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나오기까지 한 줄 몰랐다. 3학년의 한 학생이 보라면서 빌려주었다. 이런 메모와 함께 (내가 그 반에서 공부에 쪄든 애들을 보며 한 바탕 속의 말을 퍼붓고. 눈물을 보이던 그 날...)

 

.. “이 책은 선생님께서 오늘 느끼셨던 기분과 같은 심정일 때 읽었던 거에요. 공감도 많이 되고 위안되고 잠들어있던 ‘의식’이 깨어나는 기분이었어요. 읽은 후에 꼭 돌려주시길... 박노해씨의 사진전 갔을 때 산거라서 무지 아끼는 책이거든요. ;; 그럼 재밌게 보시실”

 

내가 김예슬과 같은 비판적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게. 도대체 언제적 부터였다. 아직도 그녀에 비해서 부족한 것 같은 세상을 보는 눈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 처럼 대학을 그만두고 나와야 비단 정의롭다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그렇기도 하구나. 라고 판단하는 ‘시각’을 가지는 게.. 그렇게 사는 게. 왜 그렇게 어렵냔 말이다. 다르게 생각해보거나 토론의 여지가 있는 점도 책안에는 물론 있다. 또한 그의 말과 행동이 절대 따라야할 표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포함하더라도. 이 책 한권을 묶어낼 정도의 문제의식, 또는 자기주장을 가진 대학생이.. 정말 이땅에 얼마나 있는가.. 그런 선생은 또 얼마나 있으며 그런 부모는 어디 있는가..

 

내 자식이 그냥 그렇게 커주면 좋겠다. 김예슬처럼.. 지각이 있는 인간이 되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크도록. 꼭 옆에서 지켜주고 길을 열어주기를 다짐한다. 경쟁에 내몰지 않는 부모가 되고 스스로 깨닫고. 홀로서는.. 주관이 있는 녀석이면 좋겠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 있겠으나. 김예슬의 부모가 나는.. 부럽다.

 

그리고 소리없이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다른 ‘김예슬’ 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금만 열심히 해서. 나도 post 김예슬을 만들어야겠다... 무책임하게? 뭘 그래. 고작 나 하나 떠드는 것 갖고..이 땅의 자본과 기득권들이. 신문, 방송, 책, 티비, 교과서 등등등 널려있는 상황에.. 나. 작은 돌 하나 던지겠다는게.. 뭘... ? 시장에 좌판하나 들고 나가서. 삐딱한 소리 좀 하는게. 그리 문제가 되나?

책을 빨리 읽고 ‘아는 체’의 기반으로 삼길 즐기는 저질의 독서가인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어딘가에 가까이 두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감수성을 자극하는 내용이라. 다시 읽게 된 것 같다.

 

훌 륭한 사람은 아무래도 감옥엘 다녀와야 하는 모양이다. 만델라, 김대중, 신영복 등등... 그래서 나는 훌륭한 사람이 못될 것 같다. 내면으로의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일상에서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또한 내 탓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의 삶을 엿보아 공감하고 내 것으로 훔쳐오는 도적질.. 바로 독서의 맛이.. 살며시 스며들게 하는책이 아닐까 한다. 경쟁과 승부, 물질과 권력 따위에서 어떤 식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지 이정표가 되어주는 책이라 확신한다.

 

어찌도 주옥같은 문장들이 그리도 많은지..

 

24쪽>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49쪽> 나는 내가 지금부터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당해 낼 힘이 나의 내부에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수많은 사라들 속에 풍부하게 충분하게 묻혀 있다고 믿는다.

139쪽> 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155쪽>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이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 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191쪽> “우차가 나아가지 않으면 소를 때리겠느냐 바퀴를 때리겠느냐”는 우문이 때로는 우리를 깨우치는 귀중한 물음이 되듯이 본말을 전도하고 선후를 그르치는 것은 거개가 졸속한 욕심에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17 쪽>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진을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있게 기다려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최고의 선은 순조롭기가 흡사 물과 같다는 까닭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271쪽> 생활 속의 즐거움이나 일거리와는 하등의 인연도 없이 칠판에 백묵으로 적어놓은 것이나 종이에 인쇄된 것을 ‘진리’ 라고 믿으라는 ‘요구’는 심하게 표현하면 어른들의 폭력이라 할 만하다.

361쪽>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 그런 멋진 친구가 되자.

392 쪽> 사실 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유하고 도리에 순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경우에 어긋남이 없고 떳떳하기만 하면 조급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옆에서 보는 사람은 물론 이긴 듯 의기양양하던 당자까지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능력과는 별개로 나는 대안학교 혹은 비제도권 교육과 정서적으로 일치함이 많은 거 같다.물론. 속칭 싸가지들의 난동에 광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마자렐로 센터는 우리가 말하는 문제아.(그러나 실상은 부적응아)들이 수녀님들과 거주하면서 자기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찾아가도록.. 돌보는 곳이다. 사실 학교가 몸부림침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직업정신(생계수단으로서의 교직)과 맞물리며 경쟁과 성적에 시달리다보니 그저 ‘올 한 해 별탈 없기를’ 바라면서 형식적인 상담과 노력을 기울이는 바가 크다.

 

이 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말했던 정서적으로 좀 다를 뿐...

대세? 앞에서 꼬리내리는 나의 모습은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지금만 봐도.. 하루에 지리문제를 거의 30~40문제를 풀라고 시키지 않은가..(진짜 하든, 말든.. 그건 니 몫이라고 하면서. )

 

사랑을 주고받는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하고. 또한 안쓰럽다.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확신에 찬 텍스트(지리교육)의 전달이. 어디 얼마나 쓸모있다고. 목을 메야하는가....헛소리와 농담으로 웃음을 주면서 그걸로 위안을 삼는 나...그래도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해야지 하고 큰 소리 치는 교사들은.. 과연 정작 자기의 몫을 무엇이라 보는 건가.. 교과지식의 전파.. 땅끝까지???

 

지극히 형식적인 나의 사랑만큼 나 역시 애들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있지 않나.. 그래도 반성하고 항상 뒤돌아 보자.. 나도 나중에 ‘좋은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