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서평] 20세기 역사는 러시아혁명 없이 이해될 수 없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
레온 트로츠키 저, 볼셰비키그룹 역, 2017년 5월, 1040쪽, 아고라
지난 주 성공회대 김창진 교수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러시아혁명 100주년 특별 기고’를 올렸다. 기고에서 김 교수는 “20세기의 역사는 러시아혁명과 그것의 직접적, 간접적 결과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라는 에릭 홉스봄의 글을 인용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4507&ref=twit)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유럽과 아시아 대륙 그리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격변은 러시아혁명을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17년 이후 주요한 전지구적 사건인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독일 등 동맹국의 패배,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과 사회혁명, 동서 냉전과 한국전쟁, 동맹국의 부활과 서구사회의 복지 체제 등은 러시아혁명이 성공했기에 가능했던 사건이었던 셈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 전체를 잠식하던 100년 전, 압제와 빈곤에 시달리던 러시아 민중들은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와 민중의 나라를 건설했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혁명,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일명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적 변화 중 하나였다. 러시아 혁명은 동유럽 등 지구상에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혁명에 영감을 주었다.
소련 사회주의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파시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몰고온 자본주의 체제도 전쟁 후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며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소련 사회주의 체제는 100년을 유지하지 못한 채 1991년 사라졌다. 소련 멸망 후, 지구를 주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고 소련이 해체된 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부의 양극화와 실업, 전쟁 등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지구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지구촌은 다시금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혁명 전 러시아는 어떤 사회였으며, 러시아혁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성공했을까?” 이것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다.
100년 전, 러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방에 불과했다. 그런 러시아에서 혁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혁명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 책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는 레닌과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레온 트로츠키가 쓴 ‘러시아 혁명의 기록’이다. 뻬쩨르그라트 소비에트 의장이자 적군(赤軍)을 지휘하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트로츠키는 혁명의 주역으로서 러시아 혁명의 모든 과정과 그 법칙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씌어진 수많은 역사서들 가운데 가장 힘 있는 저술로 인정받고 있으며, 트로츠키 자신의 혁명관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 모두에서 트로츠키의 책 중 최고의 저술이라고 평가받는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는 2001년~2004년 세 권으로 변역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 권으로 편집된 것이다.
이 방대한 책에서 트로츠키는 혁명 시기 계급투쟁의 양상, 혁명의 역학,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다르면서도 전형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모습 등을 자세히 서술했다. 여기에 더해 여성해방, 연속혁명론, 인민전선, 이중권력, 극우 쿠데타와 파시즘, 공동전선, 혁명의 조건과 혁명정당의 역할, 민족 문제 등 혁명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담아냈다. 또한 이 책은 노동계급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리며, 일개 농민, 병사,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1917년 2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전개된 혁명을 묘사하는 데 세 권의 책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지루하다고 비난한 비평가는 거의 없었다. 이 책이 길어진 이유는 소재에 대한 접근 방식 때문이다. 손 하나를 찍은 사진은 한 페이지로 족하다. 그러나 손의 조직들을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들을 제시하려면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이 완벽하다는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카메라보다는 현미경에 가까운 조사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p.406)
트로츠키는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지 못하면 1917년 혁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가장 명확한 특징이다. 평상시에는 왕정이나 민주정,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역사는 정치 전문가들, 즉 왕, 각료, 관료, 의원, 문필가 등에 의해 창조된다. 그러다 대중이 구체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각축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장벽들을 부순다. 그리고 기존의 대표기구들을 쓸어 없애버리고, 자신들의 손으로 새로운 체제의 기초공사를 시작한다."('서문' 중에서/ p.7)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 (상)권 “2월 혁명의 발발과 이중권력의 수립”에서 러시아혁명사에 대한 자신의 역사관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먼저 설명한다.
첫 번째는 유물사관이다. “특정사회의 성격은 그 체제의 경제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경제적 성격은 생산적 노동수단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사회체제는 역사발전단계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다. 따라서 역사의 필요를 충족시킨 후 더이상의 발전에 족쇄로 작용하는 사회체제는 멸망한다. "생성되는 모든 것은 파괴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지배계급도 자발적이고 평화적으로 사회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급간에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투쟁에서 이성에 기초한 싸움 즉, 논쟁은 폭력에 기초한 싸움 즉, 무장봉기를 대체해본 적이 결코 없었다.”
