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나니 뭔가 상쾌했다. 그러나 내가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기억이 안난다. 책 뒷편에 공지영, 박경철, 강풀 님 등의 추천사가 써있어서 였는지, 아니면 대학생으로써 약간이라도 정치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의무감때문 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정치, 참 다른 나라 이야기같다.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이니 TV를 틀면 뉴스에 으레 나오는 각종 소식들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것 같지도 않다. 그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동안 대학생들은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고, 안과 밖을 넘나들며 스펙에 열중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 서로 단절된체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나만 그런걸까? 아니면 20대 대부분이 그러는걸까?

 

 진보와 보수사이의 첨예한 갈등. 그들이 무얼 하든지 나와 상관없으므로 아예 신경을 끄고 살았던 사이에, 이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책의 주제는 오늘날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는 이명박정권의 보수세력을 비판하고, 앞으로 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는 진보세력이 집권해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담화문이다. 통일, 권력, 교육, 주택, 국제관계 등의 테마를 넘나들며 알기쉽게 풀어낸 정치내용들이 지난 나의 무관심한 모습을 가차없이 흔들었다. 좌파건 우파건 파를 나누는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인간답게 잘 사는게 중요한데, 현재 보수정권이 하는 행태들을 보면 내가 누구의 편을 들어야하나라는 선택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정치가들에게는 지성과 덕성 그리고 야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야성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위해 저돌적으로 돌격해나가는 힘과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사고방식이다. 이것에 염증을 느껴 매일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정치판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비웃었는데, 결국 그 비웃음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등록금, 취업율, 최저임금 등이 내가 무시하고 있던 그들 손에서 나도 모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만 하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도 일정 책임이 있다. 88만원 세대가 되기 두렵다는 생각에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수험서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 현실에서, 작년 고려대 김예슬양의 자퇴선언은 그 기개를 높이 살만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앞 길이 그리 순탄지 많은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러한 대학생의 몸 사리는 모습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 들이다. 입장을 한 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스펙이니 뭐니 별짓을 다해도 인턴 하나 건질까 말까인데, 여기서 더 또 무얼 요구한단 말인가. 취업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던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긴 하나, 진보정권 시기에는 그나마 숨통이라토 트였지 현 보수정권에서는 숨통은 커녕 하루하루 살아남는것 자체도 기적이다. 진보는 진보답게 매력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할 필요하고 있고 대중을 사로 잡아야 한다. 위에서 국가보안법이 어쩌고, 종부세가 어쩌고 하다가 그 사이에 20대들은 남아나질 않는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중간중간 생각을 하면서 읽게되니 시간이 꽤 걸렸다. 중도좌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가치관을 나에게 수혈해 준듯 하다.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 상고나온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할 수 있냐고 비난하던 선생님과, 대통령도 시험으로 뽑아야 한다는 숨막히는 발언이 생각난다. 나와 견해가 다른 의견들을 보면 한동안 심사숙고 해야 이해가되는걸 보면 나도 아직 멀었다. 작년 6월 지방선거때 집 주소지가 현 거주지가 아닌 관계로 집까지 가기 귀찮아서 그냥 쉬고 말았다.(알고보니 집까지 안가도 여기서 선거할 수 있더라) 주변에 투표를 하는 친구에게 '넌 투표를 왜 하니'라 물어보자, 그 친구는 '투표를 하고 안하고는 의식의 차이야'라 말했다. 그 때 그 친구가 괜히 잘난척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맞다. 그건 의식의 차이였다.

몇 년 전'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읽은 후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칙릿(chick-lit)소설이다. 사실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백영옥 작가가 최근 '아주 보통의 연애'를 출간하며 화제가 되 접하게 되었다. 문득 작가의 프로필을 검색하던 중 '스타일'이라는 도서가 1억원 고료의(!)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집어 들었다. 알고보니 작년 TV에서 방영된 같은 제목 드라마의 원작이라고 한다.

 

 칙릿소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의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소재로 한 분야로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지만, 자칫 '된장'이라는 형용사가 붙을 위험도 있다. 패션에 대해 문외한 내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들어본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이름은 굳이 내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화려했던 소설의 배경 때문이리라. 패션 잡지기자인 '서정'은 매일 기사와 섭외로 날밤을 세우며 하루를 전쟁치루듯이 살아간다. 작가가 전직 패션잡지 기자시절의 경험을 담았다고 하는데 소설에 소개된 내용들이 100% 사실이라면, 패션이나 엔터테이먼트 계열의 잡지 기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소위 능력자 들이다. 기자나 작가라고 해서 절대 고상히 책상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우아하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등장인물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직장 선배와 동료 사이에서의 갈등과 특히나 연예계에서 쉽게 떠돌아다니는 각종 가쉽거리가 얼마나 치를 떨만큼 치명적이고 또 혐오스러운지도 잘 표현되어있다. 전개중에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도 배치했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특징을 꼽자면 '사회적 트렌드란 이것이다'라는걸 보여주는 듯하게 알듯모를듯 동성애적 코드도 살짝 가미한 것이랄까. 결국은 모든 오해와 사건들이 잘 해결되고 해피엔딩을 맞는 전형적인 칙릿-연애소설이 법칙을 따르지만, 이를 콜라처럼 톡 쏘듯이 통통튀는 문체로 잘 표현했다. 가끔 여 주인공이 80년대 신파극을 찍는것 마냥 비운의 과거와 운명의 히로인 행세를 해 다소 어색하면서 식상한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이는 한 번 눈감고 넘어갈 정도는 된다. 책의 한 구절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기사 딸린 차, 회사에 비치된 꿈의 옷장, 시골뜨기를 단박에 패셔니스타로 만드는 위대한 동료애 등은 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다.'란 표현이 있는데, 뭐 결국은 주인공인 '서정'도 일도 얻고 사랑도 얻어 다 잘된편이니 이를 비판할 처지는 되지 못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자다가 봉창 두들길만한' 판타지적인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이 욕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프라다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과 제 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싶은 선량한 욕망을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 앞서나가고도 싶고, 같이 나가고도 싶다.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것이 가져올 장점과 단점의 무수한 결과를 저울재듯 측정하면서도, 막상 하라고 하면 망설여지는 이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선과 악, 서로의 욕망끼리 화해를 위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후기가 공감이 된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다행히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외부'로 표현되는 장식품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무조건 편한 청바지와 후드티만 고집하는 나의 취향은 일찌감치 주류계에서 매장 당했을 것이다. 굳이 화려함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해주는 스타일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완성되면 완성된대로, 미완성이면 미완성인대로 나름의 매력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다.

