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 안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묘한 '모순'을 느낀다. 그는 항상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죽이는 소설을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가 지금껏 써왔던 글과는 다르면서 또 매우 닮았다. 다른 것은 기존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띠지 않는 다는 것이고, 닮았다는 것은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 범인을 미리 밝히자면 그것은 우리 가슴 속에 숨어있는 '선한 의지'이다.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흔적이 내 인생이 아닌 다른이의 가슴에 남겨지는 것이라면 누구든 좋은 추억이길 바랄 것이다. 선한 원칙을 품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가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의 심장에 생채기를 낸다. 돌이킬 수 없다면 그것을 예쁘게 포장이라도 하고 싶은 이들은 펜을 든다. 나미야 잡화점에 자신의 고민을 적어 놓고 그것은 나의 진심이 아니었음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나미야 잡화점이 부활하다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창구가 부활합니다.
누군가를 상담했던 사람이 가장 궁금한 것은 뭘까? 당연히 상담 받은 사람이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였는지와,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이다.
그렇다면 상담을 받았던 사람이 궁금한 것은 뭘까? 그것은 상담하는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와, 그것이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이다.
이 소설의 플롯은 그런 궁금증을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는 공간을 매개로 일순간에 정리한다. 고민을 말하는 사람은 과거에서 하는 것이고 답을 하는 사람은 미래에서 한다. 고민을 말한 사람이 30여 년을 사는 동안 그 앞서에 살고 있는 상담자는 답을 내려준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하나의 공간적 축을 토대로, 시간적 흐름은 선후관계로 미세한 영향을 끼치며 순서를 놓는다.
과연 그 답장이 상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어. 어쩌면 내 충고대로 했다가 어처구니 없이 불행해진 경우가 있을 게야. 그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참말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더 이상 편히 답장을 쓸 마음이 나지 않았어. 그래서 가게를 걷어치웠다.
Back to the 나미야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간 세 명의 아마추어 도둑들은 그곳에서 '과거'의 고민 상담 편지가 날아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친구를 둔 펜싱선수, 음악의 꿈을 이루고 싶은 삼류 뮤지션, 부모님의 야반도주에서 도망친 비틀즈를 좋아하는 학생,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인.
이들은 각자의 고민으로 괴로워 하면서 나미야 잡화점에 답을 바란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거기서 답을 해주는 사람은 나미야 할아버지가 아니라 세 도둑들이다. 이들은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며, 눈물 흘리며 상담받는 이들에게 오히려 감사해 한다. 표면적인 공간축이 '나미야 잡화점'이라면, 추상적인 토대는 바로 환광원이다. 이들은 시간의 벽을 허물면서 그들이 결국 하나의 운명체로 엮여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생각의 여지를 제공한다.
세 도둑이 답하는 고민 상담 내용으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까지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이다. 모든 것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나비효과가 되어 주변을 혼돈에 빠뜨린다. 우리 삶이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라면, 그 다음은 결과와 책임의 시간이다. 여기에 나오는 그 어떤 등장인물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데, 그것은 바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큐빅같은 이야기
누구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낮은 탄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독자는 큐빅의 네 면을 맞추고 있다보니 어느새 나머지 두 면이 완성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의 놀라운 기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놀라움과, 바라지도 않았음에도 완성시킨 하나의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다. 다섯 개의 면으로 구성된 '나미야 큐빅'은 이 글의 주인공 세 도둑들이 조각을 맞추는 순간 독자에게도 동일한 크기의 쾌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장에서 바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다시 한번 완벽한 스토리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에대한 희망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