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뒤에 앉은 20대 후반정도의 커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크게 떠든건 아니었지만 소곡소곤한 대화는 아니었던지라
한숨 잘까싶어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로 있던 가는귀먹은 내 귀에 둘의 대화가 쏠쏠 들어오는 거다.
둘은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키작은 사람은 용서해도 뚱뚱한 사람은 싫다는 둥.
키작은거야 타고난거니 어쩔 수 없다해도 몸매관리는 본인의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어찌 들으면 타당한듯도 하지만 나는 순간 너희들은 너희 삶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가 질문하고 싶었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것, 결심만 하면 될것 같은 일들은 널리고 널렸다.
둘의 말투에서 적당한 대학을 나온 적당한 수준의 20대로 보였지만
그다지 대단한 지식을 갖춘 엘리트로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뭐 그리 잘난 스펙을 가졌기에 저런 어설픈 논리를 내 귀에 늘어놓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건 꽤나 살집이 붙은 나의 컴플렉스 탓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노숙인은 대체로 두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는데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조금더 나은 삶을 살겠노라는 결심을 하는 사람이 있고,
열심히 살았는데 자신이 삶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는 글을 쓰며
후자에 해당되는 느낌의 글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 글의 본문이랄 수 있는 글을 썼는데 그 사연이 또 참 구구절절하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나 인문학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은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는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
사람을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과 어려운 이들을 조금 더 따스하게 감싸안는 시선으로
그들의 삶의 단편들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문득 나는 어떠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인과 소주도 마셔봤고 그다지 그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것도 아니지만
그들을 대단히 안쓰럽게 보거가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 듯 하다.
결국 삶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는분이 노숙인에게 연극 초대권을 건냈다가 면박을 당한적이 있단다.
본인 주머니도 비어있었고 나름은 좋은마음으로 건넨거였는데
그에겐 그 연극티켓이 참을 수 없는 몰이해였던 셈이다.
물론 돈이 없거나 굶고 있거나 하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것은
'빵과 물'이겠지만 그들의 영혼의 허기를 달래 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와 당장 급한 물한모금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 지팡이가 인문학의 힘이라 믿고 있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전태일 평전을 노숙인들에게 나눠주고 전철 막차를 기다리다 좁은 공간에서 그 책을 읽고 있는
노숙인을 만나고선 그냥 지나친것을 후회하고 미안해할 정도로 여린 심성의 작가이지만
그들로 인한 상처 또한 많이 받았을텐데도 끊임없이 이해하고 그들의 손을 맞잡는다.
용기란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다른 이름...
마치 상처받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끊임없이 감수하고 인내하는 사람.
그가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책의 결론을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빅 이슈' 한국판 창간의 세가지 의미의 가장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나날이 각박해지는 사회분위기를 탓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를 탓하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의 각박함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되돌아보자면, 나 먹고 살기도 바빴다는 핑계가 있다.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끊임없이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라고 재촉하는
이런 인문학관련 책들이 있는한은 조금이라도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책을 읽은 시간만큼은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가슴아파했으니까...

상대를 살핀다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어떤 단면만을 보고 상대를 판단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일이다.
글쓰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라 주변에 시선을 끄는 인물이 있거나
혼자 심심할때면 이런 저런 사람의 캐릭터를 연구하는걸 좋아한다.
뉴스에 짧게 나온 사건 사고들을 가지고 혼자 추리를 하거나 스토리를 만들어보는것도 좋아한다.
앞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서 어설픈 반전영화를 보다가 뒤의 결말을 예상해 버리면 싱거워지는 경우도 많고
다음엔 이런 대사나 이런 상황이 나오겠다라고 예측하고 혼자 키득거리거나 울어버리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무언가를 앞서보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나는 지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는 어떤 기준이라는 것은 깊게 올바르게 잘 사용하면 지혜가 되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하거나 옳지 않은 판단을 하게 되면 편견이 되고 얕은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가장 좋은 대화법은 '듣기'라고 한다. 상대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대화상대인것처럼
상대를 진실되게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스눕의 첫 부분에 인용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30가지
성격유형의 묘사중의 때를 잘 맞추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처럼
때를 잘 못맞추는 사람(우리는 눈치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들은 대부분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관심있게 경청하고 바라보기보다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타인을 잘 관찰하는 사람이 '때'에 따라 지혜롭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그것이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수눕의 앞부분은 주변 환경이나 보여지는 모습으로 사람을 관찰하는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가짜 단서들과 고정관념, 옳은 판단을 반대하는 여러 요소들을 제시하고
그러한 것들 속에서 골라낸 단서를 구체화하고 통찰하는 기술에 대해 열거한다.
방의 정리정돈법이나 소품들, 쓰레기통, 원전하는 습관, 음악등의 관심사, 지역적 특성,
오션즈 파이브 등의 여러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스누핑의 올바른 방법과 매력에 대해 말해준다.

