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의 모모,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손에 든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렸을적 재미있다는 말에 '어린왕자'를 읽었다가 당최 이해가 안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어, 동화라는 말에 그저 듣고만 넘겼던 탓일 것이다. 책 뒷편에 적혀진 '초등학교 5학년부터'란 말에 걸맞게 가독성, 흡입력, 삽화 등이 아기자기하고 보기 좋았다. 시험기간에는 중독성 있는 책을 보면, 공부는 제쳐두고 이야기의 결말을 알기 위해 우선 책을 파고들기 때문에 다소 위험하다. 그러나 난 이미 걸려들고 말았다.
남들보다 앞서가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은 최고만 기억한다 라는 경쟁적인 말을 이제까지 그냥 흘려들었다면, 대학 4학년이 되고나니 말에 뼈가 있다는것을 실감하게 된다. '잘 될꺼야'라는 희망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며칠 전 학교 모의면접 대회에 참가했었다. 실제 면접에 참가했다는 가정 하에 옷도 차려입고 면접에 임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스펙상으로 너무 완벽했다. 하루 일과가 어떠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저는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 폰으로 외국 바이이어게 온 이메일을 체크하고 회신합니다. 오전에 회화스터디를 참여하고 수업에 들어가며, 오후에는 무역증진협회 사업 검토 및 계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글로벌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 해외변역봉사도 하고 있으며" 등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명 정답일것 같은 이 질문에 난 왜 이렇게 숨이 막혔는지 모르겠다. 그 분에게 당장 달려가 이 책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었다.
회색신사는 항상 더 많이 가지고, 남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함을 강조한다. 분명 나쁜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 과정에서 '사람'을 배제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된다. 저자도 시간을 담보잡힌 많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주며 이를 경고했다. 책이 쓰인 1970년은 한창 포디즘이 활기를 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인 사회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토록 앞서가면, 그토록 위로 올라가면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업중 삼성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부자들의 삶이 그리 평탄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카이스트에서 자살사건이 유독 많이 발생한 이유도, 난 모르겠다. 그러나 짐작은 간다.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어쩌면 이리 재미있게 풀어냈는지 저자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귀여운 소녀 '모모'를 내세워 시간의 의미를 파해치는 작업을 놀랍게 수행하셨다. 책의 세번째 장, 아이들이 가상으로 배를 타고 탐험하는 이야기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생생했다. 이럴때 보면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은 정말 타 분야에 비해 이뤄지기 힘든 분야인것 같다.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보는 가치를 아이의 눈에서 재구성해야 하고, 어른이 아이의 순수한 시각을 표현한다는 자체가 고난이도의 지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활용은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생을 마감할때까지 그때그때 풀어야하는 숙제이자 축복이다. 합격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감수하고 노력에 임하는 고시생, 승진을 위해 모든걸 저버리고 준비하는 직장인들, 모두 각자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이 지금 과정에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함께하는 삶이면, 서로 웃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