두 번째는 진보적 혁명관이다. “혁명은 사회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여 역사적으로 쇠퇴하는 반동계급은 혁명을 통해 타도된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다음 사회질서를 준비하는 진보계급에게 넘어간다. 시효가 지난 구체제를 일소하기 위해서 진보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할 자신의 임무를 자각한다. 혁명정당은 진보계급의 최상분자들을 결집하여 혁명을 완수하는 도구이다.”
세 번째는 불균등발전론이다.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은 세계체제의 모순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사회발전단계가 다른 후진국과 선진국들을 똑같이 전쟁의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갔다. 러시아는 가장 후진적인 나라의 하나로 전쟁의 파괴와 고통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었다. 전쟁의 참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러시아 인민은 짜르체제의 지배계급들을 타도해야했다. 이 결과 세계 제국주의 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졌다.”
네 번째는 결합발전론이다. “후진국과 선진국은 제국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은 후진국에게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압력을 가한다. 후진국은 이 압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진국의 과학과 기술 등을 도입한 후 선진국에 도전한다. 이 결과 후진적 특성들은 선진적 특성들과 결합된다. 러시아는 유럽의 수공업과 공장제 수공업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기계제 대공업을 정착시켰다. 이렇게 하여 봉건적 제도와 최신식 기술이 결합한 근대 러시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러시아의 후진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보완했을 뿐이다.”
다섯 번째는 계급 및 민족동맹론이다. “농민의 토지문제 해결은 부르주아적 과제였다. 그러나 러시아 부르주아계급은 정치적 토대가 허약하여 부르주아혁명을 완수할 수 없었다. 이 결과 농민의 토지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할 노동계급의 어깨 위에 정치적 과제로 얹혀졌다. 혁명적 노동계급 정당인 볼셰비키당은 농민에게 이 정치적 과제를 설명하여 이들의 지지를 획득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인구의 80%를 차지한 농민은 노동계급의 정치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여섯 번째는 혁명정당론이다. “사회주의혁명을 통한 국가권력장악을 위해 노동계급은 자신의 지도부인 혁명정당을 수립해야한다. 볼셰비키 혁명정당은 사상의 명확성과 드높은 혁명적 결의를 특성으로 노동계급과 인민의 신뢰를 얻은 역사상 유일한 정당이 되었다.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성숙했을 때 대중을 지도하여 봉기를 승리로 이끈 볼셰비키당은 산부인과 의사에 비유될 수 있다. 혁명의 산고를 겪고 있던 러시아를 무장봉기라는 제왕절개로 구한 의사가 볼셰비키당이었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상)권은 제1장 “러시아 사회 발전의 특성”부터 제22장 “전국 소비에트 대회와 6월 시위”까지로 구성되었다.
트로츠키는 혁명 직전 러시아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후진국’이었으며, 이러한 러시아 사회 발전의 특성을 ‘불균등발전론’과 ‘결합발전론’으로 분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던 1916~17년 전시(戰時)의 짜르 체제는 왕조 자체에서부터 부르주아, 군대, 지주, 행정 등 체제 전체가 허약하고 부패했으며 노동계급과 농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계급과 기득권자들로 인하여 압제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짜르와 황후로 짜르체제는 1905년 인민의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귀사회생하는 듯 했지만, 1905년 이후 무기력과 무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라스푸틴’으로 상징되는 주술적인 비선 실세에게 농락당한 채 하루하루 수명을 다해갔다. 짜르체제의 존속에 사활을 걸었던 대지주와 자본가들은 무혈쿠테타로 ‘라스푸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나, 짜르체제는 국가의 위기를 해소하지 못했고 인민대중의 고통은 더해갔다.
'국제 여성의 날'이었던 1917년 2월 23일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크에서 식량 배급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도시 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었다. 26일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대에 경찰 부대가 발포하여 노동자와 시민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수도 군단 소속의 일부가 병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멘셰비키 당조직뿐 아니라 볼셰비키 당조직도 2월 혁명으로 분출한 노동자와 민중들을 지도하지 못했다.
반란 병사와 노동자들은 내무부, 군사령부, 경비대 사령부, 경찰, 무기고 등을 습격하여 무기를 손에 넣었다. 봉기를 진압하도록 지시받은 군대에서 병사들은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27일에는 모스크바에서, 3월초에는 다른 도시에서도 혁명이 시작되었고, 군부대도 거기에 동조하였다.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은 왕궁을 포위했고 짜르체제의 장관들과 장군들을 체포했다.
