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첫사랑 설레임
이 책을 읽는 내내 맴도는 단어들이다.
내가 겪은 알싸한 사춘기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뚝딱 흘러 나의 큰 아이가 벌써 사춘기라
일컬어지는 나이의 어엿한 소녀가 되었다.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약간은 성숙한 그러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나이
금 간 도자기처럼 엄마의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사춘기의 딸에게
이 책을 함께 읽자며 은근히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책에 코 빠뜨리며 열심히 읽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좀 더 동글동글해진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봐주기를 기대해본다.
오랫동안 막아놓았던 장벽이 무너지듯 요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중국문학
마냥 생소했었고 공산국가라는 선입견 아래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접해본 몇 권의 책들은 계속 나오는 양파껍질처럼 다양하고 친근한 모습이다.
도굴을 소재로 한 모험소설부터 문화대혁명 당시의 삭막한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책,
만리장성 노역으로 남편을 잃은 한 많은 여인의 눈물이야기까지
거대한 중국인구만큼 다양한 문학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의 작가라는 이질감보다는 사춘기라는 제목에 더 많은 끌림이 있었던 걸까?
'상처 없는 성장' 이란 시로 첫인사를 나누고 책 속에 나오는 시 한 편이
작은 제목이 되어 우리를 책 속으로 안내한다.
중국의 역사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중국의 문화예술을 훌쩍 후퇴시킨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외딴 시골에 찾아온 도시 여학생 메이원과 시골 개구쟁이 시미의 만남
읽으면서 언뜻 황순원의 [소나기]가 살짝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순수하면서도 아련한 아픔도 느껴지는…….
책 속 메이원은 시미에겐 설익은 청포도 같은 첫사랑이자 멘토 같은 인생의 선배였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은 멋진 작품을 조각한 것이 아니고
단지 필요 없는 부분을 깍아서 돌 속에 숨어있던 아름다운 형상을 꺼집어 냈을 뿐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마치 메이원이 시미의 재능을 찾아내듯이……
메이원이 시미가 하고 있던 모두가 짖꿎은 장난이라고 나무라던 조각에 의미를 주면서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 내는 ‘조’와 더해주는 ‘소’ 를 이야기할 때
아이에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조소를 배울 수 있었다.
아이 속에 숨어있는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빼주고 더해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심하게 비뚤어진 성격의 샤오치쯔, 시미에 의해 목숨을 구한 후 마치 형제처럼 정을 나누는 개 챠오챠오,
항상 코흘리개라며 놀림 당하는 아이 주진건, 시미의 부모님과 인정 많은 선생님들……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생생한 들숨날숨으로 책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각을 하듯이 공들여 쓴 문장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챠오챠오가 보리밭을 가르며 달려오는 모습, 시미가 메이원에게 보여주는 달빛에 비춘 타이호수,
아픈 메이원을 위해 얼음 낀 호수에서 금빛잉어를 잡아 올리는 시미
글로 묘사되는 장면 모두가 스크린 속의 한 장면처럼 내 눈 앞에서 스르르 펼쳐진다.
메이원과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며 성장한 시미
힘든 몸으로 메이원을 데리러 결연히 노를 저어가는 모습과 이별을 건너뛰는 지혜로움을 보며
먼지떨이를 몇 개나 부러뜨린 개구쟁이 시미의 모습은 어느새 사춘기의 아픈 바다를 잘 건너온 듬직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몸이 훌쩍 커버리는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
그 키만큼 마음의 키도 함께 성장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시미와 함께 훌쩍 커버린 아이와 대견스레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