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공권력이 신뢰를 잃으면 사권력이 등장한다 <구월의 살인>

 

서기 1650년 초. 개구리가 얼음 아래서 깨어날 즈음. 조선 한양 도성의 한적한 골목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무관이었고 피해자와 동행하던 사람도 무관이었으나 그는 술에 만취했다며 증언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이 형조 판서의 행차를 가로막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강도 살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단순하게 처리되었던 이 기이한 사건은 당대 미제를 해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형조 좌랑 전방유의 손에 맡겨진 뒤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전방유는 피해자의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자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을 간파한다. 그는 왼쪽 가슴 아래에 십자 모양의 기이한 상흔을 발견한다. 범인의 수법이 예사 솜씨가 아님을 깨닫고 사건이 벌어진 그날 피해자가 걸었을 길을 되짚어보며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 마침내 입을 연 목격자의 진술, 피해자 자식들의 심증, 핏자국이 어려있는 쇠자루칼까지 모든 증거는 단 한 사람을 지목하지만 어쩐지 전방유는 진실이 먼발치에서 잡힐 듯 말 듯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다.

 

베스트셀러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별아 작가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뒷골목의 살인 사건에 작가 특유의 세밀한 상상을 더해 소설화한 열네 번째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을 출간했다. ‘역사 추리 소설’이다.

<구월의 살인>은 조선왕조실록 몇 줄에서 시작되었다. 효종이 즉위한 1650년 2월 27일자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도성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극을 여덟 줄로 간략하게 전한다. 노비가 주인을 ‘천하에 감히’ 죽인 살주(殺主) 사건이었다.

“살인 사건 이상의 무엇일 수밖에 없다”고 직감한 작가는 승정원일기에 실린 팩트에 상상력을 더해 작품을 만들었다. 번역률이 10%에 그치는 승정원일기 중 ‘구월 사건’을 다룬 기사 40여 건을 앞질러 번역해 읽었다.(일제에서 해방된지 73년이 지났지만, 승정원일기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매년 300~400조 원이 넘는 정부예산을 쓰고 있지만 500년 전 역사 사료를 아직도 번역하지 못하고 있다는 ‘수치스러운 진실’을 또다시 마주하는 순간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592년 임진왜란과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난지 12년이 흐른 뒤였다. 양란을 겪은 조선 사회의 혼란은 극심했다. 왕조와 사대부를 비롯한 권력자들은 백성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당연했다. 인류역사상 나라와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정치권력이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선의 지배자들은 달랐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사회와 문화는 오히려 보수화 됐다. 지배자들은 백성들을 더욱 억압했다. “주인과 노비의 구별, 남녀유별·차별, 적서차별 등 모든 것들이 심해졌다.” 정치권력이 흔들리자 경제/문화 권력은 피지배자들의 땅과 노동을 더욱 착취했다. 그것이 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삼정(三政)의 문란’이다.

 

정치권력은 백성들에게 형식적인 공정함도 제공하지 못했고 경제권력의 불의에 대해 보호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사적인 폭력도 늘었다. 당연히 백성들도 정치권력과 지배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고,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백성들 사이에 사적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팽배해지고, 검계나 살주계가 생겨 폭력배들이 조선 뒷골목에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노비 구월이 목숨처럼 사랑했던 남편은 “쇠뼈다기 우려 먹듯 부려지다가” 주인에게 사기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된다. “나는 그 때 너와 함께 죽었다.” 그런 마음을 먹은 구월이 반사회조직과 손잡고 ‘사적 복수’를 감행했던 것이다.

 

필자는 작가가 그려낸 17세기 중반 조선 후기의 사회상이 어떤 면에서는 21세기 대한민국과 닮아 있고, 다른 면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구월의 살인>의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면서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태”라고 설명한다. 왕조의 권력층이나, 지주/사대부라는 지배계급 그리고 상인과 백성 등 피지배계급 역시 똑같이 ‘이익만 ？i는’ 시대라는 설명이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21세기 대한민국과 다르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조선사회든 21세기 대한민국이든 그렇게 된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자.