짜르와 왕후는 유배지에 감금되었고 왕정은 무너졌으며, 이로써 2월 혁명은 성공하였다. 하지만 멘셰비키 당과 사회혁명 당이 주도하는 소비에트는 부르주아와 대지주에게 임시정부를 수립해 권력을 장악하도록 방치했고 양보했다.
“2월 혁명은 혁명조직들의 반대를 뚫고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의 가장 억압받고 핍박받은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스스로 합의하여 선두에 나섰다. 물론 이들 중에는 병사의 부인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길게 늘어선 빵 배급 줄이 혁명을 촉발시킨 마지막 자극이 되었다. 이날 남녀 모두 합쳐 9만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데모, 집회,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전투성을 드러냈다. 시위는 대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비보르크 지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뻬쩨르부르크 쪽으로 옮아갔다. 비밀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다른 곳에서는 파업이나 시위가 없었다. 이날 경찰을 돕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으나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들과 대치하지 않았다. 노동자든 아니든 상관 없이, 여성의 무리는 빵을 요구하며 시 두마 건물로 몰려갔다. 그러나 이것은 염소 수컷에게 젖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도시 여기저기에 붉은 깃발이 등장했다. 깃발의 구호는 노동자들이 왕정이나 전쟁이 아니라 빵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p.102)
트로츠키는 2월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볼셰비키당의 지도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레닌의 볼셰비키당이 교육시킨 의식적이며 훈련된 노동자들이 2월 혁명을 지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 노동자와 인민들의 2월 혁명이 짜르 왕정을 무너뜨렸음에도 권력이 자유부르주아에게 넘어갔다.
2월 혁명이 정점에 이른 2월 27일과 28일, 짜르 왕정이 타도된 뻬쩨르부르크에서는 두 개의 권력기관이 탄생했다. 먼저 2월 혁명을 주도했던 노동자와 병사들이 주축이 되어 뻬쩨르부르크소비에트대회가 열렸고 소비에트집행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뒤이어 2월 혁명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도, 역할도, 중재도, 노력도 하지 않았던 두마 의회가 서둘러 의원위원회를 결의한 후, 교묘하게 의회의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2월 혁명의 가장 큰 성과인 소위 ‘이중권력의 탄생’이 탄생했다.
임시정부는 3월 8일 사면 포고령을 내렸지만, 기존 짜르 체제의 관료는 존속되었다. 집행위원회는 임시정부와 권력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회의는 임시정부와 협의하기 위해 ‘소비에트 접촉위원회’를 구성했을 뿐이다.
2월 혁명 이후 병사들에 의해 군대에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다. 군대의 과거 규율은 3월의 첫 몇 주일간 병사들에 의해 해체되었다. 규율을 강제할 권한이 없어진 군대의 지휘부는 완전히 파산했다.
2월 혁명 직후 망명지에서 수도로 돌아온 레닌은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와 볼셰비키 당 회의에 참석하여 2월 혁명 전후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와 볼셰비키 당이 노동자 권력이라는 인민의 의지와 사회주의 혁명의 목표에서 벗어나 우경화되었다고 비판하며 ‘4월 테제’를 발표했다. 4월 테제는 볼셰비키 당 지도부에게는 거부되었지만, 한 달 만에 볼셰비키 당 당원들과 하급 당위원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레닌은 역사 발전의 우연적 요인이 아니라 러시아 역사 전체의 산물이었다. 그는 역사에 대단히 깊게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 25년간 노동계급 전위와 함께 투쟁했다. 따라서 그가 혁명에 개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가 그의 귀국을 막기 위해 매놓은 조그만 지푸라기는 진짜 우연이었다. 레닌은 당 외부에서 당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당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었다. 당을 교육하면서 그는 자신도 교육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그의 투쟁은 당의 미래가 과거에 대해 투쟁한 것이었다.”(p.297)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자극을 받은 임시정부와 외무장관 밀류코프가 전쟁 확대 메모를 연합국에게 전달한 것에 대한 노동자 병사들은 ‘4월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노동자 병사들의 4월 봉기는 ‘혁명 노선의 재무장’이 진행 중인 볼셰비키 당의 빈약한 지원(주도는 고사하고)과 타협주의 정당이 주축인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권위로 저지되었다. 그럼에도 밀류코프 임시정부는 붕괴되었다.
그럼에도 3월에 이어 4월 한 달 동안 노동자 병사들은 서서히 볼셰비키화 되어 갔고, 인민대중들 사이에서 볼셰비키 당에 대한 지지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하게 확대되고 있었다.
