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
표지의 할아버지는 그리 꼬장꼬장 해보이지는 않는다. 선한 할아버지 같은데.. 확고한 고집이 내면에 있는 모양이다. 심금을 울리는 살아있는 목소리다.. 정말...
젊은 시절에 폭격기 조종사가 되어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하워드 진은 전쟁 말에 회의를 느끼며 반전운동의 ‘핵’으로 서게 된다.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전쟁이 파시스트 못지 않은 살육과 재앙을 발생시키는 것 보면서...
사람이 살면서 한결같을 순 없을 것이다. 생각이 달라졌을 때 내가 이전에 했던 행동은 민망하거나 부끄러울 수 있을 것이다. 달라진 생각이나 행동을 변절. 따위로 보지 않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덜 가진자,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민주주의의 사상적인 본질에 서 있다면 용납이 가능하지 않을까.
2010년 초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적 양심. 하워드 진은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흑백의 인종문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연대하는 것만이 이기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다만 일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행정, 국가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준다. 그리고 싸우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반대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할 그게 오히려 제대로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가졌었는데..다행.. 나름 훌륭한 논리였다.
실제 거기서 일하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누구든.. 그들은 그저 잠시 지나가는 권력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니까... 더 상위의 개념. 즉, 정의, 인권, 민주주의.. 그것을 가슴속에 염두해 둘 뿐이지. 그 바보들이 자기가 곧 조국인 줄 알아서 큰 일이지. 대통령에게 반대하면 조국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그런 논리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진짜 겁쟁이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강한 우리는 우리들의 작은 행동이 엄연히 존재함을 알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린다.
문득 천안함 건과 관련하여 참여연대가 유엔에 의문이 많다는 서안을 보냈을 때 정운찬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나라 국민이냐” 글쎄, 그게 왜 중요하니. 그냥. 의문이 있다니까. 그걸 발표한 국방부, 정부관료(그저 잠시 권력을 쥔 너희들)에게 의문이 있으면 딴 나라 가서 살거나? 그냥 의심없이 받아들여야 한국인인가? 한국인이 아니어도 된다면 그냥 그렇게 하겠다.
이하. 책 내용을 소개한다.
9쪽 -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은 독립선언서의 원칙들을 신봉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50쪽 - 인종차별주의의 상존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매일 들려온다. 그렇다고 민권운동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경시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들이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을 향한 오래고 느릿느릿하게 이루어질 싸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기를 꺽는 것이다.
118쪽 -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젖ㄴ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136쪽 - 내 전쟁 경험을 다시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 역사를 읽어가면서 나는 어떻게 전쟁이 모든 사람을 야수로 만들고 애초의 도덕적 요인이 파묻혀 버리는 광신을 낳게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인도적이라고 마땅히 주장할 순 있지만 그 차이가 현대전의 대규모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다는 것도 내 결론이었다.
163쪽 - 젊은이들이 사회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고등학교 시절만큼 중요한 때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학생들이 정부와 학교 당국, 부모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고에 노출될까봐 학부모와 학교 관리들이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직 고등학교뿐이었다.
197쪽 - 시민불복종은 그것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무정부 상태를 낳는다는 일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코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위험은 시민의 복종, 즉 개인의 양심을 정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역설했다.
256쪽 - 학교의 핵심기능 가운데 하나가 사회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를 구하도록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임은 맞다... 그러나 학교의 교육이 훨씬 중요한 것은 그것 없이는 지도자들이 전쟁을 계속할 수도, 국가의 부를 유린할 수도, 반역자와 정치적 반대파들을 억누를 수도 없는 규칙-법의 권위에 대한 복종의 규칙-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287쪽 - 그렇다. 인종간 증오와 성차별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고 전쟁과 폭력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를 타락시키며,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하층계급은 엄청나게 많고 다수 국민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만 본다면 역사적 관점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치 어제 태어난 사람처럼 오늘 아침 신문과 오늘 저녁 텔레비전 뉴스의 우울한 소리들만 알게 된다. 인종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자신들의 당연한 자리를 요구하는 대담한 여성들의 존재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진기한 골동품이 아니라 오감을 지닌 인간 존재라는 대중들의 각성 속에서 걸프전 와중에 잠시 고조된 군사적 광기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확대된 군사개입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 단지 수십 년에 불과한 시간동안 이루어진 놀라운 의식의 변화에 관해 생각해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관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의지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