사람의 심리나 처세술을 기록한 책들을 좀 가볍게 생각했는데
수눕을 읽으며 그 전문성과 꼼꼼한 연구에 놀랐다.
물론 그 데이타를 다 안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갑자기 생겼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의 행동이나 그가 가진 소모품 등을 관찰력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발행인의 격려사에서 양해의 글을 읽으며 약간 반발을 느꼈었다. '2010 대표에세이'라는 부제에 대한 얘기였는데 제목을 선정하며 우리식의 나이와 서양의 나이의 차이점을 두고 토론끝에 태어나자 마자 낡은 이미지를 버리고자 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천상병님의 시중에 엄마 뱃속의 태아를 인정하는 나이인 우리 나이가 진짜 나이고 서양나이는 가짜라고 말하는 시가 있다. 그 짧은 시를 읽고, 태어나자 마자 두살 먹어버린 음력 12월생인 나는 늘 내 나이를 억울해 하고는 했는데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망설임없이 두살 더 얹혀진 나이를 말하고는 했다. 책을 읽으며 글쓴이들이 중년이상의 나이대가 많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해하기로 했다. 한살이라도 어리고 새롭고 싶은 그 마음이 살짝 보여서 슬쩍 웃었달까?

수필이나 에세이집을 많이 읽는편이 아니다. 한 때 유행하던 몰랑몰랑한 사랑을 소재로 했거나 그럴듯한 성공담, 채근담류의 글들을 돈들이며 시간을 쏟으며 읽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블로그 이전에 인터넷 상에 개인 홈페이지가 개설되던 때에 유행처럼 번졌던 요리, 영화, 사진 등 다양한 문화를 컨텐츠로 한 에세이들을 읽는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다니다보면 좋은 글, 현란한 플래시글을 요란 번쩍하게 장식해 놓은 곳들, 특히 남의 글을 출처도 없이 자신의 글인 마냥 올려 놓은 곳은 질색이다. 차라리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들이 현란하고 예쁘게 다듬어진 문장보다 내게는 멋지게 느껴진다.

50인의 수필들을 모은 [하느님의 손도장]은 작가들의 연령대가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다양한 연령층의 조금은 부족한 듯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보여줬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연륜이 보이는 지식과 생각들, 감성들이 묻어 있지만 나보다 연배가 높은 어른들과 자리해서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하고 입다물고 하는 하품처럼 지루한 감이 있다. 애써 유학까지 보내놓은 아들의 풋사랑을 괘씸해 하면서도 남자가 되어가는 아들을 자랑스레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나 주어든 박스보다 더 험한 몰골의 노인을 보고 전생의 오라버니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마음들이 재미없다는 말로 단정되어질 만한 것들은 아닐 것이다.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있는 마음이며 글들이다. 다만, 감춰야 하는 은밀한 속살 배꼽을 내놓은 미용실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있다면 또 창조주가 처음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죄를 짖고 선악을 구별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부끄럽게 생각한것이 자신의 나체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글들이 많고 더 많은 세월을 앞서간 이들의 잔잔한 훈계와 고뇌, 생각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조금더 상호간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젊은 시선을 담은 글들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