2008년 우연치 않게 인터넷 서점에서 지식e 시리즈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당시 2권까지 출간되어 있었는데 한 번 본후 feel이 꽂혀 지금까지 애독하고 있다. 1년에 1권 꼴로 출간되는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참 ebs와 친해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답답하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깨주었으며, 이후 ebs 다큐멘터리에서 출간되는 도서들도 다 보지는 못해도 제목정도는 확인하는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주제는 무겁다. 내가 모르던 인물과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들을 발견하게되 상식이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하나, 읽는 내내 묵직한 무언가 때문에 숙연해지고는 한다.

 

 眞, 善, 美 3가지 테마로 각 10가지 소재를 다루었다. 우선 眞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나 사건에 감추어진 또 다른 이면, 善은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 美는 꿈을 이루고 편견을 뛰어넘기 위한 아름다운 도전을 담았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에 숨겨진 또 다른 정치적 야욕(실제로 그는 노예해방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정치 권력관계와 민심을 얻기 위한 의도 등이 수없이 얽혀있다.)을 보고는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빌 게이츠가 상속세 폐지 반대 등 부의 사회적 환원을 중요시 하면서도 경쟁사를 무참히 짓밟는 모습을 보면 다소 모순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6권을 통해 처음 알게된 인물은 바로 '조르두 상드'였다. 이는 필명으로 당시 프랑스 여성은 출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성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자유연애의 대표주자, 여자 카사노바 비슷한 격이다. 일생동안 사랑과 우정을 나눈 남성이 2천명이 되고 그 중에 뮈세, 쇼팽을 포함해 나중에는 아들의 친구까지 범접(?)했다. 시인 뮈세와 교제하던 중 그가 병에 걸렸을때 그를 간호하던 의사와 사랑에 빠진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90여편에 이르는 소설과 250여 편의 저작을 남긴 그녀는,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당시 제도와 규범을 조롱하며 예술, 육체관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연애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 남자가 많은 여자를 알고 있으면 '능력있다'라 표현하고 여자가 많은 남자를 알고 있으면 '헤프다'라고 우리는 보통 생각한다. 이 이유는 생물학 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건지 아니면 우리의 선입견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다. 읽으면서 나도 '작가로서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생활은 문란하다'라 생각했는데,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내가 느꼈던 거부감이 과연 지금과 같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참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녀와 같은 자유분방한 연애가 제 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본인 또한 즐겁다면 굳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뭔가 어색하다라는 생각이 드는건 나의 고정관념인지, 아니면 1부 1처제라는 대부분 현대사회의 제도와 상반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소재는 바로 'Post Secret', 이름하여 비밀엽서 프로젝트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솔직하고 개인적인 비밀을 엽서에 적어 주최사에게 보내면, 관리자들이 이를 익명으로 웹 사이트나 책에 실어 공개한다. 익명이기 때문에 정체가 탄로날일은 없으며, 개인의 카타르시스 해방 및 타인의 비밀을 보며 공감할 수도 있다. 자살방지를 위한 공로로 인정받아 상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간단한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함축된 의미는 뛰어나다. 내가 나의 비밀을 적으면서 본연의 나와 마주하게 되고, 익명으로나마 세상에 공개할 용기 또한 가지게 된다. 개인의 아픔과 상처도 혼자 꾹꾹 삼키기보다는 어느 수단으로나마 외부에 표출하게 되면 심리치유적 효과를 가지게 된다. 우리 옛 속담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내 속에 살고 있지만 차마 표현하기엔 힘든 비밀은 무엇일까? 나를 이해할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어쩌면 내가 이 출구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운이 좋아 지식채널 제작진분들을 직접 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주일 2편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밤을 원고와 씨름하고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프로'라는 생각을 했다. 항상 신선한 소재를 구하려고 자료탐색과 시청자와의 소통에 특히 신경쓰신다고 하는데 , 이제 약 6년이 다 되어가는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세상은 돌고 돈다. 내가 이분들에 노력에 힘입어 많은 감동과 가슴을 울리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점차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고 싶다. 언제일지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 4학년, 뭔가 슬슬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