4월 봉기를 겪은 후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연립정부에 참여할 것을 결의했다.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행정기관으로 비상 업무를 집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민대중 다수와 소비에트들은 집행위원회의 연립정부 참여를 지지했다. 연립정부에서 소비에트는 소수였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세력 주도의 연립정부를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여전히 소비에트와 이중권력 상태였다.
6월 들어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연립정부는 전선 사령부에 공세를 지시했으나 4곳의 전선 중 한 곳만이 실제로 공격행위가 가능했다. 연립정부와 소비에트에 참여한 멘셰비키 당과 사회혁명당 등 타협주의자들의 모습을 경험한 후, 하부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 당에 대한 지지가 늘었다. 수도 뻬쩨르부르크 소비에트의 6월 회의에서 볼셰비키 노선은 지지율이 40%까지 증가했으며, 비보르그 소비에트는 볼셰비키 당이 장악했다.
2월 혁명 후 농민들은 조금씩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혁명 이후 지주들이 경작을 포기하고 부농과 외국인들에게 토지를 매각하자 물리력을 동원하여 방해하기 시작했고, 생존을 위해 경작물을 빼앗고 농지를 강제 점유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투쟁은 농민 계층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농민들은 사회혁명당과 멘세비키 당을 지지했으며 농민 소비에트에는 소부르주아와 지식인, 부농들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전국소비에트 대회에서 ‘8시간 노동제’ 요구가 거부되자 노동자 소비에트 회의는 6월 시위를 결정했다. 6월 시위는 뻬쩨르부르그 노동자와 병사들이 목적이 뚜렷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새로운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명확한 징후들은 나라의 나머지 부분들도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수도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지 4개월을 채울 즈음에 노동자 대중 사이에서 볼셰비키 당에 대한 지지는 광범위하게 늘어났으며, 2월 혁명은 정치적으로 이미 소진되었다.
화해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병사들의 신뢰를 잃었다. 소비에트 주요 정당들과 소비에트 대중 사이의 갈등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두 혁명의 계급 역관계를 평화적으로 시험한 6월 18일 시위 후 두 혁명 사이의 모순은 공공연하고 폭력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중)권은 제23장 “‘7월 시기’ : 준비와 시작”부터 제36장 “최후의 연립정부”까지로 구성되었다.
페테르부르크의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과 신분 불안정을 느낀 수도군단 병사들이 파업과 시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6월 21일 3만6천 명의 푸틸로프 대공장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파업을 일으켰다.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다음날 노동자조직과 70개 공장 노동자 대표와의 회의를 통해 노동자들이 산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경우,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 후 12일 동안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7월 3일, 병사들과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후 오후 5시부터 시가지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제 경제적, 생활상의 요구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거대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노동자들과 병사들만 타우리데 궁전을 향해 행진했다. 볼셰비키당은 지도부와 선동가들을 노동자, 병사들에게 보내 봉기를 멈추라고 설득했지만 거부당했다.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이 점을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역사 서술은 혁명 사건들의 뒤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의식의 변화들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운동의 ‘자발성’이라는 자루 속에 모든 것을 처넣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 추상적인 말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혁명은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 말은 혁명 대중이 혁명의 법칙들을 인식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대중의 의식은 우연히 변화하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의 의식은 예측 가능하며 지도가 가능하다."(p.407)
휴일의 축제 분위기고 시작된 시위는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7월의 사건들의 일부는 명백한 적들의 유혈도발로 발생했다.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는 노동자와 병사의 시위를 사소한 충돌, 사상자, 성과없는 투쟁, 실제적 목적의 불명확성 등이 운동이라고 규정한 후 시위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집행위원회는 이 결의문에 즉각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이에 대해 거의 저항하지 않았다.이들은 가라앉은 채 교외로 되돌아갔으며, 다음 날 투쟁을 계속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7월 5일 새벽에 집행위원회가 요청한 군대가 수도 인근 부대에서 도착했다. 수도의 가장 후진적인 세 부대였다. 이들에게 7월 4일 오후 레닌이 독일의 첩자라는 문서와 선동이 정부측과 장교들로부터 이어졌다. 이들은 집행위원회 회의장 복도를 점령하고 아직도 궁전에 남아 있던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했으며 이들의 무기를 빼앗았다. 노동자들은 체포되어 끌려갔다. 크론슈타트 수병들도 후퇴했다. 노동자대표들은 체포되고 무기는 몰수되었으며 지구간 연락이 차단되었다. 볼셰비키당 기관지인 ‘프라우다’ 편집실이 박살나고 인쇄소도 습격당했다.