조선의 조선시대 지배계급은 양란(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혀 대비하지 못했고 영토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기보다 자신들 목숨부터 살리기 위해 영토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갈 데도 없는 백성들은 낫과 돌을 들고 싸운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21세기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권력층들은 권력과 돈이라는 사리사욕에만 몰두한 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 언론과 재벌의 유착, 사법적폐와 관료적폐 등 수많은 해악만 끼친채 노동자, 농민, 빈민, 약자, 소수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자살률과 출산률 통계는 ‘희망 없음’을 숫자로 보여준다.

결국, 조선시대나 현대 한국이나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는 세태’를 먼저 만들어낸 자들은 지배계층이다. 권력자들에게서 희망을 잃으면 백성이나 국민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 결과가 ‘(모두가)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는 세태’를 만든 것이다. 공권력이, 지배권력이 백성과 주권자로부터 신뢰를 잃으면 사권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구월의 살인>은 이병창 교수가 운영하는 ‘이름 없는 독서회’에서 10월 27일 교재로 채택했다. 김별아 작가가 직접 독서회에 참가해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응답까지 해줬다.

 

[2018년 12월 15일]

김별아, 구월의살인, 이병창, 조선왕조실록, 공권력

[서평] 911 테러의 진실은 무엇인가? <제국의 꿈. 작전 911>

 

2001년 9월 11일, 뉴스에서 보이던 뉴욕 쌍둥이 빌딩 붕괴는 충격적인 장면이면서도 동시에 찜찜한 장면이었다.

건축설계사무소 근무를 거쳐 당시 부동산 회사에 종사했던 필자는, 그때까지 기술교육이나 책 등을 통해 건물이나 인프라 시설의 붕괴 그리고 폭파에 의한 건물철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뉴욕 쌍둥이 빌딩의 붕괴 장면은 전형적인 폭파공법에 의한 철거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남의 나라 일이라 그런지 그 뒤에 잊어버렸지만, ‘911 테러'는 항상 ‘음모’의 선상에서 떠오르는 사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서 ‘911 음모’를 내용으로 하는 영상(9/11-거짓에 가려진 진실 (September Clues - KOREAN subtitles) https://youtu.be/RJPBqbnJsfI)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9.11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책을 찾아보려고 했다.

독일의 저명 다큐멘타리 제작자인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의 <제국의 꿈>은 사태의 전모를 실증 자료와 관련자 진술, 정황 증거 등을 토대로 밝혀나간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9.11에 대한 미국 정부 발표의 ‘6하’ 가운데 ‘언제’ ‘어디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다시 묻는다. “과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우선 그는 테러범으로 지목된 19명의 행적과 경력 등을 추적한다.

이들은 ‘거사’를 앞두고 과속 단속에 걸려 딱지를 떼이고, 면허증을 제출하지 않아 수배되고, 술값 시비로 말썽을 피운다. 마트에 가서 대형 포장 면도크림과 콘돔, 로또복권을 구입한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사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상식에 기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과연 이들인가?’ 어쨌든 ‘그들’은 골판지 절단용 커트와 나이프 만으로 승객과 승무원들을 단숨에 제압하며 여객기 4대를 납치한다.

평범한 대학생이거나 1년차 남짓의 아마추어 비행 훈련생, 스포츠용 경비행기나 몰 수 있는 자가용 면장(PPL) 소지자들이었지만, 곡예라 해도 좋을 도심에서의 급경사 커브비행 기술을 선뵈며 자살 테러에 성공한다.

저자는 이들의 비행이력으로 볼 때 그 날의 ‘환상적 비행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비행술 전문가들의 증언을 빌려 설명한다. 월가에 거액의 판돈을 건 희대의 도박꾼이 당신이라면 과연 이들 ‘초짜’를 내세웠겠느냐는 것이다.

