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책의 표지는 신화와 딱 맞아 떨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의 여신 그림이었다.
가까이 들여다 본 그림은 새로운 상상력이 마구 입혀진 기발한 여신의 모습이다.
신화와 과학을 조화시킨 이 그림은 또 다른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이 책 서두에 작가가 중국의 첫 달 탐사위성 ’창어’를 언급하면서 중국전설과 관련성을 이야기하기에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과학칼럼을 연재해왔던 작가의 이력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서양의 신화를 종횡무진 들려주는 책을 읽어 가다 보니
강줄기가 흘러 흘러 바다로 모이듯 역사, 과학, 음악, 미술 등 문화의 각 분야를
깊이 파 들어가다 보면 결국 도착하는 곳 그리고 시작점 또한 신화인 듯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신화 외에 중국신화, 북유럽신화, 인도신화 등 세계의 신화를 들여다 보면서
신화에서 비롯된 상상과 호기심의 씨앗이 과학의 발명을 이루어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신화에 묘사된 과학기술 중 현실화된 내용을 뽑아서 보여줌으로써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유비쿼터스라는 이름으로 과학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있다. 과거 상상으로만 그려지던 미래가 오늘의 현실이 되어있으니
신화를 따라가 본 여행은 결코 과거의 옛이야기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새삼 놀라기도 했다.

태초의 거인족을 이야기하면서 거대유골의 발견을 뒤이어 현 인류의 키의 진화과정을 들려주고
침대에 맞춰 사람들의 팔다리를 자르거나 늘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이어지더니
의학 성장 호르몬 이야기까지 마치 수업 중에 자꾸 샛길로 빠지는 선생님의 이야기같다.
주 수업인 학습보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훨씬 기억에 남고 재미있듯 신화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읽는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인간탄생신화로 시작한 이야기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대장장이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탈로스,
동서양의 전설에 나오는 인조인간이야기에서 인간이 창조한 피조물 로봇의 이야기로
신화에서 과학이나 역사로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져
어~언제 신화이야기에서 과학으로 넘어갔지 하며 순간 놀라게 된다.
아시모와 휴보 등 인간로봇의 발전을 이루어낸 현대과학에서 인간을 능가할 로봇의 탄생을 예견할 수 있기에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많은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로봇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도 부정적인 비판도 아닌 작가의 말은 ’예측불가능’이다.
신화는 또 컴퓨터 세대를 반영하는 대표용어 ’아바타’에도 인도의 탄생신화 비슈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인도 비슈누 신과 제우스 신의 변신술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이식수술의 한계와 생명연장과 인간윤리의 양면성을 띠고 있는 머리이식에 관한 쟁점까지 막연한 미래과학의 한 분야로 인식돼 온 냉동보존인간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의학정보를 바탕으로 한
실현가능성에 대한 분석도 꼼꼼하게 읽을 수 있다.
태양마차를 끌다가 죽은 오빠를 슬퍼하며 흘린 눈물이 보석이 된 ’호박’
호박 속에 발견된 멸종생물의 DNA 그 상상력으로 빚어낸 영화 [쥬라기 공원]
신화에서 뻗어져 나온 생각그물은 과학, 미술, 음악, 의학, 영화까지 무궁무진이다.
2권에서는 또 어떤 신화의 상상세계가 펼쳐질까 기대된다.

참고문헌만 해도 장장 일곱 페이지다.
게다가 신화용어와 일반용어로 나뉘어서 찾아보기를 첨가해서 내가 찾고자 하는 바를
쉽게 찾아보도록 배려했다.
세계의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낯선 외국인이 자국의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반가움은 더 크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만난 다양한 세계의 신화는 그 대화의 물꼬를 터줄 수도 있을 듯하다.

