된 의미를 밤이 되도록 아무도 짐작 조차 못했다. 그 다음날 이 운동은 수그러들기는 커녕 두 배나 커진다: 2월24일 뻬쩨르부르크 공업 노동자의 약 반 수가 파업에 참가한다. 아침에 노동자들은 공장에 출근한다. 이들은 조업에 나서는 대신 집회를 연다. 그리고 도시 중심지로 행진한다. 이 운동에 다른 노동자지구들과 다른 인민집단들이 합류한다. '전제 타도' '전쟁 중지'라는 커다란 구호 소리에 묻혀 '빵을 달라'는 구호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179쪽)
"대중은 보병들이 접근하여 이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자신의 뜨거운 입김으로 이들을 감싸려고 한다. 노동자와 병사의 관계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들은 병사의 대열에 남자보다 더 대담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병사들의 소총을 잡고 호소하고 거의 명령한다. '총검을 내려놓고 우리 와 합류하세요' 병사들은 흥분되고 부끄러워서 서로 근심어린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동요한다. 어느 병사가 먼저 결심을 하고 죄책감 속에 다가오는 군중 어깨 위로 총검을 들어 올린다. 시위의 장애물이 걷혀진다. 기쁨에 찬 감사하는 마음이 '만세' 소리가 공기를 뒤흔든다. 병사들은 군중에 의해 둘러싸인다. 모든 곳에서 주장하는 소리, 야단치는소리, 호소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혁명은 이렇게 한발짝 또 전진한다."(188~189쪽)
당시 멘셰비키 당조직뿐 아니라 볼셰비키 당조직도 2월 혁명으로 분출한 노동자와 민중들을 지도하지 못했다. 선진노동자들의 주도 아래 2월 혁명의 5일간 진행된 셈이다.
"볼셰비키당 뻬쩨르부르크위원회의 체포 때문에 이 도시의 활동 전체는 비보르그 지구노동자들의 지도에 달려 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은 정당한 지도 몰랐다. 당의 상층 지도부는 가망 없이 반응이 느렸다. 25일 아침이 되어서야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집행부는 전국 총파업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유인물은 발행되지 못했다. 만약 발행되었다면 그 순간에 이미 뻬제르부르크 총파업은 무장봉기에 돌입한 상태였을 것이다. 지도부는 이 운동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주저했으며 사태를 지도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다."(191쪽)
"봉기진압을 위해 차례로 막사 밖으로 불려나오기 전, 아침 일찍부터 예비역 방위군 대대들이 차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전날 파블로프스키 연대 제4중대의 행동이 계승되었다. 문서, 기록, 회고록 등은 인류역사의 이 거대한 사건을 희미하게 조명하고 있을 뿐이다. 억압받는 대중은 창조적 행동의 절정으로 상승할 때조차 자기 얘기가 거의 없다. 그리고 글도 제대로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터지는 압도적인 승리의 환희와 열광이 그나마 남아있던 기억도 지워 버린다. 그러면 그나마 남아있는 기록들이라도도 확인해보자."(207쪽)
두마 의장 미하일 로쟌코는 전선의 총사령부에 있는 니콜라이 황제에게 수도가 무질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신속하게 알리고, 새로운 내각을 조직하여 민중의 불만을 가라앉힐 것을 요청했다. 이 연락을 받은 니콜라이 2세는, 의장의 요청을 거부한 채 이바노프 장군에 몇 개 연대를 수도로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이 되자 볼린스키 연대의 병사가 장교를 사살하고 거리로 나섰다. 저녁 때 또 다른 연대가 반란에 가담하면서 반란 병사의 규모는 수만 명에 달하고 있었다. 반란 병사와 노동자들은 내무부, 군사령부, 경비대 사령부, 경찰, 무기고 등을 습격하여 무기를 손에 넣었다. 하바로프 장군은 해군 본부 건물에서 농성을 시도했지만, 병사의 탈주는 그치지 않았고 부대는 즉시 해산되었다. 27일에는 모스크바에서, 3월초에는 다른 도시에서도 혁명이 시작되었고, 군부대도 거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혁명과 동시에 체포된 사람들이 타우리데 궁전으로 물결을 이루어 흐른다. 수상, 장관, 경찰관, 비밀정보원, '친독일파' 백작부인, 헌병 장교의 무리들이다 프로토포포프와 같은 여러 정치인들은 자수한다. 더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백작부인이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절대주의를 칭송하는 노래로 가득했던 방은 이제 훌쩍거리는 울음소리와 한숨 만이 가득하다. 체포된 장군이 대단히 지친 듯 가까이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다. 의원 여러명이 친절하게 차를 대접한다. 영혼이 심하게 흔들린 장군은 흥분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백작부인, 위대한 나라의 멸망을 목격하고 있습니다.'"(219쪽)
트로츠키는 제8장 '누가 2월 봉기를 지도했는가?'에서 대부분 레닌의 볼셰비키당이 교육시킨 의식적이며 훈련된 노동자들이 2월 혁명을 지도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해외의 역사가들이나 정치가, 비평가들은 2월 혁명을 '자연발생적인 봉기'로 규정한다.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 장군들, 부르주아 세력,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지도부들도 자연발생적이라는 데 동조한다.