납치범들은 납치 항공기 탑승자 명단에 없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미국 정부는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FBI도 이들 테러범들의 테러기도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NSA(도청을 주임무로하는 감청 정보기관)를 통해 전세계 통신을 감청하는 CIA도 테러범들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정보기관은 테러가 일어난지 단 이틀만에 테러범 19명의 명단을 내놨다. 특히 이들 19명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엘리트 유학생들로서 대부분이 그동안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신상명세까지 공개됐다.

하지만 CNN이 항공사가 보관하고 있던 탑승자 명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들 납치범들의 이름은 탑승자 명단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추락한 항공기 잔해에서 발견된 시체 몇 구를 군병원에 옮긴 후 공개하지 않은 채 테러범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말았다.

펜타곤은 크루즈 미사일에 공격 당했다.

펜타곤에 자살테러가 있었다는 증거는 폭발이 다른 원인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폭파현장을 찍은 감시카메라의 사진에 나온 비행체는 여객기가 아닌 것으로 판독됐다. 파괴의 현장은 여객기가 충돌한 것치고는 규모가 너무 협소하며 펜타곤 뒷마당은 보통의 비행기 사고 현장과는 달리 비행기의 불시착 자국이나 파편, 잔해는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그을음조차도 없다.

사건 현장에 시신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시체는 폭발의 화염으로 거의 완전연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정부의 발표는 별로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법의학에서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판정을 보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데 미 정부는 초반부터 사건의 원인을 테러와 여객기충돌로 밀어붙인 흔적이 수두룩하다. 9·11사태와 관련하여 일종의 여론조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가 감시카메라의 사진을 판독하고 사건 현장을 연구하여 내린 결론은 크루즈급 미사일이 펜타콘의 비어있는 건물에 명중했다는 것이다. 펜타곤의 여러 건물 중 하필이면 빈 건물에 부딪혔다는 것도 조작의 가능성을 방증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여객기를 본 목격자는 펜타곤 측 증인을 제외하고는 없다. 목격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저공비행을 한 전투기가 펜타곤 청사를 향하여 크루즈미사일을 발사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AA77여객기에 대해서는 중도에 공중폭발하거나 바꿔치기 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저자는 사건 당일 여객기들이 이륙한 뒤 보인 기이한 행적들(저공 비행과 순간적인 실종, 항로 이탈 및 우회), 관제탑과 미군 사령부의 항공사고 대응 시스템 마비, 사고기 탑승 승객들의 전화 통화의 의문점, 납득할 수 없는 사고 현장 모습과 수습 과정, 승객 시신들의 행방, 블랙박스의 비밀 등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자신의 음모론을 정교하게 이어간다.

또한 항공기 4대에 장착되어 있던 블랙박스가 사라졌다.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한 항공기 2대, 미 국방부 건물에 충돌한 항공기 1대, 워싱턴으로 향하다 추락한 항공기 1대 등 4대의 항공기에는 총 8개의 블랙박스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들 블랙박스 중에서 회수된 것은 1개 뿐이며 이것 마저 현재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블랙박스는 심한 충격과 외부 압력 등에 견디게끔 대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어 항공기가 폭발, 추락해도 사라지지 않고 회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블랙박스 1개만이 회수되고 또 이것 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테러에 사용된 항공기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원격 조정장치로 움직여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1960년대 미 군부가 대 쿠바 전면전 도발을 위한 대통령 설득용으로 극비리에 입안했던 ‘노스우즈 작전’의 적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비행기 바꿔치기를 통한 자작 테러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미 제국의 자작 테러 전력들- 베트남전 확전으로 이어진 1964년의 통킹만 사건, 1898년 미국의 대스페인 선전포고의 발판이 된 전함 메인호 폭파 조작사건 - 등을 환기시킨다.

‘9.11 사건’는 그 배후세력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21세기 세계사의 출발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었다.