볼셰비키당 중앙위원과 페테르부르크 위원회 위원들이 체포되었고, 표트프파벨 요새에 남아 있던 혁명 군대들과 진압군들의 충돌이 일촉즉발한 상황이 되었다.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받은 스탈린은 화해주의 지도자들과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행동을 피흘리지 않고 해결하기로 합의한 후, 수병들을 설득하여 복귀시켰다.
7월 시위 실패 후 러시아 수도 페테르부르크에는 레닌이 독일군 총사령부와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의 의도적으로 퍼졌다. 소비에트 지도기구의 지도부들조차 이런 소문을 반겼다. 7월 사건으로 인해 권력은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7월에 주둔군 일부가 볼셰비키당 지지를 철회한 것은 바로 레닌에 대한 비방 때문이었다.
임시정부의 법무부는 레닌, 지노비에프, 콜론타이 및 기타 다수의 인물들을 국가반역죄로 구속했다.
“체르노프는 다른 그룹에 의해 시위대 앞으로 불려나왔다. 대중의 분위기를 감지한 이 떠벌이기 좋아하는 장관은 이번 한 번만은 아주 짤막하게 연설했다. 권력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위기에 대해서는 슬쩍 넘어가면서 그는 내각에서 철수한 입헌민주당을 경멸조로 언급했다. "차라리 이들이 없는 것이 좋다!"고 그는 외쳤다. 그러나 "그럼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라는 대중의 외침으로 그의 연설은 중단되었다. 밀류코프는 이렇게 전한다. "체르노프 앞에서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목이 쉰 노동자 한 명이 맹렬하게 외쳤다. ‘권력을 주면 잡아야 될 것 아니냐, 이 개자식아.’"(p.443)
7월 24일의 제2차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2차 연립정에서 멘셰비키 등 사회주의자들은 다수파였지만 자유주의자들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반동은 공세로 나선 반면에,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었다. 2월혁명의 첫 시기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났던 계급들과 집단들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상인과 투기꾼들은 볼셰비키들의 절멸과 상거래의자유를 요구했다. 투기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던 식량위원회가 생필품 결핍의 주범이라고 비난받았다. 이들의 증오심은 식량위원회에서 소비에트로 옮아갔다. 이들은 전쟁 패배, 생활비의 앙등, 밤도둑질 등이 모두 소비에트의 책임이라고 떠들어댔다. 8월 한 달 동안 레닌과 볼셰비키 당에 대한 반동 공세와 악선전은 맹위를 떨쳤다.
커렌스키 연립정부는 7월말에 나라의 모든 계급들과 사회 기관들이 참여하는 국가협의회를 8월 31일 모스크바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나라의 모든 민주적 선거결과를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정부는 유산계급들과 인민의 대표들이 동수로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준비에 착수했다. 커렌스키는 8월 전선사령부에 공세를 펼칠 것을 지시했다.
자본가계급과 민주주의 진영, 대지주와 장군들, 교회협의회, 그리고 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만이 참여하여 8월 13~14일에 개최된 국가협의회는 부르주아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 또는 우익 진영과 좌익 진영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의 주장만 펼치면서 아무런 결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8월 19일 독일군은 러시아의 서부전선을 돌파하여 21일에는 리가를 점령했다. 코르닐로프와 북부사령부는 리가의 함락을 방조하고 이를 계기로 쿠테타를 저지르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쿠테타의 디데이는 8월 27일. 그들은 연립정부의 수반인 커렌스키와 함께 군사독재체제인 “통령 정부”를 도모하였다. 코르닐로프 총사령부는 기병군단을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 집결시킨 후 볼셰비키당의 봉기를 유발한 후 계엄령을 선포할 계획을 수립하여 커렌스키의 대리인인 사빈코프와 협의했다. 코르닐로프는 자신에게 권력을 넘기라 커렌스키에게 제시했다.
하지만 연립정부 수상 커렌스키는 8월 27일 아침에 코르닐로프에게 모든 임무를 참모총장 루콤스키에게 넘기고 즉시 페테르부르크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코르닐로프는 커렌스키의 명령을 거부하고 페테르부르크로 군대를 진군시키겠다고 대응했다.
