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나긴 시험기간을 보내는 중이었고, 가끔씩 몰리는 일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의 탈출구를 찾아 급하게 집어든 오쿠다 히데오의 책 오, 해피데이! 익살스런 표지 덕분에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얼굴에 미소가 띄었다. 이 책은 단편으로 총 6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담담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제가 가족을 배경으로 나지막하게 흘러간다. 오쿠다 히데오의 진면목은 장편'스무살 도쿄'를 읽은 다음부터 알았다. 그의 필력은 사소한 소재를 재미있게 만들며, 어떤 이야기든 누구에게나 재미있고 기분 좋게 다가온다. 하루에 한 단편씩 일주일동안 읽으려고 생각했으나... 그의 흡입력 덕분에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왜 시험기간만 되면 책이 더 땡기는지 알다가도 모를일;
여기가 청산 - 성(性)의 구분이 젠더화 된것이 의례 당연시 되면서, 우리 사회에 기존과 다른 남녀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하는 여성은 자기주도적인 '커리어우먼'이라 불리고, 이전까지는 부끄럽게 여겨졌던 남자의 눈물도 이제는 '감정의 풍부'로 이해가 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유스케는 어느 날 갑자기 일하던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만다. 그의 아내는 쿨하게도 자신이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 복직을 할테니, 당신은 아이를 돌보라고 한다. 사실 아내 아쓰코도 아이를 낳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 여기던 차, 남편을 대신하여 직업전선으로 나간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유스케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가정적인 면을 알아간다. 아니, 오히려 즐거워한다. 이들 가족 구성원은 이러한 변화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로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는 내가 굉장히 공감이 갔다. 난 일도 좋지만 개인적인 취미에 있어서는 요리, 제빵, 악기연주 등 기존에 '여성의 것'으로 여겨졌던 일들에 흥미가 있다. 대학 1학년 때는 정말 하루에 3~4시간씩 피아노 학원에 들러붙어 1년을 보냈을 정도이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고대 혹은 중세사회, 생존을 위해 상대적으로 강한 힘이 필요했던 시대는 이미 옛날에 마감을 했다. 현대사회는 누가 '얼마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가'가 가족 운영(?)에 있어서도 화두이다. 현모양처, 현부양부 상당히 좋은 뜻을 의미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매력이 없다.
아내와 현미밥 - 로하스를 비롯한 웰빙열풍이 2000년대 이르러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친환경 혹은 에코라는 단어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듣게 된다. 주인공인 작가 아스오는 어느 날 갑자기 N문학상 수상을 하며 거금의 돈을 얻게 되고, 아내 사토미는 이제껏 꿈이었던 '로하스적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식단은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은 일체 올라오지 않게 되고 밥은 무조건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현미밥으로, 친 환경적으로 구성된다. 아내와 이웃들에게 요가를 권유받는 등 강요되는 웰빙이 주인공은 싫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아스오는 코믹소설화 하였고, 소설을 읽어본 듯 한 아내의 냉담한 태도에 주인공은 당황한다. 과연 그는 어떠한 선택으로 위기를 극복할까? 웰빙이라는 단어에 숨어있는 풍자적 요소를 꼬집음으로써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에게 '결국 이것도 돈 있는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일격을 가한다. 기존의 상품보다 몇 배는 비싸면서 무 농약 식품을 먹으면 마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정화될 것 이라는 착각을 작가는 비판하고 싶었나보다. 사실 이 단편의 주제는 가족 간의 의리로 따뜻하게 결말을 맺지만, 이러한 위트적 요소는 누구나 한번쯤 위선이라 경험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웰빙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무언가가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일상 속에 소소하게 지나가는 일들에 놀라운 관찰력을 발휘해 작가는 그것을 '가족'으로 재구성하였다. 가볍고 쉽게 읽히지만 마음에 위로와 안정을 주고 행복하게 하는 이러한 재미가 일본소설에 매력인 것 같다. 언젠가 이 소설들에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 거리를 걸으면서 오늘의 이러한 느낌들을 회상해보고 싶다. 오, 해피데이! 담백하고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