이 사건이 가져온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지구의 모든 국가, 모든 개개인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세계의 경제는 위축되었고, 중동은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개인의 자유가 제약되었다.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불과 수주 만에 미국에서는 '애국자 법'이 의결되었고, 몇 년 만에 ‘국내안전강화법’이 공포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당신은 위험인물이다. 우리는 당신이 알 카에다와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를 입증할 만한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미국인들을 그냥 구속·수감하기만 하면 되었다.

더 심각한 사태는 중동에서 벌어졌다.

911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한 미국 정부와 언론은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CIA와 FBI 등 관련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면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침공하였다.

미국 정부는. ‘테러 배후’라고 규정한 오사마 빈 라덴과 아무런 직접 연관이 없었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정부를 전복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수백 만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불구가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2000년에 ‘PNAC(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주만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미 9.11 이후에 실제로 겪게 될 모든 것을 예언했다.

PNAC는 1998년 무렵부터 ‘새로운 미국의 세기' 라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2001년에 출범했다. 이 전략가들의 희망사항을 열거한 목록에는 상당량의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열망을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에게 알렸다. 편지에서 그들은
1998년 1월 26일 무엇보다도 사담 후세인의 권좌 축출-나중에 2001 년 9월 11일 테러에 대한 반동으로 더욱 구색을 맞추게 된-과 유엔과의 급격한 관계 변화를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는 냉전 종식 이래 그 어떤 위협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을 중동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라는 불길한 예언을 했다.(PNAC 구성원은 리처드 펄, 부통령 체니, 럼스펠드 국방장관, 윌포위츠 국방부장관, 로드맨 국방차관보, 존 볼튼 보좌관, 아미티지 국무부장관)
 

2004년에 번역ㆍ출간된 이 책은 ‘음모론’의 논리정합성과 근거의 타당성 면에서 돋보인다.

독일에서는 350만 부가 판매됐고,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파일명 9.11―풀리지 않은 수수께끼>(WDR 방송)는 3회 재방영되기도 했다.

[2018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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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서평] 진리를 등불 삼고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불타 석가모니>

 

불타 석가모니라는 사람을 모르고 불교 사상이나 가르침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불타 석가모니의 경우처럼 그의 삶 이 곧 그 사상을 나타낸다면 더욱 그렇다. 그가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으며, 그 시대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가 곧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

불타 전기 중에서 법정스님이 선뜻 와타나베 쇼코의 책을 골라 번역한 것은 기존에 나온 전기서들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이전의 전기를 보면 대부분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데 치우쳐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에게 감히 접근할 수 없도록 우상화 또는 신격화시켜 놓았다. 한편, 어떤 것은 지나치게 실증적이고 상식적인 데로 끌어내리는 바람에 종교적인 상징성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요즘의 사고방식에 따라 너무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 때문에 종교의 본질을 놓치고 말았다.

<불타 석가모니>는  불교와 인도철학에 정통한 와타나베 쇼코 박사가 집필했고, 법정스님이 40대에 불임암에서 번역한 부처님의 전기다.

법정스님은 서문에서 “부처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필자가 <불타 석가모니>를 읽고 삶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책을 들고서 첫 번째 든 생각은 “책 내용을 내가 제대로 소화나 할 수 있을지..”였다.

법정스님은 와타나베 쇼코의 <불가 석가모니>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한 사람의 생애만을 조명하기 위해 쓴 편협하고 연대기적인 전기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와 그때의 사회상, 여러 종교와 사상계의 움직임, 나아가 석가모니에게 감화를 받아 그를 따르게 된 출가승단과 재가신도들의 생활 규범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종교적 활동을 통해서 형성된 불교 사상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따라서 스님은 “불교의 입문서치고는 아주 이상적인 입문서의 기능을 하리라” 여긴다.