코르닐로프의 군사반란이 명확해지자 밀류코프와 연합국 대표들은 코르닐로프와 커렌스키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반면, 노동자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와 농민 소비에트 집행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수립된 ‘반혁명에 반대하는 투쟁위원회’가 중재를 반대하고 혁명을 구하기 위해 커렌스키 앞에 나타났다. 실제로 코르닐로프 등 왕당파 반란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군사혁명위원회로 불리기도 한 소비에트의 혁명방어위원회였다. 그들은 전혀 소비에트의 채널을 통해 지시사항이 전달되었고, 이루어졌다. 혁명방어위원회는 임시정부의 명의로 병력을 배치하고 페테르부르크에 존재하는 코르닐로프 지지조직들의 군사훈련소와 장교조직들을 수색하고 체포했다.
코르닐로프의 반란은 대중의 급진화를 강력히 촉진했다. 반란을 반대하고 억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볼셰비키당은 노동자와 병사대중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높아졌다.
코르닐로프의 반란이 제압된 후, 커렌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3차이자 최후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커렌스키는 “통령 정부”를 추구했다. 같은 날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는 13명의 볼셰비키, 6명의 사회혁명당, 3명의 멘셰비키로 새 집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커렌스키와 체테렐리는 전국소비에트대회에 대항하고 레닌 등 볼셰비키당의 소비에트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9월 14일 민주협의회를 소집했다. 1,250명이 참석한 민주협의회 회의에서 볼셰비키당과 멘셰비키당, 사회혁명당, 입헌민주당, 협동조합 대표들은 평화에 대해, 혁명에 대해, 노동자 무장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는 예비의회를 보이코트 할지 여부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 이 문제는 하부로 내려갈수록 보이코트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최후의 연립정부를 환영했다.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중)권은 제37장 “10월 혁명 전의 농민”부터 제46장 “소비에트 독재를 위한 전국대회”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었다.
3월에 농민들은 소비에트를 냉랭하게 대했다. 소비에트가 정치노선을 바꾼 가을이 되어서야 농민들은 소비에트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5월부터 6월까지 뻬쩨르부르그에는 도, 군, 마을 단위로 귀향단이 조직되었다. 노동자 신문의 칼럼들이 전부 귀향단 모임을 알리는데 할애되었다.
혁명 전, 러시아의 소수 민족은 참혹한 생활을 영위했다. 러시아 국가기구는 탐욕스럽게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켰으며 지배계급들의 토대인 농민은 가진 자원이 빈약했다. 하지만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러시아의 주력인 7천만 대러시아인에 약 9천만의 "변방" 민족들이 서서히 합쳐졌다.
일찍이 레닌은 러시아의 원심력적 민족운동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수년간에 걸쳐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에 반대하여 오랜 당 강령의 유명한 제9항 즉 ‘민족 자결권’을 끈질기게 옹호했다. 볼세비키당은 분리 독립의 복음을 결코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거대 국가의 국경 안에 민족들을 강제로 묶어 두는 것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민족 억압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었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러시아 노동계급은 서서히 피억압 민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전선은 더욱 붕괴되었고 정부는 더욱 약화되었다. 또한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는 더욱 실추되었다. 10월초 독일 해군 및 공군 함대는 핀란드 만에서 활발한 전투를 벌였다. 발트해 함대 수병들은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수로를 보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독일군은 문순트 제도를 점령했다. 전쟁사의 검은 한 페이지가 또 넘겨졌다. 이 새 군사적 손실을 수도를 이전하는 핑계로 활용하기로 정부는 결정했다. 수도를 대피시키는 문제는 아주 시급한 사안으로 제기되었다. 정부는 10월 초 의회를 해산시켰다.
노동자와 병사들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10월 6일 소비에트의 병사 부문은 유례 없는 만장일치로 "임시정부가 뻬쩨르부르그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면 평화조약을 체결하거나 사임해야한다."는 트로츠키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자들 역시 병사들 못지 않게 비타협적이었다. 이들의 혁명적 희망은 수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뻬쩨르부르그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9월에 새로 구성된 예비의회에서 소위 ‘민주주의’ 다수파는 308명으로 구성되었다. 10월 7일 소집된 예비회의에서 볼셰비키당은 의회 철수를 선언했다. 볼세비키당이 없어지자 예비의회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전쟁 문제를 논의했다. 10월 10일부터 전쟁과 군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18일 사회혁명당과 우익만이 참여한 예비의회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10월까지 볼세비키 사상은 전국을 장악했다. 크론슈타트, 짜리친, 코스트로마, 슈이아 등 1인 1표로 선거를 실시한 시의회는 볼세비키당에 의해 완전 장악되었다. 스몰렌스크와 같은 다수의 후진 도에서도 볼세비키당은 혼자 또는 사회혁명당 좌파와 함께 대회 소집을 위한 투쟁 과정 도중에 또는 직후 대회 대의원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다수를 장악했다. 7월과 8월에 지역 주둔군은 애국주의로 재무장되었다. 그리고 8월과 9월에 이들은 다시 볼세비키당 지지로 돌아섰다.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는 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 우파의 반대를 뚫고 소비에트 전국대회를 10월 25일로 결정했다.
