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그의 전작 '악기들의 도서관'을 어느 잡지 추천사에서 보고 읽게 되었다. 그 후에도 그렇게 많이 이름을 접해볼 수 없어서 '소작하는 작가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알고 보니 집필활동이 활발한 작가이더라. 김중혁 작가의 이번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는 100% 제목에 이끌려 읽게되었다. 칼과 자로 재단하여 인생에 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살려고 하는 그런 태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여유와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삶의 스펙트럼에 빈칸을 마구 만들어 그 사이사이를 '사람'들로 채워 넣고 싶었다.

 

 책 자체도 연말연시인 요즘 휴가를 보내며,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며,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가볍게 술술 읽기 좋은 내용들이다. 저자가 이마 유명한 작가반열에 들어선 인물인데, 그가 '열심히 살라'가 아닌 '뭐라도 되겠지'라 말하는 그 진심이 궁금했다. p.27 '...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고 나까지 급해질 필요는 없다.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주름을 만들듯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성공과 나 자신의 행복 또는 자아찾기 사이에서의 합일점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막막하게도 출발점과 목표점을 모르니 길을 찾는게 쉽지만은 않다. 이런걸 찾아 나가는게 인생의 숙제인걸까? 한 템포 쉬면서 안단테, 안단테...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뭐라도 되겠지.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카툰들이 감초역활을 하면서 책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마치 광수생각처럼 간단명료하면서도 위트있어 저자의 집필방향에 더욱 흥미가 갔다. 겉모습을 우락부락한 나름 중년의 아저씨(?)이지만 속은 영락없는 청춘이신것 같다. 어른인 척, 멋있는 척 하는 글쓰기가 아닌 솔직담백하게 쓰여진 글이라 내용이 더 잘 와닿았던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난 소음에 민감한 편인데, 책에 수록된 내용 중에 저자가 겪은 소음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약간 안쓰러울 만큼 그의 아킬레스건이 이해가되었다.

 

 p.73 '내가 생각하게에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야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2012년을 시작하는 그 첫째날 이 책과 만난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길, 인생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방에 가는 KTX가 아닌 길가에 핀 꽃들을 보며 감상에 젓기도 하고, 우리 주변의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며 걷는 그런 길이 길 바래본다.

우리학교 정책일환으로 시행되는 독서모임 프로그램, 그 두 번째 책이다. 출간된지 5년이 지났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만약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더라면 인연이 없었을 뻔한 책이다. 그러나 지금 이 책을 만난건 큰 우연이자, 평소 읽던 도서들과 다른 느낌의 책이었고 게다가 흡입력이 강해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여기에선 사랑, 우정, 행복 등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요 소재는 '심토머'로 정상인이 아닌 기괴한 현상들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시간을 건너뛰는 사람, 손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엄청난 시간동안 자는 사람, 자신의 분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 작가는 소위 말하는 이런 화성인들이 지금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읽는 내내 감탄했던건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었다. SF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마치 정말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다루었다. 이런 특이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루어, 작가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가에 대해 나름 생각해보았다. 복잡한 현대사회가 사람들을 황폐화시킨다는 비판일까, 인류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까 아니면 이러한 '심토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다양성에 대한 눈을 키워주기 위한 것일까? 소설 후반부에 가면 기록을 지키고자 하는 자와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자의 첩보전이 약간 가미된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와 열린 엔딩에서 결국 길을 잃고 말았지만, 전체적으로 사회에 있는 그 특이한 사람들을 만들어낸게 결국 '우리'므로 타자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을 가지지 말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소설 앞부분에서 인용된 예가 말하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대부분 이야기를 진열하고 제공해주는 역할을 중심으로 한다. 다소 소극적인 역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소설의 제목 '캐비닛', 이제는 주인공 스스로 '캐비닛'이 되면서 이 화려한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아직도 캐비닛이 특이한가? 그러나 이것은 보통의 사무실, 학교, 관공서, 병원 등에서 매우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나 혹은 당신의 기록을 가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의 작가가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뒤의 인터뷰를 보면 그리 평탄한 삶은 살았던 인물은 아닌 듯하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소설 창작의 주요동기는 상금이었다. 너무 물질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원래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창작이 되지 않는다는 어느 누군가에 말에 나는 동감했다. 어느 유명 배우, 소설가도 '사람이 제일 능력을 잘 발휘할 때는 바로 돈이 필요할 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생활 필수적으로 소설이 필요했기에 그 만큼 절실하고 양심적으로 썼다고, 게다가 '책 한 권 값이면 삼 인 가족이 맛있는 자장면으로, 게다가 서비스 군만두도 곁들여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이 자식아!'라며 독자는 저자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갈등이 있을 때 꼭 해탈이나 구원처럼 해결하고 또 되는게 아니라 웃음으로 그걸 견디는 것도 중요하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이 문득 생각난다. 그래 소설이 꼭 정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잖아!

신경숙 작가님이 집필한 지난 8년간의 단편집! 이미 '엄마를 부탁해'로 국내에 '엄마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해외 31개국으로 번역, 소개된 작가 신경숙님. 그녀의 작품이 미국 아마존이 선정한 올해의 문학 best 10 안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아무연고 없이 그저 한국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다 설레였다. 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보게된건 내가 초등학교 때 집안의 책장 사이에 꽂혀있던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책에서 였다. 그 후 중학교 때 개인적으로 따랐던 선생님이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 바로 신경숙 작가님의 책이라 하시길래 다시 한 번 기억에 남았고, 결정적으로 내 뇌리에 박힌 건 바로 '엄마를 부탁해'였다. 이 소설이 내가 처음 읽은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2008년 겨울이었을 거다. 한창 군 생활하고 있을 당시 적어도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마음까지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소설집은 '모르는 여인들'을 포함해 총 7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수록된 첫 작품 '세상 끝의 신발'을 읽을 때부터 이 책이 신경숙 작가님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을 문체나 분위기를 통해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속 이야기들은 모두 상실과 죽음을 내포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소 어두울 수 있지만, 현재 이 을씨년스러운 사회 분위기와도 얼추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도 적혀있듯이 그들은 이 세계의 중심부이기 보다는 주변 인물들에 가깝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만큼 정겹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그들이 겪는 일상의 사건들이 가슴 아프기도 때로는 위로를 보내주고 싶기도 했다. 특별한걸 원하고 모두 1등만을 바라는 요즘,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더욱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계인손 증후군, 살인과 같은 생소하고 자극적인 소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작품에서도 결국 말하고 싶은 건 너무나 기본적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관계, 회복, 사랑 그리고 치유였다.

 아직 이 작품들을 완벽이 이해하지 못한 건 나이를 덜 먹어서 일까, 아님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일까? 다소 난해했던 문장과 일부 줄거리가 맨 뒤에 실린 작품해설을 보고나서야, 무릎을 치고 '아! 이런 내용을 말한거 였구나'하고 감탄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작품해설이 실린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들이 있는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하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예술영화를 보고, 전문가가 말해주는 해설을 듣고 나서 그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거라 하겠다.

 

 남들이 연예인을 보고 열광할 때 난 작가들을 보고 열광한다. 대중연예는 상업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문학은 우리 삶과 관련되어 있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프로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는 것일까... 이것도 내가 성숙해지고 좀 더 많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건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니 꼭 알지 못해도 이번 작품처럼 굳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인 일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행복은 멀리가 아닌 가까이 있는 그 소소한 무언가에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문학·책, 모르는여인들, 신경숙, 문학동네, 단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