<불타 석가모니>를 통해 필자가 평생 어리석게 알고 있었던 부처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석존은 석가모니(사캬무니)와 같은 뜻이다. 석가는 그 출신 종족의 이름이고 모니는 성자라는 존칭이다. 따라서 불타를 가리켜 '석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치 어느 도 사람이라는 뜻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타를 말할 때는 반드시 석가모니, 또는 석조이라고 해야 한다.

부처님은 ‘눈뜬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하는 존칭이다. 이 존칭은 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자이나교에서도 쓰이고 있다.
또 석존 이전의 아득한 옛날에는 다른 부처님이 있었으며, 미래에는 미륵 부처님이 출현할 것이라는 내용 등도 오래된 경전에 적혀 있다. 여러 경전에 의하면, 시방세계(온 세계)에 무수한 부처님이 있다고 한다. 이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동양과 특히 인연이 깊은 부처님을 석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불타 석가모니, 석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불타 석가모니>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먼저 그 전생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석가모니란 지금의 네팔 남쪽 국경 가까이에 있던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으로 훗날 부처가 되신 분이다. 그는 지금부터 2,500년 전에 그곳 왕자로 태어나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수행하고 서른다섯에 부처로서의 깨달음을 얻은 다음, 45년 동안 갠지스 강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편 뒤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제자와 신도들이 그의 가르침을 지키며 여러 나라에 전파했다.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 한국, 일본으로, 또한 티베트에서 몽골과 시베리아 등으로 온 아시아에 전해졌다. 현재도 아시아의 대종교일 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믿고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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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석가모니의 생애는 80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이란 과거의 숱한 생애를 거쳐 온갖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이루어진 공덕일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 중에 〈자타카 本生譚(전생설화)>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그 안에는 많은 설화가 들어 있다. “연등불에게 연꽃을 공양한 수메다라는 청년”이 석가모니의 전생이라는 설화다. 이 설화는 인도 등지에서 그림이나 조각이 소재로 쓰인 바 있다.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와타나베 쇼코의<불타 석가모니>는 450쪽에 달하는 총 3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장마다 부처의 삶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자타카>에 등장하는 그의 전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이생에서의 탄생, 성장, 결혼, 출가, 고행, 그리고 깨달음, 가르침, 열반에 이르기까지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부처의 전체적인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건들이 상세한 해설과 함께 영화처럼 펼쳐진다.

1장에서부터 8장까지는 태어나서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의 위대한 깨달음이 결코 이번 생에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생에서부터 쌓아 온 덕과 지혜의 결과임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전생 이야기가 먼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의식에 뿌려진 그 전생의 씨앗들이 작용해 어린 나이에 이미 삶의 본질에 대해 고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석가모니 생존시, 일반민중이 예전부터 믿어온 민속신앙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해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종교는 대부분 윤회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9장에서부터 12장까지는 안락한 왕궁의 삶을 떠나 출가한 뒤 당대의 유명한 영적 스승들을 찾아다닌 이야기이다. 또한 그들 밑에서 어떤 공부를 했으며, 왜 다시 홀로 이탈해 고행을 계속했는가의 풍경들이 그려진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로 자신에게 파고든 영혼의 질식 상태를 절감하였기에 그는 어떤 뛰어난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하더라도 쉽게 그들의 피상적인 이론과 수행의 경지를 뛰어넘는다. 그것이 그에게 운명지워진 고독이다. 그러한 사람은 무리를 떠나 홀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환영으로 나타나는 마라’(마귀)’이다. 이 마라는 곧 자기 자신이다.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이 기원전 6세기경 인도 사상계의 중심 과제였다.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통 해탈이라고 한다. 열반이란 말로도 쓰인다.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생사유전의 세계에 돌아오는 일 없이 아주 자유로와진다.

13장에서부터 16장까지는 부처로서의 새로운 탄생이다.

그는 자신과 모든 생명 가진 존재를 괴롭히는 생사의 윤회를 끊고 다시는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대지의 신이 그의 깨달음을 입증한다.