연립정부는 부대들을 이동시키고 재배치하는 것이 필요했다. 수도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는 지방부터 시작했다. 정부의 정치적 동기는 군사적 전략이라는 핑계로 조심스럽게 은폐되었다. 화해주의자들(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 우파)은 10월 9일 소비에트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수도를 방어할 "혁명수호위원회"를 수립하자는 결의안을 올렸다. 볼세비키당이 "혁명수호위원회"에 동의하자 화해주의자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위원회는 수도 방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조치였다. 볼세비키들은 적들의 손에서 혁명수호위원회라는 위험한 무기를 탈취했다. 혁명수호위원회는 곧 ‘군사혁명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노동자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병사부문의 각 최고회의, 발트해 함대 대표들, 핀란드 지역 위원회 대표들, 철도 노동조합 대표들, 공장위원회 대표들, 노동조합, 당 군사기구들, 적위대 등이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9일에 처음 제출된 군사혁명위원회 구성안은 이로부터 1주일 후 소비에트 전원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수도 군대의 병사소비에트는 군사혁명위원회로 조직되었고, 노동자 소비에트는 노동적위대를 조직했다. 적위대에는 연대와 무기공장으로부터 무기가 공급되었다.
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볼셰비키당이 조직한 소비에트 지지집회가 열렸다. 10월 22일 도시의 중심부에서 교외까지 모든 곳에서 소규모로, 똑같은 시간에 수십만의 인파가 손을 들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맹세했다. 수도로 출동하라는 커렌스키의 명령을 받은 전선의 사단은 출동할 수 없었다. 사단 내의 병사소비에트는 혁명 진압을 위한 출동을 거부했다. 레닌은 이미 10월 초에 뻬쩨르부르크 당 협의회에 무장봉기와 커렌스키 정부의 타도를 촉구했다.
24일 밤 커렌스키 임시정부는 군사혁명위원회 전체를 체포하고 볼셰비키 당 신문을 폐간하며 수도 주위와 전선의 부대들을 수도로 출동시킨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실행은 미루어졌다. 25일 아침 일찍 정부는 공격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수도의 사관생도들, 네바 강에 정박중인 순양함 오로라 호, 수도 인근의 차르스코예셀로 돌격대대, 오라니엔바움의 사관생도들, 파블롭스크 포병 부대들은 제대로 출동하지 못했다.
25일 오전 5시 30분 사관생도 1개 부대가 볼셰비키 당 인쇄소를 습격하여 건물이 봉쇄되었다. 보고를 받은 봉기 사령부는 즉시 리토프스키 연대에게 1개 중대를 보내라고 명령했다. 리토프크키 연대와 공병 대대가 즉시 출동했다. 신문은 보호되었다. “이것이 봉기였다. 봉기는 이렇게 일어났다.”
순양함 오로라 호에 내린 임시정부의 명령은 노동자와 수병들의 보고 이후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반박되고 대신 수병들은 “반혁명세력의 공격을 대비하여 오로라 호는 자신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군사혁명위원회는 24일 내내 정부 기구와 기관을 장악해 나갔다. 중앙전신국, 통신사, 철도역, 발전소, 탄약고, 수도시설, 방송국, 식량창고, 증권거래소, 국영은행, 우체국, 정부 인쇄소 등이 장악되었고 경비병들이 배치되었다.
밤에는 군사혁명위원회가 주둔군 병사 소비에트들에게 군사혁명위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장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연대들의 지휘관들은 도망치거나 제거되거나 체포되었다.
25일 자정, 소비에트 전국대회와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 합동회의가 스몰니 궁전에서 개최되었다. 볼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 좌파 출신의 대의원들이 회의장에 가득찼다.