못 말리는 응석꾸러기 페넬로페 공주
여덟 살 생일날 엉뚱하게도 돼지를 키우고 싶다는
공주의 못 말리는 고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그 특이한 공주에게 선택된 돼지가 바로 롤리팝이다.
돼지라기엔 너무 날씬한 롤리팝이 첫 페이지에 나온다. 게다가 영특하기까지 하다.
이 우연한 만남은 공주를 전혀 다른 사랑스런 공주로 변신시킨다.
왕의 "우리 딸이 좀 응석꾸러기이긴 하지?" 하는 물음에 "아무도 못 말리는 응석꾸러기라고 생각합니다. 공주님은 자신을 조금 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라는 조니의 대답은
공주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약간 엉뚱한 말을 꺼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개 같다' '개보다 못하다' 등의 표현을 아주 싫어하지만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듣기로는 서양에서는 '돼지 같다' '돼지처럼~' 이런 표현을 아주 심한 욕으로 안다고 했다. 더럽고 불결하고 멍청하다는.....
하지만 우리는 복스럽고 복을 가져다 주는 다복함을 상징하기에 친근하고 귀엽기까지 한 돼지
그래서 똑똑한 돼지 롤리팝이 더 귀엽게 느껴진다.
롤리팝의 해맑은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 모두가 빠져드는 것 같다.
왕비도 공주도 왕도 책을 읽는 아이들도~
페넬로페와 롤리팝의 알콩달콩 두 번째 이야기도 기대된다.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300 년도 더 된 시골집에서 동물을 기르며 정말 동물을 좋아하고 많은 동물을 키웠기에 동물에 관한 애정이 넘치는 이런 밝은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첫 페이지에서 심술이 뚝뚝 묻어나는 응석꾸러기 고집쟁이 공주의 모습에서
책 뒷부분 온화한 공주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모 방송의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놀라운 변신이다.
그 변신을 있게 한 공로는 영리한 롤리팝 돼지이기도 하지만
공주가 롤리팝을 훈련시킬 때 옆에서 아낌없는 칭찬을 해준 조니가 아닐까 싶다.

집집마다 귀하디 귀한 아이들
미운 일곱에서 발전하여 미친(?)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무가내인 고집불통 아이들을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된다.
아직 어리다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하고 상대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안하무인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 부모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하지마, 그럼 안돼” 계속되는 잔소리보다 흑백그림이 마치 목탄화 같은 친근함을 주는
이 책 한 권 아이와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가 그려본 책 속 그림---공주와 조니가 같은 시간 똑같이 돼지 롤리팝에 대한 꿈을 꾸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걸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린, 낙타 제목만 봤을 때는 저학년 동화책인줄 알았다.
이사와 전학이 일상처럼 잦은 아이 코우타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아이의 외로움이 마치 남의 일 얘기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글에서 짙은 외로움이 묻어났다.
청소년 책답지 않게 글자가 많지 않고 여백이 많은 책이다.
설명이나 묘사가 많지 않은 책이라 의문과 호기심과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
그 여백만큼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다.

비밀에 싸인 듯 뱀이 감싸고 있는 구와가타의 집 그림도 특이하다.
뱀이 허물을 벗듯 하나씩 벗겨지는 구와가타의 이야기는 또 다른 긴장감을 주며
책을 끝까지 순식간에 읽게 한다.
누가 싫다고 할까 봐 겁이 나서 누구에게 상처주지도 않고 받기도 싫어하는 코우타의 모습은
안으로 움츠려 드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곤경에 처한 친구를 외면한 부끄러움은 악몽이 되어 코우타를 괴롭힌다.
‘나는 막상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는 비겁하다’ 고 말하는 코우타
정작 책을 읽는 나는 이런 마음을 고백할 용기도 없는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겁함이라고 위로하고 싶어진다.
속으로 아파하던 차마 못 꺼내 보이던 상처를 말하게 하는 용기 그건 우정이었다.
밖으로 터뜨려야 속으로 곪았던 상처는 딱지를 만들며 단단한 새살이 돋아나는 게다.
마음이 아픈 아이가 더 아파하는 엄마를 위해 죽은 오빠의 자리를 대신해 왔다니…
기특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신기한 수학마술 같은 열여덟 번째 낙타이야기에서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낸
이 동화책이 남다르다.
어떤 곳에 가든지 열여덟 번째 낙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상대방이 먼저 손 내밀고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다가가서 누군가의
열여덟 번째 낙타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
나는 항상 숫자 0을 마법의 숫자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더해도 더해지지 않고 빼지지도 않고 아무리 큰 숫자도 그 곱을 0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마법의 숫자를 찾았다.
살아있는 낙타를 반으로 나누지 않아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연결고리
그 고리는 우리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먼저 내미는 손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