“‘무엇으로 인해 늙음과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단 말인가. 태어남을 원인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태어날까. 생존(有)으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생존하는 것일까. 집착(取)으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무엇으로 인해 집착하는 것일까. 갈망(愛)으로 말미암아 집착한다.
무엇으로 인해 갈망이 생길까. 감수(受)로 말미암아 갈망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감수가 생기는가. 접촉(觸)으로 말미암아 감수가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접촉이 생기는가. 여섯 가지 감각(六處)으로 말미암아 접촉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여섯 가지 감각이 생기는가. 모양과 물체(名色)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모양과 물체가 생기는가. 인식(識)으로 말미암아 모양과 물체가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인식이 생기는가. 현상(行)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생긴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현상이 생기는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현상이 생긴다.
이와 같이 인간 고뇌의 원인을 잇따라 차례 차례 거슬러 올라가서 살핀 결과, 모든 것의 근원에는 '무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무명에서 시작하는 이 사슬, 즉 무명-행-식-명색-육처-족-수-애-취-유-생-노사를 ‘십이인연(十二因緣)’ 또는 ‘연기(緣起)’라고 한다.”(174쪽)

17장에서부터 34장까지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른 부처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설하는 과정, 그리고 이 가르침으로 인해 북인도 대륙에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수행 단체의 형성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이며, 어떤 구도의 물결이 그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이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 줄 계율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치밀한 고증과 함께 설명된다. 사변적인 종교가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을 뒤엎고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는 사상가로서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다가온다.

“세존(世尊)은 산스크리트어로 ‘바가반’이라고 하는데, 인도에서는 불교 외에 다른 정신적인 위인에게도 사용하는 말이다. 불타도 같은 뜻으로 널리 사용해, ‘불세존’이라고도 한다. 서양 사람들은 불타라고 많이 쓰는데, 우리들 상식으로 불타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또는 다른 불국토의 불타도 있기 때문에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석가모니(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사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자료에도 ‘석가족의 불세존’(피프라바의 납석회) 또는 '석가모니'(아쇼카왕의 석주)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타마는 석존의 성인데, 불교 이외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호칭이므로 불교 신도들이 사용하기에는 부적당하다.”(185쪽)
 

마지막 35장부터 38장은 한 위대한 성인의 최후를 위한 장이며,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니르바나(열반)’에 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는 앞으로 교단을 어떻게 이끌어 가면 좋으냐는 제자 아난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난다야, 현재도 내가 입적한 뒤에도 자신을 등불 삼고 의지처로 삼아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진리를 등불 삼고 의지처로 삼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만이 수행에 열정을 가진 수행승으로서 내 뜻에 가장 맞는 사람이다.”

“계(戒律), 정(禪定), 혜(智慧)의 삼학(三學)은 모든 불교의 근본이다. 여기에 다시 세 항목
을 더해 보시(布施), 지계,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 지혜라고 한 것은 여섯 개의 ‘파라미타’(육바라밀六波羅密)로 알려져 있다.
유형, 무형의 선물을 주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보시), 곤란이나 욕됨을 참고 견디는 것(인욕), 올바른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정진)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삼학이 그 핵심이다.
이와 같이 삼학의 지혜에 의해 더러움에서 해방되어 해탈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표다. 더러움(이른바 번뇌)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욕망, 생존욕, 그릇된 생각, 무지의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396쪽)

불교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와타나베 쇼코는 불교의 근본을 ‘게으름 없는 정진’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부처의 마지막 유계도 이것이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할 말은 이렇다.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불타 석가모니>는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2010 문학의숲)에서 법정스님이 추천한 50권의 도서 중 필자가 44번째 책이다. 2011년부터 시작하여 8년째인데, 아직 50권을 완독하지 못했다..

 

[2018년 11월 25일]

와타나베쇼코, 법정스님, 불타석가모니, 불교, 해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