25일 오전 10시에 스몰니 궁전의 지도부는 수도와 전국에 봉기의 승리를 방송으로 선언했다. “임시정부는 타도되었다. 국가권력은 군사혁명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겨울궁전의 공간에서는 아직 정부가 존재하고 있었다. 전쟁 총사령부도 존재했다. 각 도들은 아직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전국대회도 개최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에서 군사혁명위원회는 상황을 이미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군사혁명위원회의 봉기군은 25일 오후 겨울궁전을 봉쇄했으며, 26일 새벽 겨울궁전을 점령했다. 임시정부와 예비의회는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혁명군대는 의지는 강했지만 조금 어설펐다. 지휘체계와 조직력도 부족했지만 과감하게 그리고 많은 피를 흘리지 않은채 겨울궁전을 점령했다.
10월 혁명 직후 실시된 소비에트 전국대회는 주요 법령과 정부의 강령을 결정했고 중앙집행위원을 선출했다.
“볼셰비키 당의 힘을 소비에트의 힘과 동일시하는 것은 명백히 오류였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러나 볼셰비키 당이 없었다면 소비에트는 쓸모없 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 점은 너무 당연했다.
당과 소비에트의 관계는 혁명기에 불가피한 불일치, 즉 볼셰비키주의의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과 볼셰비키 당의 협소한 조직적 장악력 사이에서 나왔다. 올바르게 지렛대를 사용하면 인간의 허약한 팔은 자기 힘보다 몇 배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팔이 없이는 지렛대는 아무 쓸모 없는 막대기에 불과하다.”
“이날 아침 옛날 이름을 그대로 가진 채 볼셰비키 당 중앙기관지 [프라우다]는 이렇게 적었다. "저들은 우리가 권력을 혼자 장악하기를 원했다.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난관들을 우리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다! 나라의 목소리에 의존하고 유럽 노동계급의 우정 어린 지원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혼자 권력을 갖는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했으므로 우리는 철권으로 혁명의 적들과 사보타지 분자들을 처리할 것이다. 저들은 코르닐로프의 독재를 꿈꾸었다. 우리는 저들에게 노동계급 독재를 선사할 것이다."”(p.1005)
“10월 혁명은 새로운 문화의 기초를 놓았다.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즉시 국제적 의의를 획득한 것이 이 새로운 문화다. 불리한 조건과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소비에트 체제가 일시적으로 타도될 수 있다고 잠시 가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10월 혁명의 지울 수 없는 자취는 인류의 미래 발전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p.1010)
러시아혁명은 군주제-농노제, 또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와 같이 당시까지 서구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정치·경제체제와는 다른 ‘단일정당체제-사회주의'라는 인간사회의 대안적 정치경제 발전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무대에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현상이었다.
소비에트 자치체제를 토대로 하여 노동자당과 국가가 주도하는 생산과 분배의 사회적 조직화, 그리고 역시 국가 주도의 인민 생활제도의 편성은 1914년까지 유럽에서 대세를 이루었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는 구조적으로 다른 사회조직 방식이었다.
독립적 개체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과 부를 추구하는 인간형은, 공동체와 집단 속에서 사회적 평등과 사회주의 조국의 수호를 당위로 여기는 새로운 인간형으로 대체되었다. 그것은 당대 자신의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대중의 불신을 자초하면서 지독한 불임 현상에 시달리고 있던 20세기 초반 서구 의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이념적·체계적 대안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유럽의 지배 엘리트와 부르주아들에게는 근본적 도전으로 다가왔다.
러시아혁명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반혁명 세력에게 자금과 무기를 대주어 러시아혁명을 공격했으며, 심지어 직접 자국의 군대를 반혁명에 동원했다.
20세기 말,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지구촌은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 체제가 정치경제 분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후 3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식 시장만능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별 격차, 국가 내 지역적 계급적 격차, 빈곤의 세계화, 전쟁의 일상화를 초래했다. 초국적자본과 기득권세력이 대의체계를 장악하여 전세계의 부를 독식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의회민주주의는 또다시 전세계 인민을 일상적인 전쟁과 빈곤의 지옥으로 밀어넣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전야를 방불케 하는 셈이다.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를 다시 읽는 이유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교양서가 아니다. 러시아혁명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자 교과서고, 1917년 당시 혁명의 광장에 참여했던 모든 민중을 위한 헌사이자, 그 전통을 잇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2017년 11월 11일]
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레닌,
볼셰비키,
사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