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두드려 이름을 찾고 아직 이 사람이 살아있음에 자조적인 목소리로 누군지 모를 이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위르겐 힌츠페터 - 1980년 5월 18일, 피의 현장을 세계에 보도한 최초의 기자. 혹시나 잊어버릴까봐, 이 뜨거운 감정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어서 끄적거릴려고 동생을 컴퓨터에서 쫓아냈다.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
도서관에서 두번이나 빌리고 다시 갔다주고를 반복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읽기가 불편했다. 공지영이란 사람, 그 사람에 대한 평가. 그리고 사람들의 열광?! 하여간 그 모든 것이 껄끄러웠다. 애들이랑 대화 또는 언젠가 지식인(?)으로 보이는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읽어볼까 했던 공지영님의 책은 한동안 내게는 책임질 수 없는, 대책없는 문제거리였다. 힘겹게 시작한 책은 정말 절망적일 정도로 질척거렸다. 질척거리는 첫번째 장을 넘어가 3 장을 넘기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에게는 난해한 문체가 읽는 시간을 더 길게 만들 뿐.
한숨이 더해 갈 때 나는 가슴이 불타올랐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부끄러워 우리는 붓을 놓는다.
별들의 들판, 귓가에 남은 음성 中
문득 베를린이란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독일은 어떤 곳일까를 고등학교 이후 줄곧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빨갛게 달아 오른적은 처음이었다.질척거리는 소재가 싫었다. 나는 오욕의 역사를 부정하는 철부지 ’신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쓴 과거는 적당히만 알고 싶었다. 열정을 다해 깨내면 무엇하겠는가. 남은 것은 피로 물든 더러운 역사뿐인데. 그래서 역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라고 말했었다. 헌데 이 책에서 역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보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파고드는 잔인한 결과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외면했던 것은 내 조국의 더러운 피빛 역사가 아니었다. 나의 양심과 열의 그리고 의무였다. 나는 대모를 줄기차게 해대고 전두환을 피로 대응하던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거짓말처럼 평화로이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피을 양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위 386세대가 지금은 세월의 뒷편으로 서서히 져가고 있지만 그때 그시절에는 이들이 가장 뜨거웠으리라. 제 5공화국이고 뭐고 여튼 이런 골치 아픈 소재는 싫었다. 아버지로부터 주입되려던 그 이념은 나의 반발로 무참히 사라졌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아닌 내 스스로가 알고 싶다.
이런 생각 하나하나가 이젠 흙으로 돌아간 이들을 위한 이런 내가 너무 부끄러워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조그마한 감사인사는 아닐까. 역사, 그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살인정부의 눈밖에 난 그는 1986년 드디어 광화문에서 카메라를 들고 찍다가 골목으로 끌려가 무자비하게 폭력을 당하네. 그때 부러진 목과 척추가 오늘 바로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트루머 교수가 덧붙이더군. 힌츠페터씨는 나를 보고 다시 웃었어. 미안해하지 말라는 말처럼. 나도 웃어주었지. 고맙다는 말처럼. 하지만 친구. 나는 부끄러웠네.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게 내 죄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막을 수가 없어서 나는 잠시 집밖으로 나와버렸네. 호수에는 여전히 요트가 떠가고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갔네. 담배를 물고 하늘을 보니까 아주 푸르더군. 그해 오월처럼.
별들의 들판, 귓가에 남은 음성 中
귀를 막아 그 모든 소리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네. 돈을 벌어 예쁜 아내를 얻고 포도주를 부어 우리의 젊음, 때리고 던지고 찢기고 투옥되던 잿빛 젊은날을 금빛으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네. 그러나 그 힌츠페터씨의 어리석음이 나를 깨우고 있었네. 그의 불구가 내 멀쩡한 팔을 당기고 나를 엎어지게 만들고 휘감아 돌려 땅에다 메어꽂았네.
별들의 들판, 귓가에 남은 음성 中
오랫동안 잊었던 단어들을 쓰고 있노라니, 다시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네. 젠장, 이 소름은, 이 소름이 돋덛 처음의 기억은 이미 우리 세대의 유전자에 새겨져버린 것인지... ... 그래, 새겨져버렸나보네.
별들의 들판, 귓가에 남은 음성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