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여신 정이
도서 ‘불의 여신 정이’가 배달되어왔다.
현재 mbc 월화 드라마로 제작되어 한창 주목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난 드라마는 못 보았는데, 도서로 읽게 되어 너무너무 기쁘다.
불의 여신 정이는 권순규님의 장편소설이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무사 백동수가 생각났고, 드라마 동이가(아마도 이름 때문인 듯) 떠올랐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는 남편과 열심히 보았었는데,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는 처음을 놓치다 보니까 보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벤트 당첨은 1,2권을 보내 주셨는데,
내용이 긴박하고 한창 재미있을 때에 2권이 끝나는 바람에 쌩~하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 3권을 사왔다.
‘일본 아리타의 호온지 보은사에 세워진 법탑.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자
신타로 자기의 도조로 추앙받는 불의 여인,
열화 백파선의 법탑이다.‘
이 이야기는
뜨거운 불길처럼 열정적인 삶을 살고 간 그녀,
파란만장했던 정이의 일대기다.
첫장을 넘기자 한자가 눈에 띄였고, 적역(임금의 신발), 익선관, 내삼청(내금위, 우림위, 겸사복),박석마당 등 익숙치 않은 용어가 나와 바짝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내용이 술술 읽히는게,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를 더해갔다.
정이는 이강천과 초선사이에 태어났으나, 유을담의 손에서 자랐다.
을담 아버지는 옹기장이었으며 정이는 염을 하며 평화롭게 살다가,
을담의 죽음을 계기로 사기장의 길을 가게 된다.
훗날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자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불의 여인
열화 백파선이다.
책을 읽는 기쁨중의 하나는 섬세한 표현들이다.
25쪽 복장에 관한 섬세한 묘사--사기장의 복색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이라, 수비를 담당하는 홍색보다는 성형을 담당하는 황색이, 번조를 담당하는 청색보다는 변수인 을담과 강천이 입고 있는 자색이 상서열이었고, 맡은바 직책에 따라 색상만 다를 뿐 똑같은 형식의 옷이었다. 폭이 넓은 직령을 개조해 안으로 받쳐 입고 밖으로는 소맷단을 틀어 묶어 철릭을 걸쳤다. 소매단과 깃에 수놓은 무늬가 섬세하나 화려하진 않았고 머리에 쓴 두건 또한 각자의 복색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28쪽- 초선의 모습 — 고운 자태에 면면 가득 총명한 기운이 흘러 달빛아래 꽃망울을 터트린 백매화마냥 청초하였다. 눈동자는 흑진주를 박아 놓은 듯 했고, 백옥 같은 살빛은 또 어찌나 투명라고 희었는지 보는 이의 시선이 그윽할 수밖에 없었다.
유정의 자태--- 고운 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하게 내려온 양 눈썹은 길게 뻗어 너른 초목을 이루었고 봉곳이 솟은 콧날은 유순한 산등성이며, 그 입술은 앵두처럼 붉디붉었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릿결은 혜산천에서 길어 온 샘물처럼 단정하니 무엇 하나 빠지지도 거슬리지도 않은 순백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미인의 상이었다.
“전하께 올린 소박한 그릇엔...... 콩 하나를 위해 일년을 땀으로 일군 농민의 일평생이 녹아 있사옵니다. 가여운 백성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신다면...... 전하께 올린 소박한 그릇은 그저 볼품없는 사발에 지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도자기 만드는 흙의 본질에 대한 표현--
“들판의 흙은 그 안에 품은 꽃을 빚는 것이라 그릇에 꽃향기가 나는 법이며. 강둑에 쌓은 흙은 천년 강물의 숨결과 닿았으니 그 안에 숨 쉬는 생명을 담고 있고, 바다가 토해낸 짜디 짠 갯벌의 흙은 이리 빚든 저리 빚든 창창대해의 빛깔을 품게 되는 법이다.
팔도산천을 떠도는 그 어떤 이름 없는 흙도 후덕한 사기장의 손길 아래서 달빛과 교접하고 바람에 걸러지면 좋은 백토가 되는 법이니, 좋은 사기장이란 이러한 흙의 본질을 마음에 담아 고스란히 손끝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다.“
물-- “애초 모든 만물이 이 물에서 시작 되었느니라, 하나 어떠하냐, 만물을 지배하려는 인간 역시 손바닥에 차는 한 줌의 물도 떠올릴 수 없음이다. 사람의 몸이 아니면 물을 채울 수 없으니 흙 또한 물길이 닿지 않는다면 죽은 흙과 다름없다. 이 물은 흐름으로써 정기를 받고 생을 이어 가니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에서 비롯되는 법이니라.”
“물의 숨결을 느껴야만 그 물을 담을 그릇 역시 적절히 찾아낼 수 있느니라. 물과 흙의 배합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땔감--- “좋은 땔감은 창창한 젊은 시절을 맞은 송목이다. 여러 줄기가 부채처럼 자라난 것이어야 하며, 그 줄기가 곧고 수관이 좋아야 하느니라. 굵은 몸통에 안쪽의 심재는 황적색을 띄고, 겉은 적갈색을 띄어야 양질의 자기를 구워 내는 데 적합한 땔감이라 할 수 있다.”
가마--- “ 가마의 불길 앞에 서는 사기장들은 강렬히 희구하는 마음을 담아야 하느니라, 아느냐? 가마는 자궁이요, 자기는 태아다. 사기장에게는 가장 중한 것이 불이고 또한 가장 두려운 것이 불이다. 하나 사기장은 불의 신을 노하게 해선 안되는 법이다. 이 가마가 너를 산채로 태운다 해도 말이다.”
“땔감과 가마 그리고 너의 두 눈이 삼위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룰 때만 최상의 불길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조선시대 여인의 삶이라는게 남성들처럼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고, 제약이 많았던 시절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란 참 어려웠을 것 같다.
불의 여신 정이는, 여성 사기장 열화 백파선의 이야기를 안타까움과 재미를 더해서 소설화 했기에 흥미로웠다.
도자기는 우리의 자부심이요. 우리조상의 혼이 들어간 걸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도서를 읽게 되면서부터는 배우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생겼다.
직접 도자기도 만들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물레도 돌려 보고,
나의 자태를 닮은 항아리 두어점이면 족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