트로츠키는 8장에서 2월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볼셰비키당의 지도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단순히 자발적인 대중들의 봉기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먼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혁명가들인 좌익정당 지도자들이 해외에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감옥과 유형지에 있었다고 증언한다. 레닌은 지노비에프와 함께 해외에 있었다. 카메네프와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실제적인 지도자 스베르들로프, 뤼코프, 스탈린 역시 유형지에 있었다. 나중에 볼셰비키가 된 폴란드의 사회민주주의자 제르진스키는 중노동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05년 이후 뻬쩨르부르크 노동자와 일반적으로 볼세비키당에 의한 혁명적으로 의식화된 노동자들을 주시한다.
"이들은 세메노프스키 연대방위군에 의해 압살된 1905년 혁명, 1905년 12월 모스크바 봉기를 경험했다. 1905년의 경험을 곱씹어보고 자유주의자들과 멘셰비키들의 입헌주의적 환상을 비판하고 혁명 전망을 소화하고 수 백번 군대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군대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면밀하게 주시하는 노동자들, 즉 자신의 관찰로부터 혁명적 결론들을 추론해 내고 이것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봉기 대중 사이에 흩어져 있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거에 혁명 선전에 의해 획득되었거나 최소한 영향을 입은 진보적 병사들이 주둔군 내부에 있어야 했다. 모든 공장, 모든 길드, 모든 부대, 모든 술집, 모든 병원, 모든 병력이 동부대, 심지어는 모든 인구가 빠져나간 농촌 마을에도 혁명사상의 분자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특히 노동자들 가운데에서."(245쪽)
제9장 '2월 혁명의 역설'에서 트로츠키는 러시아 노동자와 인민들의 2월 혁명이 짜르 왕정을 무너뜨렸음에도 권력이 자유부르주아에게 넘어간 이유를 물으면서 ‘2월 혁명의 역설’에 대해 서술한다.
2월 혁명이 정점에 이른 2월 27일과 28일, 짜르 왕정이 타도된 뻬쩨르부르크에서는 두 개의 권력기관이 탄생했다. 먼저 2월 혁명을 주도했던 노동자와 병사들이 주축이 되어 뻬쩨르부르크소비에트대회가 열렸고 소비에트집행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뒤이어 2월 혁명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도, 역할도, 중재도, 노력도 하지 않았던 두마 의회가 서둘러 의원위원회를 결의한 후, 교묘하게 의회의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2월 혁명의 가장 큰 성과인 소위 ‘이중권력의 탄생’이었다.
문제는 소비에트집행위원회 지도부였다. 그들은 소비에트가, 노동자와 병사들이 러시아의 권력을 지고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2월 혁명 당시 소비에트 대표들은 볼셰비키보다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 당원들이 다수였으며, 따라서 집행위원회 지도부들 역시 두 정파가 과반수를 장악했다. 츠헤이체, 스테클로프, 커렌스키, 수하노프, 로지안코, 스탄케비치 등 집행위원회 지도자들은 의회임시위원회 회의에 나타나 의회가 권력을 접수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의회임시위원회는 “권력 장악”을 선언했으며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이들은 임시정부 대표에 입헌민주당의 자유주의자인 밀류코프를 추대했다.
“이 혁명의 성격(노동자 혁명)과 이 혁명이 탄생시킨 권력의 성격(부르주아 권력) 사이의 모순은 혁명 대중과 자본가 계급 사이에 장벽을 형성하는 이 신중간 소부르주아계층의 모순적 성격으로 설명될 수 있다."(268쪽)
"절대다수의 노동자,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무당파 대중 등은 짜르체제와 직접 투쟁할 당시 볼셰비키를 지지했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이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 날카로운 분리의 선을 그었다. 이 사실은 혁명이 승리한 후의 정치 상황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들 즉 짜르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도 반대하는 자들을 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3개 사회주의 정당들의 차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멘셰비키 당과 사회혁명당은 모든 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지식인들로 인해 볼셰비키당에 비해 지식인을 훨씬 더 많이 보유했다. 따라서 이 두 정당은 즉시 엄청난 수의 선동가 집단을 운영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정당 들은 심지어 작업장과 공장 선거에서조차 절대다수당이 되었다."(269쪽)
“대중에 의해 높이 떠 받들어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부르주아 계급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이 헝식적 민주주의의 작동을 해부하면 이중의 선거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중간 고리 즉, 입헌민주당을 선출하는 기술적인 역할을 한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화해주의자들은 ‘대중의 신임을 배신하여 대중의 적대계급에게 권력 접수를 촉구했다.'"(276쪽)
[2017년 9월 10일]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레닌,
볼셰비키,
2월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